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25.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 (행 7:1-8)

우인택 목사
2025-01-05
조회수 1612

1.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5.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6.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7. 또 이르시되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 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8.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라

 

<2025년 표 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교회”(살전 5:16-18)

<2025년 실천목표>
1. 영적인 무성장증을 극복합시다
2.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소유합시다
3.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 밖으로까지 넘치게 합시다

 

오늘부터 상고할 7장은 스데반 집사가 공회에 모인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 앞에서 설교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하는 민족의 시조 ‘아브라함’과 작은 씨족에 불과했던 이스라엘을 하나의 민족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 ‘요셉’과 애굽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성막을 전해준 ‘모세’와 성전을 건축한 ‘다윗’과 ‘솔로몬’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면서 모세가 전해 준 율법을 절대시하던 그들에게 구원의 약속이 율법보다 먼저 있었고, 구원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고, 구원은 이스라엘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온 세계 만민에게 주어진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앞으로 7번에 걸쳐 스데반의 설교에 기록된 아브라함과 요셉과 모세와 성전으로부터 얻는 교훈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하여 상고합니다.

 

1. 다함께 1절 읽습니다.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

여기에서 ‘이것’은 11절에 기록된,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다고 한 거짓 증인들의 말이 사실이냐는 뜻입니다. 이때 스데반은 거짓 증인들의 말이 사실이 아니기에 충분히 자기를 변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수님을 대적하고 자신을 재판하는 이 일을 오히려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1) 먼저, 그는 복음을 전하되 2절에,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라고 하며 부드럽고 친근하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부형’들이란 ‘부모 형제’라는 뜻입니다. “부모 형제 여러분 제 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지 않고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 역사, 그들의 시조인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기 전에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언급한 것은, 당시 그들이 가장 존경하던 사람이 아브라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고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스데반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말문을 열자 유대인들은 스데반의 말에 주목했습니다. “저 사람이 왜 아브라함을 이야기할까?” 예수에 대하여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아브라함을 이야기하다니 이상하다며 일제히 주목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전도란 예수님의 구원에 대하여 전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관심 있어 하는 것으로부터 말문을 열어야 합니다. 이것이 전도의 첫 걸음입니다.

2) 그리고 이어서 스데반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자신들만 구원받았고 자신들이 살고 있던 가나안 땅만을 특별한 땅이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시조인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이 아니라 ‘메소보다미아’였다고 말씀했습니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처음 만나주신 곳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이방 땅 ‘메소보다미아’였음을 상기시키면서, 이를 통해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전 우주를 통치하시는 창조주이시고, 유대인들 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온 우주 만물,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해 하나님의 품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잃어버린 양’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또 ‘탕자의 비유’를 통해 그들을 잠시 사탄의 미혹에 빠져 잃어버린 바 된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처럼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간섭하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정죄하는데 시간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성도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만일, 내가 사업가 또는 근로자라면,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품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정치인이라면 바른 정치를 함으로써 국민들을 예수님의 품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교사라면 가르치는 아이들을 예수님의 품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가정주부라면 자신의 자녀들을 예수님의 품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목사라면 성도들이 바른 삶을 살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가 혼란한 이유는 성도 각자가 주어진 삶의 환경과 여건 속에서 이러한 어두움 앞에서의 빛의 역할을, 부패한 곳에서의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에서 분리되어 하나님의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과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을 증거하고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본을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2025년 첫 주일입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이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봄으로써 2025년에는 영적인 무성장증을 극복하고 믿음의 성장을 이루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3절 함께 읽습니다.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이 말씀의 배경은 창세기 12:1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그리고 2-3절에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아브라함은 이러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셔서 간 그곳에는 아브라함이 발붙일 땅이 없었습니다. 이미 주인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물질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자식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은 오직 말뿐인 약속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약속은 먼 미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인정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도 그가 가진 것과 같은 믿음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에 의심이 일어나고, 여러 가지 반론이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임을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믿음도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았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열 명의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부르짖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들의 나병이 나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지도, 그들의 몸을 만지시며 치유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말로만 “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달려가면서 그들의 몸이 치유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믿고 순종할 때, 그때 믿음이 삶의 현실에서 능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신칭의’의 정확한 뜻이고, 이러한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것입니다(창 15:6).

오늘, 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봄으로써 2025년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바른 지식을 소유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성도로서의 선한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3.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했을까요? 당시에는 고향을 떠나면 죽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무법천지라 굉장히 위험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아브라함은 75세였습니다.

그런데도 고향 친척을 떠나라고 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살던 곳이 우상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습니다(수 24:2, 이스라엘의 성경 주석 미드라쉬).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상을 숭배하던 그 땅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환경이 중요함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은 일생을 나그네로 살게 됩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삶에 대하여 성경은 히브리서 11장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으며 약속받은 것을 얻지는 못했으나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했으며 이 땅에서는 자기가 외국인과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언했다”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 그의 삶에는 남모르는 아픔과 고통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라도 과거에 세상에서 즐기던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11:15에 그 이유에 대하여 그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이 땅의 부귀영화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더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더 아름답고, 고귀하고, 가치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고통스러울 때, 더 나은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소망했습니다. 발붙일 땅도, 약속하신 자식도 없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머무는 곳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의 믿는 모든 성도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의 삶도 아브라함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일날 세상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삶을 즐기기 위해 산과 바다로 해외로 떠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봉사의 기회로 삼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자기를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감정과 욕망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자제하고 성경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섬김받기 위하여 높아지고자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섬기기 위하여 높아지고자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말의 주제는 술과 쾌락과 권력과 돈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사랑과 섬김과 복음을 이야기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의 약점과 잘못에 대하여 흉을 보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남의 장점을 이야기하고 칭찬하고 축복하고 사랑하고 기도해 주고 격려하고 소망을 주는 말을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사는 이유는 이러한 삶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삶이요,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애는 한 마디로 먼 미래의 약속을 믿고 소망하며 산 삶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믿음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만이 그 약속의 열매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2025년 새해 첫 주에 이러한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교회 밖으로까지 넘치게 하리라” 결단하며 새해를 시작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2025년 첫 주일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교훈을 주시니 감사하옵나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았듯이 저희도 믿음으로 인정받는 2025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되, 영적인 무성장증을 극복하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 밖으로까지 넘치게 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를 위해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의 권능을 충만하게 부어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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