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14.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 (행 3:11-26)

우인택 목사
2024-10-20
조회수 1264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지난 본문인 3:1-2에 보시면, 베드로와 요한은 시간을 정해 놓고 성전에 갔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 역시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성전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시간을 정해 놓고 성전에 간 것은 같았지만, 목적은 전혀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까?’ 기도하러 갔었지만,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은 ‘무엇을 얻을까?’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자들과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은 똑같이 정해진 시간에 성전으로 갔지만, 제자들은 기도하러 갔고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은 구걸하러 갔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와 예배를 위해 교회를 찾지만, 어떤 사람은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교회를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받을 것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오늘 본문의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처럼 ‘영적인 불구자’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베드로와 요한이 가진 성령의 능력을 구하지 않고,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이 원했던 은과 금으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지난주 설교에 말씀드렸던 예화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베드로와 요한에게 없었던 은과 금은 있지만 그분들이 가졌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잃어버리게 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음 주일인 27일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종교개혁을 통해 시작되었는데, 종교개혁이란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잘못되어 있는 것을 원래 있던 그대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은 은과 금을 원했지만 성령 충만한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을 주지 않고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완전한 회복’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우리가 개혁해야 하는 것은 이 복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뿐이라는 이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베드로의 설교 내용은 우리가 이미 여러 번 상고했던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에 나타난 성도로서의 삶의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11절 함께 읽습니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솔로몬 행각은 지붕과 기둥만 있는 그늘막처럼 만들어진 곳으로, 그곳에서 랍비들은 강론도 하고 각종 집회를 했습니다. 예수님도 이곳에서 설교하셨고, 또 초대교회 성도들도 이곳에서 자주 설교했습니다(요 10:23, 행 5:12). 그러므로 군중들이 솔로몬 행각에 모인 것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걸인을 치유한 사도들의 권능을 보고, 사도들로부터 그 권능의 비밀에 대해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모여든 사람들에게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으면 이 병자처럼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병자가 나았지만, 베드로는 병 나음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지만, 기적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복신앙과 바른 신앙의 차이점입니다.

기복신앙은 예수님이 주신 선물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기복신앙은 그것이 병 고침이든, 축복이든, 은사든, 예수님이 주신 은혜와 선물이 너무 좋아 그것만을 말하고 그것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가 신유의 능력을 행한다더라, 어떤 권사가 기도만 해 주면 당장 낫는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몰려드는 사람들이 기복신앙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바른 신앙은 예수님이 주신 선물도 좋지만, 선물을 주신 예수님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기에 힘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선물이 아니라 선물을 주신 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선물에 정신 팔리지 말고 선물을 주신 그분께 집중해야 합니다. 병 고치는 것으로 유명한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 예수님의 사랑으로 유명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우리 교회를 ‘예수님의 이름이 있는 교회’로 세워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2. 이어지는 12절 함께 읽습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는 자기의 경건한 삶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고 고백했습니다. 16절에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님의 이름’이 기적을 일으켰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자세는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과 구별되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자기에게 향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기도할 때 자신의 경건을 알리고자 사람들이 많은 광장에서 기도했고, 구제할 때도, 선한 일을 할 때도, 금식할 때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하며 했습니다(마 6장). 의복도 일반 사람보다 더 경건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특별하게 꾸몄습니다(마 22:5).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처하면서 사람들의 눈을 하나님이 아닌 자기들에게로 향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자신들을 신격화, 우상화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큰 기적을 일으키고, 크고 귀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기에게 향하게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신성 모독자일 뿐입니다.

당시 사도들이 기적과 표적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을 자신들이 한 것으로 자랑했다면 교회는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12절 말씀처럼 큰 기적을 행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도록 힘썼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무리 큰 기적을 일으켰을지라도 모든 영광을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신앙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도록 힘써야 합니다. 공로주의에 빠지면 결국 사탄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고, 이단들이 가는 길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이러한 기적의 사건들에 대한 성경을 읽을 때, 성도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생각의 오류가 있는데 크게 3가지 정도입니다.

1) 첫 번째 생각의 오류는 ‘왜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목회자들은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는 자가 되기 위해 경건의 훈련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면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고백합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이건 내 잘못이야. 내가 경건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래. 나 때문이야.” 이런 식으로 스스로 자책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12절에 베드로는, 이 기적이 자기 개인의 권능이나 경건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이 개인의 권능이나 경건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개인의 권능이나 경건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만일, 기적이 일어난 것이 ‘나 때문’이 아니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나 때문’은 아닙니다.

만일, 내 능력이 부족해서 기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기적이 일어났을 때도 내 능력으로 나타났다고 말해야 합니다. 내 능력으로 기적이 나타난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라고 믿는다면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실적 위주, 공로주의적인 생각으로부터 자유 함을 얻어야 합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이 걷게 된 이 기적은 베드로와 요한 개인의 경건과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결과였습니다. 순종하였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2) 두 번째 생각의 오류는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베드로와 요한처럼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미리 간절히 기도하여 치유될 줄을 확신한 후에 그 말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11절에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애초에 그런 기적이 일어난 사실을 통해 복음을 전할 의도가 없었고, 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성도의 삶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성전 미문의 걸인을 치유함으로써 복음을 전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를 일으켰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 사람을 치유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아니 최소한, 치유받은 걸인에게라도 예수를 믿으라고 간곡히 권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언급은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되는 정황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일로 인해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게 된 베드로와 요한도 얼떨떨한 모습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기적은 때에 따라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나타내시는 은혜의 사건이지 결코 마음의 작정과 경건과 훈련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일상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 기적을 일으킬 순간이 다가오게 되고, 그로 인해 복음이 전해지는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생각의 오류는 ‘기적을 직접 체험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기적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단 한 사람에게만 주어졌지만, 그러나 구원은 그 기적을 목격한 모든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대표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은 자신이 직접 기적을 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내가 기적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한 사람이 기적을 체험했지만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은혜가 주어졌던 것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일어난 기적을 보고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 받은 사람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기적이 없다 실망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내 병을 치료해 주시지 않는다고 푸념하지 마시고, 왜 내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을까 낙심하지 마시고, 꾸준히 경건을 연습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여러분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나 중심의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소유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13절 이하의 말씀은 베드로가 솔로몬 행각에 모인 자들에게 그들의 죄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지를 깨우쳐 주는 내용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죄를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그들이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준 죄, 빌라도가 재판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예수님의 무죄를 판정하여 석방하려는 것을 저지한 죄, 의로우신 예수님 대신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도록 요구한 죄, 그리고 결국에는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를 책망했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죽인 죄를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베드로의 지적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4:4에 남자만 오천 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는, 부흥은 기적과 축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있음을 분명하게 교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전도할 때 이 말씀을 기억하고, 베드로처럼 불신의 죄가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더 큰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 같아서 차마 그렇게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 은혜로운 말과 듣기 좋은 말만 전하게 됩니다. 죄는 지적하지 않고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한다는 말만 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전도는 마치 의사가 암에 걸린 환자에게 병명과 그 병의 심각성을 알려주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병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이 의사에게 치료해 주기를 매달리겠습니까? 그래서 일부 성도들은 암과 에이즈와 각종 불치병은 무서워하지만,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모르고 죄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세상의 모든 불행이 왔음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만 말하지 말고 좀 더디더라도 불신앙의 죄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심각하고,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무서운 것인지를 말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의 심각성을 모르고 받을 축복만 듣는 자들은 결국에는 기복신앙에 빠지게 되고, 미신 같은 믿음으로 교회를 훼방하게 될 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주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죄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를 통해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회개하며 새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서로 중보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많은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기에 힘쓰시되, 그분들이 올바른 회개와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참되고 복된 신앙으로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성령의 권능으로 기적을 베푸는 것은 저희 개인의 권능과 경건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남을 분명하게 깨닫습니다. 또한, 우리가 일상에서 복음을 누리며 살면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기적이 일어나고 복음도 전해지게 됨을 깨닫습니다. 이를 가슴 깊이 새기고 힘써 복음을 전하되 삶으로 복음의 증인이 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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