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2.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됩시다 (요삼 1:5-8)

우인택 목사
2023-12-03
조회수 1871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한스 베버 목사가 저술한 ‘성서, 나를 읽어주는 책’에 나오는 예화입니다(The Book that reads me 예영커뮤니케이션).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한 시골 여인이 항상 성경을 옆에 끼고 주위를 걸어 다니곤 했는데, 그러한 그녀를 보며 이웃들이 비웃는 투로 물었다고 합니다. “너는 왜 언제나 성경을 가지고 다니니? 네가 읽을 수 있는 다른 책들도 많은데…” 그때 그녀는 무릎을 꿇고 성경을 머리 위로 높이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맞아.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많지, 하지만 나를 읽는 책은 오직 하나뿐이야”

이 이야기는 우리가 성경을 읽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를 매우 감동적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프리카 탄자니아 시골에 사는 여인의 입에서 이러한 고백이 나왔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그런데 제가 외교부 자료를 찾아보니까, 탄자니아는 인구 6,100만명, 기독교 인구 30%로, 인구도 기독교인도 우리나라 보다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이 그냥 나오는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 여인의 고백처럼 성경에서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무슨 처세술이나 삶의 교훈을 얻기 위해 읽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읽는 사람에게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땅의 삶을 마치고 난 후 나는 어디로 가는지?’ 우리의 근본을 알게 해 줍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집중하여 성경을 읽으면 성경이 나를 읽기 시작합니다. 나의 문제를 읽고, 나의 필요를 읽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읽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바르게 읽은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어 그의 삶이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진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은 이러한 우리 성도들의 삶을 ‘거듭난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동의가 되십니까? 성경은 나를 읽는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 자신을 바로 세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나의 현주소를 발견하고 ‘나를 바로 세우고’ ‘나 답게 살기를 결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1. 먼저 5절 함께 읽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여기에서 ‘사랑하는 자’는 1절의 ‘가이오’입니다. 그리고 가이오가 도운 ‘나그네 된 자’는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순회 전도자’를 뜻합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될 당시는 복음이 많이 전해지지 않았던 때였기에, 주의 종인 목회자들의 대부분은 순회 전도자가 되어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가이오는 그러한 순회 전도자들이 찾아오면 그들을 최선을 다해 도왔는데, 그 일이 ‘신실한 일’이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신실한’이라는 말은 헬라어 ‘피스톤 πιστον’을 번역한 것으로 ‘믿을 만한’, ‘신뢰할 수 있는’, ‘충성스러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순회 전도자들을 도운 일은 신앙에 기초한 형제 사랑의 실천으로 그에게 참 믿음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이러한 가이오의 선행을 알게 된 것은 6절에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그들’은 5절에 언급된 ‘나그네들’, 곧 순회 전도자들입니다.

순회 전도자들이 정해진 선교일정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와 담임 목회자였던 사도요한에게 선교보고를 하면서 가이오가 자신들을 어떠한 사랑으로 도왔는지 낱낱이 보고했습니다. 가이오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소리없이 선행을 베풀었지만, 그럼에도 순회 전도자들이 가이오의 선행을 온 교회에 보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가이오의 선행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순회 전도자들은 가이오의 선행만을 보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9절에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의 악행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보고 했습니다. 그래서 순회 전도자의 보고에 의해 누가 진정한 성도인지 온 교회가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말씀을 대하면서, 한 가지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이오와 디오드레베의 행실이 온 교회에 낱낱이 알려졌듯이, “우리의 모든 행실 역시 하나님께 낱낱이 알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단순한 추측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시편 139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행위를 다 아신다”고 말씀하고, 마태복음 10:30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다”, 누가복음 12장에 “우리가 아무리 감추고 숨겨도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다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로마서 14장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를 범하면 죄 자체를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죄로 인해 자신이 당할 수치를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합니다. 또, 그와 반대로 선을 행하면 다른 사람들이 몰라줄까 하여 전전긍긍합니다. 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것을 숨기고 선한 척하는가 하면, 작은 선을 행하고서도 그것을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모습입니다. 아무리 감춰도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부디 여러분은 혹, 죄를 범하거나 선을 행하였을 경우, 세상 사람들처럼 어리석게 행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를 범했을 경우, 속히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고, 상대방에게는 용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반면, 선을 행한 경우에는 선을 행할 만큼 삶의 넉넉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겸손하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시면, 오늘 본문에서도 보듯이 반드시 여러분의 선행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이를 증언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가이오의 선행을 가슴 깊이 새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이어지는 6절에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합당하게’라는 말은 ‘하나님께 하듯’이라는 뜻이고 ‘전송하다’라는 말은 ‘여행에 필요한 경비를 채워서 보내다’라는 뜻입니다.

순회 전도자가 찾아오면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하며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롬 15장, 고전 16장).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인 그들을 돕는 것은 곧 그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돕는 것이 되니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도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7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여러분, 주의 종들이 이방 땅에 가는 이유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전도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에는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 왔을 때, 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우고, 고아원을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교회를 세운 것처럼 많은 재원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아프리카와 같은 곳에 선교를 나가면 이런 일을 가장 먼저 합니다. 그래서 교회들은 주의 종들이 이러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재정적인 후원을 합니다. 이에 오늘 본문은 이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일이야말로 신실한 일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 가운데에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주의 종들을 후원함에 있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책임지므로 성도들이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9절의 ‘디오드레베’처럼 하나님의 일꾼은 풍족한 생활을 하면 영적으로 게을러지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풍족하게 후원하면 안 된다고 성도들 앞에서 공론화시켜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오늘날 대부분의 목회자나 선교사 같은 주의 종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세상의 유익을 포기하고 온 일생을 복음을 전하는 일과 교회를 지키는 일에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고린도전서 9장에서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종들은 사역에 필요한 것들을 교회에 요청할 권리가 있고, 교회는 마땅히 후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나 선교사 같은 주의 종들이 복음을 전한다는 구실로 교회에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러한 요구를 한다면 그는 예수님께서 미워한 삯꾼 목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성도들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돕고 후원하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됩니다. 주의 종에게 인색하게 하는 것은 곧 그를 세운 하나님께 인색한 것이라고 성경에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땀 흘려 수고한 물질을 기꺼이 헌금하는 성도’들에 대하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성도들은 ‘복음과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를 지키기 위해 일생을 헌신하는 주의 종’들을 진정으로 존경할 때 교회가 든든히 서갈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주의 종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듯이, 주의 종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듯이 성도를 대하면 그보다 더 아름답고 귀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주의 종으로서, 성도로서 자신의 역할과 사명에 대하여 깊이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8절 함께 읽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주의 종들을 돕고 후원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된다”는 말씀으로, 누구든지 마음과 의지만 있다면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일익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모든 성도들이 주의 종이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베드로와 바울 같이 살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은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누군가는 교회를 지키는 일과 선교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를 지키는 일과 선교는 우리의 구원의 목적이자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이기에, 성도라면 누구든지 교회를 지키는 일과 선교하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직접 목회를 하지 못하고 선교지에 나가지 못하는 성도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의 가이오와 같이 주의 종들을 돕는 것입니다. 비록 몸으로는 직접 헌신할 수 없을지라도 물질과 기도로 주의 종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역을 감당한다면, 그도 역시 주의 종의 대열에 서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주의 종이 될 수는 없지만, 그들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주의 종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성도들 가운데에는 이를 모르고 오직 목회자가 되어야만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나는 세상 직업에 매여 하나님의 일을 못 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치 사탄과 영적인 전쟁을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엡 6:12). 그래서 교회와 선교지를 사탄과 직접 부딪히는 영적 전쟁터로 볼 때, 전방이 있고 후방이 있습니다. 목회자와 선교사 같은 주의 종들은 전방의 군인이요, 뒤에서 물질과 기도로 돕는 성도들은 후방에서 보급과 병참을 담당하는 군사들과 같습니다.

성도들이 주의 종들을 돕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하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방에서의 전투도 중요하지만, 후방에서의 병참과 보급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영적인 가장 최전방에서 복음을 들고 사탄과 전쟁을 하는 주의 종들을 돕지 않고 버려두는 것은 적군으로 가득 찬 전쟁터에 식량도 무기도 없는 아군을 홀로 버려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아니라 전방에 서지 못했다고 해서 복음을 전하는 영적인 전쟁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방에서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기도를 도왔기에 여호수아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것처럼, 여러분도 주의 종들을 위해 힘써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출 17:8-13). 또한, 여러 여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재물로 도와 복음사역을 성취한 것처럼, 여러분도 정성을 다해 주의 종들을 도움으로써 이 땅에 교회를 세우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눅 8:1-3).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의 무게를 달아보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헌신의 무게도 달아보시지 않습니다. 오직 여러분의 믿음과 헌신이 진정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보십니다. 오늘, 진정한 믿음과 헌신을 고백하고 다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를 범했을 경우 속히 하나님과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고, 선을 행한 경우에는 가이오처럼 선을 행할 만큼 삶의 넉넉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겸손하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지키는 일에 있어서 자신의 역할과 사명에 대하여 깊이 돌아보되, 하나님의 일에 있어 전후방이 따로 없음을 알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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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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