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19. 새 사람을 입은 성도가 사는 법 (엡 4:25-32)

우인택 목사
2024-05-05
조회수 1911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오늘 어린이주일이자 어버이주일인데, 이날을 맞이할 때마다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하여 되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부모된 성도들은 우리 자녀들이 주 안에서 기쁨으로 살 수 있도록 늘 삶의 본을 보이시고, 자녀된 성도들은 부모를 공경함으로 주안에서 하나님의 크신 언약의 축복 안에 거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일에 상고한 22-24에서 말씀한 ‘새 사람을 입은 성도’, 즉 ‘거듭난 성도’, ‘교회의 지체’로서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25절 함께 읽습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거짓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24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은 새 사람인데, 어떻게 지음받은 새 사람입니까?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받는 새 사람’입니다. 그러하기에 새 사람, 곧 진정으로 거듭난 성도는 의와 진리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거짓을 말할 수 없습니다. 거짓을 흉내라도 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짓은 사탄으로부터 시작된 사탄의 전유물이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요한복음 8:44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사탄의 꾐에 넘어가 거짓과 타락에 빠진 종교인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거짓말은 마귀의 특징이요, 마귀의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거짓을 말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만일, 예수님을 믿으면서 아직도 마음속에 누군가를 속일 마음이 있다면, 여전히 세상과 하나님 사이를 줄다리기하고 있다면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신앙은 미숙한 신앙이라기보다 잘못된 신앙입니다. 그러한 잘못된 신앙이 자라나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는 사탄의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스스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까? 거짓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부터 사탄이 주는 거짓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신앙을 벗어버리고 온전히 새 사람을 입은, 거듭난 믿음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6-27절은 새 사람을 입은 성도가 ‘분을 내는 문제’에 관한 언급입니다. 여기에서의 ‘분’은 ‘화’, 또는 ‘분노’를 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은 성도에게 있어서 과연 분내는 일이 합당한 것일까요? 물론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바울은 ‘분을 내어도’라는 표현을 통해 분명히 성도도 분을 낼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새 사람을 입은 성도도 화를 낼 수 있고 분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입니까? 죄악을 볼 때입니다. 이러한 분노를 ‘공의로운 분노’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분노도 공의로운 분노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내는 분노가 아니라, 불의를 볼 때 갖게 되는 분노입니다. 이런 분노는 당연히 내야 합니다. 그러나 다만 무엇입니까? 전제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무엇을 말합니까? 그러한 분노라도 ‘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분노가 절실하다고 할지라도 그것 자체가 죄가 된다면, 그것은 당사자를 위해서나 교회를 위해서나 ‘차라리 하지 않느니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분노에는 이러한 함정이 있습니다. 공의로운 분노가 분쟁을 유발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분노가 더 큰 문제를 불러오는 이유는 죄가 되도록 분노하기 때문입니다. 공의로 분노하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거기에 정죄하는 마음, 비난하는 마음, 미움, 다툼, 시기 등이 틈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의로운 분노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요, 개인과 교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지만, 그러한 분노도 자기 절제력과 형제를 향한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의로운 분노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죄가 될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29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불의한 일을 보고 의로운 분노가 일어날 때, 분노하고 정죄하기보다는 선한 말을 하는 것이 더욱 지혜로운 자세입니다. 그렇게 할 때 공동체에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는 과연 분노를 잘 다스리고 있는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30절은 ‘성령과 새 사람을 입은 성도’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으로, 예수님의 약속대로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이 땅에 교회가 시작되게 하신 분이십니다. 사도들에게 권능을 불어 넣어 주셔서 세계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도우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이러하신 성령에 대하여, 성경은 오순절 성령강림 800여 년 전에 선지자 요엘을 통해 성령을 ‘만민에게’ 부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욜 2:29).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성령은 사도들뿐만 아니라, 함께 기도한 ‘각 사람 위에’ 임하시고 권능으로 역사하셨습니다(행 2:3). 이를 통해 성도 각 개인의 삶을 성령께서 친히 도우시고, 인도하심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로마서 8장에서 ‘누구든지 성령이 없으면 예수님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그의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고, 다스리시고, 인도하심이 분명하게 나타나야 그가 예수님의 사람, 곧 성도입니다. 성령으로 인해 거듭난 성도는 더 이상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닙니다. 성령께 자기 삶의 주인 자리를 내어드린 자입니다.

그런데도 너무나도 많은 성도들이 거듭났다고 말은 하는데, 여전히 자기 삶의 크고 작은 일을 자기생각대로 결정합니다. 자기 욕구를 따르고, 자기 이익과 편의를 따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에게 성령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삶의 주관자가 되시도록 성령께 모든 것을 맡기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31-32절에서 두 가지를 당부합니다.

먼저, 31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여기에서 열거되고 있는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하는 것들은 주로 어떤 때에 생깁니까? 모두 상처를 입을 때 생기는 것들입니다. 아무리 바르고 선하게 살려고 마음을 먹을지라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큰 상처를 받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분노를 품게 됩니다. 바르고 선하게 살려는 노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받는 상처가 크고, 상처를 통해 마음먹게 되는 분노의 크기도 커지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새 사람을 입은 성도는 이러한 경우에도 분노와 악의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32절 함께 읽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자기에게 상처를 입히는 원수 같은 사람조차도 미워하거나 비방하지 말고, 오히려 용서하고, 친절하게 대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성자입니까? 어떻게 우리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그 사람에 대해 악의를 품지 않는 대신, 적극적으로 용서하고, 인자하게 대하며, 불쌍히 여길 수 있습니까? 우리의 본성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제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용서’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비결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우리에게 상처 입힌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용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제한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아무리 큰 죄라도 다 용서하셨습니다. 더욱이 성경은 로마서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쉽게 용서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죄에 대한 모든 형벌과 저주를 독생자 예수께 대신 내리심으로 용서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또한, 작은 예수로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기에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는 것도 이러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주기도’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한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기도를 진심으로 하고 살아간다면, 아무리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원수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우리가 그를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악한 마음이 생겨날 수 있으며, 노하고, 분내고, 떠들고, 비방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어떤 상처를 입혔습니까? 어떤 비인격적인 말을 함으로써 여러분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까? 오늘, 그 일을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새 사람을 입은 성도가 사는 법’입니다. 이를 통해, 진정한 성도의 삶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새 사람을 입은 성도의 삶에 대하여 분명하고 똑똑하게 말씀해 주셨사오니 감사하옵나이다. 주신 말씀에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은 자로서 거짓을 버리고, 내 생각 내 판단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이며, 분을 내기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용서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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