수요예배 설교

2. 그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골 1:4-8)

우인택 목사
2025-07-02
조회수 467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어떤 일을 할 때, 세상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한 부류는 한 부류는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또 한 부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부류에 속하십니까? 일의 결과가 중요합니까? 일을 성취해 가는 과정이 중요합니까?

일의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이 목적이 아닙니다. 일의 성취가 절대적인 목적입니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은 일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의 만족도보다는 일이 성취되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물론, 일의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일의 결과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 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기에 그에게 있어서 일은 목적이 아닙니다. 수단입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일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일의 성취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하나님은 어느 쪽에 계실까요? 예수님께서 이에 대하여 마가복음 2:27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안식일을 지키는 일을 할 때,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는 것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일 때문에 사람이 상하거나 다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목적은 사람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복되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신앙의 성장은 일 중심적인 사고에서 사람 중심적인 사고로 변화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일의 성취 때문에 사람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어찌하든지 그 일을 통해 사람을 복되게 하려고 힘씁니다. 서신서의 기록들도 모두가 다 이에 기초를 두고 기록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상고하는 골로새서도 골로새 성도들의 신앙의 성숙이나 거룩한 삶이나 그들이 맺은 삶의 열매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골로새 성도들 자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자신이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상고하면서 여러분에게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에바브라가 신실하게 사역함으로써 복음이 골로새에 심어지고 자라나 열매를 맺게 된 것에 대한 바울의 칭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먼저, 바울은 지난 본문인 3절에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라고 고백했는데, 바울이 이처럼 감사 기도를 드린 이유는 바로 4절 말씀으로 인함이었습니다. 


4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그런데 누가 바울에게 골로새 성도들의 근황에 대하여 전했습니까? 에바브라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목회자였던 그는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에게 직접 가서 골로새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하여 상세하게 전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바울이 이에 대하여 기록함으로써, 이천여 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도 ‘골로새 성도’하면,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던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골로새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은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장소와 시대를 초월하여 믿음의 선한 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골로새 성도들이 진정으로 믿음이 좋고 훌륭해서 바울로부터 이러한 칭찬을 받게 된 것일까요? 골로새 성도들이 완전했기에 이런 칭찬을 받게 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신앙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성도들은 불완전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로써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로새 성도들이 이와 같은 칭찬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온전한 믿음을 갖기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믿음이 있는 척, 사랑이 있는 척 한 것이 아니라, 바른 믿음을 가지기에 최선을 다했고, 서로 사랑하기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무슨 큰 업적을 이루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믿음과 사랑으로 서로 섬기려 노력한 마음 자세를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믿음은 최선을 다하여 진실한 믿음과 사랑을 행하려는 마음 자세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참믿음과 참사랑을 소망하며, 그에 합당한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수한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고 순종하기를 원하는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골로새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자랑이 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5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여기에서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란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때 성도들이 받게 될 영광을 의미합니다(롬 8:18, 벧전 5:10). 그리고 이러한 소망은 4절에서 골로새 성도들이 이단들의 미혹과 박해 가운데에서도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살기에 힘쓸 수 있었던 힘의 동력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하늘에 소망을 있다”는 것에 대하여 오해합니다. 하늘에 소망이 있기에 이 세상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살지 않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매달리며 하나님의 나라에 갈 그날만을 소망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소망을 둔 삶이란 이처럼 이 세상의 삶을 부정하는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의 삶을 더 성실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제공합니다. 골로새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살기에 온 힘을 다했던 것은 이 세상의 삶의 결과로 하늘에 소망이 쌓이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소망은 이 땅의 삶을 버리고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땅의 고난과 좌절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살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다시 말해, 하늘에 소망을 쌓아두었기에 고난의 어려움 속에서도 죄에 굴복하지 않게 됩니다. 불의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의를 행함으로 불이익을 당해도 의를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숭배하는 돈, 학력, 외모, 명예, 권력 등을 소유하지 못해도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기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하늘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소망을 어떻게 품고 있느냐에 따라 이 세상의 삶이 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아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인간적인 욕심을 조금이라도 더하면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골로새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5절에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이 섞여 있지 않은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너무나도 많은 성도들은 성경을 전혀 읽지 않습니다. 하루 10분이면 읽을 수 있는 ‘성경통독표’조차 읽지 않습니다. 온전한 신앙을 갖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말뿐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들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성령께서 그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지 않으니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부터라도 성경을 가까이하여 늘 읽고, 말씀을 깊이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7-8절 함께 읽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바울이 에바브라를 ‘함께 종 된’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은 바울이 그를 복음 사역의 동역자로 인정하였음을 뜻합니다. 빌레몬 1:23에 의하면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함께 종 된’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언약공동체이자 동시에 운명공동체이기에, 한 개인의 능력으로 세워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 개개인이 예수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되어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한 성도가 참된 성도이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입니다. 골로새서를 상고하면서 예수님 안에서의 한 지체로서의 삶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바울은 함께 종 된 에바브라에 대하여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라고 칭찬합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에 사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보내진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이러하신 하나님의 뜻을 가슴 깊이 품고 골로새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이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예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본을 보이며 신실하게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특히,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살 수 있도록 그들을 바르게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에바브라에게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라고 창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란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지극히 작은 자를 사랑하는 것이 참믿음을 소유한 것이고 하늘 보화를 쌓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잊으면 성도들을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고, 교권주의가 생겨나고 교회가 부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요한일서 4:20-21에서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세상의 종교들과 같이 하나님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오늘,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믿음은 최선을 다해 진실한 믿음과 사랑을 행하려는 마음 자세임을 알아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합당한 삶을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늘의 소망을 품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지극히 작은 자를 돕고 사랑하기에 힘쓰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우인택 목사 / 경기도 화성시 10용사로 336-8

(031) 378-5491   joycs1@nate.com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저작권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