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60.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행 13:13-43)

우인택 목사
2025-09-14
조회수 448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42.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여러분, ‘십자수’ 아십니까? 사극 드라마에 종종 여인들이 십자수를 놓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형형색색의 실로 한땀 한땀 바느질해서 만든 십자수를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수의 뒷면을 보면 어떻습니까? 온갖 실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매우 지저분하고 무질서해 보입니다. 하지만 앞면으로 돌리는 순간, 그 복잡한 실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답고 멋진 작품을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타락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습들은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마치 십자수의 뒷면처럼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멸망한 역사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설교를 통해 ‘그 역사의 앞면’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언급하며 그 모든 사건은 예수님을 통한 인류의 구원이라는 십자수를 놓기 위한 하나님의 한땀 한땀 바느질과 같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인간의 탐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안목으로 읽으면 그 가운데 구원이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복음이 어떠한 양상을 통해 전해지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성취되어가는지’ 분명하고 똑똑하게 깨닫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3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안디옥 교회 선교사 일행이 구브로 섬에서의 선교를 마치고 밤빌리아 버가로 이동했을 때, ‘요한이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의 요한은 마가복음을 쓴 ‘마가 요한’을 뜻하는데, 본문에는 그가 왜 돌아갔는지 그 이유를 밝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그 이유를 ‘부잣집 아들이었던 마가에게 선교여행은 너무 힘겨운 것이 아니었겠나?’ 하고 짐작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즐겁고 보람된 일인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 본문에서도 보았듯이, 마술사 엘루마와 같은 악한 자들이 자신의 불의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악의적으로 모함하는 일을 자주 마주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자는 바울과 같이 ‘성령의 권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9-11절). 그렇게 무장하여도 결코 감당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고린도후서 11:24 이하에서,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는지 이렇게 고백합니다. 

“유대인에게 사십에 하나 감하는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에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이 고백한 이 고난의 일들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거나 무엇을 잘못해서 당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선한 일을 하다가 당한 고난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면 모든 일이 순탄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신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듯이, 우리 또한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전해야 대상들의 죗값을 대신하여 고난의 일’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마 10:38, 16:24).

그러면서 바울은 빌립보서 3:8에서 ‘자신이 이러한 고난을 기꺼이 받은 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하기에 자신은 ‘예수님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백했습니다(고후 12:10). 

그런데 여러분, 만일 바울이 예수님을 믿을 때 주어지는 구원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조금이라도 의심했다면 어떻게 이러한 고난의 일들을 감내할 수 있었겠습니까? 구원을 확신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할진대, 구원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바울과 같은 복음의 일꾼이 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바울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약하지만 나의 약함을 강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 그러하기에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이루려 날마다 하나님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사람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바울과 같은 선교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상’ 안디옥 교회 성도들처럼 교회를 지키고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일은 감당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부터 바울의 삶을 교훈 삼아 “하나님 나에게 성령 권능 부어주셔서 먼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든지, 가까운 삶의 터전에서 복음을 전하든지 성령의 권능을 소유한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이어지는 14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지금까지의 전도 여정을 살펴보면, 바울은 선교 파송지인 시리아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실루기아로,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 섬에 도착하여 도보로 180km나 되는 섬을 횡단하며 복음을 전하며 구브로 섬의 수도인 바보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을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다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도보로 160km를 걸어가며 복음을 전하다, 오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해발 1000m가 넘는 고원 지대에 위치해 있었고,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타우루스산을 넘어야 하는데, 타우르스산에는 ‘산적’이 무척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 일행은 호위하는 군사들도 없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의 위협을 무릎 쓰고 타우르스산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른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전도 여정은 사명자의 본분에 대하여 생각하게 합니다. 사명자의 본분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과 제자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말씀을 가르치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시는 기적을 베푸셨지만, 예수님 곁에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자로 자처하던 수많은 군중들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이익 여부에 따라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곤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음이 얼마나 허전하셨던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그때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요 6:68) 

다른 사람이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떤 결정을 하든 예수님께 생명이 있고, 삶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기에 사명자는 믿음으로 그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항상 마음이 흔들리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여 이단의 길로 빠지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자란 성공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넓고 편한 길을 선택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길이 험한 길이든 평탄한 길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길을 불평없이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 사명자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직분을 버리고, 다른 길로 갈지라도 끝까지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붙들고 나아가는 사람, 그가 바로 사명자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러한 사명자의 길을 걸으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7절부터 41절까지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을 언급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심을 증언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미 다 상고한 말씀입니다. 시간을 내어서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기록된 '새벽기도회 설교'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본문이 매우 길기에 중요한 부분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큰 권능으로 인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은 것은 모세의 탁월한 지도력도, 그들 스스로의 지혜와 능력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로 말미암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체험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시내 산에 도착하기 무섭게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습니다. 물과 식량이 없다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애굽이 그립다고 노골적으로 불평하며 모세가 아닌 다른 지도자를 세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까지 했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소행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이 백성을 전멸시키고 모세를 통해 새 백성을 만들겠다”라며 분노하셨습니다(출 32:10).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셨습니다. 왜 참으셨습니까? 이유는 한 가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하신 하나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유대인들은 몰라봤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들의 예언을 깨닫지 못하고 종교적인 광기와 열심만으로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전문가로 자처했으나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진정한 뜻을 깨닫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죽으셨고, 성경의 예언대로 부활하셨고, 성경의 예언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 부활을 목격했으며, 바울은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한 것입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 중에서 일부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알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도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며 은혜의 말씀을 더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안식일에도 복음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43절에 그들에게 말씀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어라” 바울의 이 권면을 여러분들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거하며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혼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처럼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바울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함을 고백합니다. 나는 약하지만, 나의 약함을 강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이루려 날마다 하나님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다수가 선택하는 편한 길, 성공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험한 길이라고 할지라도 사명자의 길을 선택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함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혼을 구원해 내는 복된 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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