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20. 예수님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빌 4:21-23)

우인택 목사
2025-06-18
조회수 534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오늘로써 빌립보서를 마칩니다. 그동안 빌립보서를 상고하면서 마음에 깊이 와닿은 것은 바울의 숭고한 신앙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뛰어넘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달리는 신앙의 경주자, 어떤 환경에서든 자족하며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 특히,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상황을 넘어서서 누리는 기쁨 등은 우리에게 매우 큰 도전이자 본받아야 할 신앙의 모습으로 다가 왔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1:27)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라”(2:2)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무엇에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한 성도가 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담대하게 권면했습니다. 오늘, 빌립보서를 마치면서 이러한 바울의 권면이 여러분의 삶에도 증거되어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1. 먼저, 21절 함께 읽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바울이 기록한 서신마다 빠지지 않는 이 짧은 문안인사에서,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갖기에 힘썼음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소유를 팔아 필요한 가난한 성도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기쁨으로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모이기에 힘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아름다운 교제는 건강하고 생명력있는 교회를 만들었고, 빈부나 계층과 남녀노소의 차이를 초월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라고 해서 늘 아름다운 교제가 유지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교회는 부유한 성도들의 무관심 때문에 가난한 성도의 마음이 멍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따라 성찬식을 했었는데, 성찬을 하기 전에 각자가 준비한 음식을 미리 나누어 먹는 애찬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때 부자 성도들은 생업에 전념하느라 아직 도착하지 못한 가난한 성도들을 기다려 그들과 함께 애찬을 나누지 않고 먼저 자기들이 가져온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인해 가난한 성도들은 굶고 하나님의 교회는 업신여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고전 11:20-22).

교회 내에서 이러한 불의한 일이 일어나면 사랑의 교제가 식어지고 성도들은 큰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오늘날 더욱 심각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30여 년 전에는 이웃들이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였습니다. 이웃집 문제를 내 일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돕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이웃개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바로 옆집에 살면서도 서로 인사 없어 지냅니다.

이에는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성도 중에 누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잘 모르는 것을 정상으로 여기는 비정상적인 교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성도들은 목회자의 심방을 거절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교회에서 마음문을 연 교제를 더이상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미움보다 더 나쁜 것이 무관심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5대 사명’ 중에는 교제가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어야 하고, 그 은혜를 힘입어 성도 간의 교제가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믿지 않는 이웃과의 교제로 복음전파의 열매가 맺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정신이 사라지면 성령의 역사가 사라지고, 교회는 무미건조한 하나님의 능력을 도구로 삼는 합목적적 공동체로 전락하게 됩니다.

여러분,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야만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성령의 교통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만일, 서로 돕지 않으면 빌립보교회처럼 사탄의 세력에 패배하는 나약한 교회와 성도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괴로움과 분열의 아픔 속에 있던 빌립보교회가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져서, 서로 돕고 교제함으로써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랑이 풍성한 교회로 회복되었듯이, 우리 또한, 빌립보서를 마치면서 먼저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어지고, 그로 인해 성도 간의 교제의 기쁨이 왕성해지고, 그를 통해 구원의 기쁨이 더해지는 교회로 세워가야 합니다. 빌립보서를 마치면서 이러한 믿음의 결단을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2절 함께 읽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이 말씀은 교제의 열매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가이사 집 사람’들은 다름 아닌 로마 황실의 친족 또는 관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로마 황실은 교회를 박해하던 로마 황제의 집안입니다. 예수를 ‘주’라 부른다 해서 박해하던 그 황제와 한 담장 안에서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함께 살았다는 사실은 마치 소설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철벽과 같은 로마 황실에 어떻게 복음이 들어갈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우리는 바로 여기서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복음의 보편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이 마치 가난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인 양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 구절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6:20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보다 쉽다고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눅 18:24-25). 그리고 초대교회의 구성원들을 보면, 지혜와 능력과 좋은 가문을 골고루 갖춘 성도들이 거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고전 1:26).

그러나 성경은 복음이 가난한 자들에게만 더 차별적으로 열려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로마서 1:16에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말씀합니다. ‘복음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기에 복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복음을 거부한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부유하다 할지라도 그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복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냐, 남자나 여자냐, 종이나 자유인이냐, 부자나 가난한 자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고(롬 2:11),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차별없는 하나님의 의’입니다(롬 3:22). 그러하기에 가이사의 집 몇 명에서 시작한 복음이 황제에게까지 전해지게 되어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비록 내게 많은 손해를 끼치고 심지어 나를 박해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의 손을 잡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롬 12:20). 또한,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앞에서도 죄를 짓거나 탐욕스럽게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도 나의 형제자매가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를 마음에 새기고, 복음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음을 증거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23절 함께 읽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바울은 전형적인 인사로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편지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바울 서신의 마지막에는 어김없어 ‘은혜’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가 이러한 표현을 그의 서신에서 빠뜨리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성도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항상 서신의 처음과 마지막에 이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은혜야말로 성도의 삶에 있어서 시작부터 끝까지 가장 필요한 것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바울은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메마르면 가장 먼저 감사가 사라지고 연이어 기쁨과 평강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로 인해 이웃을 용서할 수 없게 되고 자신의 죄를 깨닫지도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로도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면 겉으로는 성도일지 모르지만, 그 속은 더이상 성도로서의 모든 것을 상실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찬송하고, 감사하고, 나아가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성도의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고, 부요함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이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마음 밭에 구원의 기쁨을 가득채우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아버지, 지난 6개월 동안 빌립립보서를 상고하며 주 안에 거하는 자로서의 삶의 자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안에서 하나되어 항상 기뻐하며,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저희가 되게 하옵시되, 바울이 오직 믿음으로 로마를 복음화시켰던 것처럼 저희도 심령에 은혜가 충만함으로써 처한 처소를 복음화시키는 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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