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79. 고린도1 –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다 (행 18:1-11)

우인택 목사
2026-01-25
조회수 308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사람은 누구나 지치는 순간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역자도, 헌신한 성도도,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어느 순간 마음이 꺾일 때가 있습니다. “이제 더는 못 하겠다.” “이게 과연 의미가 있나?” “아무리 해도 변하지 않는다.” 지쳐 주저 앉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도 지칠 수 있고, 믿음의 사람도 낙심할 수 있으며, 믿음의 사람도 두려워할 수 있다고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울의 승리 이야기가 아니라 지치고 실망에 빠진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바울에게 질책이나 책망이 아니라 가장 따뜻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로써 하나님께서 낙심한 일꾼을 어떻게 다시 세우시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바울과 아굴라 부부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만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게 되면, 이 가운데서 큰 위로와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바울을 보면, 그는 고린도로 내려오기 전에 서양 철학의 본산지인 아덴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보잘것없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거둔 성과에 비해 아덴에서 거둔 성과는 참담한 실패였습니다. 그는 아덴의 넘치는 우상들을 보며 격분하여 자신의 풍부한 철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장황한 설교를 했지만, 그의 설교를 듣고 믿은 사람들은 몇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덴에서의 전도를 포기하고 고린도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역시, 자의에 의해 고린도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원래, 로마에 살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황제였던 글라우디오(41-54년)가 유대인들이 로마를 소란스럽게 한다는 이유로 로마에서 살던 유대인들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습니다. 결국, 아굴라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로마에서 쫓겨나 이곳 고린도로 흘러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만남은 어쩌면 ‘실패자들의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역에서 실패한 자와 세상에서 추방당하여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유랑하게 된 한 부부와의 만남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실패한 듯 보였던 이들의 만남을 하나님께서 고린도에서 귀하게 사용하심으로써 이들 개인적으로도 축복된 만남이었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풍성한 열매까지 거두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부부의 도움을 받아 고린도에 교회를 세워 유럽선교의 든든한 기지를 구축했습니다. 아굴라 부부 역시 평신도 사역자로서 선교사역에 큰 역할을 감당하는 일꾼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만남을 보면서 하나님 안에서의 실패란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성공의 시작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하나님께서 상심한 바울과 아굴라 부부를 위로하실 때 어떤 기적이나 하늘의 천사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힘을 모아 함께 역경을 이겨내고 큰 복음의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사람을 살리십니다. 지쳐 있을 때 말 한마디 건네는 성도 한 사람, 같이 밥 먹어 주는 동역자 한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의 따스한 손길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이러한 영적인 섭리를 깨닫고 옆에 계신 성도 한 분 한 분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함께 합력하여 복음의 귀한 열매를 맺는 복된 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5절 함께 읽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했습니다. 물론. 바울이 말씀에 붙잡혀 복음을 전한 것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이것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아덴에서의 실패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바울의 아덴 사역이 왜 실패했습니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증거했지만, 그러나 아덴의 학문적 풍토를 의식한 탓으로 지나치게 자신의 지식과 헬라 철학을 의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덴에서의 경험을 통해 ‘전도란 사람의 말과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전에도 이런 생각이 전혀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덴 사역 이전까지 그것은 이론적인 이해였습니다. 그는 어느 정도, 사람의 설득력이나 지혜, 또는 언변이 복음의 결실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덴 전도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내리는 결단에 자신의 언변이나 지식, 지혜가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일으키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에서는 자신의 지혜를 조금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이때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고린도전서 2:1-5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이는 그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만을 신뢰하였음을 보여주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는 이 확신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는 말씀 그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죄악의 깊은 것도 찔러 쪼개어 내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면 은혜받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전하는 자에게 이러한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어떻게 듣는 사람에게 마음의 감화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늘 기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의 생각이 아니라, 나의 짐작이 아니라, 성경 말씀의 권능을 믿고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6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바울은 복음을 대적하여 비방하던 유대인들에게 옷을 털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저주했습니다. 물론, 바울이 여기에서 이 같은 저주를 한 것은 그들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에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의 먼지를 털고 그들을 떠나라”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그러나 바울은 평소에 이러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맞아 죽을 뻔한 상황에서도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과 같은 과격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이방인에게로 향한다는 말을 한 정도였습니다(행 13:46). 

  그럼에도 여기에서는 이같이 과격하게 말을 한 것은 천국은 복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소유하는 것임을 유대인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구원받음에 있어서 아주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비유로 들자면 천국 문 바로 앞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천국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들은 천국 문 앞에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마 23:13). 

  그리고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몰라서 이렇게 했다고 핑계할 수도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 일에 대하여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을 통해 충분히 교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이삭의 실제적인 장자로서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언약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보다 세상의 즐거움을 더 사랑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도 언약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지 않으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는 동생 야곱을 가로막기까지 했습니다(창 33장). 그리고 그는 결국 하나님의 언약을 영원히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주인은 따로 있지 않음을 교훈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되는 자격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하는 자가 차지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믿음만 있다면 주인이 될 수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보다 죄인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1:31).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복음을 반대하던 중심인물이었던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함께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바울이 더이상 소망이 없다고 여기고 옷을 털면서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결심한 그곳에서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의 눈에는 우상 숭배자와 대적자들만 보였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구원받아야 할 많은 백성들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곳을 떠나가고 싶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무려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의 순종을 통해 고린도가 복음의 도시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혹시, 지금 여러분의 마음이 고린도인 것은 아닙니까? 두렵고, 지치고, 말하기 싫고, 도망가고 싶은 자리인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바울에게처럼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자리에도 내 백성이 있다.”

  여러분, 여러분이 섬기는 가정에도, 교회에도, 일터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여러분은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계십니까? 혹시, 천국 문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이미 천국에는 들어간 것처럼 착각 속에서 산 유대인들과 같지는 않습니까? 

  오늘,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묵묵히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여러분이 계신 곳을 복음의 땅으로 변화시키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유대인들은 천국 문 앞에 서 있으면서도 천국을 잃어버리는 자들이 되고 말았지만, 바울과 아굴라 부부는 실패와 아픔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믿음으로 오히려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저희도 지치고 두려움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게 하시고, 우리가 서 있는 자리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있음을 믿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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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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