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내일은 추석입니다. 하지만 이건 비교적 후대에 붙여진 이름이고, 원래 민간에서는 이 명절을 ‘한가위’라고 불렀습니다. ‘한가위’는 순수한 우리말로, ‘한’은 크다는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입니다. 음력 8월의 한가운데 있는 가장 큰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추석은 음력 8월 15일 만월이기에 둥근 보름달이 뜹니다. 그리고 이때는 초가을로 대기가 여름보다 맑고, 습도가 낮아 시야가 깨끗해져서 달이 유난히도 더 밝게 빛나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커다란 달을 보면서 “참 밝다”라고 하며 감탄합니다. 그러나 사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합니다. 태양의 빛을 반사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마치 달이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믿고 “달이 참 밝다”라고 하며 감탄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루스드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일으킨 기적을 본 뒤, 그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달과 같은 바울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이 어떻게 나타나며, 동시에 인간의 연약함과 오해가 어떻게 복음 전파를 가로막으려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나에게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가?” “혹시 나는 복음 전파를 가로막는 잘못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를 살피고 참된 믿음을 소유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8~9절 함께 읽습니다.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은 “하나님의 기적은 외적인 조건이 아닌 믿음이 있는 사람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킬 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 주변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에 권력이 있고 돈 많고 인물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여 일평생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순간, 그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주목하여 보아도 그는 바울의 설교를 집중하여 듣고 있었고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사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천하에 없는 바울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일으켜 세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일으키는 능력은 바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기적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는 지식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돈과 권세를 통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오직 믿음을 통해 일어납니다. 그러하기에 복음 전도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 있는 사람을 보는 안목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제자를 부르실 때 예루살렘의 문벌 좋은 사람, 돈 많은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은 모두가 다 세상적으로 볼 때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사도들은 세상적으로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사역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들을 통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도 무엇보다 믿음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처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고, 바울처럼 누가 진정 믿음의 사람인지 분별함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주저앉아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미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0절 함께 읽습니다.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바울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향하여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일평생 단 한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말할 때, 그 말에 순종하여 일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손이라도 잡아주면서 일어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말로만 네 발로 일어나라고 명령했습니다. 네게 믿는다면 지금 벌떡 일어나라고 명령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 명령에 순종하여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이 명령에는 네가 지금까지는 걷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을 의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는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을 의존하지 말고 너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 명령은 이천 년 전 루스드라의 걷지 못하는 이에게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성경에 기록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시는 명령입니다. 죄와 욕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줄 모르는 갓난아이와 같은 신앙에 갇혀 수십 년을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는 우리에 대한 책망이 담겨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명령 앞에 선 우리는 스스로 걷지 못하는 신앙을 버리고, 우리가 일어설 수 있도록 붙들어주시고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두 발로 일어나 걷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자,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이어지는 11~15절에, 바울과 바나바가 기적을 일으키자 루스드라 사람들은 그들을 신으로 여겨 제사를 드리려고 했고, 이에 두 사도는 자신들의 옷을 찢으며 말렸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일입니다. 특별하고도 신적인 능력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기적은 복음 사역에 생명을 걸고 열정을 쏟는 두 사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볼 때는 두 사도가 사람들로부터 어느 정도 칭찬과 존귀를 받는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사람들의 경배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옷을 찢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말했습니다. 이것은 백부장 고넬료가 절하며 베드로를 맞을 때 베드로가 고넬료를 말리며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라고 한 말과 같은 의미의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매우 중요한 행동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기도해서 병이 낫는다든지 기적이 일어나면 “우리 목사님 대단하시다”라는 성도들의 칭찬을 그냥 받아넘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나 오늘 본문은 결단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옷을 찢었다는 것은 그만큼 큰 죄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서는 안 됩니다. 기적이 일어날 때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더욱 낮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여러분, 왜 이단이 생겨납니까? 왜 존귀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단으로 전락합니까? 바로 자신이 인간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행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줄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망하는 길, 이단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존귀하게 하실수록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자신을 더욱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낮추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겸비(謙卑)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6절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여기에서의 ‘지나간 세대’라는 말은 예수님이 전파되기 전,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기 전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기 전에는 그들이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우상숭배와 같은 죄악을 범할지라도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모르고 그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이상 그들의 범죄를 간과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범죄를 방임하셨다는 것은 그들의 죄를 허용하시고 용서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들에 대한 즉각적인 심판을 유보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7절에, 비록 직접적인 계시를 받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을 모르는 우상숭배의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죄가 없다고 하지는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하여, 자연 만물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증표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명확하게는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타락한 인간의 이성으로는 자연을 통해 계시되는 하나님의 뜻을 다 알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특별 계시, 곧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지만 자연 계시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므로 특별 계시를 받지 못하였다고 하여 우상숭배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성경을 가지고 있고 배우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은혜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과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우상숭배와 같은 죄를 또다시 범한다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더욱 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기에 힘쓰는, 그리하여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권능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의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 것을 보았듯이 저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음으로 믿음의 사람들을 분별해 내어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내일은 추석입니다. 하지만 이건 비교적 후대에 붙여진 이름이고, 원래 민간에서는 이 명절을 ‘한가위’라고 불렀습니다. ‘한가위’는 순수한 우리말로, ‘한’은 크다는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입니다. 음력 8월의 한가운데 있는 가장 큰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추석은 음력 8월 15일 만월이기에 둥근 보름달이 뜹니다. 그리고 이때는 초가을로 대기가 여름보다 맑고, 습도가 낮아 시야가 깨끗해져서 달이 유난히도 더 밝게 빛나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커다란 달을 보면서 “참 밝다”라고 하며 감탄합니다. 그러나 사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합니다. 태양의 빛을 반사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마치 달이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믿고 “달이 참 밝다”라고 하며 감탄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루스드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일으킨 기적을 본 뒤, 그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달과 같은 바울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이 어떻게 나타나며, 동시에 인간의 연약함과 오해가 어떻게 복음 전파를 가로막으려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나에게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가?” “혹시 나는 복음 전파를 가로막는 잘못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를 살피고 참된 믿음을 소유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8~9절 함께 읽습니다.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은 “하나님의 기적은 외적인 조건이 아닌 믿음이 있는 사람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킬 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 주변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에 권력이 있고 돈 많고 인물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여 일평생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순간, 그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주목하여 보아도 그는 바울의 설교를 집중하여 듣고 있었고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사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천하에 없는 바울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일으켜 세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일으키는 능력은 바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기적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는 지식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돈과 권세를 통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오직 믿음을 통해 일어납니다. 그러하기에 복음 전도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 있는 사람을 보는 안목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제자를 부르실 때 예루살렘의 문벌 좋은 사람, 돈 많은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은 모두가 다 세상적으로 볼 때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사도들은 세상적으로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사역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들을 통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도 무엇보다 믿음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처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고, 바울처럼 누가 진정 믿음의 사람인지 분별함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주저앉아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미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0절 함께 읽습니다.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바울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향하여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일평생 단 한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말할 때, 그 말에 순종하여 일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손이라도 잡아주면서 일어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말로만 네 발로 일어나라고 명령했습니다. 네게 믿는다면 지금 벌떡 일어나라고 명령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 명령에 순종하여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이 명령에는 네가 지금까지는 걷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을 의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는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을 의존하지 말고 너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 명령은 이천 년 전 루스드라의 걷지 못하는 이에게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성경에 기록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시는 명령입니다. 죄와 욕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줄 모르는 갓난아이와 같은 신앙에 갇혀 수십 년을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는 우리에 대한 책망이 담겨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명령 앞에 선 우리는 스스로 걷지 못하는 신앙을 버리고, 우리가 일어설 수 있도록 붙들어주시고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두 발로 일어나 걷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자,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이어지는 11~15절에, 바울과 바나바가 기적을 일으키자 루스드라 사람들은 그들을 신으로 여겨 제사를 드리려고 했고, 이에 두 사도는 자신들의 옷을 찢으며 말렸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일입니다. 특별하고도 신적인 능력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기적은 복음 사역에 생명을 걸고 열정을 쏟는 두 사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볼 때는 두 사도가 사람들로부터 어느 정도 칭찬과 존귀를 받는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사람들의 경배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옷을 찢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말했습니다. 이것은 백부장 고넬료가 절하며 베드로를 맞을 때 베드로가 고넬료를 말리며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라고 한 말과 같은 의미의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매우 중요한 행동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기도해서 병이 낫는다든지 기적이 일어나면 “우리 목사님 대단하시다”라는 성도들의 칭찬을 그냥 받아넘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나 오늘 본문은 결단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옷을 찢었다는 것은 그만큼 큰 죄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서는 안 됩니다. 기적이 일어날 때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더욱 낮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여러분, 왜 이단이 생겨납니까? 왜 존귀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단으로 전락합니까? 바로 자신이 인간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행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줄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망하는 길, 이단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존귀하게 하실수록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자신을 더욱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낮추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겸비(謙卑)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6절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여기에서의 ‘지나간 세대’라는 말은 예수님이 전파되기 전,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기 전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기 전에는 그들이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우상숭배와 같은 죄악을 범할지라도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모르고 그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이상 그들의 범죄를 간과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범죄를 방임하셨다는 것은 그들의 죄를 허용하시고 용서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들에 대한 즉각적인 심판을 유보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7절에, 비록 직접적인 계시를 받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을 모르는 우상숭배의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죄가 없다고 하지는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하여, 자연 만물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증표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명확하게는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타락한 인간의 이성으로는 자연을 통해 계시되는 하나님의 뜻을 다 알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특별 계시, 곧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지만 자연 계시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므로 특별 계시를 받지 못하였다고 하여 우상숭배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성경을 가지고 있고 배우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은혜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과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우상숭배와 같은 죄를 또다시 범한다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더욱 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기에 힘쓰는, 그리하여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권능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의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 것을 보았듯이 저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음으로 믿음의 사람들을 분별해 내어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