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질문은 “나는 어떤 성도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교회를 이루어 가야 하는가?” 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에서 찾는다면 ‘성령 충만한 성도’에 의해 ‘사랑으로 하나 되는 교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하나님 나라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던 제자들은 그로부터 10일 후, ‘오순절’에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이땅에 강림하신 오순절은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담고 있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던 날이 오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은 유월절, 초막절과 함께 이스라엘 3대 명절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입성한 후 첫 수확을 거둬들인 것을 기념한 절기이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이와 같이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오순절에 강림하신 것은, 장차 성도들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될 것을 계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성령께서 ‘바람’과 ‘불’과 ‘방언의 은사’로 제자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 강림’은 교회의 시대, 성령의 시대, 선교의 시대 개막을 알리는 역사적인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 또는 복음행전이라고 별칭하기도 합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홀연히’ 하늘로부터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홀연히 αφνω’는 ‘부지중에,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제자들이 예측한 시간에 임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잘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부지중에,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부지중에,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임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응답하실 때까지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이 모여 있던 집에 가득 찼습니다. 여기에서의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는, 6절에 예루살렘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몰려들 정도였다고 말씀하는 것으로 보아,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이처럼 바람 같은 소리로 임하신 것에서 우리는 성령의 속성 세 가지를 알게 됩니다.
1) 먼저, 이처럼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 바람 같은 소리가 난 것은, 바람은 형체가 보이지는 않지만 활동은 분명히 나타난다는 점에 있어서 성령의 속성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한 인격으로 순수한 영이시기에 바람을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바람 같은 소리는 들을 수 있었으나 성령의 형상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단들은 성령을 보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사진을 찍었다고 자랑하기까지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성령이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러한 미혹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존재이신 성령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성령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입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통해 바람이 부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성령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을 통해 성령의 임하심을 알 수 있게 됩니다.
2) 그리고 ‘성령 ἅγιος πνεῦμα’ 곧 ‘거룩한 영’이라는 단어에서의 ‘영 πνεῦμα’은 ‘바람, 호흡, 숨, 기운, 생기’ 등 많은 뜻이 있습니다. 구약성경 에스겔 37장에 에스겔 선지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떤 골짜기에 가니 그곳에 마른 뼈들이 가득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 마른 뼈를 향해서 이렇게 대언하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여기에서 ‘생기 רוּחַ’라는 단어는 ‘숨결 혹은 바람’이라는 뜻으로 성령에서의 영이라는 단어와 그 의미가 같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대언하자 사방에서 생기, 곧 성령의 권능이 마른 뼈에 불어와서 그 뼈들이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또 신약성경 요한복음 3장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원리를 가르치실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소리는 들을 수 있으나 바람이 어디서부터 불어오며 어디로 불어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자가 꼭 이러하니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죽은 사람을 살리고 새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새로운 이스라엘의 시대, 교회 시대를 여시면서 죽은 영혼을 살리는 성령을 바람이라는 상징을 통해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3) 그리고 성령께서 바람처럼 임하신 것은, 바람이 자유자재로 부드럽게 불듯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영혼을 자유하게 하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고후 3:17). 그래서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죄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바람은 그와 반대로 폭풍과 태풍 같은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파괴할 만큼 큰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도 모든 것을 소멸케 하시는 폭발적인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영이심과 동시에,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고 계신 권능의 영이십니다.
여러분, 성령은 바람 같아서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를 살리고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의 심령을 부드럽게 하시고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하십니다. 폭발적인 권능으로 죄를 이기게 하십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이와 같은 성령 충만을 받으심으로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세상의 악을 선으로 이기는 믿음의 용사가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3절 함께 읽습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성령은 자신의 존재를 바람처럼 청각적으로 나타내시기도 했지만, 또한 ‘불’로서 시각적으로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여기에서의 불은 모든 불의한 것을 태워 소멸하게 하고 성결하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합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 3장에, 모세가 호렙산에서 만난 하나님의 임재는 ‘떨기나무 불꽃 사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 누가복음 3장에, 세례 요한은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죄와 불의는 소멸하게 되고 그의 삶이 거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불의 상징으로서의 성령은, 성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을 갖게 하고 생명을 살리는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힘과 권능을 제공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헌신하고 충성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보혜사의 역할을 합니다. 그와 더불어 성도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게 합니다. 이처럼 불의 상징으로서의 성령은 죄를 태워 성결하게 하고, 복음전도에의 열정과 받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권능을 주어 성도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그리고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이날에 임하시는 성령의 권능은 언어와 관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령이 임하시자,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로 통일이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라는 표현은 당시 기도하던 모든 사람에게 ‘각각’ 성령 충만의 은혜가 부어졌음을 의미합니다.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를 하지만, 성령의 권능은 각각의 심령에 따라 부어졌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불과 같은 권능의 성령이 임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4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예수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충만함’을 1:5에서 ‘성령 세례’라고 표현하셨습니다. 1:5 함께 읽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성령 세례가 오순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성령 세례를 반복적으로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의 성령 세례는 단 일회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이 두 번 세 번 반복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세례를 한 번만 받는 것처럼, 성령이 이 땅에 임하신 성령 세례 또한 반복되지 않는 일회적인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최초의 성령 충만을 성령 세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의 성령 충만은 성령 세례로서의 성령 충만이 아니라 재충전으로서 성령 충만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내 속에 있는 모든 탐욕과 미움, 교만, 욕심, 거짓, 죄를 기도와 회개로써 다 비우게 되면 그때, 각자의 달란트에 따라 각각 다른 모양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를, 또는 방언이나 사랑, 가르침, 섬김의 은사를 부어주십니다. 그렇기에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그전에 먼저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내 생각 내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를 통해 성령 충만을 받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더 총명해지고, 침착하고 사리에 밝아지게 됩니다. 우리의 가슴은 더 뜨거워지고, 열정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의 의지는 사랑으로 더 견고해지고 탄탄하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성령 충만하다고 하면서 비이성적으로, 감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성령 충만을 오해한 까닭입니다. 그와 반대로 성령 충만하다고 하면서 이성적인 논리만 있고 감성적인 뜨거움이 없는 것도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또, 성령 충만하다고 하면서 의지가 더욱 약해지고 인내심이 없다면 그것도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성령 충만할수록 더 지혜로워지고, 성령 충만할수록 남을 더 용납하고,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어 가슴속에 뜨거움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사모함이 있고, 목표를 향한 견고한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불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결코 편안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 속에 거하며, 내 속에 아직도 죄의 찌꺼기가 있고, 탐욕과 미움과 교만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불이 들어오면 때로는 고민하고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태워 없애는 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거짓의 찌꺼기, 죄악의 찌꺼기, 탐욕의 찌꺼기를 다 불로 태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연단의 과정에 고통이 따르고 인내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성령 충만을 받게 되고, 그와 동시에 용서의 기쁨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본래의 자아로 다시 태어나는 새 생명의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때, 자신의 거짓된 의와 이기적인 꿈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비전이 나를 붙잡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것을 증거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성령 충만이고 그 결과 복음의 일꾼이 되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삶의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이와 같은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내 안에 성령께서 계시지 않거나,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내가 아직 진짜 성도가 아니거나,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지만, 어린아이가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제 맘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믿음이 어려서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기쁨이 없고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간다고 하면서도 자꾸만 자기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성으로 판단하고 믿음을 스스로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 충만할 수가 있을까요? 성령은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시기 때문에, 절대 강압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사모하지 않으면 성령께서 우리를 붙잡지 않습니다. 기다리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내 안에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주의 말씀에 맡겨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힘쓰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은혜를 내려주시고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새 삶을 꿈꾸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충만’은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빈 그릇끼리 부딪히면 시끄럽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령 충만 받기 전에는 “누가 오른편에 앉을 것이냐, 누가 왼편에 앉을 것이냐, 누가 크냐” 하고 다투었습니다. 하나 됨을 방해하는 욕심으로 항상 시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그들은 더이상 잡음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내 것을 채우기 전에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한 성도, 성령 충만한 가정, 성령 충만한 교회는 잡음이 들리지 않습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충만하면 세상의 탐심이나 여러 가지 불의한 생각이나 허영심, 교만, 다툼이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릇에 물이 가득 차게 되면 넘쳐서 흐르듯이, 제자들도 은혜가 넘치니까 밖으로 나가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해지니까 무서워 숨어 있던 제자들이 용기를 내어 은혜를 나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내 힘으로 무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되, 기도로써 자신의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찌꺼기들을 비워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속의 죄와 탐욕이 완전히 비워질 때 성령 충만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제자들이 그러했듯이 자신의 욕망을 비우고 성령 충만의 은혜를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복음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령 충만한 복음의 일꾼이 되기를 다짐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님을 영접함으로 죄와 탐욕을 비워내고 거룩하고 선한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바람과 불과 각종 은사로 임하시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 우리의 가정과 교회로부터 땅끝까지 이르러 거듭난 새 생명을 전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를 통해 사도행전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는 저희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이를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질문은 “나는 어떤 성도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교회를 이루어 가야 하는가?” 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에서 찾는다면 ‘성령 충만한 성도’에 의해 ‘사랑으로 하나 되는 교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하나님 나라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던 제자들은 그로부터 10일 후, ‘오순절’에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이땅에 강림하신 오순절은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담고 있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던 날이 오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은 유월절, 초막절과 함께 이스라엘 3대 명절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입성한 후 첫 수확을 거둬들인 것을 기념한 절기이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이와 같이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오순절에 강림하신 것은, 장차 성도들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될 것을 계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성령께서 ‘바람’과 ‘불’과 ‘방언의 은사’로 제자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 강림’은 교회의 시대, 성령의 시대, 선교의 시대 개막을 알리는 역사적인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 또는 복음행전이라고 별칭하기도 합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홀연히’ 하늘로부터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홀연히 αφνω’는 ‘부지중에,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제자들이 예측한 시간에 임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잘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부지중에,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부지중에,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임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응답하실 때까지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이 모여 있던 집에 가득 찼습니다. 여기에서의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는, 6절에 예루살렘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몰려들 정도였다고 말씀하는 것으로 보아,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이처럼 바람 같은 소리로 임하신 것에서 우리는 성령의 속성 세 가지를 알게 됩니다.
1) 먼저, 이처럼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 바람 같은 소리가 난 것은, 바람은 형체가 보이지는 않지만 활동은 분명히 나타난다는 점에 있어서 성령의 속성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한 인격으로 순수한 영이시기에 바람을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바람 같은 소리는 들을 수 있었으나 성령의 형상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단들은 성령을 보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사진을 찍었다고 자랑하기까지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성령이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러한 미혹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존재이신 성령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성령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입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통해 바람이 부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성령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을 통해 성령의 임하심을 알 수 있게 됩니다.
2) 그리고 ‘성령 ἅγιος πνεῦμα’ 곧 ‘거룩한 영’이라는 단어에서의 ‘영 πνεῦμα’은 ‘바람, 호흡, 숨, 기운, 생기’ 등 많은 뜻이 있습니다. 구약성경 에스겔 37장에 에스겔 선지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떤 골짜기에 가니 그곳에 마른 뼈들이 가득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 마른 뼈를 향해서 이렇게 대언하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여기에서 ‘생기 רוּחַ’라는 단어는 ‘숨결 혹은 바람’이라는 뜻으로 성령에서의 영이라는 단어와 그 의미가 같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대언하자 사방에서 생기, 곧 성령의 권능이 마른 뼈에 불어와서 그 뼈들이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또 신약성경 요한복음 3장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원리를 가르치실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소리는 들을 수 있으나 바람이 어디서부터 불어오며 어디로 불어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자가 꼭 이러하니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죽은 사람을 살리고 새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새로운 이스라엘의 시대, 교회 시대를 여시면서 죽은 영혼을 살리는 성령을 바람이라는 상징을 통해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3) 그리고 성령께서 바람처럼 임하신 것은, 바람이 자유자재로 부드럽게 불듯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영혼을 자유하게 하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고후 3:17). 그래서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죄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바람은 그와 반대로 폭풍과 태풍 같은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파괴할 만큼 큰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도 모든 것을 소멸케 하시는 폭발적인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영이심과 동시에,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고 계신 권능의 영이십니다.
여러분, 성령은 바람 같아서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를 살리고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의 심령을 부드럽게 하시고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하십니다. 폭발적인 권능으로 죄를 이기게 하십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이와 같은 성령 충만을 받으심으로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세상의 악을 선으로 이기는 믿음의 용사가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3절 함께 읽습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성령은 자신의 존재를 바람처럼 청각적으로 나타내시기도 했지만, 또한 ‘불’로서 시각적으로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여기에서의 불은 모든 불의한 것을 태워 소멸하게 하고 성결하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합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 3장에, 모세가 호렙산에서 만난 하나님의 임재는 ‘떨기나무 불꽃 사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 누가복음 3장에, 세례 요한은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죄와 불의는 소멸하게 되고 그의 삶이 거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불의 상징으로서의 성령은, 성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을 갖게 하고 생명을 살리는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힘과 권능을 제공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헌신하고 충성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보혜사의 역할을 합니다. 그와 더불어 성도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게 합니다. 이처럼 불의 상징으로서의 성령은 죄를 태워 성결하게 하고, 복음전도에의 열정과 받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권능을 주어 성도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그리고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이날에 임하시는 성령의 권능은 언어와 관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령이 임하시자,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로 통일이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라는 표현은 당시 기도하던 모든 사람에게 ‘각각’ 성령 충만의 은혜가 부어졌음을 의미합니다.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를 하지만, 성령의 권능은 각각의 심령에 따라 부어졌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불과 같은 권능의 성령이 임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4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예수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충만함’을 1:5에서 ‘성령 세례’라고 표현하셨습니다. 1:5 함께 읽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성령 세례가 오순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성령 세례를 반복적으로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의 성령 세례는 단 일회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이 두 번 세 번 반복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세례를 한 번만 받는 것처럼, 성령이 이 땅에 임하신 성령 세례 또한 반복되지 않는 일회적인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최초의 성령 충만을 성령 세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의 성령 충만은 성령 세례로서의 성령 충만이 아니라 재충전으로서 성령 충만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내 속에 있는 모든 탐욕과 미움, 교만, 욕심, 거짓, 죄를 기도와 회개로써 다 비우게 되면 그때, 각자의 달란트에 따라 각각 다른 모양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를, 또는 방언이나 사랑, 가르침, 섬김의 은사를 부어주십니다. 그렇기에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그전에 먼저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내 생각 내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를 통해 성령 충만을 받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더 총명해지고, 침착하고 사리에 밝아지게 됩니다. 우리의 가슴은 더 뜨거워지고, 열정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의 의지는 사랑으로 더 견고해지고 탄탄하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성령 충만하다고 하면서 비이성적으로, 감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성령 충만을 오해한 까닭입니다. 그와 반대로 성령 충만하다고 하면서 이성적인 논리만 있고 감성적인 뜨거움이 없는 것도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또, 성령 충만하다고 하면서 의지가 더욱 약해지고 인내심이 없다면 그것도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성령 충만할수록 더 지혜로워지고, 성령 충만할수록 남을 더 용납하고,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어 가슴속에 뜨거움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사모함이 있고, 목표를 향한 견고한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불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결코 편안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 속에 거하며, 내 속에 아직도 죄의 찌꺼기가 있고, 탐욕과 미움과 교만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불이 들어오면 때로는 고민하고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태워 없애는 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거짓의 찌꺼기, 죄악의 찌꺼기, 탐욕의 찌꺼기를 다 불로 태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연단의 과정에 고통이 따르고 인내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성령 충만을 받게 되고, 그와 동시에 용서의 기쁨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본래의 자아로 다시 태어나는 새 생명의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때, 자신의 거짓된 의와 이기적인 꿈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비전이 나를 붙잡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것을 증거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성령 충만이고 그 결과 복음의 일꾼이 되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삶의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이와 같은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내 안에 성령께서 계시지 않거나,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내가 아직 진짜 성도가 아니거나,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지만, 어린아이가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제 맘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믿음이 어려서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기쁨이 없고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간다고 하면서도 자꾸만 자기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성으로 판단하고 믿음을 스스로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 충만할 수가 있을까요? 성령은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시기 때문에, 절대 강압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사모하지 않으면 성령께서 우리를 붙잡지 않습니다. 기다리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내 안에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주의 말씀에 맡겨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힘쓰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은혜를 내려주시고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새 삶을 꿈꾸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충만’은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빈 그릇끼리 부딪히면 시끄럽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령 충만 받기 전에는 “누가 오른편에 앉을 것이냐, 누가 왼편에 앉을 것이냐, 누가 크냐” 하고 다투었습니다. 하나 됨을 방해하는 욕심으로 항상 시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그들은 더이상 잡음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내 것을 채우기 전에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한 성도, 성령 충만한 가정, 성령 충만한 교회는 잡음이 들리지 않습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충만하면 세상의 탐심이나 여러 가지 불의한 생각이나 허영심, 교만, 다툼이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릇에 물이 가득 차게 되면 넘쳐서 흐르듯이, 제자들도 은혜가 넘치니까 밖으로 나가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해지니까 무서워 숨어 있던 제자들이 용기를 내어 은혜를 나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내 힘으로 무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되, 기도로써 자신의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찌꺼기들을 비워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속의 죄와 탐욕이 완전히 비워질 때 성령 충만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제자들이 그러했듯이 자신의 욕망을 비우고 성령 충만의 은혜를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복음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령 충만한 복음의 일꾼이 되기를 다짐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님을 영접함으로 죄와 탐욕을 비워내고 거룩하고 선한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바람과 불과 각종 은사로 임하시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 우리의 가정과 교회로부터 땅끝까지 이르러 거듭난 새 생명을 전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를 통해 사도행전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는 저희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이를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