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종려 주일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사람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부르며 환영한 것에서 붙여졌습니다(요 12:13). 그러나 그들은 불과 닷새 후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칩니다(마 27:22-25). 그들이 그렇게 돌변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성경해석을 잘못하자 신앙을 권력의 도구로 삼게 되었고, 그들의 삶은 점점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들의 탐욕과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배우기에 힘쓰는 것은 그들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은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사람들을 넘어뜨리려고 굶주린 사자처럼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집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 먼저 13절 함께 읽습니다.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드로아에서 고별설교를 한 바울은 일행을 배에 태워 앞서 보낸 뒤 그들과 앗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자신은 홀로 도보로 약 40km를 걸어갔습니다. 바울이 무엇 때문에 도보로 걸어갔는지 본문에 설명되어 있지 않기에 그가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짐작하자면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기를 원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상고한 대로 지금껏 바울은 온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의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에게는 홀로 있을 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따로 시간을 내어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가운데 주어진 사명을 다시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와 같은 시간은 바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때로는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너무 바쁘게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구별되지 않는 자기중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삶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모습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이 분주할수록 종종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활력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종종 홀로 있는 시간, 하나님과 나만의 교제의 시간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는 이에 대한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우시겠지만 한번 힘써 보시기 바랍니다. 스스로를 성찰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고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이를 기억하고 골방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을 잘 유지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6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바울은 모든 일정을 계획대로 하기 위해 매우 힘썼습니다. 그는 항상 계획에 따라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러했기에 2차 전도여행에서 아시아에서의 전도를 막으시고 유럽 전도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뜻에 자신의 모든 계획을 내려놓고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미루었던 아시아 전도를 3차 전도여행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루어 내게 됩니다.
이렇듯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면서도 분명한 자기계획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유언에 자기가 달려가야 할 길을 다 달려갔다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아무런 계획이 없이 사는 사람은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뚜렷한 삶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달려가야 할 길을 다 달려갔다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도 분명한 계획을 두시고 그에 따라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눅 13:32~33). 그러하셨기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예수님도, 바울도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움직였는데, 어찌 우리가 모든 걸음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고 하면서 아무런 계획이 없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 믿음의 선배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의 평생의 역작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말하기를 “인간이 계획하고, 하나님이 이루신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그의 이 고백은 성경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라는 말씀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도록 도와주시기도 하시고, 또 그 길이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수정해 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계획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도와주시고 무엇을 수정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삶의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계획을 세우되, 내 생각을 따라 막연히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구체적으로 세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 목표는 무엇입니까? 달려가야 할 삶의 방향은 어디입니까? 시간 낭비를 막고 믿음과 확신으로 살아갈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달란트를 찾고 그 달란트를 통해 삶을 아름답게 수놓는 지혜로운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이어지는 18~21절은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한 고별사 중 서론 부분입니다.
그는 이 고별사를 시작하면서 18절에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내 삶은 여러분 앞에 다 드러나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에베소에서 행했던 모든 일은 그 어느 것도 숨길 것 없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별다른 변명이나 설명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첫날부터 항상’이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 교회가 크게 부흥했지만, 자신은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행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은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은 모든 사람에게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겸손하고 진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복음을 전하지만 전도 받은 사람과 삶을 나누고 공유하지는 않습니다. 성도들과도 자신의 삶을 나누는 것을 꺼려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이면 안 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삶이 드러날까 두려워서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교회 지도자들 역시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공개적인 예배나 기타 행사를 제외하고는 교회 지도자와 일반 성도들이 삶을 공유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더구나 이러한 현상은 교회가 성장하고 대형화할수록 더욱 심해집니다. 교회의 규모가 클수록 성도들은 교회 지도자들이 평소에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담임목사의 전화번호나 집 주소까지 비밀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성도들은 단지 말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 목회자의 삶을 통해 복음을 배울 기회는 거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음은 단지 말로써 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전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곧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복음의 일꾼이 되기 원한다면 우리의 삶이 누구에게 공개되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진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투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바울처럼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여러분도 아는 바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20절 함께 읽습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여기에서 ‘거리낌이 없다’라는 말은 위축되거나 주저함이 없음을 뜻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에베소에서 3년간 사역하며 말씀을 가르치고 전할 때, 그 어떤 경우에도 위축되거나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실 그대로 선포하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에게 이러한 자세가 중요한 까닭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듣기 원하는 이야기를 할 때면 귀를 세우고 듣지만, 아무리 옳고 유익해도 듣기에 불편한 이야기에는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 상대의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면 자기도 모르게 눈치를 보며 주저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복음은 어떤 소리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듣기에 달콤한 소리입니까, 아니면 쓰디쓴 소리입니까? 물론, 복음은 문자 그대로 ‘좋은 소식, Good News’ 이므로 듣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소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들어야 하는 세상은 죄와 허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복음이 진정으로 복되고 좋은 소식이 되려면 먼저, 듣는 이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와 허물을 지적하는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죄를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은 쓴소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해설서가 신약성경에 기록된 21권의 서신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은, 일단 교회에 발을 들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임지실 것이라며 복음을 전하되 회개는 숨기고, 축복을 강조하라고 전도 교육을 합니다. 설교도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용서와 축복의 말씀이 주를 이룹니다. 그래서 그 부작용으로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복음의 본질을 오해합니다.
하지만 죄에 대한 예리한 지적을 통해 심령의 아픔을 느끼며, ‘내가 어찌할꼬’라는 질문과 회개가 동반되지 않는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아니라 거짓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받은 우리는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거리낌 없이 전하여 가르쳤던 바울의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바울처럼 순전한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죄와 허물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진정한 생명과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 참된 복음의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살전 2:4).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용서하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종려 주일인 오늘, 거리낌이 없이 전하여 가르치는 복음의 일꾼으로 여러분을 세우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진정한 믿음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계획하며, 그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바울처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되, 복음을 전할 때 용기를 갖고, 있는 그대로의 말씀을 전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종려 주일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사람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부르며 환영한 것에서 붙여졌습니다(요 12:13). 그러나 그들은 불과 닷새 후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칩니다(마 27:22-25). 그들이 그렇게 돌변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성경해석을 잘못하자 신앙을 권력의 도구로 삼게 되었고, 그들의 삶은 점점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들의 탐욕과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배우기에 힘쓰는 것은 그들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은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사람들을 넘어뜨리려고 굶주린 사자처럼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집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 먼저 13절 함께 읽습니다.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드로아에서 고별설교를 한 바울은 일행을 배에 태워 앞서 보낸 뒤 그들과 앗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자신은 홀로 도보로 약 40km를 걸어갔습니다. 바울이 무엇 때문에 도보로 걸어갔는지 본문에 설명되어 있지 않기에 그가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짐작하자면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기를 원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상고한 대로 지금껏 바울은 온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의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에게는 홀로 있을 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따로 시간을 내어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가운데 주어진 사명을 다시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와 같은 시간은 바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때로는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너무 바쁘게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구별되지 않는 자기중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삶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모습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이 분주할수록 종종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활력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종종 홀로 있는 시간, 하나님과 나만의 교제의 시간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는 이에 대한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우시겠지만 한번 힘써 보시기 바랍니다. 스스로를 성찰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고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이를 기억하고 골방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을 잘 유지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6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바울은 모든 일정을 계획대로 하기 위해 매우 힘썼습니다. 그는 항상 계획에 따라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러했기에 2차 전도여행에서 아시아에서의 전도를 막으시고 유럽 전도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뜻에 자신의 모든 계획을 내려놓고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미루었던 아시아 전도를 3차 전도여행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루어 내게 됩니다.
이렇듯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면서도 분명한 자기계획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유언에 자기가 달려가야 할 길을 다 달려갔다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아무런 계획이 없이 사는 사람은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뚜렷한 삶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달려가야 할 길을 다 달려갔다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도 분명한 계획을 두시고 그에 따라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눅 13:32~33). 그러하셨기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예수님도, 바울도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움직였는데, 어찌 우리가 모든 걸음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고 하면서 아무런 계획이 없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 믿음의 선배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의 평생의 역작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말하기를 “인간이 계획하고, 하나님이 이루신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그의 이 고백은 성경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라는 말씀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도록 도와주시기도 하시고, 또 그 길이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수정해 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계획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도와주시고 무엇을 수정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삶의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계획을 세우되, 내 생각을 따라 막연히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구체적으로 세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 목표는 무엇입니까? 달려가야 할 삶의 방향은 어디입니까? 시간 낭비를 막고 믿음과 확신으로 살아갈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달란트를 찾고 그 달란트를 통해 삶을 아름답게 수놓는 지혜로운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이어지는 18~21절은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한 고별사 중 서론 부분입니다.
그는 이 고별사를 시작하면서 18절에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내 삶은 여러분 앞에 다 드러나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에베소에서 행했던 모든 일은 그 어느 것도 숨길 것 없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별다른 변명이나 설명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첫날부터 항상’이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 교회가 크게 부흥했지만, 자신은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행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은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은 모든 사람에게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겸손하고 진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복음을 전하지만 전도 받은 사람과 삶을 나누고 공유하지는 않습니다. 성도들과도 자신의 삶을 나누는 것을 꺼려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이면 안 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삶이 드러날까 두려워서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교회 지도자들 역시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공개적인 예배나 기타 행사를 제외하고는 교회 지도자와 일반 성도들이 삶을 공유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더구나 이러한 현상은 교회가 성장하고 대형화할수록 더욱 심해집니다. 교회의 규모가 클수록 성도들은 교회 지도자들이 평소에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담임목사의 전화번호나 집 주소까지 비밀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성도들은 단지 말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 목회자의 삶을 통해 복음을 배울 기회는 거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음은 단지 말로써 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전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곧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복음의 일꾼이 되기 원한다면 우리의 삶이 누구에게 공개되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진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투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바울처럼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여러분도 아는 바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20절 함께 읽습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여기에서 ‘거리낌이 없다’라는 말은 위축되거나 주저함이 없음을 뜻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에베소에서 3년간 사역하며 말씀을 가르치고 전할 때, 그 어떤 경우에도 위축되거나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실 그대로 선포하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에게 이러한 자세가 중요한 까닭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듣기 원하는 이야기를 할 때면 귀를 세우고 듣지만, 아무리 옳고 유익해도 듣기에 불편한 이야기에는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 상대의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면 자기도 모르게 눈치를 보며 주저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복음은 어떤 소리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듣기에 달콤한 소리입니까, 아니면 쓰디쓴 소리입니까? 물론, 복음은 문자 그대로 ‘좋은 소식, Good News’ 이므로 듣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소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들어야 하는 세상은 죄와 허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복음이 진정으로 복되고 좋은 소식이 되려면 먼저, 듣는 이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와 허물을 지적하는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죄를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은 쓴소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해설서가 신약성경에 기록된 21권의 서신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은, 일단 교회에 발을 들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임지실 것이라며 복음을 전하되 회개는 숨기고, 축복을 강조하라고 전도 교육을 합니다. 설교도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용서와 축복의 말씀이 주를 이룹니다. 그래서 그 부작용으로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복음의 본질을 오해합니다.
하지만 죄에 대한 예리한 지적을 통해 심령의 아픔을 느끼며, ‘내가 어찌할꼬’라는 질문과 회개가 동반되지 않는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아니라 거짓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받은 우리는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거리낌 없이 전하여 가르쳤던 바울의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바울처럼 순전한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죄와 허물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진정한 생명과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 참된 복음의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살전 2:4).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용서하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종려 주일인 오늘, 거리낌이 없이 전하여 가르치는 복음의 일꾼으로 여러분을 세우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진정한 믿음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계획하며, 그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바울처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되, 복음을 전할 때 용기를 갖고, 있는 그대로의 말씀을 전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