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66.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행 15:6-11)

우인택 목사
2025-10-26
조회수 284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여러분, 자석에 쇠붙이를 붙여두면 그 쇠붙이에도 자력이 생기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과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자격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측량할 수 없는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어떤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로만 가능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은혜의 복음을 붙들고 감사와 순종의 열매를 맺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먼저 6절 함께 읽습니다.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성도가 구원받는 것이 은혜로냐, 아니면 행위로냐?”라는 초대교회의 운명을 가를 신앙의 분기점에서, 역사적인 ‘제1차 예루살렘 공의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교회가 한 사람의 독단이 아니라, 사도와 장로와 온 성도들이 함께 의논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성도는 “교회의 모든 것을 목회자의 뜻을 따라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의 의견에 순종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모든 성도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힘을 모아 세워가는 곳이 교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상고한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세울 때, 베드로가 독단적으로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11명의 사도와 120명의 성도가 함께 모여 기도하며 새로운 사도를 세웠습니다. 또, 사도행전 6장에서 과부들의 구제로 다툼이 일어났을 때도, 사도들이 강압적으로 불만을 잠재우지 않고, 온 성도들과 함께 모여 일곱 집사를 세움으로써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특정한 지도자가 일방적으로 이끌어가는 곳이 아니라, 어떤 문제든지 목회자와 온 성도가 함께 모여 의논하며, 힘을 모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은 이러한 초대교회의 전통을 따라 ‘제직회’ 또는 ‘공동의회’라는 모임을 통해 교회의 중요한 문제를 모든 성도들이 ‘함께’ 의논하여 결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에서는 반대 의견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색다른 의견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잘못 이해하고 있는 말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야 잘못된 신앙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의 주장과 할례주의자들의 생각이 정반대였습니다. 할례주의자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복음을 변질시키는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들에 대해 비난하는 분위기는 없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강제로 제지하지도 않았습니다. 인격적으로 모욕을 주는 이도 없었습니다. 그들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충분히 말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이 공식적으로 드러났고, 복음은 제자리를 찾았으며, 교회가 둘로 깨어지는 위기를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로 갈라서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을 향한 선교 사역은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들이 충분히 자기의 의견을 말할 수 없었다면 이러한 아름다운 결말이 도출될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그들은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하다가, 뒤에서는 ‘우리가 진짜 복음’이라며 교회를 분열시키고 새로운 교단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초대교회를 본받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모든 문제를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교회로 세워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우리 교회로 세워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 이어지는 7절 함께 읽습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베드로는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최고지도자였지만 성급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자기 의견에 따르라고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공의회 안에서 ‘많은 변론’이 있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이때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할례주의자들의 주장이란 들을 가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으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자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의 주장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열심과 주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묵묵히 들으며 그들이 의견을 충분히 다 말할 때까지 참았습니다.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베드로의 진정한 지도력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는 먼저, 분쟁이 되는 사안에 대하여 충분히 토론하게 함으로써, 할례주의자들이 스스로 자기 논리의 모순을 발견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일어나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의 구원을 통한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며 논쟁을 정리했습니다.

이처럼, 반대되는 의견을 인내심을 갖고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할 때 들어주는 사람의 말에 무게가 실리게 됩니다. 설득력이 있게 됩니다. 교회에서의 대화는 이러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어야 합니다. 비록 자기와 다른 견해라 할지라도 인내심을 갖고 들어줄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진리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합니다. 복음에 반하는 말이나 주장은 바르게 시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과정’입니다. 아무리 옳은 일도 우격다짐으로 하려 하면 문제가 일어납니다. 옳은 말도 상대방을 무시하면서 하게 되면 반발을 사게 됩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주장이라도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인내력과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말이 옳기에 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들을 만해서 들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들어주는 인내의 과정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설득하기보다, 성령께서 마음을 움직일 때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된 지도력은 말보다 경청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러한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3. 긴 변론 끝에 베드로가 선포한 내용의 핵심은 9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깨끗하게 하셨으며, 구원에는 차별이 없음을 증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여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복음을 전하거나, 스스로 구원받을 자와 버림받을 자를 규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도전이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0절에서 베드로는 할례주의자들을 단호하게 책망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여기에서의 ‘멍에’는 율법을 뜻합니다.

사실, 율법은 유대인들도 지키기 어려운 멍에였습니다. 율법은 타락한 인간이 지키기에는 너무도 벅찬 멍에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갈라디아서 3:24에서 율법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의지하게 하는 초등교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할례주의자들은 자기들도 지키지 못한 율법을 이방인 성도들에게 지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억지스러운 행동입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종교일수록 사람이 더 많이 몰려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은 무언가 특별한 멍에를 멜 때 종교적 효험이 나타나리라는 기대 심리를 갖게 됩니다. 부처 앞에 삼천 배를 올리고 나면 어떤 효험이 나타날 것만 같습니다. 몸에 할례를 받고 나면 무언가 거기에 ‘부적 효과’가 나타날 것만 같습니다.

이러한 심리를 기막히게 이용하는 것이 타락한 거짓 종교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율법주의적인 유대교가 그러했으며, 중세의 타락한 로마 가톨릭이 면죄부를 팔며 그러했습니다. 오늘날 이단들도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를 자극하여, 할 수만 있으면 신실한 성도라도 굴레를 씌우려 합니다.

더욱이 이 멍에는 이단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 ‘율법주의의 멍에’가 교묘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과 헌금을 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한 자발적인 순종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율법주의의 멍에를 메고 있는 성도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주일을 목숨처럼 지켜야 구원받습니다.” “십일조를 해야 복을 받습니다.” “새벽기도를 빠지면 하나님이 벌주실 거야.” 이 모든 것은 은혜의 복음에 나의 행위라는 ‘조건’을 다는 율법의 멍에입니다.

여러분, 멍에만 지우려는 거짓 종교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참 신앙은 예수님 안에서의 자유를 줍니다.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을 줍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11절에, 오늘 설교의 제목이자 예루살렘 공의회의 최종 결론으로 그의 발언을 마무리 짓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한 길, 우리의 행위나 자격이 아닌,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이것을 항상 기억하고, 겸손하게 성도로서의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베드로가 선포한 것처럼 저희도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 믿습니다.” 이를 가슴 깊이 새기고 저희 안의 교만과 자랑을 모두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율법의 멍에를 벗고 복음의 자유를 누리며, 은혜받은 성도답게 감사와 순종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은혜의 복음 위에 굳게 서서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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