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18. 서로를 기억하는 교회, 은혜로 마치는 신앙 (골 4:15-18)

우인택 목사
2025-12-17
조회수 98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오늘로써 골로새서를 마칩니다. 바울은 교리로 시작하여 삶으로 권면했고, 개인의 신앙을 넘어 공동체의 하나 됨을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마지막 인사말 세 번째 시간입니다. 바울의 인사말에는 교회의 본질, 사역자의 책임, 그리고 은혜의 중심에 대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도 골로새 성도의 심정으로, 주께서 주시는 말씀에 집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5절 함께 읽습니다.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 라오디게아 교회는 요한계시록 3:14–22에 예수님께 책망을 받는 교회로 등장합니다. 물론, 골로새서의 라오디게아 교회와 요한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 사이에는 시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자기 만족과 미지근한 신앙에 대한 유혹’에 취약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본다면, 바울의 문안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같은 복음 안에서 서로를 붙들라는 권면으로 읽게 됩니다.

  2) 그리고 ‘형제들’이라는 호칭은 혈연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새로 맺어진 ‘언약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울은 라오디게아 도시 안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의 성도들을 한 단어로 묶어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앞부분인 13–16절에서 바울은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이 세 도시를 하나로 묶어 언급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라는 이 세 지역을 위해 수고했고(4:13), 바울은 편지를 서로 돌려 읽으라고 권면했습니다(4:16). 이것은 초대교회가 각자의 힘으로 자립해야 하는 교회가 아니라, 함께 힘을 모아 돕고 나누는 ‘연합 공동체’였음을 보여 줍니다.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 형제들은 ‘이웃 도시에 있는 교회’가 아니라, 같은 복음, 같은 책임, 같은 말씀 아래 있는 형제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같은 초대교회의 정신을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만 잘되면 된다’는 잘못된 신앙관을 버리고 주위에 있는 모든 교회가 형제교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데로 서로 돕고 격려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3)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를 언급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집에 있는 교회’입니다. 초대교회에는 오늘날과 같은 건물로 된 교회가 없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서 기독교는 공인된 종교가 아니었기에, 공적인 예배 공간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가정집에서 모였습니다. 그 집은 단순한 모임 장소가 아니라, 예배의 자리였고, 말씀을 가르치는 학교였고, 성찬과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친교의 공간이었습니다. 집이 곧 교회였고, 교회가 곧 삶의 자리였습니다.

  특히, ‘그 여자의 집’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여성이 단순한 예배 참석자가 아니라 교회의 주인, 후원자, 책임자였음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초대교회는 당시의 ‘남존여비’라는 사회 질서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평등한 공동체 질서를 만들어 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남자와 여자는 모든 면에서 평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5절의 말씀을 통해, ‘모든 교회는 하나’라는 것과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이 가르침이 우리 교회에도 잘 이루어지도록 여러분 모두 힘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이어지는 16절 함께 읽습니다.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여기에서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라는 말은 골로새서는 ‘개인 묵상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에게 ‘공적으로 읽히도록 쓰여진 말씀’이라는 뜻이 됩니다. 

  당시, 대부분의 성도는 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낭독함으로써 말씀이 전달되었습니다. 그를 통해, 당시 말씀은 혼자 소유하는 지식이 아니라 함께 듣고 함께 지켜야 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은 성경을 너무 ‘개인에게만 적용’합니다. 자신에게만 주어진 말씀으로 생각하고 적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부터 교회 공동체 전체에게 주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에도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라고 권면합니다. 골로새 교회가 받은 이 말씀이, 동시에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우리 교회에 주신 말씀’과 ‘저 교회에 주신 말씀’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특정 교회의 소유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 전체를 위한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초대교회는 말씀 앞에서 경쟁하지 않았고, 말씀을 독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서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온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라고 권면합니다. 골로새 교회는 가르치는 교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배우는 교회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 개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음으로 모든 공동체가 함께 세워지게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건강함은 이로써 지켜졌습니다. 크고 작음의 서열이 아니라 상호 책임, 자기 확신이 아니라 말씀 앞의 겸손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한 것은 교회들은 하나로 연결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야 잘못된 지식과 이단들이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초대교회는 ‘부흥되는 교회 몇 개’가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교회들의 연합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말씀은 한곳에 머무르면 썩습니다. 말씀은 흘러갈 때 힘이 생기고 생명력이 넘쳐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나는 말씀을 나만의 깨달음으로 끝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교회는 말씀을 흘려보내는 교회인가, 붙잡아 두는 교회인가?” “나는 항상 배우는 자로서 말씀 앞에 서고 있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말씀은 소유할 대상이 아니라 전달해야 할 생명입니다. 오늘, 이러한 말씀 앞에서 겸손하며 나누기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7절 함께 읽습니다.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아킵보는 오늘 본문 외에 빌레몬서 1:2에도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로 등장합니다. 빌레몬서는 아킵보가 단순한 성도가 아니라 교회에서 중요한 사역을 맡은 인물이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한 아킵보에게 칭찬이 아니라 충고를 합니다. 이것은 아킵보가 사역의 자리에서 지치거나 흔들리고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그리고 이는 초대교회 지도자들도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예외 없이 낙심했고, 부담을 느꼈고, 때로는 사명을 내려놓고 싶었던 인간적인 약함이 있었음을 알게 합니다.

  바을은 이러한 아킵보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아킵보가 받은 직분은 사람이 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 성도들의 투표 결과로 주어진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주께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분은 자랑의 대상이 아니라 책임의 자리이며,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순종의 자리입니다. 직분의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직분을 누가 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어진 직분을 끝까지 감당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킵보에게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충고하면서 말한 것은 주어진 직분을 성공적으로 행하라는 뜻이 아니라 끝까지 완수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바울은 “직분을 잘 감당해라” “사람들에게 인정받아라” “성과를 내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 하나만 말합니다. “이루라” 이루라는 말은 “끝까지 채우라, 완성하라”는 뜻입니다. 직분을 잘 감당했는지 그렇지 않은 지의 기준은, 성과가 아니라 완주하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화려한 결과가 아니라 끝까지 가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울은 왜 이 말을 아킵보에게 직접 하지 않고 공동체 전체가 읽고 듣는 말씀에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는 이 권면이 아킵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 전체가 듣고 행해야 할 중요한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교회는 직분자를 평가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직분자를 붙들어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분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직분자를 붙들어 주지 않으면 그 교회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주 안에서 어떤 직분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그 직분을 내려놓고 싶지는 않습니까? 지치고 낙심하여 중간에 멈춰 서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 그리고 온 성도들은 직분자가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돕고 세워주어야 합니다. 직분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시고, 평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며, 신앙의 기준은 성공이 아니라 충성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모두,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끝까지 이루는 믿음으로 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삶의 자리를 교회로 사용하시니 감사하옵나이다. 말씀을 내 안에만 붙잡아 두지 않고 나누게 하시고, 받은 직분을 끝까지 이루게 하시며, 고난 속에서도 은혜를 놓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마치는 참된 예수님의 몸이 되게 하옵소서.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우인택 목사 / 경기도 화성시 10용사로 3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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