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정보의 홍수시대입니다.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매체는 우리에게 더 나은 삶, 더 깊은 지혜, 더 큰 성공을 위한 ‘비밀’과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성공 비법들이 넘쳐나고, 더 행복해지는 비결이라며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 정보들을 제공합니다. 마치 자기들만 알고 있는 특별한 지식이나 경험을 더해야만 행복해 지고 온전해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혹은 2000년 전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들 주변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받기에 부족하다고 말하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섬겨야 하지만, 천사도 섬겨야 한다”, “믿음으로만은 부족하고, 율법의 규례를 지켜야 구원이 완성된다”와 같은 교묘한 말들로 성도들을 유혹했습니다. 그럴듯한 철학과 지식을 내세워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고, 자신을 믿고 따르라고 유혹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골로새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어떠하신 분이신지’를 명확하게 가르치기 위해 쓴 편지가 ‘골로새서’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님’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우리가 이단들의 유혹과 거짓 가르침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 감추어진 비밀’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우리를 사로잡으려는 헛된 세상의 철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을 이기는 예수님의 충만함과 십자가 승리가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본문을 살펴보면, 먼저 8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철학과 헛된 속임수’라는 말은 ‘공허하고 속이는 철학’이라는 뜻입니다(NIV). “철학으로 포장된 공허한 논리적 궤변으로 너희를 사로잡으려고 하는 자들을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당시 골로새 성도들을 거짓 교훈으로 미혹하던 ‘영지주의’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인간의 지적 활동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율법주의, 천사 숭배, 금욕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던 복음을 왜곡하는 사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지적 활동으로서의 세상의 철학도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진리의 말씀인 복음과 대치되는 점은 적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좀 더 고상한 삶을 사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또한 영적인 무지에서 비롯된 헛된 사상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에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라고 경고합니다. 이 말씀은 이단의 미혹을 경계해야 할 이유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세상의 철학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특히, 여기에서의 ‘사람의 전통’이란 골로새 성도들이 에바브라에게서 전해받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인간들이 꾸며낸 거짓 교훈을 가리킵니다(막 7:8, 벧전 1:18).
그리고 ‘세상의 초등학문’은 세상의 기본 원리나 종교적 규율이나 신념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가르침들은 마치 어린아이가 글자를 배우는 기초적인 단계와 같아서, 복음의 깊고 풍성한 진리에 비하면 미숙한 가르침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골로새서가 기록될 당시의 세상의 초등학문이 “신비로운 영적 체험, 엄격한 금욕주의, 천사 숭배와 같은 것들이 있어야 믿음이 완성된다”라는 가르침이었다면, 현대 우리에게 다가오는 세상의 초등학문은 무엇입니까? 성공주의,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 율법주의, 기복신앙까지,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세상의 초등학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잠시 잠깐 만족과 위안을 줄지는 모르나, 결코 우리 영혼의 근본적인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분별해야 합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가치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과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인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가 아닌,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오늘, ‘나를 진정으로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깊이 돌아보고 예수님을 따르는 복된 삶을 선택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9절 함께 읽습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여기에서의 ‘그 안’은 ‘예수님 안’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이 왜 헛된 속임수일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 설명하며 명확히 밝히는 말씀이자,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담은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위대한 스승이나 선지자 중 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모든 신성과 능력과 지혜와 사랑이 조금의 부족함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담겨있다는 뜻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0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우리 역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해진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노력하고 자격을 가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과 연합할 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능력이나 자격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거하는 믿음과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믿음과 순종이 있을 때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 소유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더 가져야 하고, 더 높아져야 하고, 더 인정받아야 한다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흔들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더이상 세상의 거짓된 정보와 약속에 속아 결핍감과 불안함에 시달리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충만하게 채워진,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과 순종입니다. 이 진리 위에 굳게 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1-15절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안에서의 충만을 누릴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11절에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간에 맺은 언약을 나타내는 외적 표징입니다(창 17:10-14). 구약의 할례가 육체에 행하는 언약의 표징이었다면,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 곧 영적인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라는 말은 세례를 통해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우리의 옛사람은 죽었고,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12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났습니다. 세례는 바로 이 신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식입니다. 물에 잠기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장사 지낸 바 되었음을, 물에서 나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하여 우리 또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음을 의미합니다. 13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과거의 죄로 인해서는 더이상 우리를 고소할 수 없습니다. 그 죗값을 예수님께서 이미 다 갚으시고, 그 증거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4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이 말씀은 복음의 절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워 버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의 ‘법조문으로 쓴 증서’는 율법을 어긴 죄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기록한 ‘죄의 채무 증서’를 뜻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이 빚을 갚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의 빚을 대신 갚으시고 그 증서를 완전히 무효화시키셨습니다.
더 나아가 15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탄의 권세에 대한 완전한 승리였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는 패배의 상징이 아니라 승리의 상징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모든 어둠의 권세를 완전히 이기시고, 그들의 패배를 온 세상에 공개적으로 선포하셨습니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포로들을 이끌고 개선 행진을 하는 것처럼, 십자가는 사탄의 권세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보여주는 완전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더이상 세상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기웃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죄책감과 부족함에 시달릴 이유도 없습니다. 어둠의 권세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모든 원수를 꺾고 완전한 승리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진리 위에 여러분의 삶을 굳건히 세우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주는 헛된 만족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참된 충만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문제와 어려움 앞에서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승리를 선포하며 담대하게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격이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순종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이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기쁨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헛된 가르침 속에서 방황하던 저희에게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의 말씀을 알게 하시니 감사하옵나이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얽매던 모든 죄의 빚을 십자가에서 청산하고, 어둠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완전한 승리를 담대히 선포하며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예수님만을 따르며, 예수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복음의 증인으로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정보의 홍수시대입니다.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매체는 우리에게 더 나은 삶, 더 깊은 지혜, 더 큰 성공을 위한 ‘비밀’과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성공 비법들이 넘쳐나고, 더 행복해지는 비결이라며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 정보들을 제공합니다. 마치 자기들만 알고 있는 특별한 지식이나 경험을 더해야만 행복해 지고 온전해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혹은 2000년 전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들 주변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받기에 부족하다고 말하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섬겨야 하지만, 천사도 섬겨야 한다”, “믿음으로만은 부족하고, 율법의 규례를 지켜야 구원이 완성된다”와 같은 교묘한 말들로 성도들을 유혹했습니다. 그럴듯한 철학과 지식을 내세워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고, 자신을 믿고 따르라고 유혹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골로새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어떠하신 분이신지’를 명확하게 가르치기 위해 쓴 편지가 ‘골로새서’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님’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우리가 이단들의 유혹과 거짓 가르침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 감추어진 비밀’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우리를 사로잡으려는 헛된 세상의 철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을 이기는 예수님의 충만함과 십자가 승리가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본문을 살펴보면, 먼저 8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철학과 헛된 속임수’라는 말은 ‘공허하고 속이는 철학’이라는 뜻입니다(NIV). “철학으로 포장된 공허한 논리적 궤변으로 너희를 사로잡으려고 하는 자들을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당시 골로새 성도들을 거짓 교훈으로 미혹하던 ‘영지주의’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인간의 지적 활동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율법주의, 천사 숭배, 금욕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던 복음을 왜곡하는 사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지적 활동으로서의 세상의 철학도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진리의 말씀인 복음과 대치되는 점은 적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좀 더 고상한 삶을 사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또한 영적인 무지에서 비롯된 헛된 사상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에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라고 경고합니다. 이 말씀은 이단의 미혹을 경계해야 할 이유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세상의 철학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특히, 여기에서의 ‘사람의 전통’이란 골로새 성도들이 에바브라에게서 전해받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인간들이 꾸며낸 거짓 교훈을 가리킵니다(막 7:8, 벧전 1:18).
그리고 ‘세상의 초등학문’은 세상의 기본 원리나 종교적 규율이나 신념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가르침들은 마치 어린아이가 글자를 배우는 기초적인 단계와 같아서, 복음의 깊고 풍성한 진리에 비하면 미숙한 가르침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골로새서가 기록될 당시의 세상의 초등학문이 “신비로운 영적 체험, 엄격한 금욕주의, 천사 숭배와 같은 것들이 있어야 믿음이 완성된다”라는 가르침이었다면, 현대 우리에게 다가오는 세상의 초등학문은 무엇입니까? 성공주의,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 율법주의, 기복신앙까지,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세상의 초등학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잠시 잠깐 만족과 위안을 줄지는 모르나, 결코 우리 영혼의 근본적인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분별해야 합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가치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과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인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가 아닌,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오늘, ‘나를 진정으로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깊이 돌아보고 예수님을 따르는 복된 삶을 선택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9절 함께 읽습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여기에서의 ‘그 안’은 ‘예수님 안’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이 왜 헛된 속임수일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 설명하며 명확히 밝히는 말씀이자,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담은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위대한 스승이나 선지자 중 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모든 신성과 능력과 지혜와 사랑이 조금의 부족함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담겨있다는 뜻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0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우리 역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해진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노력하고 자격을 가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과 연합할 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능력이나 자격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거하는 믿음과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믿음과 순종이 있을 때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 소유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더 가져야 하고, 더 높아져야 하고, 더 인정받아야 한다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흔들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더이상 세상의 거짓된 정보와 약속에 속아 결핍감과 불안함에 시달리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충만하게 채워진,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과 순종입니다. 이 진리 위에 굳게 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1-15절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안에서의 충만을 누릴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11절에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간에 맺은 언약을 나타내는 외적 표징입니다(창 17:10-14). 구약의 할례가 육체에 행하는 언약의 표징이었다면,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 곧 영적인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라는 말은 세례를 통해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우리의 옛사람은 죽었고,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12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났습니다. 세례는 바로 이 신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식입니다. 물에 잠기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장사 지낸 바 되었음을, 물에서 나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하여 우리 또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음을 의미합니다. 13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과거의 죄로 인해서는 더이상 우리를 고소할 수 없습니다. 그 죗값을 예수님께서 이미 다 갚으시고, 그 증거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4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이 말씀은 복음의 절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워 버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의 ‘법조문으로 쓴 증서’는 율법을 어긴 죄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기록한 ‘죄의 채무 증서’를 뜻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이 빚을 갚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의 빚을 대신 갚으시고 그 증서를 완전히 무효화시키셨습니다.
더 나아가 15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탄의 권세에 대한 완전한 승리였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는 패배의 상징이 아니라 승리의 상징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모든 어둠의 권세를 완전히 이기시고, 그들의 패배를 온 세상에 공개적으로 선포하셨습니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포로들을 이끌고 개선 행진을 하는 것처럼, 십자가는 사탄의 권세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보여주는 완전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더이상 세상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기웃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죄책감과 부족함에 시달릴 이유도 없습니다. 어둠의 권세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모든 원수를 꺾고 완전한 승리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진리 위에 여러분의 삶을 굳건히 세우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주는 헛된 만족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참된 충만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문제와 어려움 앞에서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승리를 선포하며 담대하게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격이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순종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이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기쁨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헛된 가르침 속에서 방황하던 저희에게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의 말씀을 알게 하시니 감사하옵나이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얽매던 모든 죄의 빚을 십자가에서 청산하고, 어둠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완전한 승리를 담대히 선포하며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예수님만을 따르며, 예수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복음의 증인으로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