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34. 집사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 (행 8:4-8)

우인택 목사
2025-03-09
조회수 1174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1904년, 영국 웨일즈에 영적 부흥이 일어났었을 때, 한 작은 교회의 성도가 주기도를 하다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같이…” 이 부분에서 갑자기 그가 미워하고 있는 한 성도의 얼굴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라 마음이 떨리고 숨이 막혀서 더이상 기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를 중단하고 미워하던 성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갈등의 원인은 자신이었다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 두 사람을 성령의 은혜로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보석가게를 경영하던 한 상인이 이 소문을 듣고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배를 드리며 체험하게 된 것은 성도들이 예배 시간에 격한 감정으로 기도하고 우는 것 외에 특별히 마음에 감동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부흥’이라는 것이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성도들의 ‘요란한 감정잔치’라고 생각하고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후 자기 가게에 한 젊은이가 오더니 자기가 이 보석가게에서 보석을 훔친 일이 있다며 보석을 내놓으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자기 마음에 성령이 임하고 마음에 양심의 가책이 일어나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게 되었고, 그래서 훔친 것들을 가지고 용서를 구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겪은 보석가게 주인은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교회에 나가 자신도 영적 부흥을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도 복음 전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빌립이 유대교의 박해를 피해 유대인들과 원수처럼 지내는 사마리아로 갔다가 거기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주께로 돌아오게 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이렇게 빌립의 사역을 기록한 이유는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사역은 유대인 중심의 복음 전도사역이 이방인 중심의 복음의 전도사역으로 확장이 되는 교두보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신호탄과도 같은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는 서로 원수지간이었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의 갈등이 복음 안에서 해소되었다는 점에서 복음의 기본정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먼저, 4-5절 함께 읽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여기에서 ‘흩어졌다’라는 단어는 ‘씨를 널리 뿌리다, 널리 퍼뜨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박해를 피해 흩어진 성도들이 “괜히 예수를 믿었다”, “억울하다” 푸념하며 숨은 것이 아니라, 마치 씨를 뿌리는 사람들처럼 닫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교회에 대한 세상의 박해는 교회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회 성장의 동기가 됨을 깨닫게 합니다.

1)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당시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수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에 따라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세계로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박해를 용납하시게 되었고, 결국 성도들은 그들의 박해를 피해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2) 그리고 이처럼 비록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박해를 피해 흩어진 성도들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이방 땅인 안디옥에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이방인 중심의 첫 교회를 세우게 되는데, 그 교회가 사도 바울을 선교사를 파송하고 세계선교의 중심이 된 안디옥교회입니다. 박해를 통해 흩어진 성도들에 의해 교회가 생겨났고, 그 교회가 세계 선교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3) 이처럼 세상의 박해는 교회를 더욱 교회답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동안의 예루살렘 교회는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성도의 대부분은 유대교에서 개종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성도가 된 후에도 유대교의 종교 규례나 풍습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기독교와 유대교가 무엇이 다른지 모르는 성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대대로 신봉하던 유대교가 기독교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박해하니, 이제는 유대교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만 의지해야 했습니다. 박해로 말미암아 교회가 더욱 교회답게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4) 또, 그와 더불어 성도들은 박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말로만 전해 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성도들도 직접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고난을 모르고, 그 고난에 동참하지 않은 성도는 매우 미숙한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갈 2:20). 이 고백은 “나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라고 하는 그의 간절한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은 때때로 박해를 통해서, 실패를 통해서, 고통을 통해서 우리를 믿음의 길로 밀어 넣으시기도 하고 사명의 길로 밀어 넣으시기도 합니다. 박해는 성도의 위기가 아니라 성도를 정결하게 만들고, 성도답게 만들며, 안팎으로 성장시키는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박해와 실패와 고통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이 박해와 실패와 고통이 나를 새롭게 하고, 온전한 믿음의 삶으로 인도한다면 이 모든 고통을 감사로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시련을 겪고 있을 때, 실망할 것이 아니라 이때가 신앙 성장의 기회인 줄 믿고 고난의 때에 더욱 주어진 사명과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날 그 시련을 통해 정금같이 단련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장 비참한 인생은 고통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서도 자포자기, 좌절, 비관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오늘부터 다가오는 모든 고난을 축복의 통로로 변화시키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의 고통을 축복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고통이 오기 전에 믿는 사람이 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고통을 겪지 않고 깨닫고 순종하는 삶이 더 복된 삶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고통을 당하여 비로소 깨닫는 것도 복이고 은혜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주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고통 없이도 고통의 의미를 깨닫고, 은혜를 누리는 삶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가장 복된 이 길을 택하는 지혜로운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이어지는 6절 함께 읽습니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여기서 ‘한마음 ὁμοθυμαδόν 호모뒤마돈’은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듯이 ‘마음을 같이하여’ 또는 ‘만장일치’라는 뜻으로 신약 성경 전체에서 11번 사용되었는데, 그중에 10번이 사도행전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만큼 복음을 전하고 하나의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마음을 같이하여’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한 사마리아 지역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가 여러 민족을 이주시켜 이스라엘의 민족성을 말살시킨 곳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은 혼혈이 되어 민족적인 순수성을 상실하고 말았고,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들과 같이 여기며 그들과 접촉하는 것조차 꺼렸습니다(요 4:7-10). 또 반대로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소외된 사마리아인들은 자기들을 배척하는 유대인들을 증오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철천지원수였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을 화해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에는 서로 화평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관계의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빌립 집사처럼 성령 충만한 복음의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700년 원수지간을 한마음이 되게 했던 본문의 역사가 여러분에게도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먼저 복음의 일꾼이 되면 그 대상이 누구든, 만나는 사람마다 마음 문을 열고 하나가 되고 화평하게 되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를 통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 나를 맡겨야 합니다. 성령께 나를 맡길 때,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이에 대한 간증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말로만 전하면 관심을 갖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에게 사람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표적과 기적을 부어주십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복음이 처음 전해지는 곳에서 예외 없이 표적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빌립도 표적과 기적을 행하며 복음을 전하니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한마음으로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7절 함께 읽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빌립이 복음을 전하자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쫓겨나고 불치의 병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같은 기적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또 사도들이 사역할 때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기적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이제 사마리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습니다(마 11:5).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선민 공동체에서 제외되었던 사마리아에도 임했습니다. 유대인들에 의해 부정한 곳으로 여겨지던 사마리아도 이제는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은 곳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흩어진 성도들에 의해 처음으로 복음이 전해진 곳이 소외되고 멸시받던 사마리아였다는 것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 모든 인류에게 동일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심을 보이신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주장처럼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은혜를 베푸시고 다른 민족은 지옥의 땔감으로 여기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렇게 차별없는 하나님의 구원이기에 오늘 우리까지도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로마서 1:16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또 로마서 3:22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느니라” 이 말씀들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함에 있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차별없이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는데 우리가 차별한다면 그것처럼 그릇된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나 부자나, 신분이 높은 자나 낮은 자, 인종, 민족의 구별을 초월하여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8절은 복음이 전해진 결과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마리아인들은 큰 슬픔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같은 이스라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으로, 죄인의 대명사로 취급당하는 고통을 받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성전도 없었고 제사 드려주는 제사장들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조상들이 구전으로 들려준 종교 규례와 풍습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찾으려고 애쓸 뿐이었습니다(요 4:19-20).

그런데 그러한 그들에게 빌립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해방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에게 있어 이와 같은 소식은 그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인인 자신들도 동일하게 사랑한다는 소식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 받아들인 사마리아에 구원의 큰 기쁨이 임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소식을 들은 자에게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그러하기에 복음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는다면 전도는 실패한 것입니다. 윌리엄 바클레이 목사는 말하기를 “어두운 분위기를 가져오는 기독교는 거짓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복음으로 인해 기쁘게 생활하십니까? 또한, 여러분들이 계신 곳에 기쁨이 넘치십니까? 또한, 여러분들이 전도한 사람들이 복음으로 인해 기쁘게 생활합니까? 하나님을 찬양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 나라의 소망으로 즐거워합니까? 그렇다면 성도의 삶에 성공한 것이고, 전도에도 성공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기쁨이 없고 근심 걱정에 싸여 지낸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기쁨을 나누어 주는 진정한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하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1:25-26). 빌립 집사가 그러했듯이 부활이요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멋진 삶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박해를 통해, 실패를 통해, 고통을 통해 우리를 믿음의 길로 밀어 넣으시기도 하고 사명의 길로 밀어 넣으시기도 하심을 깨달았습니다. 박해는 위기가 아니라 우리를 정결하게 만들고, 성도답게 만들며, 안팎으로 성장시키는 동기가 됨을 확신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이 확신으로 어떤 곳에서든 복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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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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