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1.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요삼 1:1-4)

우인택 목사
2023-11-26
조회수 2462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성경은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요한계시록, 이렇게 모두 다섯 권입니다.

이 중에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는 거의 동일한 시대적 배경 위에 두 가지 주제를 중점으로 하여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바른 신앙 지식’과 ‘이단에 대한 경계’라는 ‘신앙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제자’임과 동시에 ‘한 사람의 성도’로서의 ‘사랑의 실천’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권의 서신서를 깊이 묵상하게 되면 신앙생활과 삶에서의 실천을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바른 교훈을 받게 됩니다. 오늘부터 요한삼서를 상고하는데,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에 이어 다시 한번 여러분의 ‘신앙’과 ‘삶’의 균형을 점검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늘 강조하지만, 성경을 읽을 때 가정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록된 배경’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누구에 의해. 어떤 수신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록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작업입니다. 그리고 요한 일서와 요한이서, 요한삼서는 거의 동일한 시대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세한 시대적 배경을 알고 싶으신 분은 교회 홈페이지에 기록된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의 설교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삼서가 기록될 1세기 당시, 교회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영지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 몰래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하여 타락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서 중에서 가장 나중에 기록된 요한복음과 바울의 목회 서신들, 그리고 요한의 서신들과 베드로후서. 유다서 등은 이런 영지주의의 도전을 직·간접적인 배경으로 하여 기록되었습니다.

 

1. 먼저, 1절 함께 읽습니다.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사도 요한은 요한이서에서와 똑같이 자신을 ‘장로’라고 신분을 밝힙니다. 이처럼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장로’라는 교회 직함으로 자신을 소개한 것은, 이 서신은 개인의 자격이 아니라 교회의 원로로서 공식적으로 보내는 서신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요한삼서에 기록된 말씀은 사도 요한 개인의 뜻이 아니라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당시, 모든 사도들이 순교하고 마지막 남은 사도였던 요한에게 있어 가장 기쁜 일은 3절에 기록된 것처럼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쁜 소식을 전해 준 사람이 ‘가이오’였습니다. 그리고 4절에 ‘내 자녀’라고 기록된 것처럼 가이오는 ‘사도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러한 자신의 제자인 가이오가, 많은 이단들이 교회에 들어와 진실한 성도들을 위협하고 믿음이 왜곡되고 교회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던 그때, “진리 안에서 행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며 교회를 지키기에 힘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그를 가르친 목회자로서 사도 요한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가이오에게 이 격려의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제가 교회의 목사로서 여러분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은 여러분도 가이오처럼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며, ‘여러분을 가르치는 교회 지도자’와 ‘함께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에게 사랑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는 것입니다. ‘가이오’와 같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시는 것입니다. 어떤 이단이 들어와서 교회를 흔들어도 순수한 믿음으로 교회를 지키는 교회의 파수꾼들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심으로, 가이오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든지 여러분의 이름을 듣는 순간 사랑이 샘솟고, 행복해지고, 마음이 따뜻하게 해 주는 멋진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욕심샘을 자극하는 이단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오직 십자가 복음을 붙들고 신앙과 삶의 균형을 이루며 사는 제2, 제3의 가이오가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2. 이어지는 2절 함께 읽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우리가 가이오를 본받기를 원하지만, 그런데 이 축복의 주인공인 ‘가이오’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그의 출생이나 가문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성경에는 가이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이 등장합니다.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행 19:29), 더베 사람 가이오(행 20:4), 고린도 사람 가이오(롬 16:23)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이오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사도 요한이 가이오라는 사람에게 편지하면서 1-2절에서만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3번이나 강조하면서 더이상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뜨겁고 간절하게 그가 형통한 삶을 살기를 간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런데 안타깝게도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맥락을 벗어나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혼의 잘됨’과 ‘범사에 잘됨’과 ‘강건’을 ‘영혼의 축복’, ‘범사의 축복’, ‘육신의 축복’으로 해석하여 이른바 ‘삼박자 축복’, 또는 ‘삼중 축복’의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삼중 축복 교리를 앞세워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삼중 축복을 성도라면 누구나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 말씀을 거꾸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범사에 잘 안되고 육신까지 약한 자는 무언가 믿음에도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성도를 질책합니다. 사업이나 건강 등의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믿음의 문제요, 그러하기에 자기의 믿음을 반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른바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식의 적극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께 삼중 축복을 구하면 영혼의 구원은 물론, 땅에서의 성공과 건강까지 아우르는 그야말로 완전한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여러분, 솔깃하지 않습니까?

물론, 앞뒤 문맥을 무시하고 2절 말씀 한 절만을 보면 영과 육에 대한 모든 축복이 담겨있으니, 이 말씀은 온전한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성도가 이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이상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본 서신을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보면,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하며 그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나타내며 무한한 축복을 빌고 있는 이유는, 5절 이하에 기록된 것처럼 그가 순회 전도자와 같은 사람들을 후히 대접하는 등, 항상 진리와 선을 행하는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그는 탐욕스럽게 자기의 것을 움켜쥐는 자가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낯선 나그네에게도 자기의 것을 나누어 주고 베풀며 후히 대접할 줄 아는 겸손하고도 사랑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전제로 두고 본다면 이 말씀은 결코, 삼중 축복의 교리, 곧 믿음으로 무조건 밀어붙이면 땅의 축복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너무나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진리와 사랑을 행하는 자에 대한 사도 요한의 자연스러운 축복하는 마음의 표시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한 행실도 없이 이기적인 자세로 무조건 복을 달라고 떼를 쓰는 자가 아니라, 가이오처럼 겸손한 믿음과 선한 마음으로 묵묵히 진리와 사랑을 행하는 자를 기쁨으로 축복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온전한 영육간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땅에 속한 욕심을 내어버리고 가이오와 같이 예수님은 본받아 겸손히 자신을 비워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해 온전히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영혼의 축복은 물론 땅의 것들까지 풍성히 받는 복을 누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쉽지 않죠? 복음으로 사는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성도의 삶은 넓고 편한 대로가 아니라, 좁고 협착한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힘든 삶도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면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기에 누구든지 얼마든지, 평탄한 대로와 같이 자기 십자가의 길을 행복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러한 복된 가르침에 아멘으로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3-4절 함께 읽습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이 말씀은 요한이서 4절에서도 반복되고 있는데, 우리는 사도 요한의 이 고백이 결코 과장이 없는 진실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부모들에게 있어서도 자녀들이 바른길로 가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일진대, 하물며 복음으로 성도들을 낳아 가르치는 교회 지도자에게 있어 성도들이 바른 믿음의 길을 가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교회 지도자의 이러한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가장 기쁜 것은 무엇보다 성도들이 진리를 배워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성도들은 물론 목회자들 가운데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의 짧은 생각으로 엉뚱한 행동을 하여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진리를 배우고 실천하는 일보다 헌금을 많이 하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성도와 목회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는 큰 교회를 지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고, 또 그것이 자기의 본분이라 믿어 이를 성도들에게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을 받은 성도들 중에는 돈을 버는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 헌금을 많이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헌금을 많이 하면 무조건 좋아하는 저급한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우리를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까지 기꺼이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에게 베풀기를 원하는 분이십니다(롬 8:32).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에게 헌금을 많이 하고 큰 건물만 지어드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거룩하신 하나님을 세상의 잡신처럼 취급하는 망령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솔로몬의 고백처럼, 우리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건물에 거하실 만큼 작은 분이 아니며(삼하 7:6-7) 학개 2:8 말씀처럼, 인간으로부터 무엇을 받아야 할 만큼 궁핍한 분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0장에, 예수님께 많은 것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했던 마르다보다 오히려 예수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던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배우기에 힘쓰고 부지런히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삶 속에 성령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부지런히 말씀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들을 하나님의 품에 안겨 드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헌금을 하려거든 많이 하려고 하기 전에, 과부의 두 랩돈처럼 헌금 위에 여러분의 마음과 정성을 더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원하신다면 큰 예배당을 건축하기보다는, 성령의 전인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먼저 정결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많은 헌금과 종교적 행사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거룩한 마음과 의로운 행실입니다. 오늘 주신 이 말씀으로 새롭게 믿음의 삶을 다짐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도 가이오와 같이 이단의 미혹을 물리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며, ‘가르치는 교회 지도자’와 ‘함께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에게 사랑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누구든지 저희의 이름을 듣는 순간 사랑이 샘솟고, 행복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믿음으로 선한 삶을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많은 헌금과 화려한 종교적인 행사가 아니라, 예수님을 본받는 거룩한 마음과 의로운 행실로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교훈의 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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