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54.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 (행 12:1-5)

우인택 목사
2025-08-03
조회수 632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성도의 삶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지침을 교훈 받았습니다. 첫째는 ‘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선지자로서의 직분’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기회라는 것이고,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봉헌’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정성껏 드리는 것에 있다는 것에 대하여 교훈 받았습니다. 이 세 가지를 늘 가슴 깊이 품고 행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닥친 위기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여기에서의 ‘그 때’는 안디옥 교회가 부흥하여 이방인 선교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때이자, 수년 간 거듭된 흉년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이방인 교회들의 도움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을 때를 가리킵니다. 교회가 하나로 뭉쳐 모든 어려움을 딛고 든든히 서가고 있던 그때입니다.

그런데 그때, 모든 것이 형통해야 할 그때, 헤롯 왕이 등장했습니다. 여기에서의 헤롯 왕은 예수님의 탄생 때 유아 학살 명령을 내렸던 헤롯 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헤롯 왕은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두매 Ἰδουμαία’ 사람이었습니다. 이두매는 히브리어 ‘에돔 אֱדֹם’의 헬라어 음역으로, 그는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이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면서 마치 유대인인 것처럼 로마제국에 뇌물을 주고 왕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두매라는 출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성전을 화려하게 건축하는 등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헤롯 아그립바 1세가 교회를 박해한 것도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환심을 사서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로써, 이제까지 있었던 박해가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한 종교적인 박해였다면, 헤롯 왕에 의한 박해는 국가 권력을 이용한 정치적인 박해였습니다. 이는 종교적인 박해보다 더 가혹했습니다. 막연한 위협이 아니라 왕이 직접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한,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박해였습니다.

헤롯 왕은 먼저, 교회 최고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살해했습니다. 야고보는 어부 출신으로 베드로와 요한과 더불어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인류 구원에 대한 대화를 하실 때 그 모습을 직접 보여주실 만큼 그를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도 중에 첫 순교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던 제자였음에도 매우 젊은 나이에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우레의 아들’이라 불릴 만큼 열정적이었던 그가 사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해 보기도 전에 허무하게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교회는 가장 위대한 지도자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야고보가 순교할 때 구원해 주지 않으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는 제자였다면 그가 사도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잘 믿으면 만사가 형통하고, 고난과 실패도 피해 가는 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위기에 처할 때 기도하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구원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고 언제나 만사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또 고난과 실패를 당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성도라도 고난과 실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야고보와 같이 많은 훈련을 받았음에도 아무런 업적도 남기지 못하고 순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또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지만(시 121:4) 때로는 고난과 죽음에 처하게도 하십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성도들을 보호할 능력이 없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고난을 허락하시고, 또 심지어 죽음에까지 버려두시는 데에는 더 크신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에는 성도의 신앙 연단을 위해 불가피하게 고난을 허락하기도 하시고, 어떤 때는 큰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죽음에 이르게도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를 순교하게 하신 것도 그러신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교회사를 통해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야고보의 순교는 그의 순교의 피를 통해 복음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하는 토양을 만드시고자 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나, 형통이나 고난의 문제는 하나님의 능력과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관련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성도들을 보호하시지만, 어떤 큰 뜻에 따라서는 때로 고난과 죽음을 허락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 오히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크신 뜻을 발견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음에도 복음으로 인해 고난받고, 죽음의 위기에까지 처할 때는 그것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인 줄 알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나는 과연 사도 야고보처럼 순교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뜻을 믿고 담대할 수 있을까?”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믿음의 삶을 다짐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3-4절 함께 읽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헤롯 왕은 자신이 야고보 사도를 죽인 일로 인해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죽이려고 체포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유대인의 명절인 무교절 기간이라 차마 죽이지 못하고, 유월절이 끝난 후 처형하려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혹시 탈옥을 시도할까 하여 군인 16명으로 감옥을 단단히 지키게 했습니다.

그런데 헤롯 왕이 이렇게까지 교회를 박해한 것은 그가 교회에 대하여 나쁜 감정이 있거나 어떤 신념이나 종교관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유대인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러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만일, 유대인들이 이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는 야고보나 베드로에게 무관심했을 것입니다. 

그는 겉모습은 왕이었지만 유다 총독 빌라도가 그랬던 것처럼 실상은 권력의 노예와 같았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권력을 지키려고 유대인들에게 이용당하여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또 베드로까지 죽이려는 악행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헤롯 왕의 모습에서, 불의한 권력에 취하게 되면 이성을 잃고 권력의 노예가 되어 악한 일을 거듭하여 자행하게 됨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권력을 소유하고 있고 누리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실상은 권력의 노예가 되어 점점 더 깊은 악행에 빠짐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헤롯 왕을 조정하여 야고보를 살해한 유대인들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살인을 한 것을 기뻐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 거룩한 종교인인 것처럼 행세했지만, 실상은 세상의 권력을 이용하여 성도들을 죽이고 교회를 박해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살인을 하지 않았지만 권력자를 부추겨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보다도 더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아무리 큰 권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이성과 양심으로 권력욕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는 권력의 노예일 뿐입니다. 아무리 많은 성경 지식이 있고, 영적인 경험이 풍부하고, 성령의 은사를 소유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의 삶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지 않다면 그는 구원받은 성도가 아닙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부유하다고 할지라도 그 돈을 의로운 일에 사용할 줄 모르면 그는 돈의 노예일 뿐입니다. 

참 권력자는 권력을 선한 일에 사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참 신앙인은 성경 지식과 성령의 은사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부자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어떠한 권력을 꿈꾸고, 어떠한 신앙을 소망하며, 어떠한 부를 이루기를 원하십니까? 헤롯 왕과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반면교사 삼고, 참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소망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5절 함께 읽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베드로가 옥에 갇히자 성도들은 데모를 하거나 권력자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인맥을 동원하여 구명 로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헤롯 왕을 찾아가 베드로를 감옥에 투옥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따져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두려움에 빠져 우왕좌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고난이 그들을 덮쳤으나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그 고난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인간적인 안목으로 볼 때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 같습니다. 야고보가 이미 순교했기에 베드로가 처형되기 전에 빨리 어떤 인간적인 수단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매우 무책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다만, 교회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어떻게 다가옵니까? 그들이 바른 선택, 최고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까?

(예화) 2018년 10월 23일, 이혜리 사모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있을 때, 성도님들이 교회에 모여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저는 “이제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진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혜리 사모의 상처가 급속도로 치유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중환자실에 일주일이나 있던 환자가 두 다리의 골절 외에는 모두 치유되는 놀라운 일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교회에 모여 기도를 한 것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기도가 가장 지혜롭고 빠른 해결책이 됨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어쩔 수 때에 마지막에 붙잡는 동아줄이 아닙니다. 기도는 성도들의 가장 강한 무기이자 해결책입니다. 성도들이 고난 앞에 섰을 때 좌절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불의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보복하려는 마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교회가 아니라 권력자를 찾아 나서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기도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지혜를 주시고 이길 힘을 주심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잠언 20:22에서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기다리라’는 말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모든 약함을 아시고 도우실 것을 믿고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기도는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로 일치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의 소망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가 될 때까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심과 상한 심령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예수님의 삶을 대신 살아가기를 결단하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성도만이 소유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기도는 성도가 고난 속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입니다. 교회는 기도할 때 가장 교회다워지며, 성도는 무릎 꿇을 때 가장 강해집니다.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그러나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더라” 

이 말씀이 오늘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하늘 보좌를 움직이고, 묶인 것을 풀며, 닫힌 문을 여는 능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교회가 어떤 문제 앞에서도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돈과 권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고난에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복음으로 인해 고난받고, 죽음의 위기에까지 처할 때, 그것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인 줄 알고 기뻐하는 저희가 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하는 저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를 통해 세상의 돈과 권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고난에서 승리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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