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18.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빌 4:10-13)

우인택 목사
2025-05-21
조회수 562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극한 고난의 순간들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10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빌립보 교회는 창립 초기에는 모범적으로 바울의 선교를 돕는 교회였습니다(15-16절). 그런데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라는 말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일정 기간 서로 관계가 끊어졌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바울을 기억하며, 당시 빌립보 교회의 지도자 중의 하나인 에바브로디도를 감옥에 갇힌 바울에게 보내어 바울을 위로하고 섬기도록 했습니다. 지금 바울은 이렇게 그들과의 소원했던 관계가 회복되자 감격에 겨워 감사의 편지를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상고하고 있는 빌립보서입니다(1:7).

사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충분히 섭섭한 마음을 품을 수도 있었습니다. 특히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교회를 든든히 세울 수 있도록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바울로서는 충분히 섭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섭섭한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10절에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라는 말로 빌립보 성도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며 그들이 미안해할까 하여 덕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혹 섭섭한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 속히 섭섭함을 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섭섭해하는 마음이 아니라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섭섭해하는 마음은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니라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오해 때문이든, 세심한 배려가 부족했기 때문이든, 서로 섭섭한 감정이 있다면 누가 잘했는지 따지지 말고 먼저 손 내미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1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이 고백은 매우 인상적인 고백입니다. 이 한마디에 사도 바울이 어떤 믿음의 소유자인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여기에서의 ‘자족’이란 ‘환경과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자기 충족감’을 의미합니다. 그러하기에 자족하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다고 교만해지거나, 낮은 자리에 있다고 비굴해지지 않습니다. 웬만한 어려움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내적인 만족감이 있어 어떤 유혹이나 시련도 거뜬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자족하는 마음은 ‘성숙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는 인내할 줄을 모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데 참지 못하고 부모에게 무작정 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치아와 건강을 위해 아이스크림이나 사탕 같은 단 것을 자녀에게 많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러한 부모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 알면서도 무작정 조르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성도일수록 어려움에 부닥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러한 환경을 허락하셨는지에 대해 원망하는 일이 많고, 하나님의 섭리를 잘 발견하지 못하므로 감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성도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오히려 고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듯 ‘자족’은 기본적으로 믿음과 감사의 문제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에 만족할 수 있고, 상황을 초월하여 감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여러분은 성숙한 성도입니까? 지금 처해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하여 자족하고 계십니까? 대개의 사람은 자기가 처한 형편에 대해 만족할 줄 모릅니다.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은 적다고 원망하고, 이미 많이 가진 자들은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칩니다. 또, 충분히 자족할 수 있는 형편인데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그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마음에서는 감사가 나올 수 없습니다.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당시 바울이 매우 궁핍했다는 뜻입니다. 더군다나 그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감옥에서 불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빌립보 교회의 후원금은 매우 뒤늦게 도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셨지만, 그가 궁핍하게 살도록 이처럼 얼마 동안 그를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궁금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극한 상황에 있는 바울을 도우시는 일을 지체하신 것일까요? 무엇 때문에 바울의 선교사역을 위해 즉각적으로 필요를 채워주시지 않으셨을까요? 

그 의문을 푸는 열쇠가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하나님께서 바울이 자족함을 배울 수 있도록 잠시 후원을 중단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삶 속에서 “이것만은 하나님께서 꼭 주셔야 합니다” 하고 간구하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을 때가 간혹 있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우리의 신앙을 자라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처럼 일체의 자족하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거룩한 계획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의 삶에 어떤 궁핍함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공급을 중단하신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여러분을 힘들게 합니까?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원망, 불평하지 마시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이때를 자족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시면 바울에게도 그리하셨듯이 여러분은 꼭 필요한 때에 ‘다시 싹이 나는 역사’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게 될 것입니다.

 

3. 이어지는 12절 함께 읽습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것은 그의 감사가 환경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감사에는 세 종류의 감사가 있습니다.

첫째는 ‘만일’의 감사입니다. “만일 이것을 들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는 조건부 감사입니다. 두 번째는 ‘때문에’의 감사입니다. “이렇게 해 주셨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하는 상황에 따른 감사입니다. 좋았던 일에는 감사하지만, 반대로 좋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는 원망이나 불평이 따르는 그런 감사입니다. 세 번째는 ‘그런데도’의 감사입니다. 이것은 환경과 상관없이 하는 감사이기에 사도 바울의 감사이자 우리가 모두 추구해야 하는 감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감사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자족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 역시, 크고 작은 일, 이런저런 형편을 겪으면서 깨닫고 바로잡아 가는 과정을 거쳤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족하는 마음은 어느 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환경을 통해서 연단 받으며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잘 안 된다고 해서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잘 안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참고 인내한다면 언젠가는 우리도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 전체를 자족하는 삶의 배움터가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환경에서 자족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바울처럼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13절에 기록된 바울의 고백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읽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은 ‘믿는 자에게 불가능은 없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문맥을 보면 어떤 여건 속에서도 만족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자족할 수 있게 된 비결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중심이 되는 문장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입니다. ‘능력 주시는 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말은 괴로움과 궁핍, 심지어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인내할 수 있었던 능력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는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많은 유대인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괴로워할 때,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라고 친히 위로하며 격려해 주셨습니다(행 18:9-10). 힘든 상황을 만날 때마다 나타나 격려해 주셨습니다(행 23:11, 27:24).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바울에게 순전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가장 귀한 것들을 배설물로 여길 만큼 순전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은혜는 마치 거울과 같습니다. 내가 순종한 만큼 비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성도로서의 삶을 사는 것에 있어서는 우리의 믿음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신앙을 본받아 믿음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짐으로 자족하기를 기뻐할 뿐만 아니라, 능력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을 수 없고, 그를 증언할 진정한 신앙인을 찾을 수 없다고 하는 이 시대에 바울처럼 신실한 믿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모든 환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신 것임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고난 가운데 있게 되더라도 실망하거나 불평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오히려 그 기회를 자족의 기회로 삼고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를 통해 주 안에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용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우인택 목사 / 경기도 화성시 10용사로 3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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