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39.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 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가 당시 부패하고 타락한 로마 교회의 회개를 외치며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의 정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인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16세기 종교개혁의 출발점이 되었는데, 개혁교회는 이 날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말씀’으로 교회가 새로워지기를 다짐하는 기념일로 삼았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신 말씀도 부패한 유대교를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새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7장으로부터 시작된 초막절 전후에 있었던 예수님의 행적 중에서 열한 번째 단락으로, 예수님과 유대인들 간에 있었던 ‘아버지 논쟁’에 대한 기록입니다.
1. 먼저, 37절의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유대인들은 누구에게든지 자랑할 만큼 훌륭한 믿음의 사람인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이었습니다(창 12:1-3).
그리고 믿음을 의로 인정받았습니다(창 15:6, 롬 4장).
선한 일을 하거나 의롭게 되려고 노력하여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신 첫 사람이었습니다(갈 3:6-9).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롬 4:16).
그리고 유대인들은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모세, 다윗, 다니엘과 같은 주옥같은 믿음의 조상들을 둔 믿음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당시는 ‘화려한 성전’, ‘끊이지 않는 제사’, ‘수많은 종교지도자들’ 등 그 어느 시대보다도 신앙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들이 이처럼 탄탄한 신앙 전통을 가졌음에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오늘 본문의 그들은,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거부하며 대적하고,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제가 앞에서 여러 번 강조한 것처럼, 율법, 곧 성경을 함부로 왜곡하여 수많은 신앙의 전통과 규례를 만들었고, 그렇게 왜곡된 전통과 규례를 맹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멀어지자 사탄이 그들의 육체적인 욕구를 제물 삼아 그들의 영적인 눈을 흐리게 했고, 그들의 영적인 눈이 멀어지게 되자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죄인으로 몰아 죽이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탄이 유대인들의 영안을 멀게 한 도구는 다름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 때부터 계속해서 만들어 온 ‘신앙의 전통’이었습니다.
사탄은 유대인들의 탐욕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보다는 형식적인 신앙의 전통에 집착하게 만들었고, 그를 통해 교만한 마음에 빠지게 했습니다.
자신들은 회개할 죄도 없고, 죄사함을 받을 필요도 없다고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사탄에게 깊이 미혹 당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앞서 회개를 선포한 ‘세례 요한’을 외면했고, 오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믿음의 권고에도 귀를 막았습니다(마 11:12-19).
여러분, 신앙의 전통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 매우 중요한 유산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러한 신앙의 전통이 외적인 형식에 머물게 될 때에는 “사탄이 강력하게 역사하여 오히려 멸망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훌륭한 신앙 전통을 지닌 가문 출신도 있고, 또 교회를 위해 큰 헌신을 하고 계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 점이 성경의 가르침을 넘어서서 자신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면, 그러한 복된 일들이 오히려 자신을 넘어뜨리는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은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입니다.
가진 것이 많고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깊은 사람일수록 기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기도로만 영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고까지 고백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삼상 12:23)
그리고 사도 바울도 로마서 1:9에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라고 고백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17에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지난 과거의 신앙의 자랑거리, 지금 가지고 있는 많은 은혜의 선물이 참으로 소중하지만,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은 “오늘 이 순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전통이나 받은 은혜를 가슴 깊이 품고 감사하되 “나는 과연 진리 안에 거하는 참된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가?” 스스로를 점검하며 하나님의 뜻에 더욱 순종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 이어지는 38절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이려고 하는 원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여기서 ‘너희 아비’는 유대인들의 조상들을 지칭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유대인의 조상 중에는 휼륭한 믿음의 조상이 있었던 반면,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상숭배를 일삼고 온갖 죄에 물든 조상들이 더 많았습니다(마 24:29-36).
그들은 율법, 곧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악행을 저질렀는데, 특히 ‘신·구약 중간기’ 또는 ‘침묵기’라고 칭하는 주전 400년경부터 성경 해석과 주석에 대한 많은 책들을 임의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대부분은 성경보다 종교지도자들이 가르치는 인본주의적인 종교 규례를 하나님의 뜻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가 고난받는 종으로 오신다”는 성경의 예언도 모르고 있었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믿지 못했습니다(사 53장).
그들은 인본주의 종교지도자들에게 들은 것으로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대에도 성경보다는 성경을 해석한 글들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각 교단들 마다 자신들의 신학을 가지고 있고, 강조하는 부분이나 해석도 조금씩 다릅니다.
더군다나 너무나도 많은 성도들은 성경을 직접 읽는 것보다 그렇게 해석된 말씀을 듣고 읽는 것을 더 좋아하고 신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넘쳐나는 교리와 신앙 서적 중에는 인본주의에 물든 글들이 너무나도 많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와 다르지 않을 만큼 ‘풍요의 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의 푯대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평안과 풍요를 이루기에만 급급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공로를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누리려고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제자 삼으신 것은,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 구원받은 자로서 믿음의 삶을 살게 하심인데, 예수님의 공로를 누리기만 할 뿐, 예수님께서 주신 자기 십자가가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성도들이 넘쳐나는 것이 바로 이 시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성도로서 자신의 삶의 자리가 어디이고, 그 삶을 통해 어떠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성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복을 누리기에만 급급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땅에서의 복을 추구하고 누린 자들은 하늘나라에서의 상급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마 6:1-21).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의 복을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사용함으로 ‘하늘의 복을 쌓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42, 마 19:21, 마 28:18-20).
그런데 이러한 복음이 사탄의 달콤한 미혹에 빠진 목회자들에 의해 교묘하게 왜곡되어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처럼 ‘풍요의 신앙’으로 성도들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이 시대의 신앙의 척도로 자리 잡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여러분, 만일 이 땅에서의 복을 받는 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이라면, 믿음의 본이 되시는 우리 예수님은 왜 그렇게 사시지 않으셨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세상의 복을 조금만 인정하고 받아들이시면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배척당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지도자가 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조금도 사용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셨기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말씀하신 것 아니겠습니까?(마 8:20)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의 모든 복을 버리고 고난의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마음껏 누리되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마귀의 미혹에 빠져 죄의 도구로 삼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면 우리는 물론이고, 우리 자녀들은 더욱 마귀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가슴에 품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에 힘씀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삶,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축복된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39-43절에 유대인들이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라고 반박하자, 예수님께서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나를 사랑하였을 것이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44절에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리고 47절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너무나 분명하고 단호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알든 모르든 사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러했던 당시 유대인들을 향해 ‘마귀의 자녀’요 ‘마귀에게 속한 자’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었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천국 복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6:60 절의 말씀처럼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라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요 6:66).
그런데 그들은 반대로 사탄의 말은 매우 잘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려던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 수많은 인본주의적인 규례들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보내신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탄의 미혹에 아무런 저항없이 따랐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율법도 잘 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을 능력은 없었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은 이미 사탄에게 속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탄의 미혹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잘 이해하고 듣는가에 따라 그 소속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요 10:4-5).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들은 누구의 말을 더 잘 이해하고 따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불의와 죄와 불신앙을 조장하는 사탄의 미혹입니까?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반대로 사탄의 미혹에 빠져 살고 있는지 살펴보면 현재 자신의 영적인 소속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사탄에게 미혹되어 타락한 원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자신들은 무조건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해 주신다고 맹신하며, 조상들로부터 시작된 인본주의적인 종교 규례를 신앙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사탄을 대적할 힘을 상실하고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예수님을 믿기에 무조건 천국으로 갈 것이며,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보호해 주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오늘 본문의 유대인의 오류에 빠진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도 하지 않고 예수님의 계명도 불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탄으로부터 지켜주실 줄 믿는다면 이 또한 유대인들의 맹신과 다름이 없습니다(요 14:21).
그리고 성경은 고린도후서 13:5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라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4장에서 예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세상 죄악에 물든 고린도 교회의 몇몇 성도들을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고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여러분, 사탄은 오늘도 끊임없이 성도를 타락시키려고 온갖 술수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 한순간도 육체의 정욕과 교만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교훈의 말씀을 기억하고, 매일 같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사탄의 미혹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고전 10:12).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사탄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유념하고, 예수님의 계명과 언약의 말씀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사탄과 싸워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잘 깨닫고 그 가르침만을 따름으로써 하나님께 속한 참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난 과거 누렸던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소중하지만,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은 “오늘 이 순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임을 가슴 깊이 깨닫습니다. 받은 구원에 안주하며 주신 복을 누리기에만 급급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에 힘씀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삶,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축복된 삶을 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39.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 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가 당시 부패하고 타락한 로마 교회의 회개를 외치며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의 정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인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16세기 종교개혁의 출발점이 되었는데, 개혁교회는 이 날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말씀’으로 교회가 새로워지기를 다짐하는 기념일로 삼았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신 말씀도 부패한 유대교를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새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7장으로부터 시작된 초막절 전후에 있었던 예수님의 행적 중에서 열한 번째 단락으로, 예수님과 유대인들 간에 있었던 ‘아버지 논쟁’에 대한 기록입니다.
1. 먼저, 37절의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유대인들은 누구에게든지 자랑할 만큼 훌륭한 믿음의 사람인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이었습니다(창 12:1-3).
그리고 믿음을 의로 인정받았습니다(창 15:6, 롬 4장).
선한 일을 하거나 의롭게 되려고 노력하여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신 첫 사람이었습니다(갈 3:6-9).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롬 4:16).
그리고 유대인들은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모세, 다윗, 다니엘과 같은 주옥같은 믿음의 조상들을 둔 믿음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당시는 ‘화려한 성전’, ‘끊이지 않는 제사’, ‘수많은 종교지도자들’ 등 그 어느 시대보다도 신앙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들이 이처럼 탄탄한 신앙 전통을 가졌음에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오늘 본문의 그들은,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거부하며 대적하고,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제가 앞에서 여러 번 강조한 것처럼, 율법, 곧 성경을 함부로 왜곡하여 수많은 신앙의 전통과 규례를 만들었고, 그렇게 왜곡된 전통과 규례를 맹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멀어지자 사탄이 그들의 육체적인 욕구를 제물 삼아 그들의 영적인 눈을 흐리게 했고, 그들의 영적인 눈이 멀어지게 되자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죄인으로 몰아 죽이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탄이 유대인들의 영안을 멀게 한 도구는 다름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 때부터 계속해서 만들어 온 ‘신앙의 전통’이었습니다.
사탄은 유대인들의 탐욕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보다는 형식적인 신앙의 전통에 집착하게 만들었고, 그를 통해 교만한 마음에 빠지게 했습니다.
자신들은 회개할 죄도 없고, 죄사함을 받을 필요도 없다고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사탄에게 깊이 미혹 당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앞서 회개를 선포한 ‘세례 요한’을 외면했고, 오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믿음의 권고에도 귀를 막았습니다(마 11:12-19).
여러분, 신앙의 전통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 매우 중요한 유산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러한 신앙의 전통이 외적인 형식에 머물게 될 때에는 “사탄이 강력하게 역사하여 오히려 멸망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훌륭한 신앙 전통을 지닌 가문 출신도 있고, 또 교회를 위해 큰 헌신을 하고 계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 점이 성경의 가르침을 넘어서서 자신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면, 그러한 복된 일들이 오히려 자신을 넘어뜨리는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은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입니다.
가진 것이 많고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깊은 사람일수록 기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기도로만 영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고까지 고백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삼상 12:23)
그리고 사도 바울도 로마서 1:9에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라고 고백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17에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지난 과거의 신앙의 자랑거리, 지금 가지고 있는 많은 은혜의 선물이 참으로 소중하지만,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은 “오늘 이 순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전통이나 받은 은혜를 가슴 깊이 품고 감사하되 “나는 과연 진리 안에 거하는 참된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가?” 스스로를 점검하며 하나님의 뜻에 더욱 순종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 이어지는 38절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이려고 하는 원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여기서 ‘너희 아비’는 유대인들의 조상들을 지칭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유대인의 조상 중에는 휼륭한 믿음의 조상이 있었던 반면,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상숭배를 일삼고 온갖 죄에 물든 조상들이 더 많았습니다(마 24:29-36).
그들은 율법, 곧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악행을 저질렀는데, 특히 ‘신·구약 중간기’ 또는 ‘침묵기’라고 칭하는 주전 400년경부터 성경 해석과 주석에 대한 많은 책들을 임의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대부분은 성경보다 종교지도자들이 가르치는 인본주의적인 종교 규례를 하나님의 뜻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가 고난받는 종으로 오신다”는 성경의 예언도 모르고 있었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믿지 못했습니다(사 53장).
그들은 인본주의 종교지도자들에게 들은 것으로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대에도 성경보다는 성경을 해석한 글들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각 교단들 마다 자신들의 신학을 가지고 있고, 강조하는 부분이나 해석도 조금씩 다릅니다.
더군다나 너무나도 많은 성도들은 성경을 직접 읽는 것보다 그렇게 해석된 말씀을 듣고 읽는 것을 더 좋아하고 신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넘쳐나는 교리와 신앙 서적 중에는 인본주의에 물든 글들이 너무나도 많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와 다르지 않을 만큼 ‘풍요의 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의 푯대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평안과 풍요를 이루기에만 급급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공로를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누리려고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제자 삼으신 것은,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 구원받은 자로서 믿음의 삶을 살게 하심인데, 예수님의 공로를 누리기만 할 뿐, 예수님께서 주신 자기 십자가가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성도들이 넘쳐나는 것이 바로 이 시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성도로서 자신의 삶의 자리가 어디이고, 그 삶을 통해 어떠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성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복을 누리기에만 급급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땅에서의 복을 추구하고 누린 자들은 하늘나라에서의 상급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마 6:1-21).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의 복을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사용함으로 ‘하늘의 복을 쌓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42, 마 19:21, 마 28:18-20).
그런데 이러한 복음이 사탄의 달콤한 미혹에 빠진 목회자들에 의해 교묘하게 왜곡되어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처럼 ‘풍요의 신앙’으로 성도들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이 시대의 신앙의 척도로 자리 잡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여러분, 만일 이 땅에서의 복을 받는 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이라면, 믿음의 본이 되시는 우리 예수님은 왜 그렇게 사시지 않으셨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세상의 복을 조금만 인정하고 받아들이시면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배척당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지도자가 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조금도 사용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셨기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말씀하신 것 아니겠습니까?(마 8:20)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의 모든 복을 버리고 고난의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마음껏 누리되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마귀의 미혹에 빠져 죄의 도구로 삼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면 우리는 물론이고, 우리 자녀들은 더욱 마귀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가슴에 품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에 힘씀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삶,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축복된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39-43절에 유대인들이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라고 반박하자, 예수님께서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나를 사랑하였을 것이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44절에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리고 47절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너무나 분명하고 단호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알든 모르든 사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러했던 당시 유대인들을 향해 ‘마귀의 자녀’요 ‘마귀에게 속한 자’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었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천국 복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6:60 절의 말씀처럼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라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요 6:66).
그런데 그들은 반대로 사탄의 말은 매우 잘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려던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 수많은 인본주의적인 규례들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보내신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탄의 미혹에 아무런 저항없이 따랐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율법도 잘 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을 능력은 없었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은 이미 사탄에게 속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탄의 미혹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잘 이해하고 듣는가에 따라 그 소속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요 10:4-5).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들은 누구의 말을 더 잘 이해하고 따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불의와 죄와 불신앙을 조장하는 사탄의 미혹입니까?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반대로 사탄의 미혹에 빠져 살고 있는지 살펴보면 현재 자신의 영적인 소속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사탄에게 미혹되어 타락한 원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자신들은 무조건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해 주신다고 맹신하며, 조상들로부터 시작된 인본주의적인 종교 규례를 신앙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사탄을 대적할 힘을 상실하고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예수님을 믿기에 무조건 천국으로 갈 것이며,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보호해 주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오늘 본문의 유대인의 오류에 빠진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도 하지 않고 예수님의 계명도 불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탄으로부터 지켜주실 줄 믿는다면 이 또한 유대인들의 맹신과 다름이 없습니다(요 14:21).
그리고 성경은 고린도후서 13:5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라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4장에서 예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세상 죄악에 물든 고린도 교회의 몇몇 성도들을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고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여러분, 사탄은 오늘도 끊임없이 성도를 타락시키려고 온갖 술수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 한순간도 육체의 정욕과 교만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교훈의 말씀을 기억하고, 매일 같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사탄의 미혹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고전 10:12).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사탄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유념하고, 예수님의 계명과 언약의 말씀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사탄과 싸워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잘 깨닫고 그 가르침만을 따름으로써 하나님께 속한 참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난 과거 누렸던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소중하지만,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은 “오늘 이 순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임을 가슴 깊이 깨닫습니다. 받은 구원에 안주하며 주신 복을 누리기에만 급급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에 힘씀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삶,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축복된 삶을 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