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80. 고린도2 – 침묵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행 18:12-17)

우인택 목사
2026-02-01
조회수 339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시간들을 종종 맞이하게 됩니다.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박해가 오고, 믿음으로 살고 있는데 길이 막히고,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오늘 본문은 바울 인생의 그런 한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고린도에서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세워가고 있는데, 어찌할 틈도 없이 또다시 큰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정확하게 지켜집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을 때도 여전히 우리를 위해 일하심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한 지 1년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많은 복음의 열매가 맺히고 교회가 부흥하고 있을 때,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선포하는 곳이면 여지없이 유대인들이 바울을 박해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유대인들이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려 했습니다. 특히, 여기에서 ‘일제히’라는 말은, 이 박해는 우발적인 박해가 아니라 오랫동안 의논했고 뜻을 모았고 때를 기다린, 치밀하게 준비된 박해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10절을 보시면, 주님께서 바울에게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는 격려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격려에 힘입어 일 년 육 개월이나 고린도에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처럼 각별한 관심을 보이시며 특별한 은혜까지 베풀어 주셨으니 그야말로 고린도에서의 사역은 형통했겠구나” 그러나 성경은 참으로 놀랍게도 이 말씀을 기록한 다음에 곧이어 유대인들의 박해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과거에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이 로마 총독 빌라도를 이용하여 율법을 어긴다는 명목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13절에 로마 총독 갈리오를 이용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더 각별하고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곳일수록 사탄의 역사 또한 더욱 강하고 교묘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성경은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늘 본문의 배경인 고린도 교회입니다. 고린도전후서에 의하면, 고린도 교회는 그 어느 교회보다도 하나님께서 많은 영적인 은사를 주신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교회에는 많은 은사만큼이나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교회 내에서의 파벌과 분열부터, 우상 문제, 음행 문제, 세상 법정에까지 번져나가는 불화 문제 등 참으로 많은 문제로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큰 은혜와 많은 은사를 받자 그에 비례하여 사탄의 역사 또한 매우 강하고 교묘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 개인의 신앙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안 믿던 사람이 복음을 영접하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조용하던 가족들의 박해를 시작으로 하여 질병, 사고 등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또한, 신앙적인 침체를 벗고 다시 성령 충만함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 시작하면 그 어느 때보다 사탄의 시험과 유혹이 거세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열심히 하려는데 열심히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주위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정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서는 신앙을 지킬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일은 오늘 주시는 교훈을 명심한다면 결코 낙망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박해는 우리가 길을 잘못 가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제대로 가고 있다는 영적인 증거이며, 이 모든 현상은 역으로 하나님의 은혜 또한 각별하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을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사탄의 역사에 대해 더욱 주의하며 깨어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는 성경의 교훈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큰 곳에 사탄의 역사 또한, 반드시 크게 나타남을 기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고전 10:12).


  2. 이어지는 14절에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고소가 거짓임을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뜻밖의 사람이 입을 열었습니다. 총독 갈리오입니다. 

  14~16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아가야 총독 갈리오는 의외로 유대인의 고소를 기각했습니다. 그가 바울의 편에 선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고소를 유대인 내부의 종교적인 문제로 규정한 그의 이러한 행동은 정치적으로 볼 때 매우 현명한 행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킴으로써 로마 권력을 이용하려던 골치 아픈 유대인들의 음모를 사전에 봉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행동은, 빌라도 총독이 유대인들의 흉계에 넘어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던 것과 비교해 볼 때 분명하게 대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나 더 큰 영적인 시야에서 바라보면, 이 사건은 갈리오의 현명함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10절에서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10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이 약속이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응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기에 유대인들의 박해가 있었을 때, 바울이 입을 열어 자신을 변호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갈리오 총독의 입을 열게 하셔서 유대인의 음모를 깨뜨리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기까지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던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당하자 갈리오 총독이라는 든든한 방패를 들어 바울을 지키시고, 이후에도 바울이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심으로써 10절의 약속을 완전하게 지키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은 철저하며 완전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문제 앞에 선다고 할지라도, 어떠한 고난 앞에 선다고 할지라도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 위에 든든히 서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소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믿음의 삶을 살아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3. 이어지는 17절 함께 읽습니다.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에서의 ‘모든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바울을 고소했는데 그것이 기각되자 분노한 유대인들이 그들의 대표격인 회당장 소스데네를 구타했다는 의견과 재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 모인 많은 헬라인들이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소가 기각되고 총독이 유대인들을 냉대하는 것을 보고, 그것에 동조하여 유대인의 책임자격인 회당장 소스데네를 무고죄로 구타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전후 맥락과 갈리오가 이 일에 상관하지 않았다는 것을 참작할 때, 여기에서의 ‘모든 사람’은 평소 반유대주의 경향을 갖고 있던 헬라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회당장 소스데네가 바울 고소의 주동자였을까요? 만일 그랬다면 헬라인들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구타한 이 일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의 큰 싸움으로 번졌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을 볼 때, 그가 애매하게 구타를 당한 것이 됩니다. 그는 사건의 책임자도 아니고 주동자도 아니며 그저 회당장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가 구타를 당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세상입니다. 책임질 사람은 빠져나가고 약한 사람이 대신 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불의를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괜찮았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실현되었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있는 그대로 그가 구타를 당했다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현장이라고 해서 항상 공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신앙의 역사 속에서도 부당한 일은 실제로 많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갈리오는 로마 총독입니다. 법과 질서를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그의 말 한마디만 하면 폭력은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상관하지 아니하니라’라는 말은 단순한 무책임이 아닙니다. ‘관심 두지 않았다’,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개입할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했다’라는 뜻입니다. 정의보다 귀찮음이 더 컸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개입하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느낍니다. “하나님도 상관하지 않으시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침묵하셨다고 해서 바울로 인한 소스데네의 억울한 구타를 외면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한 놀라운 반전은 고린도전서 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여러분, 소스데네가 바울의 형제가 되었습니다. 법정 앞에서 억울하게 구타당한 소스데네가 복음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당시에는 소스데네가 왜 맞아야 했는지,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는지, 왜 하나님은 침묵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사건은 ‘구원의 자리’였음으로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소스데네의 억울함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권력자들과 동료들은 외면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억울함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아름다운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나 매우 정직한 말씀입니다. 억울함이 있고, 폭력이 있고, 무관심이 있고, 침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사건 위에 하나님의 손길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 때문에 무관심하여도, 하나님은 결코 무관심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어 가십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에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것 같은 문제가 있습니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실 수는 있어도 무관심하신 분은 아닙니다. 반드시 말씀하신 것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을 통해서도, 제도를 통해서도, 심지어 세상의 무관심까지 사용하셔서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성도로서의 삶을 묵묵히 걸어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니 함께하셨음을 고백합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을 때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설명되지 않는 사건과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은 살아 있음을 믿게 하시고, 오늘도 담대히 믿음의 길을 걷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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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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