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36. 전도자 빌립의 순종을 본받읍시다 (행 8:26-40)

우인택 목사
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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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오늘 본문은 집사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이야기입니다. 에디오피아는 구약성경에서 ‘구스’라고 칭하는 곳입니다. 에디오피아는 왕이 있었지만 상징적인 존재였고 실제적인 통치는 간다게라고 불리던 왕의 어머니가 맡았습니다. 그러했기에 오늘 본문의 내시가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였다는 말은 그가 에디오피아의 재무부 장관 정도의 신분이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가 내시라는 것은 거세를 당했음을 의미하는데, 구약성경에서 거세당한 자는 제사장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고, 하나님의 총회에도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신 23:1). 철저하게 멸시당하고 외면당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경 이사야 56장에 이 땅에 메시아가 임하면 누구든지, 거세를 당한 자들까지도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예언의 말씀이 에디오피아 내시의 구원사건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 먼저, 26절 함께 읽습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사마리아는 빌립의 전도로 사도들까지 합세해야 할 만큼 부흥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잘 전하고 있는 빌립에게 사마리아를 떠나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가라고 하는 이상한 지시를 하셨습니다. 사마리아에서 온 힘을 다해 복음을 전했고, 또 큰 성과를 내고 있었던 빌립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지시였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성령의 지시에 단 한마디의 반문도 하지 않고 자기 사역을 다 내려놓고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겸손이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로써 성경은 빌립이 이방 전도의 선봉장으로 서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의 명령이 우리의 이성적 판단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보다는 그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자기의 이성적 판단에 맞춰 적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빌립이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명령은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할 때 선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 외에 또 다른 한 예로, 열왕기상 17장에 사르밧 과부가 오랜 가뭄으로 먹을 양식이 떨어져 목숨과도 같은 마지막 남은 양식을 아들과 함께 먹으려고 할 때, 선지자 엘리야는 얄밉게도 그것을 자신이 먹겠다고 말합니다. 선지자가 어떻게 이렇게 염치없는 짓을 합니까? 말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명령에 순종하여 마지막 남은 식량으로 엘리야를 대접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순종했을 때 과부의 집에 가뭄 내내 밀가루 통과 기름병에서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이를 통해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할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남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빌립처럼, 사르밧 과부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간증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7-29절 함께 읽습니다.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당시 에디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애굽 다음으로 큰 나라였습니다. 이러한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나라를 대표하여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귀국하는 중이었으니, 그 행렬은 대규모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에디오피아 내시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인지,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다니엘이나 느헤미야처럼 에디오피아에서 출세한 사람인지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으며 여행 중에도 성경을 읽을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수레에 앉아 이사야서 53장을 큰소리로 읽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성경을 큰 소리로 읽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빌립에게 그 내시에게 나아가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을 그냥 버려두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30-31절 함께 읽습니다.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광야 길은 매우 위험한 길입니다. 도적 떼가 언제 출몰할지 모르는 곳입니다. 게다가 사마리아에서 가사 광야까지 약 70여km를 달려온 빌립의 모습은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되었을 것입니다. 매우 초라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에디오피아 내시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권력과 지위 면에서 빌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내시는 선뜻 빌립을 자기 수레에 태웠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성경을 배우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권력자였지만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배움에 대하여 마음이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말씀의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 겸손한 사람, 그리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과 교회를 박해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성경의 모든 것을 안다고 자만했습니다. 가르침을 받으려는 자세보다 가르치려고만 했습니다. 자신의 성경 지식을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 지식에 능통했음에도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성경 말씀은 그 크기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가 한이 없습니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한 마음, 가난한 마음,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안다고 자만하는 자는 더이상 배울 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배운 것도 자꾸 잃어버리게 됩니다. 겸손하게 늘 배우려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나보다도 신앙 연륜이 짧고 어린 성도라도 내가 깨닫지 못한 진리를 깨닫고 있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세 사람만 만나도 그중에 나를 가르칠 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그러한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고, 삶으로 실천하기에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나누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32-34절 함께 읽습니다.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

에디오피아 내시가 읽고 있던 성경 구절은 ‘고난받는 종’ 메시아(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한 이사야 53:7-8이었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에게 고난받는 이가 누구인지를 물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이사야가 므낫세 왕에게 순교 당했다는 전승에 따라 이사야가 바로 이 고난 받는 종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 고난 받는 종이 어느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전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거룩한 선지자이기는 하지만 예언의 말씀처럼 태어나지도, 죽지도, 또 부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사야 53장에는 고난받는 종 메시아(그리스도)의 천한 출신과 그가 받을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내용이 매우 구체적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예언의 말씀대로 태어나시고,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53장에 기록된 고난 받는 종 메시아(그리스도)는 이사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는 이외에도 예수님에 관한 예언이 풍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출생지도 예언되어 있고(미 5:2), 예수님의 신분, 성품, 하시는 일,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까지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예수께서 메시아(그리스도)라는 사실과 십자가구속과 부활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너무나도 분명하게 예수께서 행하실 일들이 예언되어 있고 또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진 구약성경은 유대교 경전입니다. 또 이슬람교도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구약성경이 예수님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을 그들 앞에 펴 놓고 이렇게 풍성하고 자세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해 주었음에도 믿지 않은 불신앙의 죄를 지적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39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구약성경은, 그 말씀을 읽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6-38절에 복음을 전해 들은 에디오피아 내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물 있는 곳에 이르러 세례를 받았습니다. 광야 한복판에서 세례받을 만한 물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물을 만나 에디오피아 내시가 세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사모하는 내시를 위해 ‘여호와 이레’, 세례받을 물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도 부활절에 세례를 주게 되는데, 세례는 세례를 받을만큼 성경 지식이 있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에디오피아 내시는 세례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를 원하는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성령을 영접하고 그때부터 예수님을 배워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혹, 세례에 대하여 부담을 갖거나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되시는 분은 생각을 고치시고 세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39절에, 빌립이 세례를 주자마자 하나님께서는 기적적 방법으로 빌립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시는 빌립을 다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이끌어 간지라’로 번역된 헬라어 ‘헤르파센 ἥρπασεν’은 본래 ‘큰 독수리가 순식간에 먹이를 채가는 모습’을 나타낼 때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빌립이 내시를 전도하고 세례까지 주자, 마치 독수리가 먹이를 채가듯 그를 다른 전도 장소로 옮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을 광야로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내시를 전도하게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물을 예비하여 세례를 받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빌립을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주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빌립이나 내시 모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구원의 기회를 잘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빌립이 게으름을 피웠다면 에디오피아 내시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도 이 기회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면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오늘 거절하면 내일 또 주어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한이 정해져 있습니다. 오늘 구원의 기회가 주어졌다가도 내일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구원의 문이 열려 있지만 언제 그 구원의 문이 닫히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어진 구원의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먼저는 자신부터 확실하게 믿고, 빌립 집사처럼 이웃을 구원의 은혜에 참여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 이때가 지나면 복음을 전할 기회가 없어질 수도 있음을 알아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 지금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이때 전도자 빌립 집사처럼 복음 전파의 선봉장이 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를 복음화했고, 더 나아가 가사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구원하고 가이사랴에 이르기까지 복음전파의 선봉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뜻에 집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 역시 하나님 말씀을 뜨겁게 사모하고 겸손했기에 내시였음에도 성경에 기록된 이방인 최초의 구원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교훈을 가슴에 담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아름답게 쓰임 받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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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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