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17.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19~22)

우인택 목사
2026-05-13
조회수 146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지난 3주간 우리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제목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가슴에 깊이 새겼습니다. 그런데 막상 세상에 나가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려고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릴 때가 많고, 기도가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그렇게 되는 이유와 답을 아주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주 짧은 네 개의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2)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3)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 4)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이 말씀들은 하나하나 각각의 교훈의 말씀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지켜내는 하나의 원리와도 같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안의 영적인 온도를 다시 뜨겁게 달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9절에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소멸하다 σβέννυμι’라는 말은 ‘불을 끄다’, ‘억누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 “성령을 억누르지 말라”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소멸할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와 은사를 억눌러 억제하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할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를 소멸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따를 때입니다. 성경은 갈라디아서 5:17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육체의 소욕’은 죄에 빠진 인간의 타락된 본성에서 나타나는 마음과 생각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소욕’은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과 생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두 소욕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성령의 소욕이 소멸되고, 반대로 성령의 소욕을 따르면 육체의 소욕이 소멸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갈라디아서 5:19~21에서 육체의 소욕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육체의 소욕들을 유의하여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된 전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이익 우선의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계획하며 모든 행하면 그의 삶에 욕체의 소욕이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떠나시지 않는다” 굳게 믿고 있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적인 욕심이나 세상적인 것에 몰두하게 되면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불이 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의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하여 영의 양식을 공급해야 합니다. 육체의 소욕을 멀리하고 성령께 집중하며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오늘부터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점점 더 성령의 음성을 또렷하게 듣고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서 20절에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멸시하다 ἐξουθενέω’라는 말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다’, ‘경멸하다’, ‘가치 없이 취급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성령의 은사를 오용하거나 무질서하게 행하는 이들로 인해, 성령의 감동으로 선포되는 ‘예언’을 부정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비록 인간의 입술을 통해 전달되지만,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계시와 뜻을 함부로 무시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지는 예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그 말씀을 해석하여 선포하는 ‘설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저건 다 아는 얘기지”, “그건 목사님 생각이지”라고 치부하며 내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언을 멸시하는 행위가 됩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4:12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기록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인 성경을 존중할 때, 그 말씀이 우리 영혼의 수술대가 되어 우리 안의 죄악을 드러내고 고치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반대로 성경 말씀을 멸시하면 우리 영혼은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경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칭찬받았던 이유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경외하며, 그 말씀을 내 삶의 절대적인 권위로 인정할 때, 그 말씀이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여 우리를 악으로부터 지켜낼 힘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이를 기억하고 기록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인 성경과 선포되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인 설교를 열린 마음으로 읽고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서 21절에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헤아리다 δοκιμάζω’라는 말은 ‘시험하다’, ‘검증하다’라는 뜻으로, 주로 금속의 순도를 확인하기 위해 불에 달구거나 시금석에 문질러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인 설교를 무조건 수용하거나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한 것인지 철저하게 검증하라는 뜻입니다.

  특히, 우리가 악을 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분별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가짜 복음과 혼탁한 가치관으로 우리에게 미혹의 손길을 내밉니다. 겉으로는 유익해 보이고 달콤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영혼을 죽이는 독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요한일서 4:1에서 우리에게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권면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헤아리지 않으면, 우리는 ‘좋은 것’ 대신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을 선택하지 않고 내 감정에 좋은 것, 내 주머니에 이득이 되는 것, 내 귀에 즐거운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어진 모든 상황 속에서 질문해야 합니다. “이 선택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가?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 이렇게 검증한 후,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한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악이 틈타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영적 방어막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분별의 지혜를 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늘 선한 것을 선택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4. 마지막으로 22절에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불을 끄지 않고, 말씀의 기준을 세우며, 범사에 헤아려 선한 것을 선택했다면 이제 마지막 단계는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겠다는 단호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특히,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는데 여기에서의 ‘모양 εἶδος’은 ‘형태’, ‘외관’, ‘종류’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곧 겉으로 드러난 흉악한 범죄뿐만 아니라, 악해 보이는 분위기, 죄의 가능성이 있는 환경, 악을 흉내 내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광범위한 경고가 됩니다. “직접적인 죄는 아니니까 조금은 발을 담가도 되겠지”라는 타협을 원천 봉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로마서 12:9에서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말씀합니다. 악을 단순히 피하는 수준이 아니라 ‘미워하는’ 단계까지 가야 합니다. 오물 곁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냄새가 배는 것처럼, 악을 행하는 곁에 머물면 우리 영혼은 금세 오염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 정도는 문화이고 관습인데 뭘 그렇게까지 반응하느냐?”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거룩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작은 구멍이 큰 둑을 무너뜨리듯, 작은 ‘악’이 우리 안의 성령의 불을 끄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무너뜨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하나 각각의 명령이 아닙니다. 성령을 의지하고(19절),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20절), 철저히 분별하여(21절), 결국 악을 단호히 끊어내는 것(22절),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부터, 내 삶을 미혹하는 악의 모양들을 단호히 끊어내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만이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의 불을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악을 이겨내야 하는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하옵나이다. 내 안의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교만이 있다면 용서하여 주옵시고, 이제는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또한, 기록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인 성경과 선포되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인 설교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세상의 혼탁한 가치관 속에서 악은 작은 모양이라도 단호히 버리고 선을 이루는 복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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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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