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천재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10년에 그가 저술한 ‘위대한 설계’에서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그는 2011년에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다시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 같다. 고장나면 멈추는 것이다. 고장난 컴퓨터에 사후세계는 없으며, 천국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만든 동화 속의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여러분, 정말 우리 인간은 기계나 컴퓨터와 같은 존재일까요?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요한복음 11:25-2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것과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습니까?
1. 지난주 우리가 살펴본 대로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불의한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망하신 시간이 ‘안식일 세 시간 전’이었기에,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이 죽으면 사용하려고 준비한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바위 속에 판 새 무덤에 예수님을 서둘러 장례했습니다(마 27:60).
당시 유대인의 장례는 매장이나 화장보다는 동굴이나 바위에 굴을 파서 그 안에 시신을 두었는데, 시간이 지나 썩어서 뼈만 남게 되면, 그 뼈와 유물들을 동굴안에 있던 석조 함에 보관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했던 당시에는 무덤 도굴꾼들이 많아서 무덤 속에 있는 유물들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몇 톤이나 되는 매우 큰 돌을 둥글게 다듬어서 무덤 입구를 막았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예고하셨기에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예수님의 무덤 입구를 인봉하고 군사들을 배치하여 지키게 했습니다(마 27:62-66).
학자들에 의하면,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기 때문에 그 무덤의 규모는 상당했을 것이고 입구를 막은 돌도 장정 여럿이 힘을 합해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컸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가복음 16:4에도 “그 돌이 심히 크더라”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큰 돌로 예수님의 무덤을 막고 유대 총독 빌라도가 인봉을 하고 군인들이 무덤을 지키는데 누가 감히 그 무덤에 접근하여 도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무덤 입구를 인봉하고 군사들로 지키게 한 것은 “혹시 예수님이 부활하더라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유대인들이 조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날 것을 염려하여 무덤을 인봉하고 군사를 동원해 무덤을 지켰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확인되듯이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 아닙니까?
어찌 되었건 예수님의 무덤은 인봉된 채 군인들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덤의 돌이 옮겨졌고,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졌습니다.
만일, 군인들이 졸고 있는 틈을 타서 도굴꾼들이 그렇게 한 것이라면 시체를 훔쳐 갈 것이 아니라 몰약과 침향같은 향품과 세마포를 훔쳐 갔을 것입니다.
향품은 물론 세마포도 굉장히 비싼 천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훔쳐 갔다면 세마포에 그대로 싸인 채로 훔쳐 갔을 것입니다.
어떻게 알몸인 시체만을 들고 갔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은 다 잘 정돈되어 있었고 예수님의 시체만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시체는 도굴도, 제자들의 소행이라고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을 쌌던 모든 것은 그대로 남겨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만 없어진 것은, 이 세상의 것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조금도 필요가 없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몸, 거듭난 몸에는 세상의 값진 세마포와 향료, 금은 보석들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것들만 필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신다면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것들만이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육신의 썩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본문 1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장례를 너무 급히 치르는 바람에 예수님의 시신 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 여인들은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시신을 다시 수습하고 향료를 바르기 위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만 언급되어 있지만 2절 후반부에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라는 표현을 보아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만 무덤에 간 것이 아니라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여인들이 함께 예수님의 무덤에 갔음을 알게 됩니다(눅 24:1, 막 16:1).
그리고 아직 어두운 새벽 미명에 군사들이 지키고 있던 예수님의 무덤에 막달라 마리아 혼자 갔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에서 도착해 보니 무덤을 막고 있던 큰 돌문이 옆으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본능적으로 “혹시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가지 않았나” 생각하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이 사실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리게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은 단숨에 무덤으로 달려와서 확인하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9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은 그때까지도 예수께서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0절에,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제자들이 빈 무덤을 보고서 예수님께서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셨어”하 오히려 크게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불신앙에 빠져 있었고,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부활을 생각하기는커녕 점점 더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갔습니다.
그러한 두려움이 계속 되자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예수님을 대적하던 유대인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간 자들이 이제는 제자인 자신들까지 붙잡아 죽이려 하지 않을까 두려워졌습니다.
이렇게 두려움이 점점 커지자 제자들은 19절에 기록된 것처럼 함께 모여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숨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면 축복이 오히려 저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특히 어렵고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까?
만일, 이 모든 일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면 여러분들도 제자들과 같이 한순간도 마음이 편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불안과 두려움에 떨면서 어쩔 줄을 몰라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고 낙심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문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축복을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문제 자체만을 두려움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두려움과 낙심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여 문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모든 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히, 그 모든 일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슨 일을 만나도 이기게 될 것이고, 그 일들을 통해 우리의 믿음도 그만큼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지만 무덤이 비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물론, 무덤이 비었다고 해서 다 부활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실제 죽었던 것이 아니라 가사상태에 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간 후에 부활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장례 직후 다른 곳으로 옮겨 갔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조작하려는 자들의 근거 없는 모함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당시의 모든 상황은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한 사실임을 명백하게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은 시간이 부족하여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교회사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시작되어 부활로 완성’되었기에 부활은 초대교회 신앙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교회는 아예 존재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 그런데 여러분, 만일 막달라 마리아나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에서 시신을 찾았을 때, 예수께서 그곳에 그대로 누워 계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무덤을 찾은 여인들은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바르는 것으로 위안으로 삼았을 것이고, 제자들은 스승의 시신을 보며 옛일들을 회상하는데 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성령께서도 이 땅에 강림하지 않았을 것이고, 인류는 여전히 죄 가운데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셔서 무덤을 빈 무덤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죗값을 위해 죽으셨고 우리의 죗값을 다 갚으신 후에는 무덤을 열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그 안에서 의로워졌음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보증은 예수님의 탄생에도, 예수님의 죽음에도 있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5:14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부활은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은 참으로 무서운 괴물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너무나 오랫동안 온 인류를 무자비하게 집어삼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마저도 집어삼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사함과 부활의 능력으로 죽음이라는 괴물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모든 성도들이 그의 뒤를 따라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승리요, 또한 그와 연합한 우리의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의 장례식에서는 예포를 쏘는 대신 두 번의 나팔을 불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나팔은 ‘취침 나팔’이고 두 번째는 ‘기상 나팔’이었습니다.
죽음은 잠시 잠드는 것이고, 때가 되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다시 깨어날 것을 그가 믿었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바라보면서 부활의 소망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만, 저희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저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해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서 두려움에 떨었지만, 저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확신함으로 무슨 일에든지 감사와 기쁨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붙들고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함께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천재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10년에 그가 저술한 ‘위대한 설계’에서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그는 2011년에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다시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 같다. 고장나면 멈추는 것이다. 고장난 컴퓨터에 사후세계는 없으며, 천국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만든 동화 속의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여러분, 정말 우리 인간은 기계나 컴퓨터와 같은 존재일까요?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요한복음 11:25-2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것과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습니까?
1. 지난주 우리가 살펴본 대로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불의한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망하신 시간이 ‘안식일 세 시간 전’이었기에,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이 죽으면 사용하려고 준비한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바위 속에 판 새 무덤에 예수님을 서둘러 장례했습니다(마 27:60).
당시 유대인의 장례는 매장이나 화장보다는 동굴이나 바위에 굴을 파서 그 안에 시신을 두었는데, 시간이 지나 썩어서 뼈만 남게 되면, 그 뼈와 유물들을 동굴안에 있던 석조 함에 보관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했던 당시에는 무덤 도굴꾼들이 많아서 무덤 속에 있는 유물들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몇 톤이나 되는 매우 큰 돌을 둥글게 다듬어서 무덤 입구를 막았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예고하셨기에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예수님의 무덤 입구를 인봉하고 군사들을 배치하여 지키게 했습니다(마 27:62-66).
학자들에 의하면,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기 때문에 그 무덤의 규모는 상당했을 것이고 입구를 막은 돌도 장정 여럿이 힘을 합해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컸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가복음 16:4에도 “그 돌이 심히 크더라”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큰 돌로 예수님의 무덤을 막고 유대 총독 빌라도가 인봉을 하고 군인들이 무덤을 지키는데 누가 감히 그 무덤에 접근하여 도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무덤 입구를 인봉하고 군사들로 지키게 한 것은 “혹시 예수님이 부활하더라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유대인들이 조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날 것을 염려하여 무덤을 인봉하고 군사를 동원해 무덤을 지켰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확인되듯이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 아닙니까?
어찌 되었건 예수님의 무덤은 인봉된 채 군인들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덤의 돌이 옮겨졌고,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졌습니다.
만일, 군인들이 졸고 있는 틈을 타서 도굴꾼들이 그렇게 한 것이라면 시체를 훔쳐 갈 것이 아니라 몰약과 침향같은 향품과 세마포를 훔쳐 갔을 것입니다.
향품은 물론 세마포도 굉장히 비싼 천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훔쳐 갔다면 세마포에 그대로 싸인 채로 훔쳐 갔을 것입니다.
어떻게 알몸인 시체만을 들고 갔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은 다 잘 정돈되어 있었고 예수님의 시체만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시체는 도굴도, 제자들의 소행이라고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을 쌌던 모든 것은 그대로 남겨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만 없어진 것은, 이 세상의 것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조금도 필요가 없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몸, 거듭난 몸에는 세상의 값진 세마포와 향료, 금은 보석들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것들만 필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신다면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것들만이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육신의 썩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본문 1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장례를 너무 급히 치르는 바람에 예수님의 시신 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 여인들은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시신을 다시 수습하고 향료를 바르기 위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만 언급되어 있지만 2절 후반부에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라는 표현을 보아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만 무덤에 간 것이 아니라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여인들이 함께 예수님의 무덤에 갔음을 알게 됩니다(눅 24:1, 막 16:1).
그리고 아직 어두운 새벽 미명에 군사들이 지키고 있던 예수님의 무덤에 막달라 마리아 혼자 갔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에서 도착해 보니 무덤을 막고 있던 큰 돌문이 옆으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본능적으로 “혹시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가지 않았나” 생각하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이 사실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리게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은 단숨에 무덤으로 달려와서 확인하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9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은 그때까지도 예수께서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0절에,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제자들이 빈 무덤을 보고서 예수님께서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셨어”하 오히려 크게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불신앙에 빠져 있었고,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부활을 생각하기는커녕 점점 더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갔습니다.
그러한 두려움이 계속 되자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예수님을 대적하던 유대인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간 자들이 이제는 제자인 자신들까지 붙잡아 죽이려 하지 않을까 두려워졌습니다.
이렇게 두려움이 점점 커지자 제자들은 19절에 기록된 것처럼 함께 모여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숨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면 축복이 오히려 저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특히 어렵고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까?
만일, 이 모든 일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면 여러분들도 제자들과 같이 한순간도 마음이 편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불안과 두려움에 떨면서 어쩔 줄을 몰라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고 낙심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문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축복을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문제 자체만을 두려움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두려움과 낙심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여 문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모든 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히, 그 모든 일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슨 일을 만나도 이기게 될 것이고, 그 일들을 통해 우리의 믿음도 그만큼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지만 무덤이 비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물론, 무덤이 비었다고 해서 다 부활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실제 죽었던 것이 아니라 가사상태에 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간 후에 부활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장례 직후 다른 곳으로 옮겨 갔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조작하려는 자들의 근거 없는 모함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당시의 모든 상황은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한 사실임을 명백하게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은 시간이 부족하여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교회사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시작되어 부활로 완성’되었기에 부활은 초대교회 신앙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교회는 아예 존재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 그런데 여러분, 만일 막달라 마리아나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에서 시신을 찾았을 때, 예수께서 그곳에 그대로 누워 계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무덤을 찾은 여인들은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바르는 것으로 위안으로 삼았을 것이고, 제자들은 스승의 시신을 보며 옛일들을 회상하는데 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성령께서도 이 땅에 강림하지 않았을 것이고, 인류는 여전히 죄 가운데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셔서 무덤을 빈 무덤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죗값을 위해 죽으셨고 우리의 죗값을 다 갚으신 후에는 무덤을 열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그 안에서 의로워졌음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보증은 예수님의 탄생에도, 예수님의 죽음에도 있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5:14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부활은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은 참으로 무서운 괴물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너무나 오랫동안 온 인류를 무자비하게 집어삼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마저도 집어삼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사함과 부활의 능력으로 죽음이라는 괴물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모든 성도들이 그의 뒤를 따라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승리요, 또한 그와 연합한 우리의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의 장례식에서는 예포를 쏘는 대신 두 번의 나팔을 불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나팔은 ‘취침 나팔’이고 두 번째는 ‘기상 나팔’이었습니다.
죽음은 잠시 잠드는 것이고, 때가 되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다시 깨어날 것을 그가 믿었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바라보면서 부활의 소망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만, 저희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저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해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서 두려움에 떨었지만, 저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확신함으로 무슨 일에든지 감사와 기쁨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붙들고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함께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