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49. 우리는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이라 (행 10:39-43)

우인택 목사
2025-06-29
조회수 723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 사도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인데, 여기에는 우리가 붙들어야 할 복음의 세 가지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1. 먼저, 39-40절 함께 읽습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을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동안 행하신 모든 일과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고, 그들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예수님에 대하여 단지 배우고 듣고 이해하고 믿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직접 교제함으로써 예수님에 대하여 전인격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인격적으로 교제함으로써 예수님에 대하여 분명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베드로처럼 자신있게 “우리는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힘주어 말하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고백한 이같은 체험은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과 제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을 만나 주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베드로에게 주셨던 것과 똑같이 ‘체험적인 신앙’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와 교제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의권능을 부어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의 말을 듣고 지식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의 체험을 통해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매일 매 순간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숨결과 돌보심을 느끼며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의 증인들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체험이 없다면 어떻게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증언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체험이 없이 복음을 전한다면, 자기도 확신하지 못하는 복음을 억지로 전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도에 힘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복음의 첫 번째 핵심은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의 권능을 체험한 사람만이 오늘 본문의 베드로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증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기도와 간구로 날마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그를 통해 베드로처럼 담대하게 “나는 복음의 증인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입니다. 복음의 일꾼입니다.

그런데 혹, 아직도 예수님을 만난 것에 대하여 자신이 없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하시면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하게 믿을 수 있도록 체험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가식이 없이 진정한 마음으로 간구한다면 반드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를 통해 베드로처럼 간증의 주인공이 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41절 함께 읽습니다.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지만, 부활하신 후 모든 사람 앞에 나타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미리 택하신 사람들, 곧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만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의 증언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은 5백여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고전 15:6). 

그렇다면 여러분,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부활하신 모습을 세상 사람들, 곧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 종교지도자들, 로마군인들,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보이시지 않고 극소수의 믿는 사람들에게 보이신 것일까요? “그들에게 나타나셨다면 더 많이, 더 빠르게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을까요?” 왜, 몇몇 믿는 사람들 앞에만 나타나셔서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성도들을 박해하도록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탐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엉뚱한 오해와 근거 없는 비방의 여지만을 제공하게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눈으로 본다고 해서 다 믿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본다고 해서 모든 의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모든 사람 앞에 부활하신 모습을 나타내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믿고 구원받게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의 일례로,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의 어떤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많이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탐욕에 빠져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일으키신 성령의 권능과 기적도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하지 못할 만큼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적을 체험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대적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했던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다고 믿음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도리어 어찌하든지 다시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온갖 거짓말로 예수님의 부활을 왜곡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음은 아닙니다. 오직 믿는 자들만이 누리게 되는 복음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얼마나 많은 말씀이 선포되고 넘쳐나는 간증들이 있습니까? 그런데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나가고 있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체험한 사람들까지도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예수님을 부인하고 외면하며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의 두 번째 핵심은 십자가 구원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과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한 사람만이 믿음과 복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얼마나 복 받은 사람들입니까? 오늘 본문의 베드로처럼 복음을 전하는 생명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얼마나 영광스럽고 귀한 분들입니까? 

우리 옆 사람과 인사할까요? “당신은 참으로 귀하신 분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복받은 분입니다.” 오늘, 이러한 믿음과 구원 위에 서 있는 여러분에게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임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42절 함께 읽습니다.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구원자이심과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을 심판하는 재판장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재림의 날을 심판의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로만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그날의 심판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예수님 앞에서 진정으로 믿는 자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 심판대에 섰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에게도 마지막 심판의 날은 두려움의 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불의가 낱낱이 하나님 앞에서 증거로 채택이 될 것이며, 결국 그로 인해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성경에는 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7:21-23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너무나도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 가운데, 그래서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성도들 가운데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할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라도 심판받고 멸망에 빠질 수 있다고 말씀입니다. 성도라고 말하면서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알고 있던 심판과 좀 다르지 않습니까? 

여러분, 성경에 우리가 성도로서의 삶을 살 때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해야 함을 경고까지 하며 강조하여 가르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구원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주어진 것이지만, 그 구원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의롭고 선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하고 싶은 것 다 하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 구원받게 된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고난을 당한 것입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성경이 제시하는 의와 선을 행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43절 함께 읽습니다.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이미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또 매일같이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죄 용서가 효력이 부족해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죄용서는 이전에 지은 죄, 지금 짓고 있는 죄, 미래에 지을 죄까지도 용서하시는 죄 사함입니다. 그러하기에 구원파라는 이단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모든 죄를 용서받은 우리가 계속해서 회개를 반복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자가 받는 죄 사함은 단순히 지은 죄를 용서한다는 것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 용서와 더불어 지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마음의 결단을 요구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점점 더 회개할 일들이 줄어들게 됩니다. 신앙이 성장하게 되고 점점 더 삶이 의롭고 선하게 변화되어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배운 복음의 세 가지 핵심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의 권능을 체험한 사람만이 오늘 본문의 베드로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증언할 수 있다는 것과 십자가 구원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한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것과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구원자이심과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을 심판하는 재판장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회개는 단순한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을 넘어서서 지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마음의 결단을 요구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같은 교훈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신앙과 삶을 돌아보는 구원의 복된 삶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삶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 주신 복음의 세 가지 핵심을 가슴 깊이 품고 성도로서 합당한 삶을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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