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여러분, 혹시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이루어질까?” 하는 의심을 품어본 적은 없었습니까? 머리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가슴으로는 현실의 벽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입술로는 기적을 구하지만, 마음은 상식의 벽을 넘지 못할 때는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모습을 보게 합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출한 베드로는 곧장 자기 집으로 간 것이 아니라,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이 집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드신 곳이자, 오순절 성령 강림과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시작된 곳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처자식이 있는 집이 아니라, 교회로 곧장 달려간 것입니다.
베드로가 교회에 도착했을 때, 한밤중이었음에도 성도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베드로가 감옥에서 탈출한 것은 베드로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기도를 드린 성도들의 마음’을 받으시고 베드로와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교회의 대적자들로부터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예화) 제가 3층 테라스 화단에서 천도복숭아 나무를 키우는데, 7월쯤 되면 복숭아가 먹을 만하게 자라납니다. 그런데 막상 따서 먹어보면 너무 셔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복숭아가 다 익었으니 조금 있다가 따자 하고 복숭아나무를 그냥 두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만든 1m 높이의 화단인지라 물이 부족해 복숭아 열매가 쭈글쭈글해지며 곧 말라 죽고 맙니다. 그래서 해가 쨍쨍 내리쬐는 8월까지 매일같이 쉬지 않고 벌레를 잡아주고, 물을 주고, 관심을 가져야 먹을 만한 복숭아를 딸 수 있게 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해야 합니다. 내 마음과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때까지 인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만큼 기도했으니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겠지” 하는 것은 올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께서 됐다고 하실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일례로, 이삭의 아들 ‘야곱’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매달려 천사와 씨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씨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를 통해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받았습니다.
엘가나의 아내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해, 엘가나의 다른 아내 브닌나에게 모욕을 당하며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했든지, 대제사장 엘리가 술 취한 줄 오해할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이처럼 고통 중에 끝까지 기도함으로 ‘사무엘’이라는 믿음의 사람을 낳게 되었고, 그 후에도 아들 셋과 딸 둘을 더 낳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분들 외에도 모세, 히스기야 왕, 엘리야, 다니엘 등을 통해 포기하지 않고 응답될 때까지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기한을 정하여 기도하는 것도 참으로 귀한 일이지만, 성경은 그 기한을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순간에도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여러분 모두 응답받는 기도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3-14절 함께 읽습니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는 성도들이 모여 있는 교회로 달려가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교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절망 속에서 간절히 부르짖은 기도에 대한 응답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문을 열어주기 위해 나간 ‘로데’라는 아이는 문틈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자 베드로임을 즉시 알아차렸습니다. 그런데 로데는 너무 기쁜 나머지 문을 여는 것을 잊어버리고 집안으로 다시 들어가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서 있어요”하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 기쁜 소식을 들은 기도하던 성도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15절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네가 미쳤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그들은 당시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베드로가 석방되어 왔다는 소식을 듣자, 그 소식을 전한 사람을 미친 사람 취급했습니다.
그래도 로데가 베드로가 왔다고 계속 외치자, 이제는 “그러면 그의 천사라”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마다 수호천사가 있어서, 그 사람이 죽거나 위급할 때 천사가 나타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베드로가 살아 돌아왔을 리는 없고, 아마도 처형당해서 그의 천사가 소식을 전하러 왔나 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의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이자,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보다는 순교라는 비극적 현실을 더 가능성 있게 여기는 것이 우리 기도의 실상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믿음의 선포라기보다, 절망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의 탄식에 가까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기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 가정을 하나님만 섬기는 가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우리 남편은, 또는 우리 아들은 그래도 안 바뀔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를 부흥시켜 달라고 기도하면서 “누가 개척교회인 우리 교회에 오겠어. 주위에 큰 교회들이 저렇게 많은데”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내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하면서도 만일을 대비해 실력있는 의사를 수소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입술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기도하지만, 기도의 응답에 대해서는 그 마음이 자신의 경험과 상식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고 있습니다.
(예화) 영국의 소설가 헐버트 웰즈의 작품 가운데 ‘대주교의 죽음’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대주교는 날마다 습관처럼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이 말을 듣는 순간 대주교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맙니다. 그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이는 형식주의적 종교인들에 대한 풍자입니다. 그러나 이는 기도하면서도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성도들을 향한 쓴 비판임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열심히 기도합니다. 밤을 새워 기도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합니다.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몇 달동안 간절히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기도가 응답되어도 그것이 기도 응답인줄 알지 못합니다. 기도 응답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그래서 감사도 할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열심히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이상으로 응답에 대한 확신도 가지시기 바랍니다.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갖고 하는 기도만이 응답으로 되돌아옵니다. 오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가슴에 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이어지는 18-19절 함께 읽습니다.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찌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밤새 교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기록한 저자는, 이제 세상 나라의 반응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탈옥으로 인해 교회가 기쁨과 간증으로 가득 찼다면, 세상 나라는 이로 인해 ‘적지 않게 소동’했습니다. 그리고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는’ 폭력과 책임 전가가 일어났습니다.
헤롯 왕은 베드로가 탈출한 사실을 알고 난 후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진실을 알려고 하기보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힘없는 파수꾼들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헤롯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 없는 세상 권력의 본질을 상징합니다. 세상 권력들은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결국 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 혼란에 빠지고, 그 실패를 힘이 없는 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들에게 폭력을 가함으로써 사건의 진상을 덮습니다.
성경은 이로써, 고난 중에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교회와 실패 앞에서 약한 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세상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교회는 억울한 고난 앞에서 중보기도를 함으로써 응답받아 생명을 구하고, 기쁨과 간증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분노와 억울한 죽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이 두 나라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헤롯의 방식, 곧 힘과 보복의 논리를 따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베드로와 초대교회처럼, 비록 우리의 힘이 연약할지라도 기도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지하며 성도로서 마땅한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마주했을 때,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헤롯처럼 분노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며,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간절히 중보기도를 하며, 로데처럼 순수한 기쁨으로 복음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된 상식과 불신 때문에 그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설마 그럴 리가 없어”, “그건 천사일 거야”라고 하며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기대와 상식을 넘어서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 없는 기도’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신뢰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에 아멘하며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기도와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는 복된 간증이 날마다 채워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내 마음과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때까지 인내하며 간구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됐다고 하실 때까지 간절히 간구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인간의 기대와 상식을 넘어서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 없는 기도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의 응답에 아멘하며 나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여러분, 혹시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이루어질까?” 하는 의심을 품어본 적은 없었습니까? 머리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가슴으로는 현실의 벽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입술로는 기적을 구하지만, 마음은 상식의 벽을 넘지 못할 때는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모습을 보게 합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출한 베드로는 곧장 자기 집으로 간 것이 아니라,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이 집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드신 곳이자, 오순절 성령 강림과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시작된 곳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처자식이 있는 집이 아니라, 교회로 곧장 달려간 것입니다.
베드로가 교회에 도착했을 때, 한밤중이었음에도 성도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베드로가 감옥에서 탈출한 것은 베드로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기도를 드린 성도들의 마음’을 받으시고 베드로와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교회의 대적자들로부터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예화) 제가 3층 테라스 화단에서 천도복숭아 나무를 키우는데, 7월쯤 되면 복숭아가 먹을 만하게 자라납니다. 그런데 막상 따서 먹어보면 너무 셔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복숭아가 다 익었으니 조금 있다가 따자 하고 복숭아나무를 그냥 두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만든 1m 높이의 화단인지라 물이 부족해 복숭아 열매가 쭈글쭈글해지며 곧 말라 죽고 맙니다. 그래서 해가 쨍쨍 내리쬐는 8월까지 매일같이 쉬지 않고 벌레를 잡아주고, 물을 주고, 관심을 가져야 먹을 만한 복숭아를 딸 수 있게 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해야 합니다. 내 마음과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때까지 인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만큼 기도했으니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겠지” 하는 것은 올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께서 됐다고 하실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일례로, 이삭의 아들 ‘야곱’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매달려 천사와 씨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씨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를 통해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받았습니다.
엘가나의 아내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해, 엘가나의 다른 아내 브닌나에게 모욕을 당하며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했든지, 대제사장 엘리가 술 취한 줄 오해할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이처럼 고통 중에 끝까지 기도함으로 ‘사무엘’이라는 믿음의 사람을 낳게 되었고, 그 후에도 아들 셋과 딸 둘을 더 낳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분들 외에도 모세, 히스기야 왕, 엘리야, 다니엘 등을 통해 포기하지 않고 응답될 때까지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기한을 정하여 기도하는 것도 참으로 귀한 일이지만, 성경은 그 기한을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순간에도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여러분 모두 응답받는 기도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3-14절 함께 읽습니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는 성도들이 모여 있는 교회로 달려가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교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절망 속에서 간절히 부르짖은 기도에 대한 응답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문을 열어주기 위해 나간 ‘로데’라는 아이는 문틈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자 베드로임을 즉시 알아차렸습니다. 그런데 로데는 너무 기쁜 나머지 문을 여는 것을 잊어버리고 집안으로 다시 들어가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서 있어요”하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 기쁜 소식을 들은 기도하던 성도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15절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네가 미쳤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그들은 당시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베드로가 석방되어 왔다는 소식을 듣자, 그 소식을 전한 사람을 미친 사람 취급했습니다.
그래도 로데가 베드로가 왔다고 계속 외치자, 이제는 “그러면 그의 천사라”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마다 수호천사가 있어서, 그 사람이 죽거나 위급할 때 천사가 나타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베드로가 살아 돌아왔을 리는 없고, 아마도 처형당해서 그의 천사가 소식을 전하러 왔나 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의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이자,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보다는 순교라는 비극적 현실을 더 가능성 있게 여기는 것이 우리 기도의 실상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믿음의 선포라기보다, 절망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의 탄식에 가까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기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 가정을 하나님만 섬기는 가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우리 남편은, 또는 우리 아들은 그래도 안 바뀔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를 부흥시켜 달라고 기도하면서 “누가 개척교회인 우리 교회에 오겠어. 주위에 큰 교회들이 저렇게 많은데”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내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하면서도 만일을 대비해 실력있는 의사를 수소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입술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기도하지만, 기도의 응답에 대해서는 그 마음이 자신의 경험과 상식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고 있습니다.
(예화) 영국의 소설가 헐버트 웰즈의 작품 가운데 ‘대주교의 죽음’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대주교는 날마다 습관처럼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이 말을 듣는 순간 대주교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맙니다. 그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이는 형식주의적 종교인들에 대한 풍자입니다. 그러나 이는 기도하면서도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성도들을 향한 쓴 비판임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열심히 기도합니다. 밤을 새워 기도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합니다.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몇 달동안 간절히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기도가 응답되어도 그것이 기도 응답인줄 알지 못합니다. 기도 응답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그래서 감사도 할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열심히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이상으로 응답에 대한 확신도 가지시기 바랍니다.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갖고 하는 기도만이 응답으로 되돌아옵니다. 오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가슴에 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이어지는 18-19절 함께 읽습니다.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찌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밤새 교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기록한 저자는, 이제 세상 나라의 반응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탈옥으로 인해 교회가 기쁨과 간증으로 가득 찼다면, 세상 나라는 이로 인해 ‘적지 않게 소동’했습니다. 그리고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는’ 폭력과 책임 전가가 일어났습니다.
헤롯 왕은 베드로가 탈출한 사실을 알고 난 후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진실을 알려고 하기보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힘없는 파수꾼들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헤롯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 없는 세상 권력의 본질을 상징합니다. 세상 권력들은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결국 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 혼란에 빠지고, 그 실패를 힘이 없는 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들에게 폭력을 가함으로써 사건의 진상을 덮습니다.
성경은 이로써, 고난 중에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교회와 실패 앞에서 약한 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세상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교회는 억울한 고난 앞에서 중보기도를 함으로써 응답받아 생명을 구하고, 기쁨과 간증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분노와 억울한 죽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이 두 나라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헤롯의 방식, 곧 힘과 보복의 논리를 따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베드로와 초대교회처럼, 비록 우리의 힘이 연약할지라도 기도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지하며 성도로서 마땅한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마주했을 때,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헤롯처럼 분노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며,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간절히 중보기도를 하며, 로데처럼 순수한 기쁨으로 복음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된 상식과 불신 때문에 그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설마 그럴 리가 없어”, “그건 천사일 거야”라고 하며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기대와 상식을 넘어서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 없는 기도’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신뢰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에 아멘하며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기도와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는 복된 간증이 날마다 채워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내 마음과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때까지 인내하며 간구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됐다고 하실 때까지 간절히 간구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인간의 기대와 상식을 넘어서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 없는 기도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의 응답에 아멘하며 나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