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늘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 고백은 과연 진짜 믿음일까요?
어떤 한 남자가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330m나 되는 외줄을 설치했습니다. 그는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어떤 보호장비도 없이 이 외줄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넜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건너기도 하고, 눈을 가린 채 걷기도 했습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묘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외발 수레를 앞에 두고 많은 관중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외발 수레를 타고 줄 위를 건너갈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함성을 지르며 “믿습니다! 당신은 할 수 있어요!”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말했습니다. “정말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저와 함께 이 수레를 타고 강을 건너실 분 계십니까?”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한 남자가 나와서 수레에 올라탔습니다. 그는 곡예사의 매니저였습니다. 그는 곡예사를 알고 있었고, 그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외발 수레를 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수만 명의 관중은 모두가 자신 있게 “믿는다” 말했지만, 실제로 수레에 타지 않았습니다. 오직 곡예사의 실력을 명확하게 아는 한 사람만이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정말 하나님을 명확하게 아십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습니까?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다시 점검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심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맡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사람 고넬료를 향한 베드로의 설교 도입 부분입니다.
1. 먼저, 34절 함께 읽습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합니다. 혈통, 출신, 학력, 경제력, 지위 등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36절 함께 읽습니다.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한 삶을 사는지, 의와 선을 행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지를 보시고 구원하십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만이 구원의 유일한 기준입니다.
성경의 예를 든다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은 한낱 이름 없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부모로부터도 형제들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될 만한 특별한 자질을 갖춘 자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15세의 나이에 당대 최고로 용맹했던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이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자 마음에 분이 일어나 그에게 결투를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골리앗을 이길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외치며 오직 믿음으로 거인 골리앗을 넘어뜨렸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까닭 없이 자신을 십여 년간 괴롭히던 사울 왕을 심판할 절호의 기회를 두 번이나 얻었지만, 자신이 직접 사울을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었기에 그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맡겨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하게 인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예수님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영원히 빛나는 믿음의 본으로 세우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고넬료도,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억압하던 로마제국의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구원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강권하여 그를 구원하신 것은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역시 환상을 통해 그러하신 하나님의 뜻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몇몇 사람의 증인까지 대동하고 유대교에서 금하던 이방인의 집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실 때, 그 판단기준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진심으로 믿고 경외하느냐?’ 그리고 ‘믿음대로 의롭게 사느냐, 선을 행하고 이웃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한다면,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고 섬길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참 성도로 삼으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주심과 동시에 이 땅의 삶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다시 한번 결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36절 함께 읽습니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유의 주’라고 부릅니다. 만유의 주는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칭호입니다. 그는 이 칭호를 사용하면서 구원의 유일한 길로서의 예수님을 고넬료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만유’는 ‘세계 만물’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복음을 ‘화평의 복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복음이 인간과 하나님, 그리고 인간과 인간을 화해시켜서 서로 진정한 화평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분쟁과 시기와 미움과 다툼이 가득하고 참된 평화를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 그 죄는 인간을 한없이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마음속에 더이상 하나님도, 이웃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직 자신, 오직 ‘나’만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창조 섭리에 따라 ‘힘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보호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힘없는 사람을 짓밟고 희생시키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라도 자신에게 조그마한 피해라도 입히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세상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주위에는 언제나 분쟁과 다툼과 미움과 시기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한 인간과는 더이상 교제하지 않으셨습니다(사 59:2). 악한 인간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복음은 이러한 세상의 모든 죄를, 아무 죄 없는 예수님이 대신 죗값을 치루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모든 죗값을 치루셨기에 이제 우리는 더이상 죄로부터 정죄를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복음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창조 당시의 관계로 회복시키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켰습니다. 그리고 서로 분쟁하던 이웃과의 관계를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관계로 회복’시켰습니다. 세상에서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진정한 평화가 예수님으로 인해 이 땅에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회복의 은혜를 먼저 받고 체험한 자로서 ‘아직 죄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성도의 삶,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 이 나라가 진정으로 평화로운 곳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부부 사이, 부모와 자녀 사이, 형제 사이, 친척과 이웃 사이의 관계회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먼저 복음을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복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어떤 방법을 찾지 말고 오직 복음을 알고 전하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면 반드시 관계회복의 날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세상의 역사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이를 믿고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화평을 이루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37절 함께 읽습니다.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베드로는 고델료에게 “너희도 알거니와”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고넬료 역시 38절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행하신 성령의 권능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38절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성령의 권능으로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하셨는데, 그 일은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마귀에게 눌렸다는 말은 마귀의 압제 아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도 못하고 그 영혼들은 영원한 멸망으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그들을 마귀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가르침을 들었음에도 구원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평소 예수님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삼 년여에 걸쳐서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에 대하여 거의 매일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유대 총독의 호위부대 장교였기에 유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하여는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사람이 어디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만일 고넬료가 하나님의 계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음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그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넬료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맡겼기에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십니까? 여러분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제가 설교 초두에 드린 예화처럼, 많은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온 삶의 열매들이 전혀 없습니다. 큰 소리로 기도하고, 힘차게 찬송하고, 말씀을 배우고, 교회를 섬기고, 전도를 하지만, 실제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성경 지식은 많은데,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구원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위의 것을 추구하고 위의 것을 소망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고넬료와 같은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시면 후회함이 없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삶으로 여러분을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하는 사람을 구원하심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가 세상에서 화평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복음을 영접하는 것인 줄 알아, 먼저는 자신이 온전한 믿음 위에 서고 그 후에는 가족과 이웃을 복음으로 인도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생명을 구하는 일에 늘 관심을 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삶을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늘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 고백은 과연 진짜 믿음일까요?
어떤 한 남자가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330m나 되는 외줄을 설치했습니다. 그는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어떤 보호장비도 없이 이 외줄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넜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건너기도 하고, 눈을 가린 채 걷기도 했습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묘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외발 수레를 앞에 두고 많은 관중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외발 수레를 타고 줄 위를 건너갈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함성을 지르며 “믿습니다! 당신은 할 수 있어요!”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말했습니다. “정말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저와 함께 이 수레를 타고 강을 건너실 분 계십니까?”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한 남자가 나와서 수레에 올라탔습니다. 그는 곡예사의 매니저였습니다. 그는 곡예사를 알고 있었고, 그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외발 수레를 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수만 명의 관중은 모두가 자신 있게 “믿는다” 말했지만, 실제로 수레에 타지 않았습니다. 오직 곡예사의 실력을 명확하게 아는 한 사람만이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정말 하나님을 명확하게 아십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습니까?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다시 점검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심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맡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사람 고넬료를 향한 베드로의 설교 도입 부분입니다.
1. 먼저, 34절 함께 읽습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합니다. 혈통, 출신, 학력, 경제력, 지위 등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36절 함께 읽습니다.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한 삶을 사는지, 의와 선을 행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지를 보시고 구원하십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만이 구원의 유일한 기준입니다.
성경의 예를 든다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은 한낱 이름 없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부모로부터도 형제들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될 만한 특별한 자질을 갖춘 자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15세의 나이에 당대 최고로 용맹했던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이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자 마음에 분이 일어나 그에게 결투를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골리앗을 이길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외치며 오직 믿음으로 거인 골리앗을 넘어뜨렸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까닭 없이 자신을 십여 년간 괴롭히던 사울 왕을 심판할 절호의 기회를 두 번이나 얻었지만, 자신이 직접 사울을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었기에 그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맡겨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하게 인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예수님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영원히 빛나는 믿음의 본으로 세우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고넬료도,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억압하던 로마제국의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구원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강권하여 그를 구원하신 것은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역시 환상을 통해 그러하신 하나님의 뜻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몇몇 사람의 증인까지 대동하고 유대교에서 금하던 이방인의 집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실 때, 그 판단기준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진심으로 믿고 경외하느냐?’ 그리고 ‘믿음대로 의롭게 사느냐, 선을 행하고 이웃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한다면,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고 섬길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참 성도로 삼으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주심과 동시에 이 땅의 삶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다시 한번 결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36절 함께 읽습니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유의 주’라고 부릅니다. 만유의 주는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칭호입니다. 그는 이 칭호를 사용하면서 구원의 유일한 길로서의 예수님을 고넬료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만유’는 ‘세계 만물’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복음을 ‘화평의 복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복음이 인간과 하나님, 그리고 인간과 인간을 화해시켜서 서로 진정한 화평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분쟁과 시기와 미움과 다툼이 가득하고 참된 평화를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 그 죄는 인간을 한없이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마음속에 더이상 하나님도, 이웃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직 자신, 오직 ‘나’만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창조 섭리에 따라 ‘힘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보호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힘없는 사람을 짓밟고 희생시키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라도 자신에게 조그마한 피해라도 입히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세상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주위에는 언제나 분쟁과 다툼과 미움과 시기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한 인간과는 더이상 교제하지 않으셨습니다(사 59:2). 악한 인간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복음은 이러한 세상의 모든 죄를, 아무 죄 없는 예수님이 대신 죗값을 치루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모든 죗값을 치루셨기에 이제 우리는 더이상 죄로부터 정죄를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복음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창조 당시의 관계로 회복시키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켰습니다. 그리고 서로 분쟁하던 이웃과의 관계를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관계로 회복’시켰습니다. 세상에서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진정한 평화가 예수님으로 인해 이 땅에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회복의 은혜를 먼저 받고 체험한 자로서 ‘아직 죄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성도의 삶,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 이 나라가 진정으로 평화로운 곳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부부 사이, 부모와 자녀 사이, 형제 사이, 친척과 이웃 사이의 관계회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먼저 복음을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복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어떤 방법을 찾지 말고 오직 복음을 알고 전하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면 반드시 관계회복의 날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세상의 역사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이를 믿고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화평을 이루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37절 함께 읽습니다.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베드로는 고델료에게 “너희도 알거니와”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고넬료 역시 38절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행하신 성령의 권능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38절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성령의 권능으로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하셨는데, 그 일은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마귀에게 눌렸다는 말은 마귀의 압제 아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도 못하고 그 영혼들은 영원한 멸망으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그들을 마귀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가르침을 들었음에도 구원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평소 예수님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삼 년여에 걸쳐서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에 대하여 거의 매일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유대 총독의 호위부대 장교였기에 유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하여는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사람이 어디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만일 고넬료가 하나님의 계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음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그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넬료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맡겼기에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십니까? 여러분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제가 설교 초두에 드린 예화처럼, 많은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온 삶의 열매들이 전혀 없습니다. 큰 소리로 기도하고, 힘차게 찬송하고, 말씀을 배우고, 교회를 섬기고, 전도를 하지만, 실제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성경 지식은 많은데,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구원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위의 것을 추구하고 위의 것을 소망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고넬료와 같은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시면 후회함이 없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삶으로 여러분을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하는 사람을 구원하심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가 세상에서 화평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복음을 영접하는 것인 줄 알아, 먼저는 자신이 온전한 믿음 위에 서고 그 후에는 가족과 이웃을 복음으로 인도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생명을 구하는 일에 늘 관심을 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삶을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