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2.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과 거룩한 삶 (엡 1:3-6)

우인택 목사
2023-12-24
조회수 342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라는 사실과 성도로서 누리고 있는 ‘은혜’와 ‘평강’은 무엇이며, 성도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예수 안에서의 신실함’이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오늘은 성도들이 받게 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은 무엇인지, 그리고 성도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은 어떠한 삶인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3절 함께 읽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여기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εν χριστω’라는 표현은 신약성경 서신서에 매우 많이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바른 믿음의 길을 제시하는 서신서에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이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받게 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데, 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누가 성도이고 그리스도인입니까? 성경을 들고 예배에 참석하면 성도가 되는 것입니까? 세례를 받고 교회 교적부에 이름을 등록하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까? 사람들 앞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고 말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안에서 εν’라는 단어는 장소, 시간, 상태에서의 지정된 위치를 나타내는 전치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삶의 장소가 그리스도 안에, 삶의 계획이 그리스도 안에, 삶의 행위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과 부활과 승천하심과 재림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고는 그 어떤 복도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마 28:18, 롬 3:24, 롬 8:17).

그래서 성경은 요한복음 10:1에서 “양의 문이 되신 예수님 외에 다른 어떤 길을 제시하는 자는 다 도둑이며, 강도”라고 말씀합니다. 또, 사도행전 4:12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타 종교와 타협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다른 곳에도 길이 있고, 다른 곳에도 축복이 있고, 다른 곳에도 생명이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다른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타 종교와도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나 생명이나 축복이 없다고 분명하게 단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 다른 길을 주시지 않았다고 단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신령한 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확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제되어야만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2.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을 복을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역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받게 되는 복은 땅에 속한 물질적인 복이 아니다”라는 말이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주시기를 바라는 복은 물질적인 복이 아닙니다. 물론,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에게는 물질적인 복을 주시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 물질적인 복은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복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물질적인 복이 죄악이나 타락, 더러움의 산물이라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물질적인 복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은혜의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금,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울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복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땅의 복에서 인간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으로 대체되었음’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복’하면 무엇을 생각합니까? 대개는 건강, 출세, 풍요 등 물질적인 것을 생각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보통 이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구약성경의 축복관’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은 율법을 지키는 자가 받을 복에 대하여 신명기 28:3-6에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주시는 모든 복이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고 그의 계명을 따라서 사는 성도들에게 이러한 땅의 복을 넘어서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더 크고 놀라운 새로운 복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아무리 좋은 것이 있더라도, 그것보다 훨씬 더 값지고 좋고 유용한 것이 주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가지고 있던 것을 포기하고 새것을 취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진 것을 다 포기할 수 있을 만큼 더 값지고 귀한 것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알기만 하면 반드시 지금 가진 것을 다 포기할 만큼 놀라운 복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학교 아이들이 찬양하는 찬양곡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땅속에 묻힌 아무도 모르는 보석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땅 속에 묻힌 아무도 모르는 보석이라네 그 보석 발견한 사람은 기뻐 뛰며 집에 돌아가 집 팔고 땅 팔고 냉장고 팔아 기어이 그 밭을 사고 말거야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땅 속에 묻힌 아무도 모르는 보석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땅 속에 묻힌 아무도 모르는 보석이라네”

여러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이지만 ‘감추어진 복’입니다. 이 복은 오직 믿음으로만 볼 수 있고 소유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볼 수도 소유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 믿음의 눈을 크게 뜨고 교회학교 아이들이 힘차게 부르는 찬양처럼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4절은 우리 성도 개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에 관한 말씀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여러분, 여러분들은 함께 일할 사람을 선택할 때 어떤 사람을 선택합니까?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사람, 실력 있고 호감이 가는 사람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언제 선택하셨다고 말씀합니까? ‘창세 전’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때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모저모 시험해 보고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외모나 충성 맹세를 듣고 난 후가 아닙니다. 능력을 시험해 보고 난 후도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도 아닙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믿어지십니까? 우리가 이 사실을 믿지만,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이 그것에 관해서는 침묵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무런 조건도 없이 선택하셨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셨는지, 그 궁극적인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이유는 단순히 구원하기 위함만은 아닙니다. 그 목적은 ‘거룩’입니다. 더욱이 ‘흠이 없는 거룩’입니다. 말하자면, ‘완전한 거룩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러한 말씀을 하는 이유는 당시 유대인들이 행하는 의의 기준은 ‘사람의 눈’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아줄까?’에 따라 의를 행했습니다(마 6:1).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5:20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경고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특히, 성경은 오늘 본문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앞에 ‘사랑 안에서’라는 전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께 사랑을 듬뿍 받아서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흘러넘칠 때, 그때야 비로소 우리가 흠이 없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제시될 수 있겠지만 결국은 ‘우리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 사랑을 풍성히 받고 그 사랑이 우리 안에 넘치도록 있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무거운 짐이 되겠습니까? 어렵겠습니까? 괴롭겠습니까? 오히려 기쁘게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여러분, 한 사람을 예수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온갖 비위를 다 맞춰 줘야 하고, 참고 또 참고, 인내하며 그 영혼을 사랑해야만 가능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일을 기쁘게 합니다. 어렵지 않게 합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사랑이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부어주기에 힘을 내고 용기를 내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을 가리켜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시면 여러분의 삶은 자연스럽게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성탄 전날인 오늘, 가슴을 활짝 열고 예수님의 사랑을 풍성히 받아 그 넘치는 사랑으로 성탄절을 맞이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이어지는 5-6절 함께 읽습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잘 모릅니다. 말로는 다 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무감각하고, 이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 서신의 수신자는 누구입니까?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에베소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배울만큼 배웠고, 알 만큼 아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권능도 체험할만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선교여행 때는 무려 2년 3개월동안 체류하며 친히 목회했던 교회이기도 합니다(행 19:8-10). 그런데도 이것을 말씀하는 것은 그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아는 성도로서의 삶이 희미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고(1:4),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1:4), 장차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을 존귀한 자(1:3)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고 날마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라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삶을 살 것을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안다고 장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경을 배우고 배운대로 사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존재 이유와 사명을 잊고 세상에 젖어 살면, 사탄이 우리의 마음 밭에 ‘가라지’를 뿌립니다. 가라지는 알곡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잡초인데,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복음을 왜곡하기 위해 만든 ‘거짓 복음’을 빗대어 ‘가라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라지가 한번 뿌려지면 제거하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특히, 가라지는 뿌리를 길게 늘여 뜨려 알곡까지 휘감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적당하게 왜곡하고 변형시킵니다. 그래서 가라지가 우리 마음에 심겨지면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무엇이 사탄의 미혹인지 분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를 구원에서 실족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가슴 깊이 새기고, 우리의 구원, 우리의 삶, 우리의 소망을 날마다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게 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성도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은 어떠한 삶인지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날마다 찬송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과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간절히 사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온 마음을 다해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세상의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령한 복을 받게 됨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저희를 창세 전에 이미 선택하신 이유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함이고, 이러한 거룩의 원동력은 예수님의 사랑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니다. 성탄 전날인 오늘, 이 놀라운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에 가득 담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껏 찬송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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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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