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오늘 본문은 악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죽이려는 것을 ‘가말리엘’이라는 율법교사가 막아서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1. 먼저, 34-35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가말리엘은 유대교 경전을 체계화한 ‘힐렐’의 손자로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스승이기도 한 그는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므로써 일반 백성들은 물론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도 존경받고 인정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가 죽었을 때 “율법의 영광이 떠났고 율법의 순수함과 거룩함이 죽었다”며 온 백성이 애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온 백성의 존경을 받던 가말리엘이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시기심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고 사도들에게 즉각 사형을 구형하려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말했습니다(35절). 이성적인 판단을 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가말리엘이 이렇게 사도들을 보호하려 나선 것은 사도들을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지만, 또 한 가지는 사도들이 평소 백성들을 돌보는 선행을 많이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사도들은 가난한 백성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등, 많은 선행으로 사람들로부터 칭송과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도들을 가말리엘이 좋게 본 것입니다. 만일, 사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덕적으로 흠이 있었다면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선하고 착한 일을 하여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기에 나서서 그들을 변호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실 때 ‘성도들의 선한 삶의 열매’들을 통해 지켜 주실 때가 많습니다. 성도들의 선행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교회에 관하여 호의를 갖게 하는 동기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할 수 있는 한 ‘많은 선행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권능을 부어 주시는 것은 바로 이를 위해서입니다.
2. 이어지는 36절-37절 함께 읽습니다.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성급하게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하여 ‘두 사람’을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먼저, ‘드다’는 주전 1세기 경에 무력으로 로마에 저항하던 자였는데, 스스로를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엘리야처럼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면서 백성들을 미혹하며 폭동을 일으키다 로마 군인에게 체포되어 사형을 당함으로 사건은 일단락되고 추종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사람인 갈릴리 출신인 유다는 주후 6년 경에 로마가 인구조사를 할 때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도 얼마 되지 않아 로마 군대에 의해 무참하게 살육당하고 그의 추종자들 역시 뿔뿔이 흩어졌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38절 함께 읽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가말리엘은 드다와 갈릴리 유다처럼 교회도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공동체라면, 그 우두머리인 예수가 죽은 이상 가만히 두어도 그들 스스로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39절 함께 읽습니다.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사야 43장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면 막을 자가 없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신 유일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위에 세워진, 하나님이 친히 세우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 속한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서 있는 한 그 누구도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성경은 로마서 8:3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리고 계속해서 38-39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대적하고 박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말리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막아선 것입니다.
그러자 40-41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도 오늘 본문의 사도들처럼 예수님 때문에 능욕을 당한 적 있습니까? 그랬을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많은 경우, 그러할 때 낙심하여 교회를 떠납니다. 자기를 지켜 주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자기를 능욕한 사람들에게 보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태도는 구원받은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채찍질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겨주심을 기뻐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기뻐했다는 말은 매우 즐거워하고 행복해 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매 맞고 위협당한 일을 사도들은 매우 자랑스럽고 명예롭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사도들이 이해가 되십니까?
그들이 기뻐한 것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11-12에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사도들은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보고 고난받는 일은 하나님께 칭찬받는 일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에도 동참하는 일임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심으로 자신들을 구원하셨듯이, 자신들이 받는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까지도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골 1:24). 그러므로 진정한 성도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뿐만 아니라 그분의 고난에도 함께하려고 합니다. 이런 성도가 참 성도입니다. 사도들이 매를 맞은 것은 예수님이 맞을 매를 대신 맞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자랑스럽게 여긴 것입니다.
“사탄은 열매가 익지 않은 나무는 흔들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탄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만 시험하고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위해 고난받는 일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제자들처럼 예수의 흔적을 지닌 복된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42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매 맞고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은 매를 맞아보셨습니까? 저는 군대에 가서 매를 맞아보았는데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사람들은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이 정신적인 고통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매를 제대로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일주일 동안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매를 맞으면 다시는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사도들이 맞은 매도 그보다 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온몸에 멍이 들고,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 매를 맞은 것에 대하여 기뻐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채찍과 위협으로는 사도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을 꺾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은 악인들이 악을 행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더 뜨겁게 사람들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화) 유럽 사람들은 가축의 목초지를 만들 때,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방법으로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논에 물을 가득 채워 잡초를 죽이고 그 후에 볍씨를 뿌립니다. 또 밭의 잡초들은 베어내거나 농약으로 죽이거나 뽑아냅니다. 그러나 유럽의 목축업자들은 잡초보다 자생력이 강한 좋은 목초의 씨를 잡초 사이에 뿌립니다. 그러면 몇 년이 되지 않아 자생력이 좋은 목초들이 잡초의 세력을 몰아내고 좋은 목초지를 형성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의 악을 어떤 방식으로 이겨내야 합니까? 우리의 힘으로 베어내거나, 뿌리를 뽑아야 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지를 뽑지 말고 심판 때까지 그냥 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 13:24-30). 그 대신에 더욱 열심히 선을 행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악인들이 악을 행하는 것보다 성도들이 선행을 더 많이 할 때, 그때 비로소 악을 선으로, 불의를 의로, 비진리를 진리로 이기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사도들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가말리엘을 통하여 제자들을 지켜 주셨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사도들과 같이 열심히 선을 행하며 복음을 전한다면 사도들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고난 중에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악하고 험한 세상에서 사도들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믿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되, 선을 행함으로써 악을 이겨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탄을 기다리며 선한 삶으로써 불의를 이겨낸 사도들을 본받아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도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돌보는 선행을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를 통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또한, 악한 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생각하지 못한 가말리엘의 중재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도 선한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는 교회를 세워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오늘 본문은 악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죽이려는 것을 ‘가말리엘’이라는 율법교사가 막아서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1. 먼저, 34-35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가말리엘은 유대교 경전을 체계화한 ‘힐렐’의 손자로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스승이기도 한 그는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므로써 일반 백성들은 물론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도 존경받고 인정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가 죽었을 때 “율법의 영광이 떠났고 율법의 순수함과 거룩함이 죽었다”며 온 백성이 애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온 백성의 존경을 받던 가말리엘이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시기심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고 사도들에게 즉각 사형을 구형하려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말했습니다(35절). 이성적인 판단을 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가말리엘이 이렇게 사도들을 보호하려 나선 것은 사도들을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지만, 또 한 가지는 사도들이 평소 백성들을 돌보는 선행을 많이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사도들은 가난한 백성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등, 많은 선행으로 사람들로부터 칭송과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도들을 가말리엘이 좋게 본 것입니다. 만일, 사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덕적으로 흠이 있었다면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선하고 착한 일을 하여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기에 나서서 그들을 변호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실 때 ‘성도들의 선한 삶의 열매’들을 통해 지켜 주실 때가 많습니다. 성도들의 선행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교회에 관하여 호의를 갖게 하는 동기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할 수 있는 한 ‘많은 선행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권능을 부어 주시는 것은 바로 이를 위해서입니다.
2. 이어지는 36절-37절 함께 읽습니다.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성급하게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하여 ‘두 사람’을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먼저, ‘드다’는 주전 1세기 경에 무력으로 로마에 저항하던 자였는데, 스스로를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엘리야처럼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면서 백성들을 미혹하며 폭동을 일으키다 로마 군인에게 체포되어 사형을 당함으로 사건은 일단락되고 추종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사람인 갈릴리 출신인 유다는 주후 6년 경에 로마가 인구조사를 할 때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도 얼마 되지 않아 로마 군대에 의해 무참하게 살육당하고 그의 추종자들 역시 뿔뿔이 흩어졌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38절 함께 읽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가말리엘은 드다와 갈릴리 유다처럼 교회도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공동체라면, 그 우두머리인 예수가 죽은 이상 가만히 두어도 그들 스스로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39절 함께 읽습니다.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사야 43장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면 막을 자가 없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신 유일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위에 세워진, 하나님이 친히 세우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 속한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서 있는 한 그 누구도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성경은 로마서 8:3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리고 계속해서 38-39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대적하고 박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말리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막아선 것입니다.
그러자 40-41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도 오늘 본문의 사도들처럼 예수님 때문에 능욕을 당한 적 있습니까? 그랬을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많은 경우, 그러할 때 낙심하여 교회를 떠납니다. 자기를 지켜 주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자기를 능욕한 사람들에게 보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태도는 구원받은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채찍질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겨주심을 기뻐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기뻐했다는 말은 매우 즐거워하고 행복해 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매 맞고 위협당한 일을 사도들은 매우 자랑스럽고 명예롭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사도들이 이해가 되십니까?
그들이 기뻐한 것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11-12에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사도들은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보고 고난받는 일은 하나님께 칭찬받는 일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에도 동참하는 일임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심으로 자신들을 구원하셨듯이, 자신들이 받는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까지도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골 1:24). 그러므로 진정한 성도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뿐만 아니라 그분의 고난에도 함께하려고 합니다. 이런 성도가 참 성도입니다. 사도들이 매를 맞은 것은 예수님이 맞을 매를 대신 맞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자랑스럽게 여긴 것입니다.
“사탄은 열매가 익지 않은 나무는 흔들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탄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만 시험하고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위해 고난받는 일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제자들처럼 예수의 흔적을 지닌 복된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42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매 맞고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은 매를 맞아보셨습니까? 저는 군대에 가서 매를 맞아보았는데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사람들은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이 정신적인 고통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매를 제대로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일주일 동안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매를 맞으면 다시는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사도들이 맞은 매도 그보다 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온몸에 멍이 들고,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 매를 맞은 것에 대하여 기뻐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채찍과 위협으로는 사도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을 꺾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은 악인들이 악을 행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더 뜨겁게 사람들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화) 유럽 사람들은 가축의 목초지를 만들 때,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방법으로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논에 물을 가득 채워 잡초를 죽이고 그 후에 볍씨를 뿌립니다. 또 밭의 잡초들은 베어내거나 농약으로 죽이거나 뽑아냅니다. 그러나 유럽의 목축업자들은 잡초보다 자생력이 강한 좋은 목초의 씨를 잡초 사이에 뿌립니다. 그러면 몇 년이 되지 않아 자생력이 좋은 목초들이 잡초의 세력을 몰아내고 좋은 목초지를 형성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의 악을 어떤 방식으로 이겨내야 합니까? 우리의 힘으로 베어내거나, 뿌리를 뽑아야 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지를 뽑지 말고 심판 때까지 그냥 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 13:24-30). 그 대신에 더욱 열심히 선을 행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악인들이 악을 행하는 것보다 성도들이 선행을 더 많이 할 때, 그때 비로소 악을 선으로, 불의를 의로, 비진리를 진리로 이기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사도들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가말리엘을 통하여 제자들을 지켜 주셨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사도들과 같이 열심히 선을 행하며 복음을 전한다면 사도들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고난 중에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악하고 험한 세상에서 사도들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믿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되, 선을 행함으로써 악을 이겨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탄을 기다리며 선한 삶으로써 불의를 이겨낸 사도들을 본받아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도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돌보는 선행을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를 통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또한, 악한 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생각하지 못한 가말리엘의 중재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도 선한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는 교회를 세워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