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9.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지난 본문에서, 바울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외로움과 두려움에 짓눌릴 때, 예수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바울에게 있어 이 말씀은 큰 위로와 소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전을 약속하셨으면 이어지는 오늘 본문에는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나고 유대인들로부터 오해도 풀려야 하는데,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대인 40여 명이 공회와 결탁하여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약속을 내 마음대로 짐작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을 더욱 신뢰하고 순종의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2~13절 함께 읽습니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맹세하고 결단한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 죽이는 일입니다. 이유를 막론하고 사사로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설령 바울이 죽을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들이 바울을 임의로 죽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에 따라 재판을 해서 죄가 있으면 법에 따라 징계를 하고, 죄가 없으면 석방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어기고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여기에서 ‘맹세하되 ἀνεθεμάτισαν’라는 말은 “우리 자신을 저주 아래 두기로 맹세했다”라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바울을 죽이지 못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어도 좋다”라는 목숨을 건 결연한 서약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에 더해서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라며 금식까지 선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자복하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내 영혼을 깨우는 경건의 훈련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성공시키기 위해 거룩한 금식을 도구로 악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14절입니다. 이 암살단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갔습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산헤드린 공회원들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고, 백성들에게 “살인하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쳐야 할 당시 최고의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15절에 이들은 암살단의 악한 제안을 반대하기는커녕, 도리어 기꺼이 동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들이 신앙인들입니까? 조직폭력배입니까? 신앙이 타락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삶을 파괴하고, 사회 공의를 파괴하고, 그를 통해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것이 타락한 종교인들의 실상입니다. 오늘 본문의 유대인들이 그러한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바울을 죽이기에 혈안이 된 이들은 아무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자들입니다. 바울로부터 자신들이 죽인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들었으면, 사도행전 2장의 경건한 유대인들처럼 자신이 행한 악한 일을 부끄러워하며 금식하고 가슴을 찢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교만과 불의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통회하고 자복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도리어 진리를 전하는 바울을 죽이기 위해 맹세하고 금식까지 하는 어리석은 결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는 이렇게 악한 일을 위해 결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과 불의한 일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정력과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심이 있다고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악한 일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법망을 피하여 불의한 이익을 얻기 위해 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수없이 많은, 금고를 터는 연습을 하고, 담을 넘는 연습을 하고, 착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 행세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일을 도모합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인들이 그러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죄없는 바울을 죽이기 위해 결단하고 금식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결단하십니까? 무엇을 위해 금식하십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금식하십니까?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의 구원을 위해 금식하십니까? 이 나라의 부정부패가 안타까워 금식하십니까? 하나님을 위해 선한 일을 더 많이 하기로 결단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족, 친지 친구를 구원하는 일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십자가만 자랑하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이라도 아낌없이 드리기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금식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거룩한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단을 통해 이 땅을 고치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런데 성경은 뜻밖의 한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16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여기에서 ‘생질’은 누이의 아들인 ‘조카’를 뜻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이름도 기록되지 않은 이 생질이 어떻게 철저히 보안이 유지되었을 암살단의 비밀 모의를 들을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당시 40여 명이 넘는 무리가 모여서 모의를 하다 보니 그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갔을 것이고, 마침 길을 지나던 이 바울의 생질이 듣게 된 것이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가리켜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참 운이 좋았다”, “마침 거기에 생질이 지나가서 다행이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에 성도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작고 세밀한 사건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는 반드시 어떤 기적과 같은 일을 통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나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의 ‘포도주가 물로 변하는 것’과 같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실 때 초자연적인 기적만 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를 통해 아주 조용하고 세밀하게 일하실 때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우연히 만난 사람, 오늘 내 귀에 들려온 작은 소식, 오늘 내게 베풀어 준 누군가의 친절,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음의 눈을 뜨고 여러분의 일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가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들의 모의가 바울의 생질에게 발각될 수 있었겠습니까? 또 어떻게 천부장이 청년의 말을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바울을 보호하려고 나섰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이 장면에서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바울은 자신에게 어떤 위기가 다가오는지 모르고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염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자신을 보호하신다는 굳은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기까지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29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모두 이 확신 안에서, 마음의 평안을 누리며 믿음의 헌신을 하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8~22절에는 로마군대가 죄수에 불과한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긴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들은 법을 제대로 집행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법을 마음대로 적용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법대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신앙과 공권력에는 긴밀한 상관 관계가 있습니다. 지금 바울이 투옥된 이때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그냥 지켜보고 있었을까요?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군대가 공의롭게 움직이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국가 권력이 타락하면 온 국민의 삶이 어려워집니다. 물론, 우리 성도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선교도 온전하게 감당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날마다 부정한 정권과 맞서 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소모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이러한 일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교회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국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국가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국가 권력이 바로 서야 국민도, 우리 교회도, 성도도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엇보다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실 때 국가 지도자를 위한 기도를 빼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가 이 자리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나라를 위한 피땀 어린 기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분들의 기도로 여기까지 왔음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과 국회의원, 6월 3일 새롭게 선출된 각 지역의 지도자들이 진실되고 충성되이 국민들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날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악한 자들은 어찌하든지 믿음의 사람들을 넘어뜨리려고 궤계를 꾸미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동자로 성도들을 보호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사탄 마귀가 아무리 거세게 위협할지라도 담대한 믿음으로 이겨내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바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로 기도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저희도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깨어 기도하는 중보의 용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9.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지난 본문에서, 바울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외로움과 두려움에 짓눌릴 때, 예수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바울에게 있어 이 말씀은 큰 위로와 소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전을 약속하셨으면 이어지는 오늘 본문에는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나고 유대인들로부터 오해도 풀려야 하는데,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대인 40여 명이 공회와 결탁하여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약속을 내 마음대로 짐작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을 더욱 신뢰하고 순종의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2~13절 함께 읽습니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맹세하고 결단한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 죽이는 일입니다. 이유를 막론하고 사사로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설령 바울이 죽을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들이 바울을 임의로 죽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에 따라 재판을 해서 죄가 있으면 법에 따라 징계를 하고, 죄가 없으면 석방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어기고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여기에서 ‘맹세하되 ἀνεθεμάτισαν’라는 말은 “우리 자신을 저주 아래 두기로 맹세했다”라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바울을 죽이지 못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어도 좋다”라는 목숨을 건 결연한 서약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에 더해서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라며 금식까지 선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자복하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내 영혼을 깨우는 경건의 훈련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성공시키기 위해 거룩한 금식을 도구로 악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14절입니다. 이 암살단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갔습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산헤드린 공회원들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고, 백성들에게 “살인하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쳐야 할 당시 최고의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15절에 이들은 암살단의 악한 제안을 반대하기는커녕, 도리어 기꺼이 동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들이 신앙인들입니까? 조직폭력배입니까? 신앙이 타락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삶을 파괴하고, 사회 공의를 파괴하고, 그를 통해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것이 타락한 종교인들의 실상입니다. 오늘 본문의 유대인들이 그러한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바울을 죽이기에 혈안이 된 이들은 아무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자들입니다. 바울로부터 자신들이 죽인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들었으면, 사도행전 2장의 경건한 유대인들처럼 자신이 행한 악한 일을 부끄러워하며 금식하고 가슴을 찢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교만과 불의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통회하고 자복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도리어 진리를 전하는 바울을 죽이기 위해 맹세하고 금식까지 하는 어리석은 결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는 이렇게 악한 일을 위해 결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과 불의한 일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정력과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심이 있다고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악한 일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법망을 피하여 불의한 이익을 얻기 위해 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수없이 많은, 금고를 터는 연습을 하고, 담을 넘는 연습을 하고, 착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 행세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일을 도모합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인들이 그러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죄없는 바울을 죽이기 위해 결단하고 금식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결단하십니까? 무엇을 위해 금식하십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금식하십니까?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의 구원을 위해 금식하십니까? 이 나라의 부정부패가 안타까워 금식하십니까? 하나님을 위해 선한 일을 더 많이 하기로 결단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족, 친지 친구를 구원하는 일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십자가만 자랑하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이라도 아낌없이 드리기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금식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거룩한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단을 통해 이 땅을 고치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런데 성경은 뜻밖의 한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16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여기에서 ‘생질’은 누이의 아들인 ‘조카’를 뜻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이름도 기록되지 않은 이 생질이 어떻게 철저히 보안이 유지되었을 암살단의 비밀 모의를 들을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당시 40여 명이 넘는 무리가 모여서 모의를 하다 보니 그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갔을 것이고, 마침 길을 지나던 이 바울의 생질이 듣게 된 것이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가리켜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참 운이 좋았다”, “마침 거기에 생질이 지나가서 다행이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에 성도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작고 세밀한 사건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는 반드시 어떤 기적과 같은 일을 통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나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의 ‘포도주가 물로 변하는 것’과 같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실 때 초자연적인 기적만 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를 통해 아주 조용하고 세밀하게 일하실 때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우연히 만난 사람, 오늘 내 귀에 들려온 작은 소식, 오늘 내게 베풀어 준 누군가의 친절,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음의 눈을 뜨고 여러분의 일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가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들의 모의가 바울의 생질에게 발각될 수 있었겠습니까? 또 어떻게 천부장이 청년의 말을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바울을 보호하려고 나섰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이 장면에서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바울은 자신에게 어떤 위기가 다가오는지 모르고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염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자신을 보호하신다는 굳은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기까지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29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모두 이 확신 안에서, 마음의 평안을 누리며 믿음의 헌신을 하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8~22절에는 로마군대가 죄수에 불과한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긴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들은 법을 제대로 집행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법을 마음대로 적용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법대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신앙과 공권력에는 긴밀한 상관 관계가 있습니다. 지금 바울이 투옥된 이때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그냥 지켜보고 있었을까요?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군대가 공의롭게 움직이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국가 권력이 타락하면 온 국민의 삶이 어려워집니다. 물론, 우리 성도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선교도 온전하게 감당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날마다 부정한 정권과 맞서 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소모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이러한 일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교회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국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국가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국가 권력이 바로 서야 국민도, 우리 교회도, 성도도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엇보다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실 때 국가 지도자를 위한 기도를 빼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가 이 자리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나라를 위한 피땀 어린 기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분들의 기도로 여기까지 왔음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과 국회의원, 6월 3일 새롭게 선출된 각 지역의 지도자들이 진실되고 충성되이 국민들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날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악한 자들은 어찌하든지 믿음의 사람들을 넘어뜨리려고 궤계를 꾸미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동자로 성도들을 보호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사탄 마귀가 아무리 거세게 위협할지라도 담대한 믿음으로 이겨내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바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로 기도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저희도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깨어 기도하는 중보의 용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