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부활절 -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고전 15:12-22)

우인택 목사
2023-04-09
조회수 2484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1. 보통, 사람들은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종교를 찾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종교들은 나름대로 죽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는 부활을 가르치는 종교는 기독교가 유일합니다.
불교의 석가모니는 죽어 8개의 무덤에 나뉘어 묻혔고, 유교의 공자도 죽어 곡부 공림의 무덤에 묻혔고, 이슬람의 무함마드도 죽어 메디나의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예수님의 무덤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의 나라로 승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우리 신앙에서 부활이 빠지면 우리는 더이상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이에 오늘 본문 12-19절은 우리에게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 위해 행하는 모든 헌신과 희생과 섬김은 다 헛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은 사람들도 망했을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고, 겸손하게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일생을 희생하며 사는 것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전제조건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 신앙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부활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무신론자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현실에서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딛 1:16).
학자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실제적 무신론자’ 또는 ‘실천적 무신론자’라고 칭합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교회 내에 존재하는 무신론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사람들은 무신론자의 유형중에서 가장 위험한 무신론자입니다.
세상의 무신론자는 교회 외부에 존재하기에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러한 실제적 무신론자는 교회를 다니며 스스로를 신자라 일컫기 때문에 바른 복음을 전하기가 무척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들의 대다수는 잘못된 신앙을 지적하면 즉시 교회를 떠나갑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데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것을 결코 아닙니다.
지난 주일에 강조했듯이 우리의 신앙은 어떤 사상이나 이론이나 신념이 아니라 ‘확신’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체험을 통한 ‘확신’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에는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분명하게 아는 것이 기초되어야 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해 보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 지금 우리는 일 년이 넘게 주일마다 ‘요한복음’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공부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의 신앙이 점점 더 자라나는 것을 보며 우리의 신앙도 점점 더 자라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처음 자신들을 불렀을 때,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자기 자신이 계획하고 준비하는 삶보다 훨씬 더 좋은 삶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께서 세상의 의학이 치료하지 못하는 많은 질병을 치료하시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지혜의 말씀을 하시고, 심지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것을 보며 믿음과 꿈을 점점 더 키워갔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것이 자신들이 꿈꾸는 부귀영화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십자가의 길’인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오직 “어떻게 하면 자신이 더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날마다 꿈꾸며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수많은 말씀 중에서도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머리에 새기고, 예수님이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실 때마다 출세의 꿈을 점점 더 키워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무슨 소리를 하시느냐?” 하며 예수님을 극구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자 실의에 빠졌습니다.
자신들의 꿈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무려, 3년간이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오직 예수님만 따라다녔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니 그들은 절망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사흘 후, 그러한 그들에게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려고 한 것은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라고 다시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때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이전에 하신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 지극히 작은 자를 돕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선생된 자들은 제자의 발을 씻겨야 한다, 양보하라, 져주라, 오른편 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대라”
그냥 흘려들었던 이 모든 가르침은 이 땅의 삶을 희생함으로 받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제자들의 삶은 이때부터 달라졌습니다.
서로 더 높은 곳에 앉을까 다투던 그들이 서로 먼저 낮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서로 양보하고, 위로하고, 돕고, 섬겼습니다.
이로써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의 ‘보호자’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그곳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삶으로 우리를 초청하신 ‘하나님의 초청장’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이유입니다.

 

3. 여러분,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 다시 말해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행 4:12).
세상의 욕심에 찌든 자신의 옛사람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거듭난 새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배우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거듭난 새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배운 것을 삶 속에서 지켜 행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성도의 삶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잘못 이해하여 ‘종교적이고 교리적인 해석’만을 되뇌면서 인격적인 삶의 변화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종교적인 사람이 되기를 예수께서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교훈으로 사는 것보다 종교적인 신념을 지키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열정을 소비합니다.
“교회 활동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 “얼마나 큰 교회를 짓느냐?”를 믿음의 잣대로 삼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기독교를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은 우리 성도들을 향해 “종교도, 교회도 지겹다. 성경도 질린다. 종교에 대한 쓸데없는 이야기하지 마라” 하며 쏘아붙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친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종교단체일 뿐이라고 소리 높여 비방합니다.
“당신이 예수를 믿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항변합니다.

물론, 교회 활동을 하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저도 매우 강력하게 장려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종교적인 활동에 머무는 형태의 신앙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기 전의 제자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신앙의 형태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고난이 오면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들이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의 영광을 체험한 후에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십자가를 통과하고 부활의 소망을 품어야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열매 맺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종교적인 사람이 되어라”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종교적인 교리를 목숨처럼 여기는 바리새인, 제사장들을 가리키면서 “저 사람들처럼 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은 행하고 지키되, 저 사람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 23:3).

또, 예수님은 신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내쫓으시며,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되는 그러한 성전은 강도의 소굴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탐욕으로 인해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성전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생명의 능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타락한 성전을 어떻게 새롭게 재건할 수 있는지, 성경 말씀들을 재해석하시고 친히 삶으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면 삶에 진정한 평안이 찾아오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면 서로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면 교회가 살아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릴 수 있게 됨을 자신의 삶을 통해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돌아가셨는데 그것이 십자가 사건이고, 예수님의 약속이 진실임을 증명하시기 위해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 바로 ‘부활 사건’입니다.
예를 들면,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를 거둘 수 없듯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씨를 뿌리는 것이고 부활은 열매를 거둔 것이 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이유는 열매를 거두기 위한 것인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삶의 희생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6-19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

여러분, 이처럼 부활은 기독교에 있어서 그 존재 이유가 될 만큼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세계 최고의 법학자인 ‘사이먼 그린리프’ 박사는 18세기 하버드법대를 키워온 인물입니다.
그가 저술한 ‘증거의 법칙’에 대한 논문은 현대 미국 재판제도에서도 표준으로 삼을 만큼 인정받는 법학계의 거장입니다.
그는 하버드법대 교수 시절에 학생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단순한 전설에 불과하다”라고 늘 주장했습니다.
무신론자인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온 몸의 피를 다 흘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수업을 듣던 학생 중에서 그가 저술한 ‘증거의 법칙’을 부활에 적용해 보자는 반론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부활의 증거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의 부활이 거짓임을 확실하게 증명하려고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역사 기록을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예수가 실제로 무덤에서 살아났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너무 강력해서 할 말을 잃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후에, 그의 저서 ‘전도자의 증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편견 없이 법정에서처럼 정직하게 증거를 검토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나와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의 고백대로 누구라도 정직하게 증거를 검토하면 예수를 믿지 않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기독교의 역사에는 기독교를 반박하기 위해 성경을 읽다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 사람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은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지어낸 이야기 또는 하나의 신화쯤으로 단정해 버립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과 유대 총독 빌라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도 거저 주위에서 주워들은 몇 가지 부정적인 소문만으로 예수님을 자기들 마음대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만일, 그들도 ‘사이먼 그린리프’ 박사처럼 예수님에 대하여 정직하게 조사해 보았다면, 결코 십자가에 못 박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만 관심을 갖고 주의해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알아보았다면, 그들은 그처럼 악한 삶을 계속해서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과 달리 예수를 믿으니 참으로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 우리는 새 생명을 얻게 되었고, 우리를 묶고 있던 저주에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오늘 부활의 날에, 다시 한번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부활의 소망을 가슴에 새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의로운 삶을 산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저희들도 그들을 본받아 예수님과 함께 육신의 정욕과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죄에서 해방된 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종교적인 교리에 매여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자들이 아니라, 선한 삶과 헌신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저희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의 결단 위에 능력으로 함께하여 주옵소서. 성령 충만의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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