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피터팬’을 아십니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제임스 매튜 배리’가 1904년 발표한 연극 ‘피터팬: 자라지 않는 아이’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피터 팬은 제목대로 자라지 않는 소년입니다. ‘네버랜드’라는 곳에서 영원히 어린아이로 사는 소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지 않고 영원히 소년으로 산다면 행복할까요?
실제로 자라지 않는 병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자란 후 더이상 자라지 않는 ‘무성장증’이라는 불치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20세가 되어도 7살 아이와 같은 정신세계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병에 걸린 사람은 그것도 모르고 마냥 좋아합니다. 그는 결국 아이로 살다가 아이로 죽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괴로워하지도, 가슴 아파하지도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자녀가 이러한 병에 걸린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피터팬처럼 자라지 않고 어린아이로 살게 되었으니 잘되었다” 하겠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병을 치료하고 싶겠습니까? ‘무성장증’은 부모를 죽이는 병입니다. 어떤 부모라도 그 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슴 아프게도 우리 성도들 중에도 이러한 병을 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인 무성장증’을 앓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무성장증은 희귀병이지만, 영적인 무성장증은 아주 흔한 병입니다. 이런 자녀가 하나만 있어도 죽을 것 같을 텐데, 하나님께는 수많은 병든 자녀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병을 이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영적인 어린아이로 머물고 싶어 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오늘, 2024년 첫 주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는 영적인 무성장증을 이겨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성장을 이루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부탁드립니다. 매일 주시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함으로써 올 한해를 그 어느 해보다 보람되고 기억이 남은 해로 삼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성장을 기대하고 축복합니다.
1. 먼저 11절 함께 읽습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여기에서 ‘기업이 되었다’라는 말은 ‘제비 뽑혔다’ ‘개인적인 소유가 되었다’ ‘상속자가 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예정하심에 의해 하나님의 개인적인 소유,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도가 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유산을 받았다거나 기업을 얻은 것이 아니고,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유산과 기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를 통해 무언가를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체가 곧 목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라고 고백하는데, 그 고백 이전에,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지만, 그 전에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아 그에 합당한 처신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루는 어떤 위대한 업적보다는 우리 자신을 더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역 위주나 결과 위주의 잘못된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성도는 교회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수단으로 사용되어져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그 자체로서 이미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옆에 계신 성도님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본적인 품위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이어지는 12절 읽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기업으로 삼으신 두 번째 목적에 대한 말씀입니다. 첫 번째 목적은 지난 주일에 상고한 10절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 곧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는 것이었고, 12절은 두 번째 목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 곧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리는 삶을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주위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면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 풍성하게 넘쳐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찬양으로 가득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기업으로 삼으신 목적은 성도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도 우리의 평강을 위한 일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찬송하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넘칠 때 선포되는 것이므로, 결국에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데 우리가 어찌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희미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도 사라지고 있다면 이제부터 복음을 믿고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삶을 결단할 때, 2024년은 여러분의 가정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고, 그로 인해 우리 교회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고, 이웃들과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를 이루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과 영광의 찬송이 끊이지 않는 복된 2024년이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2. 이어지는 13절 함께 읽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에베소서를 기록한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논지로, 여기에서 중요한 표현은 ‘너희’입니다. 13절 이전까지 바울은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라는 말을 3절부터 12절까지 무려 11번이나 사용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우리’는 복음을 처음으로 믿은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뜻합니다.
여러분, 분명히 구원의 은혜는 유대인들이 먼저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먼저 선택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먼저 복음을 받고, 구원받도록 예정하셨습니다. 지금껏 바울이 거듭해서 ‘우리’를 밝히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이방인 성도들이 유대인 출신 성도들보다 열등하다는 것입니까? 이방인들이 유대인보다 구원에 있어서 뒤로 밀린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이방인들도 유대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동일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로마서에서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이 구제 불능의 죄인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방인을 정죄하는 유대인 역시 이방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똑같은 구제 불능의 죄인임을 역설하며, 오직 믿음으로만 의로워지고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가르칩니다. 인간은 혈통이나 민족, 지역에 상관없이 모두 죄인이며, 따라서 죄인 된 인간은 그 누구도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하기에 인간이 자신의 혈통을 자랑한다든지, 자신의 지식이나 노력, 헌신 등을 자랑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기록한 거의 모든 서신에서 구원에 있어서 사람의 공로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사람은 교만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로 구원받게 됨을 기억하여,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11절).
그리고 13절을 계속해서 보시면 두 번째로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앞에서 바울은 구원의 계획과 섭리, 예정과 선택이 하나님의 주도로 되어진 일임을 밝히고, 그 구속의 계획이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음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님의 역할에 대하여 ‘인치심’이라고 표현합니다.
사실, 우리의 믿음은 성령께서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고, 구원을 받게 된 모든 것에는 우리 자신의 힘이나 노력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전적으로 역사하신 결과라는 것입니다. 만일,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면 우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성도는 모태신앙이라 할지라도 처음에는 복음이 믿어지지 않고, 들어도 가슴에 별로 와 닿지 않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복음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나는 죄인이다”라고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내가 얼마나 구제 불능의 죄인인지” 깨달아집니다. 나는 소망이 없는 존재이고,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이 나를 짓누릅니다. 그래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 콧물을 쏟으며 자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렇다고 사회, 도덕적으로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어떤 죄인보다도 자신이 더 큰 죄인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대신 죽으셨다”라는 것이 믿어지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합니다. “이제는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라는 것이 저절로 결심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어떤 사람은 매우 단기간에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수십 년이 넘게 걸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모태신앙인데도 끝까지 믿어지지 않아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복음에 눈을 뜨는 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결단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성령께서 눈을 뜨게 해주셔야 볼 수 있고,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성령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서도 우리와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계시고,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 계시지만,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는 보혜사이십니다. 우리를 일일이 지도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깨우치기 위해 곁에 계시는 보호자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성령님과 교제를 끊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2024년은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마땅히 서야 할 곳에 서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감당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참 성도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4절 함께 읽습니다.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성령의 인치심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지금 바울은 성령의 인치심의 의미를 능력을 받는 것이나 방언을 말하는 것이나 각종 은사로 충만한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중한 것들이지만 그러한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 충만의 은혜를 부어지시는 데에는 더 크고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치심이 ‘성도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인치시는 가장 크고 중요한 이유와 목적은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영접하게 하시려고 성령의 권능과 기적을 체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권능은 우리가 사사로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만능열쇠가 아닙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소중하게 사용해야 할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그래서 처음 복음이 선포될 때 예수님께서 수많은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셨고, 초대교회 때에도 매우 강한 성령의 권능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때에는 우상숭배가 만연하였고, 우상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목을 복음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우상들이 할 수 없는 성령님의 권능이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선교지에서는 성령님의 놀라운 권능이 많이 선포되는데 비해,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면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2024년 첫 번째 주일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의 인치심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영혼 구원의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까? 그러하다면 여러분의 삶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올 2024년은 구원의 보증이 되시는 성령님의 인치심으로 인해 ‘영적인 무성장증’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멋진 나날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은혜의 비밀을 소유하고 새로운 한 해를 힘차게 시작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희를 성도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업이 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는 것임을 오늘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업된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오니 성령의 인치심으로 함께하여 주옵소서. 시험에 넘어지지 않도록 붙드시고 함께하여 주옵시고, 오직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을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피터팬’을 아십니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제임스 매튜 배리’가 1904년 발표한 연극 ‘피터팬: 자라지 않는 아이’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피터 팬은 제목대로 자라지 않는 소년입니다. ‘네버랜드’라는 곳에서 영원히 어린아이로 사는 소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지 않고 영원히 소년으로 산다면 행복할까요?
실제로 자라지 않는 병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자란 후 더이상 자라지 않는 ‘무성장증’이라는 불치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20세가 되어도 7살 아이와 같은 정신세계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병에 걸린 사람은 그것도 모르고 마냥 좋아합니다. 그는 결국 아이로 살다가 아이로 죽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괴로워하지도, 가슴 아파하지도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자녀가 이러한 병에 걸린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피터팬처럼 자라지 않고 어린아이로 살게 되었으니 잘되었다” 하겠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병을 치료하고 싶겠습니까? ‘무성장증’은 부모를 죽이는 병입니다. 어떤 부모라도 그 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슴 아프게도 우리 성도들 중에도 이러한 병을 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인 무성장증’을 앓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무성장증은 희귀병이지만, 영적인 무성장증은 아주 흔한 병입니다. 이런 자녀가 하나만 있어도 죽을 것 같을 텐데, 하나님께는 수많은 병든 자녀가 있습니다.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병을 이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영적인 어린아이로 머물고 싶어 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오늘, 2024년 첫 주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는 영적인 무성장증을 이겨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성장을 이루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부탁드립니다. 매일 주시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함으로써 올 한해를 그 어느 해보다 보람되고 기억이 남은 해로 삼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성장을 기대하고 축복합니다.
1. 먼저 11절 함께 읽습니다.
여기에서 ‘기업이 되었다’라는 말은 ‘제비 뽑혔다’ ‘개인적인 소유가 되었다’ ‘상속자가 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예정하심에 의해 하나님의 개인적인 소유,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도가 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유산을 받았다거나 기업을 얻은 것이 아니고,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유산과 기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를 통해 무언가를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체가 곧 목적이 된다는 것입니다.“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라고 고백하는데, 그 고백 이전에,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지만, 그 전에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아 그에 합당한 처신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루는 어떤 위대한 업적보다는 우리 자신을 더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역 위주나 결과 위주의 잘못된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성도는 교회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수단으로 사용되어져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그 자체로서 이미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옆에 계신 성도님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본적인 품위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이어지는 12절 읽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기업으로 삼으신 두 번째 목적에 대한 말씀입니다. 첫 번째 목적은 지난 주일에 상고한 10절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 곧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는 것이었고, 12절은 두 번째 목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 곧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리는 삶을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주위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면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 풍성하게 넘쳐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찬양으로 가득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기업으로 삼으신 목적은 성도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도 우리의 평강을 위한 일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찬송하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넘칠 때 선포되는 것이므로, 결국에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데 우리가 어찌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희미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도 사라지고 있다면 이제부터 복음을 믿고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삶을 결단할 때, 2024년은 여러분의 가정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고, 그로 인해 우리 교회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고, 이웃들과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를 이루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과 영광의 찬송이 끊이지 않는 복된 2024년이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2. 이어지는 13절 함께 읽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에베소서를 기록한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논지로, 여기에서 중요한 표현은 ‘너희’입니다. 13절 이전까지 바울은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라는 말을 3절부터 12절까지 무려 11번이나 사용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우리’는 복음을 처음으로 믿은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뜻합니다.
여러분, 분명히 구원의 은혜는 유대인들이 먼저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먼저 선택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먼저 복음을 받고, 구원받도록 예정하셨습니다. 지금껏 바울이 거듭해서 ‘우리’를 밝히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이방인 성도들이 유대인 출신 성도들보다 열등하다는 것입니까? 이방인들이 유대인보다 구원에 있어서 뒤로 밀린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이방인들도 유대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동일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로마서에서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이 구제 불능의 죄인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방인을 정죄하는 유대인 역시 이방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똑같은 구제 불능의 죄인임을 역설하며, 오직 믿음으로만 의로워지고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가르칩니다. 인간은 혈통이나 민족, 지역에 상관없이 모두 죄인이며, 따라서 죄인 된 인간은 그 누구도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하기에 인간이 자신의 혈통을 자랑한다든지, 자신의 지식이나 노력, 헌신 등을 자랑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기록한 거의 모든 서신에서 구원에 있어서 사람의 공로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사람은 교만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로 구원받게 됨을 기억하여,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11절).
그리고 13절을 계속해서 보시면 두 번째로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앞에서 바울은 구원의 계획과 섭리, 예정과 선택이 하나님의 주도로 되어진 일임을 밝히고, 그 구속의 계획이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음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님의 역할에 대하여 ‘인치심’이라고 표현합니다.
사실, 우리의 믿음은 성령께서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고, 구원을 받게 된 모든 것에는 우리 자신의 힘이나 노력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전적으로 역사하신 결과라는 것입니다. 만일,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면 우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성도는 모태신앙이라 할지라도 처음에는 복음이 믿어지지 않고, 들어도 가슴에 별로 와 닿지 않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복음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나는 죄인이다”라고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내가 얼마나 구제 불능의 죄인인지” 깨달아집니다. 나는 소망이 없는 존재이고,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이 나를 짓누릅니다. 그래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 콧물을 쏟으며 자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렇다고 사회, 도덕적으로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어떤 죄인보다도 자신이 더 큰 죄인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대신 죽으셨다”라는 것이 믿어지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합니다. “이제는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라는 것이 저절로 결심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어떤 사람은 매우 단기간에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수십 년이 넘게 걸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모태신앙인데도 끝까지 믿어지지 않아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복음에 눈을 뜨는 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결단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성령께서 눈을 뜨게 해주셔야 볼 수 있고,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성령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서도 우리와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계시고,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 계시지만,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는 보혜사이십니다. 우리를 일일이 지도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깨우치기 위해 곁에 계시는 보호자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성령님과 교제를 끊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2024년은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마땅히 서야 할 곳에 서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감당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참 성도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4절 함께 읽습니다.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성령의 인치심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지금 바울은 성령의 인치심의 의미를 능력을 받는 것이나 방언을 말하는 것이나 각종 은사로 충만한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중한 것들이지만 그러한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 충만의 은혜를 부어지시는 데에는 더 크고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치심이 ‘성도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인치시는 가장 크고 중요한 이유와 목적은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영접하게 하시려고 성령의 권능과 기적을 체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권능은 우리가 사사로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만능열쇠가 아닙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소중하게 사용해야 할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그래서 처음 복음이 선포될 때 예수님께서 수많은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셨고, 초대교회 때에도 매우 강한 성령의 권능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때에는 우상숭배가 만연하였고, 우상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목을 복음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우상들이 할 수 없는 성령님의 권능이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선교지에서는 성령님의 놀라운 권능이 많이 선포되는데 비해,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면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2024년 첫 번째 주일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의 인치심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영혼 구원의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까? 그러하다면 여러분의 삶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올 2024년은 구원의 보증이 되시는 성령님의 인치심으로 인해 ‘영적인 무성장증’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멋진 나날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은혜의 비밀을 소유하고 새로운 한 해를 힘차게 시작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희를 성도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업이 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는 것임을 오늘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업된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오니 성령의 인치심으로 함께하여 주옵소서. 시험에 넘어지지 않도록 붙드시고 함께하여 주옵시고, 오직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을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