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을 들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그런데 여러분, 지난 한 달간 매주 수요일마다 이러한 권면을 들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정말 그렇게 살고 싶다는 결단도 섰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영적인 부담감과 한계도 느꼈을 겁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오늘 결단해도 내일 무너지는 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러한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거룩은 나의 의지로 이루어가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내 안에서 이루어가시는 은혜의 사건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깊이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거룩하게 하시고 ἁγιάσαι’라는 말은 ‘구별되게 하시고’, ‘성결하게 하시고’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를 이렇게 이끄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우리가 거룩해지는 과정이 강요나 의무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온전한 화평과 평강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단어는 ‘친히 Αὐτὸς’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이끄신다는 말은 거룩의 주체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스스로를 거룩하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절제하고 수행해도 우리 안의 타락한 본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직접 개입하셔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별해내실 때만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온전히 ὁλοτελεῖς’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 인격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이끄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종교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생각까지도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이끌어가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가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우리는 거룩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거룩으로 이끄심을 믿는다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 평강의 하나님께서 나를 성결한 삶으로 이끌고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온전히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평강의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따라 평강의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날마다 조금씩 거룩해져 가는 기쁨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본문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거룩함이 미쳐야 할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바로 ‘영과 혼과 몸’입니다. 영과 혼과 몸은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일컫는 표현으로, 전인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1) 먼저, ‘영’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통로입니다.
어원을 찾아보면, 영으로 번역되는 구약의 ‘루아흐 רוּחַ’와 신약의 ‘프뉴마 πνεῦμα’는 모두 ‘하나님의 호흡’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창세기 2:7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불어 넣으신 ‘생기’가 바로 영의 기원입니다. 그래서 영은 인간의 심연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예배하고, 교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동물에게는 없고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하나님과의 연결 통로입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은 영이 죽은 상태(하나님과의 단절)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으로 거듭날 때만이 이 영이 다시 살아나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됩니다(롬 8:15). 성도는 영이 깨어있어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로 ‘혼’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담당합니다.
어원을 찾아보면, 생명으로 번역되는 구약의 ‘네페쉬 נֶפֶשׁ’와 신약의 ‘프슈케 ψυχή’는 ‘지성, 감정, 의지(지·정·의)’를 포함하는 사람의 인격과 자아를 뜻합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마음’이나 ‘정신’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영이 하나님을 향해 있다면, 혼은 나 자신과 이웃, 그리고 세상을 향해 있습니다. 생각하고(지성), 느끼고(감정), 결단하는(의지) 모든 인격적 활동이 혼의 영역에서 일어납니다. 또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혼은 ‘육체의 소욕’과 ‘세상의 가치관’에 지배당하지만, 거듭난 성도의 혼은 ‘성령’을 통해 공급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삶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37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하실 때의 목숨이 바로 혼입니다. 로마서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는 이 명령에 순종하는 자리가 혼의 영역입니다.
3) 마지막 세 번째인 ‘몸’은 우리의 육체를 뜻합니다. 신앙이 삶으로 실천되는 통로입니다. 어원을 찾아보면 몸으로 번역되는 구약의 ‘바사르 בָּשָׂר’와 신약의 ‘소마 σῶμα’는 흙으로 만들어진 물리적인 육체를 뜻합니다(창 2:24, 마 5:29).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몸을 단순히 썩어 없어질 흙으로 보지 않고,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칭합니다(고전 6:19). 그리고 몸은 영과 혼이 하기를 원하는 것을 세상 가운데 실천하고 나타내는 도구입니다. 몸이 없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선을 행할 수도, 예배를 드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로마서 6:13에서 우리의 몸을 ‘불의의 무기’로 내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몸은 영과 혼의 상태에 따라 악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거룩한 예배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 구원은 영혼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몸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몸으로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영적인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몸으로 짓는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반대로 육체적인 삶에만 몰두하여 영혼의 갈급함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영과 혼과 몸 어느 한 부분도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에 비유하면 영은 지성소와 같고, 혼은 성소와 같고, 몸은 성막의 뜰과 같습니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습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거룩하고 깨끗해야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에서 ‘보전되다 τηρέω’라는 말은 ‘지키다’, ‘파수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인이 성벽을 지키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 인격을 죄의 미혹으로부터 지켜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혼)을 하나님이 지키시도록 맡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건강과 행동(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이도록 내어드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을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온전히 맡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23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자 기초입니다. 여기에서 ‘미쁘다 πιστός’라는 말은 ‘신실하다’, ‘믿을만하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는 최종적인 근거는 나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구원의 길로, 거룩의 길로 초청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르기만 하시고 방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마무리를 짓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빌립보서 1:6에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내가 연약하여 넘어질 때도 하나님의 미쁘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낙심하여 손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분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거룩한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니, 반드시 나를 흠 없는 자로 완성하실 것입니다”라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미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 거룩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의 수많은 권면 뒤에 마침표처럼 찍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악을 버릴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그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바로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를 부르신 ‘미쁘신 하나님’이 그 일을 ‘친히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혹, 무거운 종교적인 짐을 지고 계시다면 내려놓고 복음의 자유 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거룩은 고통스러운 고행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과 함께 걷는 행복한 여정입니다. 이를 믿고 오늘부터 나를 지키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 영과 혼과 몸이 하나님의 평강 안에 머물게 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험한 세상에서 자주 흔들릴지라도, 우리를 부르신 미쁘신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를 예수님 재림의 날에 흠 없는 모습으로 세우실 것을 믿고 당당하게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신 말씀처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 평강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이를 수 없는 그 거룩의 자리에, 하나님의 미쁘심을 의지하여 나아가기를 결단합니다. 우리 삶의 작은 부분까지 친히 인도하여 주시고,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흠 없게 보전하여 주옵소서.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별된 성도로서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을 들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그런데 여러분, 지난 한 달간 매주 수요일마다 이러한 권면을 들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정말 그렇게 살고 싶다는 결단도 섰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영적인 부담감과 한계도 느꼈을 겁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오늘 결단해도 내일 무너지는 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러한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거룩은 나의 의지로 이루어가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내 안에서 이루어가시는 은혜의 사건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깊이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거룩하게 하시고 ἁγιάσαι’라는 말은 ‘구별되게 하시고’, ‘성결하게 하시고’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를 이렇게 이끄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우리가 거룩해지는 과정이 강요나 의무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온전한 화평과 평강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단어는 ‘친히 Αὐτὸς’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이끄신다는 말은 거룩의 주체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스스로를 거룩하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절제하고 수행해도 우리 안의 타락한 본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직접 개입하셔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별해내실 때만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온전히 ὁλοτελεῖς’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 인격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이끄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종교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생각까지도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이끌어가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가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우리는 거룩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거룩으로 이끄심을 믿는다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 평강의 하나님께서 나를 성결한 삶으로 이끌고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온전히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평강의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따라 평강의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날마다 조금씩 거룩해져 가는 기쁨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본문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거룩함이 미쳐야 할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바로 ‘영과 혼과 몸’입니다. 영과 혼과 몸은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일컫는 표현으로, 전인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1) 먼저, ‘영’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통로입니다.
어원을 찾아보면, 영으로 번역되는 구약의 ‘루아흐 רוּחַ’와 신약의 ‘프뉴마 πνεῦμα’는 모두 ‘하나님의 호흡’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창세기 2:7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불어 넣으신 ‘생기’가 바로 영의 기원입니다. 그래서 영은 인간의 심연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예배하고, 교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동물에게는 없고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하나님과의 연결 통로입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은 영이 죽은 상태(하나님과의 단절)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으로 거듭날 때만이 이 영이 다시 살아나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됩니다(롬 8:15). 성도는 영이 깨어있어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로 ‘혼’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담당합니다.
어원을 찾아보면, 생명으로 번역되는 구약의 ‘네페쉬 נֶפֶשׁ’와 신약의 ‘프슈케 ψυχή’는 ‘지성, 감정, 의지(지·정·의)’를 포함하는 사람의 인격과 자아를 뜻합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마음’이나 ‘정신’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영이 하나님을 향해 있다면, 혼은 나 자신과 이웃, 그리고 세상을 향해 있습니다. 생각하고(지성), 느끼고(감정), 결단하는(의지) 모든 인격적 활동이 혼의 영역에서 일어납니다. 또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혼은 ‘육체의 소욕’과 ‘세상의 가치관’에 지배당하지만, 거듭난 성도의 혼은 ‘성령’을 통해 공급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삶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37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하실 때의 목숨이 바로 혼입니다. 로마서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는 이 명령에 순종하는 자리가 혼의 영역입니다.
3) 마지막 세 번째인 ‘몸’은 우리의 육체를 뜻합니다. 신앙이 삶으로 실천되는 통로입니다. 어원을 찾아보면 몸으로 번역되는 구약의 ‘바사르 בָּשָׂר’와 신약의 ‘소마 σῶμα’는 흙으로 만들어진 물리적인 육체를 뜻합니다(창 2:24, 마 5:29).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몸을 단순히 썩어 없어질 흙으로 보지 않고,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칭합니다(고전 6:19). 그리고 몸은 영과 혼이 하기를 원하는 것을 세상 가운데 실천하고 나타내는 도구입니다. 몸이 없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선을 행할 수도, 예배를 드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로마서 6:13에서 우리의 몸을 ‘불의의 무기’로 내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몸은 영과 혼의 상태에 따라 악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거룩한 예배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 구원은 영혼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몸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몸으로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영적인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몸으로 짓는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반대로 육체적인 삶에만 몰두하여 영혼의 갈급함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영과 혼과 몸 어느 한 부분도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에 비유하면 영은 지성소와 같고, 혼은 성소와 같고, 몸은 성막의 뜰과 같습니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습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거룩하고 깨끗해야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에서 ‘보전되다 τηρέω’라는 말은 ‘지키다’, ‘파수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인이 성벽을 지키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 인격을 죄의 미혹으로부터 지켜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혼)을 하나님이 지키시도록 맡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건강과 행동(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이도록 내어드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을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온전히 맡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23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자 기초입니다. 여기에서 ‘미쁘다 πιστός’라는 말은 ‘신실하다’, ‘믿을만하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는 최종적인 근거는 나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구원의 길로, 거룩의 길로 초청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르기만 하시고 방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마무리를 짓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빌립보서 1:6에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내가 연약하여 넘어질 때도 하나님의 미쁘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낙심하여 손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분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거룩한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니, 반드시 나를 흠 없는 자로 완성하실 것입니다”라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미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 거룩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의 수많은 권면 뒤에 마침표처럼 찍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악을 버릴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그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바로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를 부르신 ‘미쁘신 하나님’이 그 일을 ‘친히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혹, 무거운 종교적인 짐을 지고 계시다면 내려놓고 복음의 자유 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거룩은 고통스러운 고행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과 함께 걷는 행복한 여정입니다. 이를 믿고 오늘부터 나를 지키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 영과 혼과 몸이 하나님의 평강 안에 머물게 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험한 세상에서 자주 흔들릴지라도, 우리를 부르신 미쁘신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를 예수님 재림의 날에 흠 없는 모습으로 세우실 것을 믿고 당당하게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신 말씀처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 평강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이를 수 없는 그 거룩의 자리에, 하나님의 미쁘심을 의지하여 나아가기를 결단합니다. 우리 삶의 작은 부분까지 친히 인도하여 주시고,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흠 없게 보전하여 주옵소서.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별된 성도로서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