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64.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행 14:19-28)

우인택 목사
202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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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24.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25.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1956년, 짐 엘리엇과 4명의 젊은 선교사들은 외부인을 보면 무조건 죽이는, 폐쇄적이었던 남미의 에콰도르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다 모두 정글에서 순교했습니다. 순교 당할 당시 그들에게는 호신용 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주민들이 공격할 때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그들은 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선교사의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총을 갖고 있었잖아. 그들이 창으로 찌르러 왔다면 왜 그냥 맞고 죽었어? 왜 총을 쏘지 않았어?” 어머니는 눈물을 삼키며 대답했습니다. “애야 아빠는 그들을 사랑했단다. 아빠는 예수님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은 하나님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몰랐고, 아직 복음을 듣지 못했기에 하나님 앞에 설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기에 총을 쏠 수 없었던 거야.” 

그리고 순교한 선교사들의 부인들과 자녀들은 다시 에콰도르 원주민들에게 돌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들고 간 것은 복수의 총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결국, 원주민들은 복음을 받아들였고 선교사를 죽였던 원주민은 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복음을 전하다 순교 직전까지 간 바울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아무리 자신을 대적해도 결코 그들과 맞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박해하면 그대로 당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지만, 다시 일어나 그들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이렇게까지 복음을 전한 것은, 그 땅에 아직도 복음을 들어야 할 영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먼저, 19절 함께 읽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쫓아낸 유대인들이 루스드라까지 쫓아왔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착각하고 제사까지 지내려던 사람들을 충동질해서, 순식간에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이는 폭도로 돌변하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어떤 말로 루스드라 사람들을 선동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을 선동하는 그들의 능력은 매우 탁월했습니다.

이것은 악이 지닌 특징의 한 단면입니다. 악은 마치 누룩과 같습니다. 급속하게 퍼집니다. 일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을 때,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메시아’라고 외쳤습니다. ‘호산나’하며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 며칠이 지나지 않아,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몇 마디 말에 선동당하여 순식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치는 자들로 돌변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놓아주려는 유다 총독 빌라도를 폭동을 일으킬 듯이 압박하여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지극히 적은 숫자였지만,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을 악으로 물들이는 놀라운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6:6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죄라도 주의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늘 깨어 경계해야 합니다. 만일, 방심하면 죄는 순식간에 ‘큰 세력’이 되어 우리를 압박하고 우리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누룩과 같이 급성장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적 능력이 있듯 사탄의 세력도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급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심정으로 악의 세력을 주시하고 경계를 풀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에서 지금 겪고 있는 죄의 미혹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거절함으로 인해 받는 박해는 무엇입니까? 바울처럼 돌에 맞아 목숨을 잃을 정도의 격한 박해입니까? 바울처럼 대적들의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시외로 끌어 버려짐을 받은 고통입니까? 믿음을 지키려 할 때 찾아오는 세상의 냉소적인 시선과 조롱의 댓글과 왕따입니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수하며 믿음을 지키는 여러분을 위해 지금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이에 대하여 길이 돌아보고 참된 믿음의 가치를 지키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0절 함께 읽습니다.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여기에서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라는 말은 제자들이 바울의 시신을 확인한 후에 장례를 치르려고 했음과 바울의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음을 동시에 뜻합니다. 이는 바울이 그만큼 죽었을 것이 확실할 만큼 돌에 맞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에 맞아 죽은 줄로 알았던 바울이 제자들의 기도를 힘입어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루스드라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을 부르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힘으로 다시 일어서서 ‘자신이 죽은 줄 알고 흩어졌을 어린 제자들’을 안심시키고, 박해 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격려하기 위해 다시 루스드라 성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신의 안전보다 갓 태어난 영혼들을 돌보는 목자의 심정을 가진 바울의 순수한 신앙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바울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붙잡으셨고, 바울은 다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때로 우리는 돌에 맞은 것처럼 상처받고, 실패하고, 주저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넘어짐을 끝으로 두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다시 일어서게 하시는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넘어지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누구나 넘어지고 실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넘어졌을 때 일어서지 않는 것은 믿음의 포기입니다. 우리가 작은 사업을 할 때에도 많은 문제들과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처하게 되고, 그것을 넘고 일어서야 성공할 수 있게 되는데, 하물며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우리에게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오히려 더 많지 않겠습니까? 

사탄은 우리가 평안히 복음을 전하도록 결코 가만히 버려두지 않습니다. 좋은 일 가운데에서도 약점을 찾으려 하고, 분쟁 거리를 찾으려 합니다. 작은 실수를 꼬투리 잡아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어떡하든지 문젯거리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우리는 바울처럼 하나님을 의지해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믿음을 포기하지 않으면, 바울을 다시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그때 바울처럼 주어진 사명의 길을 다시 걸어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최후 승리를 거두고 영광의 면류관을 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이렇게 루스드라에서 갓 태어난 영혼들을 격려한 바울은 더베로 가서, 21절에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더베에서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복음 전하는 것을 방해하던 유대인들이 바울이 죽은 줄 확신하고 안디옥과 이고니온으로 돌아간 후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이로써 우리는, 바울이 돌에 맞은 것은 더베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바울이 흘린 피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제 갓 믿기 시작한 사람들의 신앙을 굳게 하기 위해 더베에서 다시 자신을 박해하던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을 박해하던 곳에 다시 가고 싶겠습니까?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다시 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뿐만 아니라 후에 있을 2차 선교 여행에서도 이들을 돌아보았습니다. 3차 선교 여행에서도 이들에 대한 방문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들은 쉽게 척척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 일어서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잠 24:16). ‘마치 엄마가 아이를 해산하는 것과 같은 수고와 고통’을 감수했기에 이방인들이 구원받고 교회들이 세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삶이 그렇게 힘겨웠기에 제자들에게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거하도록 권면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2절 함께 읽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이뿐만 아니라 성경은 디모데후서 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를 믿고 천국 백성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하교회에서 숨죽이며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가까이 북한만 해도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모퉁이돌 선교회’에 의하면 죽음을 불사하고 예수님을 믿는 지하교회 성도가 약 3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롭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이 축복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 축복을 소중히 여겨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좀 더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언제 이 자유를 상실하게 될지 모릅니다. 이 세상은 사탄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사탄이 훼방하면 우리도 환난을 당하고 신앙의 자유를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신앙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그 자유 안에서 더욱 믿음에 굳게 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처럼 ‘하나님 은혜 중심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그렇다면, ‘하나님 은혜 중심의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이어지는 23절과 27절은 그 핵심을 ‘맡기는 믿음’과 ‘하나님을 높이는 고백’ 이렇게 두 가지로 제시합니다.

먼저, 23절 함께 읽습니다.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바울은 자신이 계속해서 그들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대신해서 교회를 이끌어갈 장로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주께 그들을 위탁’했습니다. 모든 수고와 헌신 뒤에, 교회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금식하며 모든 것을 기도로 맡겨 드렸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 자녀의 미래, 내 사업의 성공, 우리 교회의 부흥까지도 내가 책임지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온전히 위탁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참된 평안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길고 험난했던 1차 선교여행을 마친 바울과 바나바는 파송 교회였던 안디옥으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하고, 숱한 박해와 위협을 겪었습니다. 만일, 우리였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정말 힘들었습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십니까?”라며 그동안의 고생과 수고와 활약상을 먼저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27절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할 믿음의 자세가 담겨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교회를 모아’라는 말은 ‘온 성도들을 모이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온 성도들 앞에서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행하신 모든 일’ 그리고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장차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께 어떻게 보고할 것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사모한다면 마땅히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그때, 바울처럼 여러분의 삶의 주어가 ‘나’가 아닌 ‘하나님’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힘으로 닫힌 문을 열려고 애썼다고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열어두신 믿음의 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걸었다고 보고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바울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은혜의 문들을 날마다 체험하고, 간증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돌에 맞아 쓰러졌던 바울처럼 저희도 인생의 고난 속에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 주저 앉아 포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다시 복음의 길을 걷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의 모든 사역과 가정과 교회를 하나님께 맡기고, 바울처럼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려 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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