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에는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길가에 있는 잡초 한 송이도, 돌멩이 하나도,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도 다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존재 목적을 이루게 되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게 됩니다. 그러나 존재 목적을 다하지 못하거나 과하게 그 역할을 하게 되면 균형이 깨어지고 파괴와 파멸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세상 모든 생물에게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비가 너무 오랫동안 안 온다든지,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생태계가 파괴되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모기’ 좋아하는 분 계세요? 온갖 질병을 불러오는 모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기는 지구상에서 꼭 없어져야 하는 해충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래서 모기를 박멸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우리에게 유익이 올까요? 과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모기가 없어지면 모기를 먹이로 하는 조류, 어류, 파충류, 양서류 등에 큰 영향을 주게 되어 생태계가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또, 열대지방의 카카오 나무는 꽃이 너무 작아서 유일한 수분 개체인 모기가 없으면 수분을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어 코코아, 초콜릿도 없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그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 중에서 그 어떤 것이라도 존재 목적을 다하지 못하거나 과하게 그 역할을 하게 되면 생태계의 균형이 깨어지고 이세상은 몸살을 앓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성도들의 존재 목적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존재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로서의 존재 목적’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6절 함께 읽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살리시고, 승천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행 10:40, 마 16:19, 히 8:1). 그러므로 여기에서 “함께 일으키사”라는 말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을 때 우리도 함께 죽은 것이고,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 우리 역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고,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는 말은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을 때, 우리 역시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게 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여러분, 이처럼 우리의 거듭남은 오직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반복하여 듣게 되는 복음의 기초 중의 기초입니다.
특히,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 설립한 교회입니다. 그 후 3차 선교여행 때는 무려 2년 3개월 동안 체류하며 직접 목회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시 어떤 성도들보다 복음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배웠고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복음의 기초 중의 기초인 이 말씀을 하는 것은 그들이 복음에 대하여, 거듭남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질문합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매일 신앙고백을 하는 것처럼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정확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2천 년 전의 제자들과 같이 직접 만나 뵐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대화하시고, 하나님과 함께 이 땅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안에 함께’ 거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매일 매일의 삶을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까?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많은 사람들은 거듭남을 종교적인 체험으로 생각합니다.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써 마음이 후련해지고 뜨거워지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으레 한 번은 경험하게 되는 홍역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믿음 생활을 한 성도들은 이제 막 거듭남을 체험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지난날 자신의 거듭남의 체험을 떠올리며 자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듭남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이 의례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전적으로 세상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하나님과의 관계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4 말씀처럼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한 것’입니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몸이 살아있어 이 땅에 살지만, 그러나 우리의 몸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에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거듭난 새 삶임을 확신하며 사는 삶이 거듭난 삶입니다(갈 2:20).
그리고 본문에서는 그러한 삶을 사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몸은 이 땅에서 살지만, 우리의 영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을 사는 것이 거듭난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이 세상 사람과 살아가는 방식이나 생각이나 목표가 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진정 거듭나셨습니까? 여러분의 옛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새사람으로 부활하여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고 계십니까? 그래서 이 세상 사람과 살아가는 방식이나 생각이나 목표가 달라지게 되었습니까? 오늘, 자신의 삶과 신앙을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7절은, 성도 개인의 구원과 온 세계의 구원이 얼마나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보통, 구원을 생각할 때 자기의 구원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로 인해 감격하고 감사하는 일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다만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우리의 구원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오는 여러 세대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에게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여러 세대에 전승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를 먼저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8).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루는 존재는 우리 성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8절에 구원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구원은 인간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9절에서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함으로써 이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세상 그 어느 곳에 존재하거나,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세상 무언가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학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무엇으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구원의 길이 있고 구원의 방법이 있다면 왜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겠습니까?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스스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구원의 본질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존재 목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원으로 인해 자기 의를 자랑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고, 하나님만 자랑할 수 있게 됩니다.
3. 이에 사도 바울은 추가 설명을 10절에서 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라는 말은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성도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까? 본문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선한 일’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선한 일’이란 1절의 ‘허물과 죄’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인간이 타락하여 허물과 죄로 행하기 이전에 계획되고 의도된 하나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롬 3:23, 고전 10:31). 본래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어졌는데, 그러한 본래의 선한 목적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의 철저한 순종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2024년을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너무나도 분명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영적인 무성장증을 극복하라”, “기도를 새롭게 하라”,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 밖으로까지 넘치게 하라”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그리고 오늘,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기에 힘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순종할 하나님의 말씀은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부탁을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마 28:19-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행 1:8). 오늘 말씀도 이러한 예수님의 명령을 이루는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선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우선된 일은 없습니다. 오늘, 거듭남의 감격 안에서 이러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께 큰 영광 올려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거듭난 삶을 산다는 것은 세상이 나에 대해 못 박히고, 나 또한 세상을 향해 못 박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이 크신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시되, 우리의 선한 삶을 통해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생명을 전하고 생명을 구하는 선한 삶을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에는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길가에 있는 잡초 한 송이도, 돌멩이 하나도,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도 다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존재 목적을 이루게 되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게 됩니다. 그러나 존재 목적을 다하지 못하거나 과하게 그 역할을 하게 되면 균형이 깨어지고 파괴와 파멸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세상 모든 생물에게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비가 너무 오랫동안 안 온다든지,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생태계가 파괴되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모기’ 좋아하는 분 계세요? 온갖 질병을 불러오는 모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기는 지구상에서 꼭 없어져야 하는 해충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래서 모기를 박멸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우리에게 유익이 올까요? 과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모기가 없어지면 모기를 먹이로 하는 조류, 어류, 파충류, 양서류 등에 큰 영향을 주게 되어 생태계가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또, 열대지방의 카카오 나무는 꽃이 너무 작아서 유일한 수분 개체인 모기가 없으면 수분을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어 코코아, 초콜릿도 없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그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 중에서 그 어떤 것이라도 존재 목적을 다하지 못하거나 과하게 그 역할을 하게 되면 생태계의 균형이 깨어지고 이세상은 몸살을 앓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성도들의 존재 목적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존재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로서의 존재 목적’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6절 함께 읽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살리시고, 승천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행 10:40, 마 16:19, 히 8:1). 그러므로 여기에서 “함께 일으키사”라는 말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을 때 우리도 함께 죽은 것이고,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 우리 역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고,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는 말은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을 때, 우리 역시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게 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여러분, 이처럼 우리의 거듭남은 오직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반복하여 듣게 되는 복음의 기초 중의 기초입니다.
특히,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 설립한 교회입니다. 그 후 3차 선교여행 때는 무려 2년 3개월 동안 체류하며 직접 목회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시 어떤 성도들보다 복음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배웠고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복음의 기초 중의 기초인 이 말씀을 하는 것은 그들이 복음에 대하여, 거듭남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질문합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매일 신앙고백을 하는 것처럼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정확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2천 년 전의 제자들과 같이 직접 만나 뵐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대화하시고, 하나님과 함께 이 땅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안에 함께’ 거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매일 매일의 삶을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까?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많은 사람들은 거듭남을 종교적인 체험으로 생각합니다.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써 마음이 후련해지고 뜨거워지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으레 한 번은 경험하게 되는 홍역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믿음 생활을 한 성도들은 이제 막 거듭남을 체험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지난날 자신의 거듭남의 체험을 떠올리며 자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듭남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이 의례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전적으로 세상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하나님과의 관계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4 말씀처럼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한 것’입니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몸이 살아있어 이 땅에 살지만, 그러나 우리의 몸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에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거듭난 새 삶임을 확신하며 사는 삶이 거듭난 삶입니다(갈 2:20).
그리고 본문에서는 그러한 삶을 사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몸은 이 땅에서 살지만, 우리의 영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을 사는 것이 거듭난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이 세상 사람과 살아가는 방식이나 생각이나 목표가 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진정 거듭나셨습니까? 여러분의 옛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새사람으로 부활하여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고 계십니까? 그래서 이 세상 사람과 살아가는 방식이나 생각이나 목표가 달라지게 되었습니까? 오늘, 자신의 삶과 신앙을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7절은, 성도 개인의 구원과 온 세계의 구원이 얼마나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보통, 구원을 생각할 때 자기의 구원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로 인해 감격하고 감사하는 일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다만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우리의 구원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오는 여러 세대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에게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여러 세대에 전승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를 먼저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8).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루는 존재는 우리 성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8절에 구원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구원은 인간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9절에서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함으로써 이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세상 그 어느 곳에 존재하거나,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세상 무언가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학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무엇으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구원의 길이 있고 구원의 방법이 있다면 왜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겠습니까?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스스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구원의 본질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존재 목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원으로 인해 자기 의를 자랑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고, 하나님만 자랑할 수 있게 됩니다.
3. 이에 사도 바울은 추가 설명을 10절에서 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라는 말은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성도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까? 본문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선한 일’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선한 일’이란 1절의 ‘허물과 죄’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인간이 타락하여 허물과 죄로 행하기 이전에 계획되고 의도된 하나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롬 3:23, 고전 10:31). 본래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어졌는데, 그러한 본래의 선한 목적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의 철저한 순종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2024년을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너무나도 분명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영적인 무성장증을 극복하라”, “기도를 새롭게 하라”,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 밖으로까지 넘치게 하라”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그리고 오늘,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기에 힘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순종할 하나님의 말씀은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부탁을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마 28:19-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행 1:8). 오늘 말씀도 이러한 예수님의 명령을 이루는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선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우선된 일은 없습니다. 오늘, 거듭남의 감격 안에서 이러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께 큰 영광 올려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거듭난 삶을 산다는 것은 세상이 나에 대해 못 박히고, 나 또한 세상을 향해 못 박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이 크신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시되, 우리의 선한 삶을 통해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생명을 전하고 생명을 구하는 선한 삶을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