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스펄전 목사님이 하루는 기도하다 말고 자꾸 훌쩍훌쩍 울어서 사모님이 옆에서 왜 우느냐고 무슨 걱정거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요새는 웬일인지 십자가를 생각할 때 감격이 없어. 이것은 신앙적 위기야”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예전에는 십자가라는 소리만 들어도 콧등이 찡해지고 가슴이 뛰었는데, 이제는 그런 감격이 줄어든 것 같지는 않습니까? 예전에는 교회마다 찬송 소리가 흘러넘쳤고, 찬송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도가 저절로 나왔는데, 요즘은 주위에서 찬송을 듣기가 점점 힘이 들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때, 스데반 집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밥 안 먹어도 행복했던 예전의 뜨겁던 신앙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교회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뜨거운 믿음이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합니다.
1. 먼저, 54절을 읽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 집사의 책망을 들은 유대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마땅히 스데반의 지적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신들의 신앙적인 무지와 편견에 대해 회개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왜곡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자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갈았습니다. 이를 갈았다는 것은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올라서 그 화를 추스를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마음의 찔림에 대하여 은혜로 반응한 것이 아니라, 악한 감정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복음을 잃어버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에 대하여 마태복음 8:12에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나라의 본 자손’이란 ‘선민 이스라엘’을 지칭합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의 외침을 외면하고, 예수님의 엄한 꾸짖음을 대적하고, 그리고 스데반의 책망을 듣고, 그 마음에 찔림이 있었으나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분노하여 이를 간 유대인들은 결국 바깥 어두운데, 곧 영원한 멸망의 자리로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불의한 돈과 명예와 권력을 지키려다 양심의 찔림을 외면하고 오히려 악으로 갚음으로 가장 소중한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들을 반면교사 삼아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양심의 찔림이 있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고 겸손하게 회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이든 - 성경 말씀이든, 설교 말씀이든, 성도들의 충고든 –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은 성도답게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구나” 하고 겸손하게 들어야 합니다. 교회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하여,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은 자로서 믿음의 결단을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55-56절 함께 읽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이를 갈며 분노한 유대인들 앞에서 스데반이 보인 반응입니다. 보통, 자신을 재판하는 재판관들이 이를 갈고 분노하면 자신에게 매우 불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 분명하기에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스데반 집사는 그들의 눈치를 본 것이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재판관보다 하늘에 계시는 영원한 재판관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성도로서의 삶을 살다 보면 고난의 순간이나 위기의 순간을 접하게 됩니다. 그때, 만일 눈 앞의 고난이나 위기만을 보면 위축되고 절망하게 됩니다. 불의와 타협하게 되고 사람들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 결과 사탄의 계교에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나 위기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눈 앞에 보이는 고난이나 위기에 마음을 빼앗겨 낙심하거나 포기하거나 불의와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처럼 눈을 들어 기도해야 합니다. 영원한 통치자시요 재판관이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도움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옴을 믿고, 눈을 하늘로 돌리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성도의 본분에 충실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되, 설령 우리가 이 땅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하늘의 영광으로 갚으실 것입니다.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하나님 나라가 분명하다면, 세상에서 불의한 자들에 의해 육체의 생명을 잃는다고 해도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의 때가 가까워질수록 우리 성도들은 온갖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모양과 형태는 다르겠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이 받은 고난을 우리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의 진위 여부는 위기 앞에서의 태도로 판가름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순간이 오면 스데반처럼 의롭고 담대하게 행할 수 있도록 평소에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비겁하게 주를 부인하거나 배신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성령 충만하여 떳떳하게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그리하여 하나님께 칭찬받고 큰 상급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57-58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율법에 의하면, 사형시킬 자에게 가장 먼저 돌로 치는 자들은 증인들입니다(신 17:7). 그러나 오늘 본문의 증인들은 거짓 증인들이었습니다(행 6:12-14). 그럼에도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조금도 받지 않고 오히려 스데반을 돌로 치기에 편하도록 겉옷을 벗어 사울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자랑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의한 일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사탄은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인들을 미혹하여 교회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스데반을 죽이게 되었으니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스데반보다 더 열정적으로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할 또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사울이라 하는 청년입니다. 그는 훗날 예수님께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입니다.
여러분, 복음의 위대한 증인인 스데반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이미 또 다른 위대한 복음의 증인을 예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스데반이라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던 그곳에 전 세계를 복음화할 위대한 일꾼을 예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충성된 복음의 일꾼을 미리 예비해 놓으시는 ‘여호와이레’ 하나님이십니다. 세례 요한이 순교하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습니다. 또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자 이제는 수많은 복음의 일꾼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혹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누가 인도할까?’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충성된 종을 예비해 놓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나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하랴?’ 하며 교만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더 유능한 일꾼들을 예비해 놓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복음의 일꾼들이 끊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내가 한 알의 밀이 되어 썩으면 그를 통해 이전보다 더 유능하고 더 많은 일꾼을 예비해 놓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바로 이러한 한 알의 밀알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4. 이어지는 59-60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 집사는 순교의 자리에서 두 가지 기도를 드렸습니다.
1) 먼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다”라고 기도하신 것과 같이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슴 깊이 품고, 지금 죽으면 끝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간다는 복음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스데반을 돌로 치는 자 중에는 대제사장이 포함된 사두개인이 많았습니다. 사두개인은 영혼도, 부활도, 영생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이 땅의 행복만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돌로 맞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영혼이 주님께 받아들여질 것임을 증언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도 증언했습니다.
2) 그리고 스데반 집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 호흡을 모아 예수님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셨던 것처럼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며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은 죽음의 순간에도 자신을 돌로 치는 유대인들을 사랑했고, 걱정했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도행전 6장에, 스데반 집사가 이러한 순교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초대교회에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모든 성도로부터 칭찬받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늘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했습니다. 땅의 것보다 하나님 나라를 삶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를 통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삶이 죽음 앞에서조차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환난이나 시련을 당할 때, 더욱 하나님을 찾습니까? 이 땅에서 아무리 큰 화를 당해도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있기에 기뻐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을 미워하고 욕하고 저주하는 자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신앙의 진위 여부는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위기 앞에 설 때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위기 앞에서의 태도로 판가름 됩니다. 그러므로 스데반 집사처럼 성령 충만하여 늘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 나라를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이웃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섬기는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삶을 사는 성도만이 스데반처럼 위기를 당해도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지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 스데반 집사님처럼 영의 눈이 열려 여러분을 맞이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긴장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설령 죽음이 내 눈앞에 있더라도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고, 예수님이 보이고, 저 천국이 보여서 기뻐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스데반처럼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창립기념주일인 오늘, 스데반의 순교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신앙을 되짚어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교회창립주일을 맞이하여 스데반 집사의 신앙을 상고했습니다. 고난의 순간에 눈 앞의 고난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하늘로 돌리고 영원한 통치자요 재판관이신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 권세를 의지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나라에는 복음의 일꾼들이 끊어지는 법이 없음을 믿고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믿음으로 이기되, 자신의 목숨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귀한 일임을 확신한 스데반 믿음을 본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스펄전 목사님이 하루는 기도하다 말고 자꾸 훌쩍훌쩍 울어서 사모님이 옆에서 왜 우느냐고 무슨 걱정거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요새는 웬일인지 십자가를 생각할 때 감격이 없어. 이것은 신앙적 위기야”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예전에는 십자가라는 소리만 들어도 콧등이 찡해지고 가슴이 뛰었는데, 이제는 그런 감격이 줄어든 것 같지는 않습니까? 예전에는 교회마다 찬송 소리가 흘러넘쳤고, 찬송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도가 저절로 나왔는데, 요즘은 주위에서 찬송을 듣기가 점점 힘이 들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때, 스데반 집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밥 안 먹어도 행복했던 예전의 뜨겁던 신앙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교회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뜨거운 믿음이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합니다.
1. 먼저, 54절을 읽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 집사의 책망을 들은 유대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마땅히 스데반의 지적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신들의 신앙적인 무지와 편견에 대해 회개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왜곡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자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갈았습니다. 이를 갈았다는 것은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올라서 그 화를 추스를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마음의 찔림에 대하여 은혜로 반응한 것이 아니라, 악한 감정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복음을 잃어버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에 대하여 마태복음 8:12에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나라의 본 자손’이란 ‘선민 이스라엘’을 지칭합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의 외침을 외면하고, 예수님의 엄한 꾸짖음을 대적하고, 그리고 스데반의 책망을 듣고, 그 마음에 찔림이 있었으나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분노하여 이를 간 유대인들은 결국 바깥 어두운데, 곧 영원한 멸망의 자리로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불의한 돈과 명예와 권력을 지키려다 양심의 찔림을 외면하고 오히려 악으로 갚음으로 가장 소중한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들을 반면교사 삼아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양심의 찔림이 있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고 겸손하게 회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이든 - 성경 말씀이든, 설교 말씀이든, 성도들의 충고든 –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은 성도답게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구나” 하고 겸손하게 들어야 합니다. 교회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하여,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은 자로서 믿음의 결단을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55-56절 함께 읽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이를 갈며 분노한 유대인들 앞에서 스데반이 보인 반응입니다. 보통, 자신을 재판하는 재판관들이 이를 갈고 분노하면 자신에게 매우 불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 분명하기에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스데반 집사는 그들의 눈치를 본 것이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재판관보다 하늘에 계시는 영원한 재판관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성도로서의 삶을 살다 보면 고난의 순간이나 위기의 순간을 접하게 됩니다. 그때, 만일 눈 앞의 고난이나 위기만을 보면 위축되고 절망하게 됩니다. 불의와 타협하게 되고 사람들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 결과 사탄의 계교에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나 위기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눈 앞에 보이는 고난이나 위기에 마음을 빼앗겨 낙심하거나 포기하거나 불의와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처럼 눈을 들어 기도해야 합니다. 영원한 통치자시요 재판관이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도움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옴을 믿고, 눈을 하늘로 돌리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성도의 본분에 충실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되, 설령 우리가 이 땅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하늘의 영광으로 갚으실 것입니다.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하나님 나라가 분명하다면, 세상에서 불의한 자들에 의해 육체의 생명을 잃는다고 해도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의 때가 가까워질수록 우리 성도들은 온갖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모양과 형태는 다르겠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이 받은 고난을 우리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의 진위 여부는 위기 앞에서의 태도로 판가름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순간이 오면 스데반처럼 의롭고 담대하게 행할 수 있도록 평소에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비겁하게 주를 부인하거나 배신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성령 충만하여 떳떳하게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그리하여 하나님께 칭찬받고 큰 상급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57-58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율법에 의하면, 사형시킬 자에게 가장 먼저 돌로 치는 자들은 증인들입니다(신 17:7). 그러나 오늘 본문의 증인들은 거짓 증인들이었습니다(행 6:12-14). 그럼에도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조금도 받지 않고 오히려 스데반을 돌로 치기에 편하도록 겉옷을 벗어 사울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자랑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의한 일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사탄은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인들을 미혹하여 교회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스데반을 죽이게 되었으니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스데반보다 더 열정적으로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할 또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사울이라 하는 청년입니다. 그는 훗날 예수님께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입니다.
여러분, 복음의 위대한 증인인 스데반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이미 또 다른 위대한 복음의 증인을 예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스데반이라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던 그곳에 전 세계를 복음화할 위대한 일꾼을 예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충성된 복음의 일꾼을 미리 예비해 놓으시는 ‘여호와이레’ 하나님이십니다. 세례 요한이 순교하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습니다. 또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자 이제는 수많은 복음의 일꾼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혹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누가 인도할까?’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충성된 종을 예비해 놓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나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하랴?’ 하며 교만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더 유능한 일꾼들을 예비해 놓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복음의 일꾼들이 끊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내가 한 알의 밀이 되어 썩으면 그를 통해 이전보다 더 유능하고 더 많은 일꾼을 예비해 놓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바로 이러한 한 알의 밀알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4. 이어지는 59-60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 집사는 순교의 자리에서 두 가지 기도를 드렸습니다.
1) 먼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다”라고 기도하신 것과 같이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슴 깊이 품고, 지금 죽으면 끝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간다는 복음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스데반을 돌로 치는 자 중에는 대제사장이 포함된 사두개인이 많았습니다. 사두개인은 영혼도, 부활도, 영생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이 땅의 행복만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돌로 맞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영혼이 주님께 받아들여질 것임을 증언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도 증언했습니다.
2) 그리고 스데반 집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 호흡을 모아 예수님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셨던 것처럼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며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은 죽음의 순간에도 자신을 돌로 치는 유대인들을 사랑했고, 걱정했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도행전 6장에, 스데반 집사가 이러한 순교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초대교회에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모든 성도로부터 칭찬받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늘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했습니다. 땅의 것보다 하나님 나라를 삶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를 통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삶이 죽음 앞에서조차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환난이나 시련을 당할 때, 더욱 하나님을 찾습니까? 이 땅에서 아무리 큰 화를 당해도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있기에 기뻐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을 미워하고 욕하고 저주하는 자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신앙의 진위 여부는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위기 앞에 설 때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위기 앞에서의 태도로 판가름 됩니다. 그러므로 스데반 집사처럼 성령 충만하여 늘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 나라를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이웃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섬기는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삶을 사는 성도만이 스데반처럼 위기를 당해도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지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 스데반 집사님처럼 영의 눈이 열려 여러분을 맞이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긴장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설령 죽음이 내 눈앞에 있더라도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고, 예수님이 보이고, 저 천국이 보여서 기뻐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스데반처럼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창립기념주일인 오늘, 스데반의 순교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신앙을 되짚어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교회창립주일을 맞이하여 스데반 집사의 신앙을 상고했습니다. 고난의 순간에 눈 앞의 고난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하늘로 돌리고 영원한 통치자요 재판관이신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 권세를 의지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나라에는 복음의 일꾼들이 끊어지는 법이 없음을 믿고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믿음으로 이기되, 자신의 목숨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귀한 일임을 확신한 스데반 믿음을 본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