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50. 이 날부터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요 11:45-57)

우인택 목사
2023-02-05
조회수 2967

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54.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56.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5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오늘 본문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시자, 이로 인한 예수님의 영향력을 의식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소집하고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말씀합니다.

1. 먼저, 45-46에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시체가 썩는 냄새까지 나는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시자 그것을 본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졌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으나, 그 중에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이 일을 보고하러 갔습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서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6장에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부를 청지기의 정신으로 사용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유익 만을 위해 사용하다가 지옥에 간 ‘부자’가 자기 집 앞에서 구걸하다가 병들어 죽은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보고서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눅 16:19~31).
마치 오늘 본문의 상황을 염두에 둔 비유 같습니다.
그들은 죽은 지 사흘이나 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직접 목격했으면서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죽이려는 타락한 종교인들인 바리새인들에게 동조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약점을 잡기 위해 그곳에 온 자들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을 향해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며 조롱하며 빈정거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그들까지도 구원하시려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려내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마땅히 자신들의 악함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죄를 찌르는 양심의 감동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의 편에 섰습니다.

이처럼 표적은 신앙을 갖게 하는데 매우 유용하지만, 그와 동시에 예수님을 더욱 적대시하는 결과를 낳는 한계도 지닙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 구원을 얻게 하는 곳에는 여지없이 사탄의 방해도 심해집니다.

많은 성도들은 교회가 큰 기적을 일으키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매우 많은 사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기적을 체험하면 또 다른 더 큰 체험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렇게 체험 위주의 신앙을 갖게 되면 점점 더 많은 체험을 요구하게 되고, 이로인해 신앙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도구로 변질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신앙입니다.
요한복음 4:48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말씀하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무엇을 이루는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의 가르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죄로부터 분리되고 구별되어’, 쉽게 말해 ‘거듭나서’, 이것이 전제 조건입니다.
그 후에 ‘의식적으로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성결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전인격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중심이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큰 기적을 보고 체험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처럼 악하고 비정한 사람이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고귀한 마음인 ‘양심’을 사탄에게 빼앗겼기 때문입니다(요 8:41-44).
그래서 자신의 죄를 찌르는 마음의 감동을 무시하고 이러한 악한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께 선택받은,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세상 무엇보다도 큰 은혜요 기적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마음을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살펴야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삶 속에서 실천되고 있는지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나는 과연 그 사랑을 받은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47~48절 함께 읽습니다.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공회를 열어 “예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논의했습니다.
여기에서의 공회는 ‘산헤드린 공회’를 뜻하는데,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산헤드린 공회는 바리새인들이 사두개인들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유대 종교지도자 원로회의로서 BC 223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산헤드린: 함께 둘러 앉는다).
그러나 유대가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고 난 후에는 부활도 영생도 믿지 않고 오직 로마에 아부하는 사두개인들이 로마에 의해 제사장으로 임명되어 산헤드린 공회에 합세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는 사두개파 제사장들이 산헤드린 공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부활도 영생도 믿지 않는, 기복적이고도 정치적인 종교인들이었기에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워했습니다.
백성들이 예수님을 앞세워 로마제국에서의 독립을 주장하며 폭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48절처럼 식민지의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은 비참하게 짓밟히게 될 것이고, 자신들의 모든 기득권도 잃어버리게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백성들이 많아지자 자신들의 권력에 위협이 되는 예수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심각하게 논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 빌라도의 재판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로마인들은 예수님을 결코 정치적인 혁명가나 위험인물로 보지 않았습니다(요 19:4).
그럼에도 그들은 백성의 눈을 가리기 위해 이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입니다.

이처럼 타락한 종교인들은 오직 자기 이익만을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당하면 그것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느냐, 불이익이 되느냐?” 하는 것에만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오직 자기의 정치, 종교, 사회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타락한 종교인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4절에 보시면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면 예수님을 대적하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고대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여 예수님을 죽이려는 대책을 세우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49~50절 함께 읽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대제사장 가야바는 AD 18~36년까지 무려 18년간 대제사장으로 있던 자입니다.
그는 장인 안나스와 함께 산헤드린을 장악하여 예수님을 체포하고 심문하고 빌라도에게 고소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49절에 가야바는 공회원들에게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책망했습니다.
여기에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라는 말은 ‘무식하고 어리석은 바보 같은 자들아’라는 의미를 지닌 욕설입니다.

여러분,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입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본받아 거룩하고 사랑이 많아야 하는 자입니다.
그러한 그가 공회원들이 빨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교만한 자세로 같은 공회원들을 어리석고 무식한 자들이라고 욕하며 책망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창녀나 세리나 죄인들에게도 온유하게 대하셨으며, 자신을 희생하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야바와 같은 거짓 신앙인, 악한 지도자는 백성을 위하는 마음은 없고 오직 군림하려는 마음만 있습니다.
자신이 희생하기는커녕 타인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아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가야바는 자신의 말처럼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자신에게 그리고 유대민족에게 유익을 끼쳤습니까?

결과는 그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온 민족이 망하는 길로 인도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후 유대 사회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사랑과 인내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잃어버리고, 예수님 대신 죄를 용서받은 폭력을 상징하는 ‘바라바’ 같은 자들이 주동이 되어 많은 폭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에 로마는 유대를 멸망시키기로 결정하고, 주후 70년 티투스 장군을 보내 11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학살하고 성전을 파괴하여 폐허로 만들고 수많은 유대인들을 노예로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백성들은 타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피신하게 됨으로써 결국 유대는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만일, 오늘 본문의 가야바와 같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존중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백성들에게 권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선한 섭리로 인해 평화롭게 독립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는 악한 지도자를 만나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나라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합니다.
지도자는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자를 선택할 때 모든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정말 선한 양심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출된 지도자가 선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이 진정으로 사심 없이 국민을 위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기도가 이 나라를 살리는 가장 강한 힘임을 기억하여, 날마다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이어지는 51~52절 함께 읽습니다.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가야바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한 것은, 자기도 모르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온 인류가 생명 얻는 길을 마련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섭리를 예언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가야바는 악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말했으나 사실은 그가 그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움직여 십자가 구속을 자기도 모르게 예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달하는 자입니다(출 28:30).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이 많았습니다(삿 20:27-28, 삼상 23:9).
그러므로 하나님은 가야바가 비록 악인이요 로마제국에 의해 세워진 꼭두각시 대제사장이지만 그를 통해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예언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의로운 사람뿐만 아니라 타락한 종교인이나 악한 사람, 불신자, 심지어 짐승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부분들도 기록되어 있습니다(민 23:1-24, 민 22:28-33, 삼하 16:10).
그러므로 우리는 그 누구의 말이라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 듣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교회를 비판하고 성도들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의 말이라도 우리는 그 말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를 통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도 나타나 있듯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이러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좁은 길, 협착한 믿음의 삶을 사는 분명한 이유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중에 실족하고 맙니다.
여러분,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말씀을 진정으로 믿음으로 거듭나서, 죄로부터 분리되고 구별된 성결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전인격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고난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새롭게 선한 믿음의 삶을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 각각 다르게 반응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는 때로 악한 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실 때가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모두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저희들도 걸어야 함을 결단합니다. 믿음의 확신과 성령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셔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이루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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