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38. 아나니아의 순종과 사울의 거듭남 (행 9:10-19a)

우인택 목사
2025-04-06
조회수 921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예수님의 영광의 빛을 본 후,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사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다메섹 시내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8절). 그러나 이는 박해자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진리를 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1. 먼저, 10절 함께 읽습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하나님께서는 장차 교회의 큰 기둥이 될 사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을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준비된 어떤 위대한 사람을 부르시지도 않았습니다. 다메섹에 살고 있던 한 평범한 성도인 아나니아를 부르셔서 사울의 눈을 뜨게 하시고, 사울이 성도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 일이 크고 중요하다고 해서 어떤 특별한 사람을 부르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신실하게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부르셔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지금 살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면, 그 자리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면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회자가 되거나, 선교사가 되어 먼 나라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를 떠나야만 하나님의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때로는 오늘 본문의 사울처럼 해외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아 그가 살아가고 있던 삶의 자리를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이 하던 모든 일을 내려놓고 목회자가 되거나 타국에 가서 선교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일이고, 자기 삶의 자리를 지키며 성도로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묵묵히 이름없이 빛없이 자기 삶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로서의 삶의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믿음으로 자기의 삶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부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삶의 자리야말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사역지’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삶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복음의 일꾼으로 여러분을 파송하신 사역지이고, 그 자리에서 복음의 일을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꿈꾸기 전에, 먼저 자기 삶의 자리에서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성도답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행하며 예수님의 향기를 나타내는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여러분을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나니아처럼 때에 따라 특별한 곳으로 특별한 일꾼으로 보내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오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나는 지금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어떠한 삶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명과 사명의 삶인지?” 돌아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1절 함께 읽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사울은 다메섹에 온 후,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는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아마도 이때 그는, 과거에 자신이 교회에 행했던 악한 일에 대하여 깊이 뉘우치며 하나님께 자비와 용서를 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울의 기도에 대하여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심으로써 응답하셨습니다. 아나니아를 사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많은 경우에 ‘사람’을 기도에 대한 응답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 바다를 가르시거나,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신 것처럼 직접적인 기적의 역사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신실한 성도를 통해서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도 합니다.

(예화) 얼마 전에 소천한 탤런트 김수미 씨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김수미 씨가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더니 남편이 사업실패를 겪으며 빚더미에 올라앉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고 나니 그 많던 친구들이 김수미 씨를 피하기에 급급했다고 합니다. 김수미 씨는 급한 대로 동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몇백만 원씩 돈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동료 배우 김혜자 씨가 정색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얘, 넌 왜 나한테 돈 빌려달라는 소리를 안 해? 추접스럽게 몇백씩 꾸지 말고,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되니?” 하며 통장을 꺼내놓았습니다. “이건 내 전 재산이야. 나는 돈 쓸 일이 없어. 다음 달에 아프리카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에 있었네. 다 찾아서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나면 그때 주든가….” 김수미 씨는 그 통장을 받아 그때까지 지고 있던 빚을 모두 청산했습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김혜자 씨에게 받은 그 돈을 모두 갚았습니다.

피를 이어받은 사람도 아니고 친해 봐야 남인 자신에게 김혜자 씨가 전 재산을 내어준 것에 김수미 씨는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입장이 바뀌어 김혜자 씨가 그렇게 어려웠다면 자신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한번은 김수미 씨가 김혜자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언니, 언니가 아프리카에 포로로 납치되면, 내가 나가서 포로교환 하자고 할 거야. 난 꼭 언니를 구할 거야!”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을 위해서 가진 모든 것을 내어준 김혜자 씨에게, 김수미 씨 역시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을 정도의 사랑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녀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당연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이와 비슷한 일을 한두번씩은 겪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께서 평범한 한 성도를 통해서 또 다른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은, 평범한 성도인 우리들도 언제나 다른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도구가 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성도, 곧 하나님의 일꾼인 이상 우리는 다른 성도의 기도에 대하여 결코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도구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성도의 기도 제목을 듣게 하신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그 형제의 기도에 대한 응답의 도구가 되라는 명령 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나 형제를 생각나게 하신다면, 그것은 그들에 대하여 내가 ‘아나니아’가 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하는 성도들의 기도 제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제목이 혹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지 깊이 숙고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언제든지 순종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 곧 하나님의 일꾼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에 이러한 자세가 있는지 살피시고, 만일 부족하다면 오늘부터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서의 삶,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로서의 삶을 결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3-14절 함께 읽습니다.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사울을 찾아가서 그를 도우라는 주님의 명령을 들은 아나니아는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잔혹하게 성도들을 박해했다는 사실과 또한 그가 다메섹에 온 이유도 성도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압송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면서 그를 돕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항변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일꾼이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아나니아의 항변이 너무나도 정당한 것임에는 변론할 가치가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사울은 결코 아나니아의 말처럼 하나님의 일꾼이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까? 그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또한 어떠한 조건도 없이 불러 구원을 베푸시고 또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잊는 순간 우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교만한 종교인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자격도 없는 우리를 부르셔서 복음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를 통해 겸손과 양선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나는 죄가 많아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없다고 스스로를 자학한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겸손은 자신의 죄가 부끄러워 스스로를 자학하거나, 나는 안돼하며 숨고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까지 용서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죄 된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부르시되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에게 그에 합당한 사명과 힘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17-18절에 아나니아는 이러하신 구원의 섭리를 깨닫고 사울에게 안수하여 그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베풂으로써 그를 성도가 되게 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는 사울이 성도가 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만, 주님께서 “가라” 명하시며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에 순종하여 안수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내 생각과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를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은 항상 우리의 생각을 넘어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를 믿고 순종함으로써 복음을 위해 일평생을 헌신할 수 있었고, 그를 통해 복음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믿음의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자세가 우리 대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믿음의 자세를 갖지 않으면 우리 자손손들은 영원한 사망의 길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아나니아의 순종을 바라보면서, 믿음의 자세를 다시 한번 점검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목회자가 되거나 타국에 가서 선교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묵묵히 이름없이 빛없이 자기 삶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로서의 삶의 자세임을 배웠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의 자리야말로 하나님께서 복음의 일꾼으로 파송하신 사역지이고, 그 자리에서 복음의 일을 하기를 원하심을 알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선하게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하나님께서 평범한 한 성도를 통해서 또 다른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언제나 다른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도구가 될 준비를 갖추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주소 : 경기도 화성시 10용사로 336-8  / 전화 : 378-5491   

담임목사 : 우인택 (010-4342-8775)  / e-mail : joycs1@nate.com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저작권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