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58. 안디옥 교회의 선교사 파송 (행 13:1-3)

우인택 목사
2025-08-31
조회수 401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우리나라 전통공예품 중에 ‘조각보’라는 것이 있습니다. 조각보는 온전한 하나의 옷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이나, 낡아서 버려지는 옷의 성한 부분을 오려 두었다가 그 조각들을 모아 바느질로 붙여 만든 것입니다. 사극에도 종종 등장하는데, 서민들의 옷이나 생활용품 등 일상생활에서 쓰다 남은 천을 이용하여 만든 전통공예품입니다.

그런데, 제각기 모양도 색깔도 다른, 별 쓸모 없을 것 같은 작은 천 조각들을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바느질하니 신기하게도 세상의 어떤 화려한 옷감으로 만든 것보다 더 아름답고 멋진 예술 작품이 됩니다. 둥근 조각, 네모난 조각, 세모난 조각, 삐뚤삐뚤한 조각, 낡은 옷에서 자른 조각 등 그 어느 것 하나 쓸모없는 조각들을 정성을 다한 손길 아래 하나로 모으니, 그 다름과 부족함이 오히려 놀라운 조화를 이루어 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안디옥 교회에 모인 지도자들의 모습도 이 조각보와 같았습니다. 왕궁에서 자란 귀한 천 조각 같은 ‘마나엔’이 있었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멸시받던 거친 천 조각 같은 ‘사울’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이국적인 색감의 천 조각 같은 ‘시므온과 루기오’도 있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길이 그들을 만지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복음의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에 혹시 “나는 쓸모없는 자투리 천과 같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자신을 하나님의 손길에 내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옆에 계신 성도님들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원의 조각보’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 ‘구원의 조각보’로의 초대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절 함께 읽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 교회에는 모두 5명의 선지자와 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와 사울 외에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은 생소한 이름입니다. 이들은 안디옥 교회 설립 초기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바나바와 사울과 동등하게 소개되고 있는 것은 그들도 바나바와 사울에 버금가는 중요한 지도자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안디옥 교회의 위대한 점을 크게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은 출신 배경과 인종이 달랐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최초의 이방교회로 유대인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이방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헬라의 유식한 사람도 있었고 종도 있었고 야만인도 있었습니다. 그러했기에 민족적인 알력과 지역적인 알력이 언제든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에는 불화가 없었습니다. 반목이 없었습니다. 다양한 인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는 반목이나 대립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출신 배경과 계층, 인종을 초월하여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안디옥 교회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누구든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박해자 사울도 안디옥 교회에서 훌륭한 목회자와 선교사로 변화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도 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할 수 있었던 것도 지도자를 양성하는데 힘을 기울인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안디옥 교회에 교회를 이끌만한 지도자가 없었다면 어떻게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보낼 수 있었겠습니까? 교회를 이끌만한 목회자도 없는 교회가 어떻게 목회자를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교회는 인재를 양성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교회’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할 만한 인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없습니다. 교회에 성도가 부족하고 일할 일꾼이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진정한 자산은 건물이나 돈이 아니라 인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작고 가난할지라도 인재들이 자라나는 교회가 진정으로 부유한 교회입니다. 미래가 있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인재를 키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예산은 몰라도 인재를 키우는 일에는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안디옥 교회는 신앙훈련을 받아 능력을 갖추게 되면 누구든지 교회의 지도자도 될 수 있었습니다. 누구의 의견도 무시되거나 소외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초기에 불화의 홍역을 치렀던 모 교회 예루살렘 교회와도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교회가 건강하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신분과 계층 심지어 인종이 다를지라도 화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라도 와서 어울릴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라도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교회 내에서 출신 지역을 따지고 먼저 믿은 사람들이 기득권을 행사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소외된다면 그 교회는 병들은 교회입니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불만이 싹틉니다. 원망과 분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미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안디옥 교회처럼 예수님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화합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높은 자는 낮은 자를,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신앙의 연륜이 오래된 자는 신앙이 어린 성도를 섬기고 바르게 인도하여 함께 세워지는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를 통해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강하고 견고한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오늘, 이러한 교회를 소망하며 결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2. 이어지는 2절 함께 읽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라는 말씀은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금식기도를 하는데, 그 목적이 자신들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온전히 섬기는 자가 되기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뜻이 됩니다. 자신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산 제사로의 의미로 금식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처럼 자신들의 유익을 버리고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자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안디옥 교회를 이방 선교의 중심지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라는 역사적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사명은 아무 때나 우연히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 자기를 헌신하기로 마음의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을 때 임합니다. 성경은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큰일에도 충성된다”라고 가르칩니다(눅 16:10). 앞에서 언급한 ‘조각보’도 온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러할진대, 하나님의 일이란 어떤 일입니까? 천사도 흠모할 만한 위대하고 거룩한 일입니다(벧전 1:12). 그런 일을 일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한다면 먼저 헌신된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자신을 헌신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절 말씀을 계속해서 살펴보면, “성령께서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선교는 선교사가 되려고 작정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해야겠다고 계획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성령께서 선교를 주도하심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선교란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기획하시고 주도하시는 것이 선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라고 직접적으로 지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따로 세우라’라는 말씀은 ‘구별하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 선교를 위해 베드로를 구별하셨고, 이방인 선교를 위해 바나바와 사울을 구별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에게는 각각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한 사명이 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베드로의 사명이 있었고, 사울에게는 사울의 사명이 있었습니다.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에게도 그들 각자에게 주어진 고유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에베소서 4:11-12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처럼 성도 각자가 자기만의 고유한 사명과 은사를 찾기에 힘쓰고 행할 때, 그의 삶은 빛이 나고 생기가 돋고, 성령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계발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이에 대하여 깊이 돌아보시고, 그를 통해 사도 바울처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는 인생 승리와 성공을 고백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딤후 4:7).


3. 이어지는 3절 함께 읽습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령의 음성을 들은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그들은 주저하거나 반론하지 않았습니다.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먼저,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확신하기 위해 다시 한번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확신 가운데 두 사람에게 ‘안수’했습니다. 

당시, 안수는 단순히 머리에 손을 얹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3가지의 큰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위해 이들을 거룩하게 구별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둘째는 바나바와 사울의 사역은 곧 우리 안디옥 교회의 사역이니 우리는 기도로, 물질로 함께하겠다는 공동체의 연대와 지지를 표현이었습니다. 셋째는 그들에게 교회의 영적 권위를 부여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그들과 함께하기를 축복하며 파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안수는 안수를 받는 자들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함께 감당하겠다는 결의였습니다.

그리고 ‘보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교회의 가장 소중한 두 지도자, 바나바와 사울을 기꺼이 떠나보냈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희생이며 결단이었습니다. 사실,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최고 지도자인 이 두 사람을 붙잡아두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우리 교회’의 성장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바라보는 성숙한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쌓아두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파송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재능, 물질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내어드리고 있습니까? 더 나아가, 우리 공동체 안의 사람들을 세상 속 선교사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훈련하고 격려하여 파송하고 있습니까? 안디옥 교회의 순종과 희생이 없었다면, 바울의 위대한 선교 여행도, 복음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는 역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제2의 안디옥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편견의 벽을 넘어 서로를 품어주고, 세상의 분주함 속에서도 잠잠히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삶을 기꺼이 내어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또 다른 생명의 구원을 이루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통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나가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소망을 붙들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안디옥 교회처럼 예수님의 말씀으로 하나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높은 자는 낮은 자를,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신앙이 깊은 성도는 신앙이 어린 성도를 섬기고 바르게 인도하여,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강하고 견고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성도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한 사명이 있음을 알아 교회와 삶의 터전에서 지체로서 역할을 바르게 감당하게 하시고, 그를 통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선교사로서의 삶을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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