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업에 실패했을 때일까요?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당할 때일까요? 아니면 극심한 고난의 터널을 지날 때일까요? 물론, 그러한 일들은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러할 때가 우리 인생의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겸손과 감사를 잃어버린 성공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라고 가르칩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자기가 가진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에 빠진 때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교만에 빠진 성공은 인생을 돌이킬 수 없는 절망으로 빠뜨리는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교만에 빠진 한 인물의 비극적인 몰락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왕이었던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성공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사도 야고보를 죽여 유대인들의 환심을 샀고, 유대인들이 그 일을 기뻐하자 기독교의 수장인 베드로마저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백성들의 지지는 뜨거웠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절정의 순간에서 시작됩니다.
1. 먼저, 20절 함께 읽습니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라는 말씀은 헤롯이 어떤 성품의 사람인지, 얼마나 악한 사람이었는지 보여줍니다. 당시 두로와 시돈은 항구도시였기에 무역은 활발했지만, 땅이 척박해 식량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헤롯이 통치하던 갈릴리에서 곡식을 수입해서 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갈릴리에서 곡식을 수입하는 방법 외에는 양식을 구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함부로 행했습니다. 먹을 것을 무기로 삼아 이웃 나라에 악한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헤롯만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비인격적인 갑의 횡포’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방보다 큰 힘을 가졌다고 생각될 때, 자신도 모르게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분노’하게 됩니다. 정치·경제적인 힘뿐만 아니라, 도덕적 혹은 종교적인 우위에 있을 때도 이러한 분노의 유혹에 쉽게 이끌립니다. 더군다나 신앙인들조차도 이러한 유혹을 쉽게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러한 예를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지면에서 가장 온유하다고 칭찬받은 모세가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원망하는 백성들 앞에서 화를 내며 반석을 두 번 쳤을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은 자기가 백성들보다 의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계시를 내리시니까, 순간 자신이 의인이 된 줄 알고,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화를 내며 바위를 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출애굽의 지도자인 모세는 결국 이것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민 20:10-12). 이는 ‘비인격적인 갑의 횡포’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미워하시는지를 잘 나타내 주는 예화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다윗은 자기를 따라오며 끝없이 저주하는 ‘시므이’를,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고, 또 다윗에게는 충분히 그를 정죄할 힘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통함을 갚아 주실 것을 믿고 그 고통을 참아냈습니다(삼하 16:5-13).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힘은 선하게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의로워서, 잘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약한 자들 앞에서 군림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돌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헤롯 왕은 물론 그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이기적이고 악하게 사용한다면, 그는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강점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재능입니까? 지혜입니까? 권세입니까? 오늘부터 이러한 것들을 주안에서 더욱 겸손하게 사용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1-22절 함께 읽습니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날을 택하여’라는 말은 ‘기념일이 되어’ 라는 뜻입니다. 어떤 기념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헤롯이 왕으로서 왕복을 입고 백성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하는 기념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헤롯이 입은 옷을 얼마나 화려했던지 연설을 듣던 백성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며 열광했습니다. 그런데 23절에, 헤롯은 백성들로부터 이러한 칭찬을 듣고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왕이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도 갖지 못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언급했었지만, 헤롯 가문은 이두매 출신이면서도 유대인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두매 지역은 ‘에서의 후손’들이 살던 곳입니다. 헤롯 가문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이두매 출신이었기에 하나같이 출생지에 대한 열등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임을 더 강조하여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한 것도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일면도 있지만, 그럼으로써 자기도 하나님의 율법에 열심이 있는 유대인임을 보이기 위한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자신도 하나님을 믿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헤롯은, 백성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라고 외쳤을 때, 그들의 말을 꾸짖거나 멈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백성들로부터 환호를 받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인의 왕으로서는 아주 악한 행위였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자신이 받았으므로 자신의 옷을 찢고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백성들의 환호와 칭찬을 중지시키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였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외식적으로 율법을 지켰는지, 정치적으로 하나님을 이용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영혼이 병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모든 욕심 중에서 가장 큰 욕심은 명예와 영광을 받으려는 욕심입니다. 명예와 영광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대단합니다. 때로는 많은 돈을 주고서라도 명예를 사려고 합니다. 때로는 생명을 포기하면서도 명예를 얻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유의 주요, 왕으로 섬기는 성도는 모든 영광을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이 온전할 때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려야 하며, 자신은 어떤 영광도 취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 영혼이 병들게 되면 달라집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예가 많이 나타납니다. 사무엘상에 영혼에 병이 든 사울 왕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고서도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해서든 자기의 체면 세워줄 것만을 사무엘에게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사도행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을 속이고 교회를 속여서라도 명예를 갖고자 하다가 망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외식을 통해서라도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고자 하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가장 악한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반면, 우리 예수님은 항상 연약한 자들을 돌보시고, 심지어는 주와 선생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겸손한 삶을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 까지 교회와 성도들에게 온전한 신앙의 본을 보이며, 그들을 위하여 격려의 편지를 쓰고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신앙이 건전할 때는 모든 명예와 영광에 관련한 일은 오직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롭고 선한 일을 할 뿐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것이 진정한 영광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는 자를 높이시고 영광스럽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낮추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자기 영혼이 병들지 않도록 늘 세심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 영혼에 병이 들었다면 속히 회개하여 치료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영혼이 병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 영광에 집착한다면 그 영혼은 병든 영혼입니다. 목회자이든, 직분자이든, 일반 평신도이든,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 영광에 집착한다면 그는 병든 신앙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 영광에 초월하며 오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는 겸손한 믿음을 소유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23절 함께 읽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헤롯 왕은 사도 야고보를 아무런 제약도 없이 쉽게 죽인 인물입니다. 약간의 노여움을 보여도 시돈과 두로 사람들이 부들부들 떨 정도로 힘이 있는 자였습니다. 백성들로부터 사람의 소리가 아닌 신의 소리란 말을 들어가며 백성들 앞에서 연설하던 그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벌레에게 먹혀 죽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여러분, 이처럼 인간이란 질병 앞에서 연약한 존재입니다. 천하에 없는 장수도 질병에 넘어집니다. 일례로, 헬라제국을 세운 알렉산더는 세계를 정복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알렉산더도 열병에 걸려 33세 한창 젊은 나이에 무기력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더뿐만 아니라 영웅이라고 불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한창 나이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대부분은 병들어 죽습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병드는 것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천하에 없는 장사도 병균이 한번 파고들면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어서 건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부유한 사람들은 모두 장수해야 합니다. 좋은 의사를 만난다고 장수하는 것도 아닙니다. 실력있는 의사들도 말기 암과 같은 중병을 치료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운동을 많이 한다고 장수하는 것도 아닙니다. 운동을 열심히 해도 병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고, 건강을 주시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건강의 근원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따라 믿음으로 의롭고 선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헤롯 왕의 죽음 앞에서 이것을 깨닫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아무리 큰 권력을 쥐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도, 흙으로 빚어진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호흡을 거두시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헤롯의 죽음 앞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헤롯처럼 자신의 영광을 쌓아 올리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래성이 아니라, 24-25절 말씀처럼,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반석 위에 굳건히 세워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도로서 우리가 소유한 지혜와 힘과 권능은 우리가 특별히 의로워서, 잘나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약한 자들을 돌보라고 주신 것임을 가슴 깊이 새깁니다. 이를 명심하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어리석은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저희를 붙들어주옵소서. 우리가 이 땅에서 강건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인함임을 알고 주신 은혜를 잘 지키고 전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업에 실패했을 때일까요?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당할 때일까요? 아니면 극심한 고난의 터널을 지날 때일까요? 물론, 그러한 일들은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러할 때가 우리 인생의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겸손과 감사를 잃어버린 성공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라고 가르칩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자기가 가진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에 빠진 때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교만에 빠진 성공은 인생을 돌이킬 수 없는 절망으로 빠뜨리는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교만에 빠진 한 인물의 비극적인 몰락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왕이었던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성공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사도 야고보를 죽여 유대인들의 환심을 샀고, 유대인들이 그 일을 기뻐하자 기독교의 수장인 베드로마저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백성들의 지지는 뜨거웠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절정의 순간에서 시작됩니다.
1. 먼저, 20절 함께 읽습니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라는 말씀은 헤롯이 어떤 성품의 사람인지, 얼마나 악한 사람이었는지 보여줍니다. 당시 두로와 시돈은 항구도시였기에 무역은 활발했지만, 땅이 척박해 식량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헤롯이 통치하던 갈릴리에서 곡식을 수입해서 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갈릴리에서 곡식을 수입하는 방법 외에는 양식을 구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함부로 행했습니다. 먹을 것을 무기로 삼아 이웃 나라에 악한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헤롯만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비인격적인 갑의 횡포’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방보다 큰 힘을 가졌다고 생각될 때, 자신도 모르게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분노’하게 됩니다. 정치·경제적인 힘뿐만 아니라, 도덕적 혹은 종교적인 우위에 있을 때도 이러한 분노의 유혹에 쉽게 이끌립니다. 더군다나 신앙인들조차도 이러한 유혹을 쉽게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러한 예를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지면에서 가장 온유하다고 칭찬받은 모세가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원망하는 백성들 앞에서 화를 내며 반석을 두 번 쳤을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은 자기가 백성들보다 의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계시를 내리시니까, 순간 자신이 의인이 된 줄 알고,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화를 내며 바위를 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출애굽의 지도자인 모세는 결국 이것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민 20:10-12). 이는 ‘비인격적인 갑의 횡포’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미워하시는지를 잘 나타내 주는 예화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다윗은 자기를 따라오며 끝없이 저주하는 ‘시므이’를,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고, 또 다윗에게는 충분히 그를 정죄할 힘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통함을 갚아 주실 것을 믿고 그 고통을 참아냈습니다(삼하 16:5-13).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힘은 선하게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의로워서, 잘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약한 자들 앞에서 군림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돌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헤롯 왕은 물론 그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이기적이고 악하게 사용한다면, 그는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강점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재능입니까? 지혜입니까? 권세입니까? 오늘부터 이러한 것들을 주안에서 더욱 겸손하게 사용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1-22절 함께 읽습니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날을 택하여’라는 말은 ‘기념일이 되어’ 라는 뜻입니다. 어떤 기념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헤롯이 왕으로서 왕복을 입고 백성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하는 기념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헤롯이 입은 옷을 얼마나 화려했던지 연설을 듣던 백성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며 열광했습니다. 그런데 23절에, 헤롯은 백성들로부터 이러한 칭찬을 듣고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왕이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도 갖지 못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언급했었지만, 헤롯 가문은 이두매 출신이면서도 유대인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두매 지역은 ‘에서의 후손’들이 살던 곳입니다. 헤롯 가문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이두매 출신이었기에 하나같이 출생지에 대한 열등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임을 더 강조하여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한 것도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일면도 있지만, 그럼으로써 자기도 하나님의 율법에 열심이 있는 유대인임을 보이기 위한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자신도 하나님을 믿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헤롯은, 백성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라고 외쳤을 때, 그들의 말을 꾸짖거나 멈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백성들로부터 환호를 받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인의 왕으로서는 아주 악한 행위였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자신이 받았으므로 자신의 옷을 찢고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백성들의 환호와 칭찬을 중지시키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였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외식적으로 율법을 지켰는지, 정치적으로 하나님을 이용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영혼이 병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모든 욕심 중에서 가장 큰 욕심은 명예와 영광을 받으려는 욕심입니다. 명예와 영광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대단합니다. 때로는 많은 돈을 주고서라도 명예를 사려고 합니다. 때로는 생명을 포기하면서도 명예를 얻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유의 주요, 왕으로 섬기는 성도는 모든 영광을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이 온전할 때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려야 하며, 자신은 어떤 영광도 취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 영혼이 병들게 되면 달라집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예가 많이 나타납니다. 사무엘상에 영혼에 병이 든 사울 왕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고서도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해서든 자기의 체면 세워줄 것만을 사무엘에게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사도행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을 속이고 교회를 속여서라도 명예를 갖고자 하다가 망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외식을 통해서라도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고자 하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가장 악한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반면, 우리 예수님은 항상 연약한 자들을 돌보시고, 심지어는 주와 선생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겸손한 삶을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 까지 교회와 성도들에게 온전한 신앙의 본을 보이며, 그들을 위하여 격려의 편지를 쓰고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신앙이 건전할 때는 모든 명예와 영광에 관련한 일은 오직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롭고 선한 일을 할 뿐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것이 진정한 영광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는 자를 높이시고 영광스럽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낮추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자기 영혼이 병들지 않도록 늘 세심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 영혼에 병이 들었다면 속히 회개하여 치료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영혼이 병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 영광에 집착한다면 그 영혼은 병든 영혼입니다. 목회자이든, 직분자이든, 일반 평신도이든,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 영광에 집착한다면 그는 병든 신앙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 영광에 초월하며 오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는 겸손한 믿음을 소유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23절 함께 읽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헤롯 왕은 사도 야고보를 아무런 제약도 없이 쉽게 죽인 인물입니다. 약간의 노여움을 보여도 시돈과 두로 사람들이 부들부들 떨 정도로 힘이 있는 자였습니다. 백성들로부터 사람의 소리가 아닌 신의 소리란 말을 들어가며 백성들 앞에서 연설하던 그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벌레에게 먹혀 죽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여러분, 이처럼 인간이란 질병 앞에서 연약한 존재입니다. 천하에 없는 장수도 질병에 넘어집니다. 일례로, 헬라제국을 세운 알렉산더는 세계를 정복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알렉산더도 열병에 걸려 33세 한창 젊은 나이에 무기력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더뿐만 아니라 영웅이라고 불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한창 나이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대부분은 병들어 죽습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병드는 것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천하에 없는 장사도 병균이 한번 파고들면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어서 건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부유한 사람들은 모두 장수해야 합니다. 좋은 의사를 만난다고 장수하는 것도 아닙니다. 실력있는 의사들도 말기 암과 같은 중병을 치료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운동을 많이 한다고 장수하는 것도 아닙니다. 운동을 열심히 해도 병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고, 건강을 주시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건강의 근원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따라 믿음으로 의롭고 선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헤롯 왕의 죽음 앞에서 이것을 깨닫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아무리 큰 권력을 쥐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도, 흙으로 빚어진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호흡을 거두시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헤롯의 죽음 앞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헤롯처럼 자신의 영광을 쌓아 올리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래성이 아니라, 24-25절 말씀처럼,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반석 위에 굳건히 세워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도로서 우리가 소유한 지혜와 힘과 권능은 우리가 특별히 의로워서, 잘나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약한 자들을 돌보라고 주신 것임을 가슴 깊이 새깁니다. 이를 명심하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어리석은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저희를 붙들어주옵소서. 우리가 이 땅에서 강건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인함임을 알고 주신 은혜를 잘 지키고 전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