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예화) 어느 유명한 대기업의 신입사원 최종 면접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마지막 관문은 회장님과의 1:1 면접이었는데, 회장님은 뜻밖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네, 부모님의 발을 씻겨드린 적이 있는가?” 청년은 당황하며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회장님은 “오늘 집에 가서 부모님의 발을 꼭 씻겨드리고, 내일 다시 오게”라고 말했습니다.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정성으로 자신을 뒷바라지 해준 부모님을 떠올리며, 청년은 집으로 돌아가 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 왔습니다. 그리고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의 발을 잡았습니다. 아버지의 발을 물에 담그고 씻기기 시작한 청년은 그만 멈칫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발바닥은 마치 오래된 나무껍질처럼 딱딱하게 갈라지고 굳어 있었습니다. 마음이 울컥해진 청년은 옆에 계신 어머니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공부를 위해 평생 식당 일을 하셨던 어머니의 손바닥에는 지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거친 일을 많이 해서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진 것입니다. 이 부모님의 손과 발은 아들을 최선을 다해 양육하고 가르쳐서 취업의 현장까지 밀어 올린 ‘지렛대’였습니다.
청년은 부모님의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해요. 두 분이 이렇게 힘들게 사신 줄도 모르고 저는 제 앞길만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다시 회장님을 찾아간 청년에게 회장님이 물었습니다. “부모님의 발을 씻기며 무엇을 느꼈나?” 청년은 대답했습니다. “부모님의 희생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제가 부모님의 발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회장님은 빙그레 웃으며 그를 합격시켰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은 공짜가 아닙니다. 우리 부모님께서 지문이 닳아 없어지는 고통을 견디셨고, 발바닥이 갈라지는 길을 인내하며 걸으신 대가입니다.
이번 어버이 주일에는 부모님의 손을 한 번 꼭 잡아드리시기 바랍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한 통 못했다면,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그 한마디에 부모님은 닳아 없어진 지문을 보상받는 기쁨을 느끼실 것입니다. 부모님의 흉터는 자녀에게는 가장 영광스러운 훈장입니다. 이번 주일, 그 훈장에 깊은 감사를 표하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함으로 하나님의 크신 언약의 축복 안에 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바울 역시, 어쩌면 우리 부모님들처럼 ‘발바닥이 갈라지고 지문이 닳도록’ 우리를 위해 일했던 사람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거친 세파 속에서도 자녀라는 ‘사명’ 하나로 버티셨던 것처럼, 바울 역시 매 맞고 결박당하는 고난 속에서 오직 ‘복음’이라는 사명을 붙들고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본문에 이어서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돌아온 결과는 유대인들에게 죽기 직전까지 매 맞고, 로마 군인들에게 결박당해 끌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보통 “하나님, 제가 주를 위해 일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며 항변하거나, 아니면 내 힘으로 이 상황을 모면해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하지만 바울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합니다. 매를 맞아 온몸이 아픈 상태였지만, 그는 다시 힘을 내어 자신을 죽이려던 군중 앞에 서서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고난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고 기다리는 지혜는 무엇인지 배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37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바울은 영내로 끌려 들어가기 직전에, 이제까지의 침묵을 깨고 천부장을 향해 입을 열어 자신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당시 상황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36절에, 바울은 유대인들의 무리가 그를 죽이라고 외치며 따라갈 때도 입을 꾹 다물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천부장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정중하게 수준 높은 헬라어로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천부장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38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는 바울을 얼마 전 민란을 일으켰던 ‘애굽인 자객’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입에서 흘러나온 세련된 헬라어는, 그에게 바울이 단순한 폭도가 아님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리고 천부장은 얼떨결에 바울에게 말할 기회를 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울이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천부장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평소 바울이 갈고닦았던 실력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지만 헬라문화권인 다소에서 자랐고, 로마 시민권을 가졌으며, 최고의 율법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이런 배경과 지식을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무시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바울의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라, 그가 구사한 유창한 헬라어와 품위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울에게 평소에 쌓아온 지식과 소양이 있었기에 복음이 전해져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문’을 여는 열쇠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을 교훈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혹, 지금 여러분 중에서 고난의 시간이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준비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이 시간은 낭비의 시간이 아닙니다. 실력을 쌓아야 할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고자 할 때, 내가 세상의 언어와 지식으로도 소통할 수 있고, 복음의 진리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준비가 뒷받침될 때 우리는 바울처럼 온전한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고 있는 명언 중에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것을 그 기회를 사용하지 못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Ralph Waldo Emerson). 기회란 누구에게나 반드시 오게 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것은 그에게 그 기회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이런 속담도 있습니다. “쇠는 뜨거울 때 두드려라” 차가운 쇠는 아무리 두드려도 힘만 빠질 뿐 원하는 모양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자칫하다가는 해머도 망가지고, 몸도 다치게 됩니다. 그러나 쇠를 뜨거운 불에 달군 후에 두드리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바울이 바로 이러한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만일, 그가 평소 자신의 열정대로 ‘성급하게’ 유대인들의 틈바구니에서 복음을 전했다면 돌에 맞아 순교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의 로마행은 무산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들도 바울처럼 배우고 준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 그 기회를 선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준비되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조금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이 두 가지를 마음에 새기고, 배우고 익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되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39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바울이 천부장에게 부탁하여 유대인들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자기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 변명하거나 원수를 갚기 위함이 아니라,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당시 상황이 과연 복음을 전할 만한 상황이었습니까? 그는 당시 자신을 적대시하는 유대 군중들로부터 부당하게 집단 폭행을 당해 목숨까지 위태롭게 되었고, 로마 군사들에게 들려 로마군영 안으로 끌려가던 중이었습니다. 그의 온 몸에는 매를 맞아 피가 흐르고, 그 충격으로 정신을 차리기도 힘겨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까지 한 것은 특별한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에 좋은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랑스러워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죽이려 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왜입니까?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이렇게 자신을 죽이려 한 자들에게까지 어떻게든 복음을 전하게 한 것입니까?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소명의식’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16에서 자신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부득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므로 부득불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복음전파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딤후 4:2). 그는 사도행전 20:24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이 고백대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고백하기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라고 당당하게 외쳤습니다(딤후 4:7). 여러분, 얼마나 자기 사명에 충실했으면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참으로 자기 사명에 충실한 복음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복음 증거의 사명은 바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복음 증거의 사명은 예수님의 제자된 모든 성도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사명입니다(마 28:19-20, 행 1:8). 물론, 전문 사역자와 일반 성도의 구분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 증거의 사명’은 성도라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같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증거에 힘써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치리라’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겠다’라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얼마나 복음 증거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의 날에 여러분에게 삶의 열매를 찾으실 때,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내어놓겠습니까? 그날에 하나님 앞에서 바울처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고백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40절 함께 읽습니다.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천부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바울은 쇠사슬에 묶인 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난폭하던 군중이 ‘매우 조용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기적 아닙니까? 방금까지 돌을 던지며 죽이라고 외치던 수많은 유대인이 쇠사슬에 묶인 바울의 손짓에 침묵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침묵은 바울의 권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모세가 지팡이를 든 손을 높이 들자 홍해가 갈라진 것처럼, 하나님께서 바울이 쇠사슬에 묶인 손을 높이 들자 그들의 입을 막으신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을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조성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침묵’의 시간입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상황은 점점 나빠지는 것 같은 고요함이 우리를 감쌀 때입니다. 우리가 새벽에 상고하는 욥기의 욥이 가장 힘들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바울이 층계 위에 서서 복음을 전하기까지, 그는 매 맞고 끌려가고 쇠사슬에 결박당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바울을 군중들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높은 ‘층계 위’로 올리셨고, 쇠사슬에 묶인 손을 통해 군중들의 입을 닫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고난은 우리를 깎아내리는 과정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 앞에 세우고 계시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욥기의 욥이 고난을 통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뵙게 된 것과 같은 응답과 신앙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욥 42:5).
지금 여러분의 삶이 소란스럽습니까? 아니면 너무나 고요해서 불안합니까? 바울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당당히 서서 소란한 소리들을 멈추게 하고 복음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게 하실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세상은 우리의 증언을 듣게 될 것임을 믿고 용기를 내어 고난 앞에서 당당하게 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특히,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바울처럼 채움과 기다림과 참음으로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승하는 복된 부모님, 그리고 이에 순종하는 자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바울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조급함을 회개합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원망하고, 조금만 오해를 받아도 억울해하던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바울이 가졌던 침착함과 복음에 대한 열정을 우리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이 아무리 험난할지라도, 그곳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명의 자리’임을 믿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실력을 쌓고 복음을 예비하는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층계 위로 올리시고 결국 승리하게 하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37.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예화) 어느 유명한 대기업의 신입사원 최종 면접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마지막 관문은 회장님과의 1:1 면접이었는데, 회장님은 뜻밖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네, 부모님의 발을 씻겨드린 적이 있는가?” 청년은 당황하며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회장님은 “오늘 집에 가서 부모님의 발을 꼭 씻겨드리고, 내일 다시 오게”라고 말했습니다.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정성으로 자신을 뒷바라지 해준 부모님을 떠올리며, 청년은 집으로 돌아가 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 왔습니다. 그리고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의 발을 잡았습니다. 아버지의 발을 물에 담그고 씻기기 시작한 청년은 그만 멈칫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발바닥은 마치 오래된 나무껍질처럼 딱딱하게 갈라지고 굳어 있었습니다. 마음이 울컥해진 청년은 옆에 계신 어머니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공부를 위해 평생 식당 일을 하셨던 어머니의 손바닥에는 지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거친 일을 많이 해서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진 것입니다. 이 부모님의 손과 발은 아들을 최선을 다해 양육하고 가르쳐서 취업의 현장까지 밀어 올린 ‘지렛대’였습니다.
청년은 부모님의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해요. 두 분이 이렇게 힘들게 사신 줄도 모르고 저는 제 앞길만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다시 회장님을 찾아간 청년에게 회장님이 물었습니다. “부모님의 발을 씻기며 무엇을 느꼈나?” 청년은 대답했습니다. “부모님의 희생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제가 부모님의 발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회장님은 빙그레 웃으며 그를 합격시켰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은 공짜가 아닙니다. 우리 부모님께서 지문이 닳아 없어지는 고통을 견디셨고, 발바닥이 갈라지는 길을 인내하며 걸으신 대가입니다.
이번 어버이 주일에는 부모님의 손을 한 번 꼭 잡아드리시기 바랍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한 통 못했다면,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그 한마디에 부모님은 닳아 없어진 지문을 보상받는 기쁨을 느끼실 것입니다. 부모님의 흉터는 자녀에게는 가장 영광스러운 훈장입니다. 이번 주일, 그 훈장에 깊은 감사를 표하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함으로 하나님의 크신 언약의 축복 안에 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바울 역시, 어쩌면 우리 부모님들처럼 ‘발바닥이 갈라지고 지문이 닳도록’ 우리를 위해 일했던 사람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거친 세파 속에서도 자녀라는 ‘사명’ 하나로 버티셨던 것처럼, 바울 역시 매 맞고 결박당하는 고난 속에서 오직 ‘복음’이라는 사명을 붙들고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본문에 이어서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돌아온 결과는 유대인들에게 죽기 직전까지 매 맞고, 로마 군인들에게 결박당해 끌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보통 “하나님, 제가 주를 위해 일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며 항변하거나, 아니면 내 힘으로 이 상황을 모면해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하지만 바울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합니다. 매를 맞아 온몸이 아픈 상태였지만, 그는 다시 힘을 내어 자신을 죽이려던 군중 앞에 서서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고난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고 기다리는 지혜는 무엇인지 배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37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바울은 영내로 끌려 들어가기 직전에, 이제까지의 침묵을 깨고 천부장을 향해 입을 열어 자신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당시 상황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36절에, 바울은 유대인들의 무리가 그를 죽이라고 외치며 따라갈 때도 입을 꾹 다물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천부장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정중하게 수준 높은 헬라어로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천부장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38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는 바울을 얼마 전 민란을 일으켰던 ‘애굽인 자객’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입에서 흘러나온 세련된 헬라어는, 그에게 바울이 단순한 폭도가 아님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리고 천부장은 얼떨결에 바울에게 말할 기회를 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울이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천부장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평소 바울이 갈고닦았던 실력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지만 헬라문화권인 다소에서 자랐고, 로마 시민권을 가졌으며, 최고의 율법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이런 배경과 지식을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무시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바울의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라, 그가 구사한 유창한 헬라어와 품위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울에게 평소에 쌓아온 지식과 소양이 있었기에 복음이 전해져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문’을 여는 열쇠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을 교훈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혹, 지금 여러분 중에서 고난의 시간이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준비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이 시간은 낭비의 시간이 아닙니다. 실력을 쌓아야 할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고자 할 때, 내가 세상의 언어와 지식으로도 소통할 수 있고, 복음의 진리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준비가 뒷받침될 때 우리는 바울처럼 온전한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고 있는 명언 중에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것을 그 기회를 사용하지 못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Ralph Waldo Emerson). 기회란 누구에게나 반드시 오게 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것은 그에게 그 기회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이런 속담도 있습니다. “쇠는 뜨거울 때 두드려라” 차가운 쇠는 아무리 두드려도 힘만 빠질 뿐 원하는 모양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자칫하다가는 해머도 망가지고, 몸도 다치게 됩니다. 그러나 쇠를 뜨거운 불에 달군 후에 두드리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바울이 바로 이러한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만일, 그가 평소 자신의 열정대로 ‘성급하게’ 유대인들의 틈바구니에서 복음을 전했다면 돌에 맞아 순교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의 로마행은 무산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들도 바울처럼 배우고 준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 그 기회를 선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준비되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조금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이 두 가지를 마음에 새기고, 배우고 익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되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39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바울이 천부장에게 부탁하여 유대인들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자기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 변명하거나 원수를 갚기 위함이 아니라,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당시 상황이 과연 복음을 전할 만한 상황이었습니까? 그는 당시 자신을 적대시하는 유대 군중들로부터 부당하게 집단 폭행을 당해 목숨까지 위태롭게 되었고, 로마 군사들에게 들려 로마군영 안으로 끌려가던 중이었습니다. 그의 온 몸에는 매를 맞아 피가 흐르고, 그 충격으로 정신을 차리기도 힘겨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까지 한 것은 특별한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에 좋은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랑스러워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죽이려 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왜입니까?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이렇게 자신을 죽이려 한 자들에게까지 어떻게든 복음을 전하게 한 것입니까?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소명의식’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16에서 자신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부득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므로 부득불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복음전파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딤후 4:2). 그는 사도행전 20:24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이 고백대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고백하기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라고 당당하게 외쳤습니다(딤후 4:7). 여러분, 얼마나 자기 사명에 충실했으면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참으로 자기 사명에 충실한 복음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복음 증거의 사명은 바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복음 증거의 사명은 예수님의 제자된 모든 성도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사명입니다(마 28:19-20, 행 1:8). 물론, 전문 사역자와 일반 성도의 구분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 증거의 사명’은 성도라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같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증거에 힘써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치리라’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겠다’라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얼마나 복음 증거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의 날에 여러분에게 삶의 열매를 찾으실 때,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내어놓겠습니까? 그날에 하나님 앞에서 바울처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고백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40절 함께 읽습니다.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천부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바울은 쇠사슬에 묶인 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난폭하던 군중이 ‘매우 조용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기적 아닙니까? 방금까지 돌을 던지며 죽이라고 외치던 수많은 유대인이 쇠사슬에 묶인 바울의 손짓에 침묵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침묵은 바울의 권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모세가 지팡이를 든 손을 높이 들자 홍해가 갈라진 것처럼, 하나님께서 바울이 쇠사슬에 묶인 손을 높이 들자 그들의 입을 막으신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을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조성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침묵’의 시간입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상황은 점점 나빠지는 것 같은 고요함이 우리를 감쌀 때입니다. 우리가 새벽에 상고하는 욥기의 욥이 가장 힘들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바울이 층계 위에 서서 복음을 전하기까지, 그는 매 맞고 끌려가고 쇠사슬에 결박당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바울을 군중들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높은 ‘층계 위’로 올리셨고, 쇠사슬에 묶인 손을 통해 군중들의 입을 닫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고난은 우리를 깎아내리는 과정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 앞에 세우고 계시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욥기의 욥이 고난을 통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뵙게 된 것과 같은 응답과 신앙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욥 42:5).
지금 여러분의 삶이 소란스럽습니까? 아니면 너무나 고요해서 불안합니까? 바울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당당히 서서 소란한 소리들을 멈추게 하고 복음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게 하실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세상은 우리의 증언을 듣게 될 것임을 믿고 용기를 내어 고난 앞에서 당당하게 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특히,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바울처럼 채움과 기다림과 참음으로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승하는 복된 부모님, 그리고 이에 순종하는 자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바울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조급함을 회개합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원망하고, 조금만 오해를 받아도 억울해하던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바울이 가졌던 침착함과 복음에 대한 열정을 우리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이 아무리 험난할지라도, 그곳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명의 자리’임을 믿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실력을 쌓고 복음을 예비하는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층계 위로 올리시고 결국 승리하게 하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