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탄절이 12월 25일로 정해진 것은 4세기경입니다. 그 후 날짜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다가 전세계적인 성탄절로 자리매김을 한 것은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때부터 입니다. 오늘날의 크리스마스트리,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 카드, 크리스마스 캐럴도 ‘빅토리아 여왕’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수전노 ‘스크루지’가 등장하는 찰스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롤’도 이때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지, 실제로 탄생하신 날은 아닙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탄생 일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고, 사도들이나 초대 교부들을 통해 확실하게 전승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정확한 탄생 날짜와 교회에서 성탄의 의식을 실제로 시작한 시기에 관해서 신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가톨릭 대사전에서도 이를 언급하고 있으며, 개신교의 신학대학원에서도 기본적으로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님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 12월 25일을 성탄으로 지내는 것은 복된 일이라 여겨집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삶을 다짐하는 성탄절은 하나님께서도 귀히 여기시고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옆사람과 인사합니다. “성탄을 축하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들은 사람들과 그들의 반응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탄절인 오늘,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절에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 나시매”라고 말씀합니다(미 5:2).
헤롯왕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으로서 이두메 출신입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의 왕이 될 수 없었으나 당시 유대 지역을 식민지로 통치하고 있던 로마에 많은 뇌물을 주고 왕위를 돈으로 샀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는 성격이 음흉하고 매우 포악한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의심이 무척 많았는데, 자신의 유대인 아내와 아들을 왕위 찬탈음모를 꾸민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살해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악한 성품은 16절에 죄 없는 유아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모습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가짜 왕이자 극악한 폭군이 통치할 때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그리스도 예언의 성취 시기는 성군이 통치하는 평화의 때가 아니라, 잔인하고 포악한 자가 불법적으로 왕이 되어 유대 땅을 통치하던 때, 로마제국의 식민지로서 백성들의 삶이 가장 힘이 들 때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도 불법과 압제와 가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쉬지 않고 연약한 백성들을 돌보셨으며, 인류구원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 고난을 기꺼이 감내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러한 삶을 본받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이라고 말씀합니다(마 7:21).
여러분, 성도의 삶은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에덴동산과 같은 낙원에서의 삶이 아니라, 사탄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영적인 전쟁터에서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별하여 택하신 것은 구원받은 성도로서 평안한 삶을 살도록 하심이 아니라, 사탄의 미혹으로 인해 무너진 하나님 나라를 다시 세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물질과 건강과 명예도 이를 이루기 위해 필요에 따라 주시는 은혜의 선물들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신앙을 복을 얻어 편안히 사는 수단’으로, ‘기도를 문제를 회피하고 해결하는 수단’으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가장 불의가 성행하던 때, 가장 가난할 때 이 땅에 오셔서 구원 사역을 펼치셨으며, 제자들에게도 가장 위험한 예루살렘부터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행 1:8).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문제 앞에서 도피하거나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싸워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도피처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피할 길을 열어 달라고 구할 것이 아니라 문제와 싸워 이길 힘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시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길 힘을 주셔서 여러분의 삶을 승리와 영광의 삶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2. 이어지는 말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보인 반응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2절에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유대인의 왕’은 이스라엘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인 ‘다윗의 자손’을 기다렸듯(마 12:23), 이방인들 사이에서의 ‘그리스도’, 곧 ‘구세주’에 대한 별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동방 박사들은 자신들이 살던 동방에서부터 밝게 빛나는 별을 따라서 그 별이 가리키는 그리스도께 경배하기 위해 먼 길을 여행하여 이곳 예루살렘까지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왕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듣고도 전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경배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스스로 유대인의 왕으로 자처하던 헤롯은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듣고 매우 놀라며 공포에 사로잡혔고, 하나님의 종으로 자처하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에 대하여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헤롯의 질문에 정확하게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예언을 가르쳐 주면서도 아무런 관심도 기쁨도 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무관심이었습니다. 그들이 과연 성경을 연구하고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중보 사역을 담당하는 자들인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3절에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라고 말씀합니다. ‘소동하다’라는 말은 ‘뒤흔들다’, ‘흥분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이 온 예루살렘을 떠들썩하게 했고, 그로 인해 듣지 못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과 종교인 그리고 백성들 중에서 동방 박사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찾아 나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들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헤롯 왕처럼 자신의 이익과 권세를 지키기 위해 기독교를 무조건 적대시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경건의 능력은 없고 오직 종교를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충족의 수단으로 삼는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동방 박사들처럼 진리에 대해 갈급해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세주로 믿고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값진 것을 드려 헌신하는 진실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들 중에서 어디에 속하십니까? 구원은 복음을 듣는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듣고 기쁨으로 영접하는 사람만이 받습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하여 들었지만, 그리스도를 경배한 사람은 동방 박사들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하여 듣고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지식을 통해 뜨겁게 예수님을 만나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교만의 도구가 아니라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 이웃, 동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선한 축복의 도구로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임을 성탄을 맞이한 오늘 다시 한번 기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0절에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기쁨을 최상급으로 표현한 것’으로, 박사들의 기쁨은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이유’가 됩니다. 세상에서 얻는 기쁨은 매우 순간적인 기쁨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구세주와의 만남이자 복의 근원과의 만남이요, 영원한 생명과의 만남이기에 계속해서 지속되는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의 삶에 이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를 만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원히 멸망할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는데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는데 무엇이 근심되겠습니까?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살전 5:16).
그리고 11절에, 동방 박사들은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여기서 ‘집’은 왕궁이 아니라 예수께서 탄생하신 마구간을 가리킵니다(눅 2:7). 여러분, 동방 박사들은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알리는 별을 보고 경배하고자 멀리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유대인의 왕과 관리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또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 곳도 예루살렘의 왕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기대하며 꿈꾸며 먼 길을 여행하며 만난 그리스도는 ‘마구간 구유’에 뉘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곳에는 유대의 왕족이나 귀족들은 한 사람도 없었으며, 단지 이제 출산을 마친 가난한 산모와 그의 남편과 아기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만일, 여러분 같으면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그가 과연 그리스도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별의 인도를 믿는다고 해도 눈앞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동방 박사들처럼 선뜻 들어가 말구유에 뉘여 있는 아기에게 엎드려 절하며 귀중하게 간직해 온 예물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로부터 아무런 답례도 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말입니다.
여러분, 바로 여기에 믿음의 본질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도의 응답이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너무나 차이가 날 때 선뜻 ‘아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입으로는 ‘믿습니다’라고 외치지만 정작 고난과 실패가 앞을 가로막을 때, 믿음의 확신을 잃고 넘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마 14:24-33). 그런데 오늘 본문의 동방 박사들은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이 세 가지 예물은 동방 지역의 특산품으로서 매우 값진 것들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이처럼 귀한 것을 예수께 드렸다는 것은 그들이 온 인류의 구세주로 나신 예수께 최상의 예를 갖추었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 앞에 나아올 때 어떠한 마음 자세로 나아오십니까? 동방 박사들처럼, ‘하나님의 응답이 나의 생각과 전혀 다를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는 믿음으로 나아오고 계십니까?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처럼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구미에 맞는 그리스도를 꿈꾸며, 오히려 예수님을 자신의 뜻대로 요리하려는 모습을 가지고 나아오지는 않습니까?
오늘, 성탄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때’에,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 반드시 이단 사상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익히 살펴본 대로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하여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배우기를 다시 한번 다짐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아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동방의 박사들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동방에서 별을 보자 그리스도를 뵙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를 만나자 믿음으로 준비한 예물을 드리며 극진한 마음으로 경배했습니다. 반면 선민임을 자랑하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예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에 아무런 기쁨도 없었습니다. 오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되 동방 박사들처럼 자신의 보배합을 열어 회개와 믿음과 순종과 사랑의 아름다운 예물을 드림으로써 진정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탄절이 12월 25일로 정해진 것은 4세기경입니다. 그 후 날짜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다가 전세계적인 성탄절로 자리매김을 한 것은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때부터 입니다. 오늘날의 크리스마스트리,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 카드, 크리스마스 캐럴도 ‘빅토리아 여왕’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수전노 ‘스크루지’가 등장하는 찰스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롤’도 이때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지, 실제로 탄생하신 날은 아닙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탄생 일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고, 사도들이나 초대 교부들을 통해 확실하게 전승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정확한 탄생 날짜와 교회에서 성탄의 의식을 실제로 시작한 시기에 관해서 신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가톨릭 대사전에서도 이를 언급하고 있으며, 개신교의 신학대학원에서도 기본적으로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님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 12월 25일을 성탄으로 지내는 것은 복된 일이라 여겨집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삶을 다짐하는 성탄절은 하나님께서도 귀히 여기시고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옆사람과 인사합니다. “성탄을 축하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들은 사람들과 그들의 반응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탄절인 오늘,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절에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 나시매”라고 말씀합니다(미 5:2).
헤롯왕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으로서 이두메 출신입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의 왕이 될 수 없었으나 당시 유대 지역을 식민지로 통치하고 있던 로마에 많은 뇌물을 주고 왕위를 돈으로 샀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는 성격이 음흉하고 매우 포악한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의심이 무척 많았는데, 자신의 유대인 아내와 아들을 왕위 찬탈음모를 꾸민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살해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악한 성품은 16절에 죄 없는 유아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모습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가짜 왕이자 극악한 폭군이 통치할 때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그리스도 예언의 성취 시기는 성군이 통치하는 평화의 때가 아니라, 잔인하고 포악한 자가 불법적으로 왕이 되어 유대 땅을 통치하던 때, 로마제국의 식민지로서 백성들의 삶이 가장 힘이 들 때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도 불법과 압제와 가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쉬지 않고 연약한 백성들을 돌보셨으며, 인류구원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 고난을 기꺼이 감내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러한 삶을 본받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이라고 말씀합니다(마 7:21).
여러분, 성도의 삶은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에덴동산과 같은 낙원에서의 삶이 아니라, 사탄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영적인 전쟁터에서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별하여 택하신 것은 구원받은 성도로서 평안한 삶을 살도록 하심이 아니라, 사탄의 미혹으로 인해 무너진 하나님 나라를 다시 세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물질과 건강과 명예도 이를 이루기 위해 필요에 따라 주시는 은혜의 선물들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신앙을 복을 얻어 편안히 사는 수단’으로, ‘기도를 문제를 회피하고 해결하는 수단’으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가장 불의가 성행하던 때, 가장 가난할 때 이 땅에 오셔서 구원 사역을 펼치셨으며, 제자들에게도 가장 위험한 예루살렘부터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행 1:8).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문제 앞에서 도피하거나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싸워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도피처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피할 길을 열어 달라고 구할 것이 아니라 문제와 싸워 이길 힘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시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길 힘을 주셔서 여러분의 삶을 승리와 영광의 삶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2. 이어지는 말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보인 반응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2절에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유대인의 왕’은 이스라엘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인 ‘다윗의 자손’을 기다렸듯(마 12:23), 이방인들 사이에서의 ‘그리스도’, 곧 ‘구세주’에 대한 별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동방 박사들은 자신들이 살던 동방에서부터 밝게 빛나는 별을 따라서 그 별이 가리키는 그리스도께 경배하기 위해 먼 길을 여행하여 이곳 예루살렘까지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왕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듣고도 전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경배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스스로 유대인의 왕으로 자처하던 헤롯은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듣고 매우 놀라며 공포에 사로잡혔고, 하나님의 종으로 자처하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에 대하여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헤롯의 질문에 정확하게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예언을 가르쳐 주면서도 아무런 관심도 기쁨도 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무관심이었습니다. 그들이 과연 성경을 연구하고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중보 사역을 담당하는 자들인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3절에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라고 말씀합니다. ‘소동하다’라는 말은 ‘뒤흔들다’, ‘흥분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이 온 예루살렘을 떠들썩하게 했고, 그로 인해 듣지 못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과 종교인 그리고 백성들 중에서 동방 박사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찾아 나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들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헤롯 왕처럼 자신의 이익과 권세를 지키기 위해 기독교를 무조건 적대시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경건의 능력은 없고 오직 종교를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충족의 수단으로 삼는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동방 박사들처럼 진리에 대해 갈급해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세주로 믿고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값진 것을 드려 헌신하는 진실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들 중에서 어디에 속하십니까? 구원은 복음을 듣는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듣고 기쁨으로 영접하는 사람만이 받습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하여 들었지만, 그리스도를 경배한 사람은 동방 박사들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하여 듣고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지식을 통해 뜨겁게 예수님을 만나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교만의 도구가 아니라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 이웃, 동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선한 축복의 도구로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임을 성탄을 맞이한 오늘 다시 한번 기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0절에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기쁨을 최상급으로 표현한 것’으로, 박사들의 기쁨은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이유’가 됩니다. 세상에서 얻는 기쁨은 매우 순간적인 기쁨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구세주와의 만남이자 복의 근원과의 만남이요, 영원한 생명과의 만남이기에 계속해서 지속되는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의 삶에 이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를 만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원히 멸망할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는데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는데 무엇이 근심되겠습니까?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살전 5:16).
그리고 11절에, 동방 박사들은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여기서 ‘집’은 왕궁이 아니라 예수께서 탄생하신 마구간을 가리킵니다(눅 2:7). 여러분, 동방 박사들은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알리는 별을 보고 경배하고자 멀리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유대인의 왕과 관리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또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 곳도 예루살렘의 왕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기대하며 꿈꾸며 먼 길을 여행하며 만난 그리스도는 ‘마구간 구유’에 뉘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곳에는 유대의 왕족이나 귀족들은 한 사람도 없었으며, 단지 이제 출산을 마친 가난한 산모와 그의 남편과 아기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만일, 여러분 같으면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그가 과연 그리스도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별의 인도를 믿는다고 해도 눈앞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동방 박사들처럼 선뜻 들어가 말구유에 뉘여 있는 아기에게 엎드려 절하며 귀중하게 간직해 온 예물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로부터 아무런 답례도 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말입니다.
여러분, 바로 여기에 믿음의 본질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도의 응답이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너무나 차이가 날 때 선뜻 ‘아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입으로는 ‘믿습니다’라고 외치지만 정작 고난과 실패가 앞을 가로막을 때, 믿음의 확신을 잃고 넘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마 14:24-33). 그런데 오늘 본문의 동방 박사들은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이 세 가지 예물은 동방 지역의 특산품으로서 매우 값진 것들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이처럼 귀한 것을 예수께 드렸다는 것은 그들이 온 인류의 구세주로 나신 예수께 최상의 예를 갖추었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 앞에 나아올 때 어떠한 마음 자세로 나아오십니까? 동방 박사들처럼, ‘하나님의 응답이 나의 생각과 전혀 다를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는 믿음으로 나아오고 계십니까?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처럼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구미에 맞는 그리스도를 꿈꾸며, 오히려 예수님을 자신의 뜻대로 요리하려는 모습을 가지고 나아오지는 않습니까?
오늘, 성탄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때’에,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 반드시 이단 사상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익히 살펴본 대로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하여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배우기를 다시 한번 다짐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아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동방의 박사들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동방에서 별을 보자 그리스도를 뵙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를 만나자 믿음으로 준비한 예물을 드리며 극진한 마음으로 경배했습니다. 반면 선민임을 자랑하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예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에 아무런 기쁨도 없었습니다. 오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되 동방 박사들처럼 자신의 보배합을 열어 회개와 믿음과 순종과 사랑의 아름다운 예물을 드림으로써 진정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