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49. 일곱 번째 표적-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요 11:38-44)

우인택 목사
2023-01-29
조회수 2671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일곱 표적 가운데 마지막 표적이자 최고의 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의 종결부분입니다.

1. 먼저 38절 함께 읽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라는 말은 ‘앞에서 비통히 여기셨는데 또다시 비통한 마음이 일어났다’라는 뜻입니다.

33절에, 예수님은 마리아와 조문객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셨습니다.
‘비통히 여기다’라는 말은 ‘엄히 꾸짖다’, 크게 괴로워하다’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지금 그들 앞에 ‘부활이요 생명’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계심에도 여전히 죄와 사망에 눌려 아파하고 슬퍼하는 그들의 모습에 분노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동시에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고 말씀합니다.
‘불쌍히 여기사’라는 말은 ‘눈물을 흘리게 할 만큼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앞에서조차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여전히 허덕이는 인생들의 불행을 보시며 가슴 저리게 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그를 어디 두었느냐” 물으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조문객들은 그 모습에서 나사로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보았지만, 37절에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라며 예수님에 대하여 비판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여기에서 ‘어떤 이는’ 복수입니다. ‘어떤 이들은’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에 또다시 비통함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비통히’ 라는 말은 33절의 ‘비통히’ 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대다수의 조문객은 예수님이 사람들과 함께 우시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나사로를 사랑하는 구나’ 하는 것을 느꼈지만, 그들 중 몇몇 사람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라며 안타까움을 가장하며 예수님을 비판하고 빈정거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본문을 자세히 보면 그들은 나사로를 칭할 때 ‘그 사람’이라고 칭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나사로의 친척이나 조문객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사람’이 아니라 ‘나사로’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46절에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라는 설명으로 보아, 그들은 예수께서 베다니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오빠의 죽음으로 슬픔하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감시하기 위해 조문객으로 위장해 그곳에 온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조문객들이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 때, 예수님을 비판할 거리를 찾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안타까워하는 척, 염려하는 척하며 조문객들을 속일 수 있었지만, 예수님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악함을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마음에 비통함을 느끼셨던 것입니다(38절).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의 악하디악한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성도들입니다.
그러한 그들이 이처럼 악하고 비정하게 행하는 모습을 보이자 예수님께서 비통해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선민인 그들이 이처럼 악하고 비정한 사람이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고귀한 마음을 사탄에게 빼앗겼기 때문입니다(요 8:41-44).
그래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율법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조차 잊어버리고 이같은 악한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선한 마음을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살펴야 합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율법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이 삶 속에서 실천되고 있는지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본받아 어려움을 당한 이웃에게 사랑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 말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받은 자로서 “나는 과연 그 사랑을 얼마나 갚으며 살고 있는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39-40절 함께 읽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마르다의 불신앙을 책망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34절에 죽은 나사로를 “어디 두었느냐” 물으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의 권능을 믿지 않고 나사로를 이미 무덤에 장사지낸 것을 책망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만일, 마르다와 마리아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면 혹시라도 다시 살려 주실지 모른다는 소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나사로를 굴로 만든 무덤에 넣고 큰 돌로 막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최소한 돌문으로 무덤을 막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행 9:36-41).

유대인의 무덤은 보통 굴을 파서 만들었는데, 어떤 무덤은 수직으로 굴을 뚫어 시신을 넣고 그 위를 돌로 막았고, 어떤 것은 수평으로 굴을 뚫어 시신을 넣고 입구를 돌로 막았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은 예수님의 무덤과 같은 수평 무덤으로 이러한 무덤은 가장 흔히 사용되는 무덤이었습니다.
그 무덤 안에는 선반이 있어 시신을 그 위에 올려놓은 후 둥근 돌로 무덤 문을 만들어 막았는데, 그 돌은 장정 여럿이 힘을 써야만 열 수 있는 매우 큰 돌이었습니다.

무덤 앞에 오신 예수님은 무덤을 막은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셨습니다(39절).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그 돌문은 예수님에 대한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사람들의 ‘불신앙의 상징’이었습니다.

여러분, 21절 이하에, 예수님께서 동네 입구에서 마르다에게 그녀의 불신앙을 일깨워 주시면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며 물으셨을 때, 그녀는 분명히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또다시 불신의 말을 합니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권능을 불신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는 또다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며 그녀의 믿음 없음을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인간의 불신앙은 고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한번 신앙고백을 했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불신앙의 마음을 심습니다.
여러 가지 악한 상황과 고난의 일들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충동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탄의 미혹과 충동은 마치 혼자 힘으로는 열 수 없는 나사로의 무덤을 막은 크고 무거운 돌문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서로 힘을 모아 불신의 돌문을 옮겨 놓을 수 있도록 교회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하나님의 선민이자 교회 공동체로서의 부름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같은 불신앙의 마음을 버리지 못함으로 결국에는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도 믿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어떤 ‘불신앙의 돌’이 있습니까?
어떤 육신의 정욕과 탐심이 여러분의 믿음을 방해합니까?
그런데 이 돌은 혼자의 힘으로는 옮겨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함께 합력해야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교회의 표어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할 때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합력하여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오늘, 불신의 돌을 굴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3. 이어지는 41절 함께 읽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공생애 최고의 기적을 일으키시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기도에 대한 바른 자세를 교훈받게 됩니다.

1) 예수님께서는 먼저, ‘하늘을 우러러’ 보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능력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보이시기 위해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내내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기도도 하늘을 우러러볼 때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기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기도여야 합니다.

2) 이어서 예수님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기적을 일으키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들어주신 것으로 확신하고 감사로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42절에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지금껏 이러한 믿음으로 드린 기도를 응답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고백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기도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고 확신하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반드시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 뜻에 합당한 기도여야 합니다(약 1:6-8).
그러므로 하나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하시되, 들어주실 것을 믿고 감사로 기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시 50:14.15).

3) 그리고 예수님은 이 모든 기도를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42절 함께 읽습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려는 목적은 나사로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같이 이웃의 구원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 응답하시는 고귀한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는 힘이 있습니다.

4) 그리고 43-44절에, 마침내 예수님께서 죽어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크게 외치셨습니다.
11절에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말씀하신 것처럼, 마치 잠자던 나사로를 잠에서 깨우시듯이 큰 소리로 나사로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죽었던 나사로가 베로 동인 채로 살아서 걸어 나왔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죽어 나흘이나 되어 이내 부패하기 시작한 나사로를 무덤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어두운 사망 권세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무덤에서 되살린 이 기적은 장차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무덤에 있는 성도들을 부활시켜 주실 것에 대한 예표입니다.
그날에 무덤에서 잠자고 있는 각 성도의 이름을 불러 죽음에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다시는 죽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고전 15:42-53).
그리고 슬픔도, 아픔도, 죽음도 없는, 영원한 자유와 기쁨이 있는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재림의 날에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다시 깨워 주실 것을 믿고,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에 최선을 다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도 영원한 사망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사명이요, 구원받은 자로서 마땅히 행할 도리입니다.
오늘,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외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가슴 깊이 새기고,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새롭게 다짐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선민임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악에 빠진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이지만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모습들도 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교훈 삼아, 나사로처럼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사탄의 권세가 지배하는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권능으로 함께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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