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13. 가정생활에 대한 가르침 (골 3:18-21)

우인택 목사
2025-10-22
조회수 141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오늘날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경쟁 상대로 여기고, 부모와 자녀는 대화 대신 분노와 무관심으로 벽을 쌓습니다. 오늘 본문은 ‘새 사람을 입은 자의 삶’이 가정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 말씀합니다. 세상의 질서와 구별되는 복음적인 가정의 질서는 어떠한지 가르칩니다. 세상은 권력으로 지배하고, 욕망으로 관계를 망가뜨리지만, 복음은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의 질서로 가정을 회복시킵니다. 오늘은 이 진리를 남편과 아내와 부모와 자녀의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1. 먼저, 18절 함께 읽습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바울은 가정의 윤리를 언급하면서 가장 먼저 아내의 도리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마치 가부장적인 자세에서 아내의 일방적 복종을 명령하는 것처럼 보여 많은 사람에게 오해를 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오해는 이 말씀을 하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여성 해방과 같은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본 데에서 온 오해입니다. 

특히, 바울은 갈라디아서 3:28에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가부장적인 입장에서 한 가르침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아내에게 무조건 복종할 것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성경적 의미는, 남편과 아내는 인격적으로는 동등하지만, 가정이 존재하는 목적을 위해서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이 요구된다는 말씀이 됩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는 아담과 하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을 돕는 배필로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창 2:18). 그러나 이는 하와가 아담보다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담이나 하와 모두 동등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창 1:27). 그러므로 본질적으로는 동등하나 지으심을 받은 목적에 있어 구분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또 다른 예는, 우리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동등하셨으나 자발적으로 자신을 낮춰 하나님께 자신을 복종시켰습니다(빌 2:6).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 누구도 예수님께서 하나님보다 열등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단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스스로를 낮추셨기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더 높여 주셨습니다(빌 2:10-11)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잘못된 시각에서 성경 말씀을 해석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본질적으로는 동등하나 공동체의 구성 요건에 의해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위치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에베소서 5:33에서도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서 ‘존경’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세상 사람의 문화나 가치관에서가 아니라, 만물을 질서대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아내들은 교회가 예수님께 하듯 남편의 뜻을 존중하고 따름으로써 선한 협력자가 되어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2. 이어지는 19절 함께 읽습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남편에 대한 아내의 기본자세가 복종이라면, 이에 대한 남편의 자세는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5:25에서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라고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앞의 아내에 대한 권면만을 보고 성차별이니 하며 비판하는 것은 이같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한 데서 오는 무지와 오해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내에게 요구되는 것보다 남편에게 훨씬 더 큰 의무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단순한 신앙적 차원의 권면이나 교리적 명령이 아닙니다. 여기에 진정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과 가정을 천국으로 만드는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를 괴롭게 하고 부담스럽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주신 것임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특히, 이 말씀을 알아야 한다, 이해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믿으라고 권면하는 것은 우리의 판단과 이성으로는 결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그 후에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괴롭게 하지 말라”는 말은 “독한 말로 아내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내가 자기에게 복종한다고 아내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대개 남편은 이성적인 차원에서부터 문제에 접근하는 반면, 아내는 감성적 차원에서 그것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따지려는 남편을 향해 아내는 “당신 나 사랑해?”라는 말로 사랑을 먼저 확인하려 듭니다. 이럴 때 남자는 기가 막힐 것이지만, 이성적인 시시비비보다는 아내에게 따뜻한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한쪽 편에서만 교훈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공평하신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진리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주시는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먼저 믿음으로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이어지는 20절 함께 읽습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말씀은 ‘모든 일’입니다. 자녀된 성도들은 부모에게 순종하되, 이해가 되고, 내키는 일에만 순종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합니다. 조건을 붙이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되, 아무 조건을 달지 않고 모든 일에 순종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에게 은혜를 주시고 형통을 주시고 복을 내려주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행하신 성경의 일관성 있는 가르침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가리켜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합니다. 자유 의지를 갖고 태어난 인간에게 있어 삶이란,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결정이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 예외가 있습니다. 선택이 우리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조건임에도 우리가 전혀 선택할 수 없이 운명처럼 미리 주어진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하필이면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 것, 그리고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 남자 또는 여자로 태어난 것, 우리 부모 형제를 만난 것,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미리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이러한 모든 환경에 대하여 불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불만을 갖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불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의 연장선에서, 부모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셨으니 부모에게 순종하며 사는 것은 너무나도 마땅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부모 공경에 대하여 십계명 5계명으로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부모를 최선을 다해 섬기며 조건을 달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일이 아니라면,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순종한 것처럼, 부모의 뜻을 존중하고 따라야 합니다(창 22:1-10). 그렇게하면, 여러분이 부모님을 높이고 공경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동일한 복으로 여러분을 높이고 영화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엡 6:1-3).


4. 이어지는 21절 함께 읽습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공평과 공의 위에 서 있습니다. 자녀에게 부모에 대한 순종을 명하신 하나님께서 부모에게도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와는 달리 성경이 기록될 당시 로마 사회에서의 아버지 권한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교육하고, 때로는 처벌하고, 심지어 생살여탈권까지 가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복음 안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새롭게 정의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지배의 권세가 아니라 섬김의 권세라고 가르칩니다. 아버지의 권위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는 통로임을 강조합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목자로 부름받은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의 인격을 존중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온유함을 부정하는 것이고 목자로서의 자세를 망각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성경의 가르침대로 세워야 하지만, 그 가르침은 복음의 은혜 위에 있어야 합니다. 

율법적인 부모는 자녀를 절망하게 하지만, 복음적인 부모는 자녀를 소망 가운데 세웁니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의 마음을 꺾는 것이 아니라, 세워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낙심하다 ἀθυμέω’라는 말은 ‘마음이 꺾이다, 의욕을 잃다’라는 뜻입니다. 부모의 태도 때문에 자녀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자녀 양육은 하나님의 언약을 다음 세대에 이어가는 사역입니다. 그 중심에는 사랑과 인내와 말씀에 대한 순종의 본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맡기신 언약의 유산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영혼을 돌보는 영적인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가르치고 훈계하는 일보다 먼저, 예수님의 복음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삶이 복음의 은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의 질서와 구별되는 복음적인 가정의 질서에 대하여 깊이 상고했습니다. 복음이 가정의 중심에 있을 때, 다시 말해 남편과 아내와 부모와 자녀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믿음으로 ‘ 주 안에’ 든든히 서 있을 때, 그 가정은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거룩한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여러분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을 이루기에 힘쓰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가정이 복음으로 세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아내에게는 남편을 존경하는 마음을, 남편에게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자녀에게는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부모에게는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마음을 부어 주옵소서. 그를 통해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가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가정의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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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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