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2.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4-5)

우인택 목사
2024-07-28
조회수 1649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지난주에 우리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상고했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통해 배신자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으로 거듭났고, 한 사람을 사랑함을 통해 누가복음, 사도행전이 기록되었고, 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계승되고 계승되어 오늘 우리가 이곳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 사람 사랑함은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으리라” 하신 예수님의 약속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약속을 믿음으로 한 사람 사랑이 시작되었고, 예수님은 이 사랑함이 계속해서 계승될 수 있도록 제자들과 우리 성도들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요 14:12).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8-20).

그러나 많은 성도들은 이 놀라운 예수님의 이 언약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이 언약이 우리의 삶에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를 믿기는 믿는데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언약에 관심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러한 언약을 주셨는지, 언약을 받은 제자들이 그 모든 언약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믿음의 열매를 사모하지만, 그러나 그 열매를 주시는 이유와 그 열매를 얻기까지 어떠한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지 궁금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언약을 누릴 것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오합지졸 같았던 제자들’이 어떻게 했기에 예수님의 언약을 소유하고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믿음의 주역’이 되었는지 그 비결을 배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4절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복음이 시작된 근원지인 갈릴리에 가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죽이고 제자들마저 찾아서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소굴인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처음 성전을 건축할 때, 성전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으로 건축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신 것은 아니지만, 성전을 통하여 공의와 사랑과 은혜를 선포하셨고, 백성들의 제사와 기도와 간구와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통하여 연약한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구제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성전은 타락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마 21:13).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율법의 성전을 허무시고 새로운 은혜의 성전을 세우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마가의 다락방’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보혜사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마가의 다락방에서 새로운 성전, ‘교회’의 시대가 열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율법의 성전은 예수님의 예언대로 주후 70년에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성전이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더이상 율법의 성전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교회가 성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성전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를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과 같습니다. 젖먹이 아기가 어머니의 품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혼자의 힘으로는 믿음을 지키기 힘드니까, 함께 힘을 모아 구원을 이룰 수 있도록 허락하신 어머니와 같은 은혜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만일 교회가 없었다면 우리의 구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 이 땅의 교회에 구원이 있다고 생각되십니까? 성도들은 하나같이 교회에 대한 불평 불만으로 가득 차 있고, 목회자들은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예수를 믿으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구원을 고백하면서도 구원과 상관없는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우리의 관심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영적인 것보다는 육적인 욕망과 염려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보자는 것입니다. 말씀도 많이 알고, 기도도 잘하고,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주님을 위하여 목숨까지 아끼지 않을 듯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구원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절 함께 읽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오늘날 교회가 이렇게 힘을 잃은 까닭은 예수님처럼 ‘행하고 가르치는’ 스승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증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믿음의 선배들이 성령체험의 은혜를 받고 그것을 후배들에게 삶의 본을 통해 전해 주었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믿음의 선배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믿음 자체가 상실된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믿음을 거창하게 말하지만, 믿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왜입니까? 믿음대로 사는 증인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대하여 말하지만,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살지 못합니다. 왜입니까?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증인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논쟁하고, 진리를 찬양하지만, 진리가 자신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왜입니까?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증인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건물로서의 성전은 이미 이천 년 전에 사라졌습니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성도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건물을 교회로 생각하는 거짓 지도자들이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온통 이 땅의 교회들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무리하게 건축하여 그 빚 갚는다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구제비, 선교비, 교육비 다 삭감하고, 건물 유지에 예산을 다 허비합니다.

여러분, 아무 신앙심이 없는 헤롯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건축을 시작한 성전이 바로 마지막 성전인 ‘헤롯 성전’입니다. BC 20년부터 AD 64년까지 무려 84년 동안 공사하여 웅장하고 화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이 무려 84년간의 공사로 완공된 성전은 완공된 지 겨우 6년 뒤인 AD 70년에 예수님의 예언대로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 군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84년간 백성들의 고혈을 짜 만든 성전이 완공된 지 겨우 6년 만에 벽돌 위에 벽돌 하나 남김없이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율법적인 명령이 아니라 영적인 권면입니다. “종교적인 열정을 가져라”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마음을 하나님께 머물게 하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것을 깨닫지 못하니까, 성도들은 실족하여 교회를 떠나가는데 교회지도자라는 사람들은 갖가지 구실을 붙여 서로 앞다투어 누가 더 큰 예배당을 짓는지 경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믿음이 좋다는 사람 중에서도 자신의 일생에 교회를 하나 짓는 게 소원인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소원을 가진 것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믿음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복음의 본질을 잘 모르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십니까?

제가 예전에 어떤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했는데, 그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가 되려면 얼마나 공부해야 돼요?” “왜 그러십니까?” 물으니까?, 요즘 살기 힘든데, 자기도 목사가 되면 어떨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공부가 많이 힘들지 않으면 자신도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세워 헌금을 많이 거둬 편하게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말 아닙니까? 이게 다 믿음을 잘못 증거하고 있는 우리 교회들의 책임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우리 동탄영락교회는 외형적인 부흥과 성장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가르치는 교회가 되는 것을 가장 중점으로 감당해 나가야 할 사역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이어서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을 수 있도록 집중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은혜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기다립니까? 은혜를 감당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기도로 준비가 되면 은혜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는 두 가지 종류의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듣는 기도, 프로슈케 προσευχή’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 ‘말하는 기도, 데에시스 δεησις’입니다. 듣는 기도는 “주님, 제가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지금 저에게 주어진 이 고난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 뜻을 알기 원합니다.” 하는 하나님의 뜻을 듣는 기도이고, 말하는 기도는 “주님, 복음을 전하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가정을 지켜주시옵소서. 자녀들을 지켜주시옵소서. 직장을 지켜주시옵소서. 물질과 건강의 복을 주시옵소서”하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이처럼 기도에는 자신의 헌신을 다짐하고 결단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도 있지만, 삶 속에서 주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듣는 기도는 중요하고, 요청하는 기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신앙의 성숙도와 우선순위의 문제는 있지만, 듣는 것과 요청하는 것, 이것은 둘 다 똑같이 중요합니다. 두 요소가 다 들어 있는 기도가 건강한 기도입니다(참고. 중보기도 엔듀크시스 εντευξις) .

일례로, 주위를 살펴보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가정의 문제, 건강의 문제 등등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일, “나는 아무 문제 없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문제가 가정의 문제 같고, 자녀의 문제 같고, 경제적인 문제 같고, 건강의 문제 같지만, 영적으로 보면 그 문제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부르시는 신호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말실수, 행동 실수, 분쟁, 대립, 오해, 또 건강문제 물질문제 등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들을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됩니다. 그러할 때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한 문제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들을 통하여 만나주시고, 이길 힘주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혹시 경제적인 위기가 닥쳤거나, 가정에 위기가 왔거나, 건강에 위기가 왔다면 ‘아, 하나님이 나를 기도의 자리로 부르시는구나.’ 깨닫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사람들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환경을 탓하면 진짜 망하는 것입니다. 문제와 갈등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지금의 상황이 이해될 때까지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의 자리를 통해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목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주실 때 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며 간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5절 함께 읽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에서의 ‘몇 날’은 10일 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다음 날에 부활하셨고, 그로부터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하셨으므로, 이날로부터 10일 후인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10일 동안 1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좁은 다락방에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게다가 하루 온종일 기도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틀을 기도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흘, 나흘을 기도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들 중에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누구도 흔들리지 않고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열흘 후,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까지 기도하며 은혜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단순한 교제를 위한 자발적 종교단체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값 주고 사신, 언약 공동체입니다. 제자들이 그것을 믿었기에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오직 기도에 힘쓸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으로 기도하던 그때, 성령의 권능이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이상 겁쟁이가 아니라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더이상 자신의 힘이나 능력으로 외치는 자들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을 힘입은 거룩한 백성, ‘성도’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얼마만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고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우리도 성령의 권능을 힘입은 거룩한 백성, ‘성도’가 되어 예루살렘교회와 같은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온 힘을 다함으로 사도행전의 다음 한 페이지를 기록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종교적인 열정을 가져라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마음을 하나님께 머물게 하라는 당부의 말씀임을 가슴에 새깁니다. 또한, 기다리라는 말씀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라는 말씀이었고 제자들은 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성령의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웠습니다. 저희도 제자들을 본받아 믿음의 기도로 성령의 권능을 받아 교회를 온전히 신실하게 세워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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