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주보에 기록된 1월 행사계획을 보시면, 오늘은 ‘주님의 수세 주일’이고, 다음 주는 ‘주현절 두 번째 주일’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주현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사람들 앞에 공식적으로 나타내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성탄절인 12월 25일로부터 12일이 지난 1월 6일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수세 주일’은 주현절 후 첫째 주일로서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대속,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사순절’, ‘부활절’, 그리고 ‘오순절’이 계속됩니다. 새해 두 번째 주일이자 예수님의 수세 주일인 오늘,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가슴 깊이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전해지는 복음은 동일한데, 사람들의 반응은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마음을 열고 돌아오지만,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분노하고 시기하며 복음을 박해합니다. 문제는 복음이 아니라,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이 전해졌을 때 시기와 소동과 거센 반대가 일어났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똑같은 복음이 똑같은 사람을 통해 전해졌는데 반응은 전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떤 사람이 복음을 귀하게 여기는가”,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가”를 분명하게 마음에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먼저 10절 함께 읽습니다.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데살로니가에서 큰 소동이 일어나자 성도들은 바울과 실라를 급히 베뢰아로 보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무모하게 버티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계속 전하기 위해 때로는 물러설 줄도 아는 지혜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베뢰아에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유대인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환경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항상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했던 바울이 매우 소극적이고도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10절과 14절과 15절에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인도함을 받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유럽 지리에 어두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 길리기아 다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소아시아의 지리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유럽의 지리는 어두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가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기까지 유럽 전도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성도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도적으로 바울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도움으로 바울 일행은 별 어려움 없이 사역지를 옮기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한 사람의 좋은 복음의 일꾼이 탄생하는 것은 그의 능력으로만 되는 일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옆에서 돕는 손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의 경우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이런 경우가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예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전쟁할 때,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지팡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팔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기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모세가 지팡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팔이 내려오자 아론과 훌이 적극적으로 모세의 두 팔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아론과 훌의 도움이 없었다면 모세는 버틸 수 없었고,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출 17장).
또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열두 명의 정탐꾼 중에서 열 명의 부정적인 정탐꾼의 보고로 모세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돌에 맞아 죽을 각오로 옷을 찢으며 나서며 모세의 편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를 통해 모세는 죽음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민 14장).
마찬가지로 교회도 목회자 혼자의 힘으로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목회자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일 뿐입니다.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는 각각 지체로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지체들이 각각의 역할을 다 잘 감당할 때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그 부분을 도와 합력하여 건강한 교회를 이루는 여러분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를 위해 시간과 마음과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맡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1절 함께 읽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이 말씀을 통해 신학자들은 ‘베뢰아 교회’를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이 이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들은 너그러웠습니다. 너그럽다는 말은 헬라어 ‘유게니스 εὐγενής’를 번역한 것인데, 이 단어는 ‘가문이 좋은, 편견이 없는, 신사적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열린 마음으로 편견을 버리고 신사적인 자세로 예의를 갖춰서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대했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켜서, 이제 누구든지 이 아들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는 놀라운 자기희생적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순수하게만 받아들인다면 복음을 듣고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놀라운 사랑을 전해 듣고도 그 말씀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 심령이 결코 선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가 선한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에 일단은 귀를 기울이고 이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살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한 복음이 과연 성경과 일치하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특히, ‘상고하다 ἀνακρίνω’라는 말은 ‘자세하게 골라내다, 시험하다, 재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보석 상인이 보석의 진위를 가려내는 것처럼, 바울이 전한 복음을 뒷받침하는 예언의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내 검증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바울이 전한 복음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똑같이 복음을 전하고 똑같이 설교했으나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은 배타적인 마음으로 복음을 거부했고, 베뢰아 유대인들은 신중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논쟁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자들의 약점을 잡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맹신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성경을 근거하여 논리적으로 복음을 증거했고, 그들도 성경을 근거하여 바울의 복음에 대한 증언이 진실한지, 꾸밈이 없는지, 성경이 증언하는 바를 그대로 해석하고 있는지 검증해 봄으로써 복음이 진리인 줄로 확신하고 믿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근거를 철저히 성경에 두어야 함을 분명하게 교훈 받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는 성경의 가르침을 우리의 신앙의 근거와 삶의 기준으로 삼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은 철저하게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성도의 신앙은 성경에 의해 검증되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성경적인 신앙을 정립해 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을 갖게 된 동기는 다양합니다. 성도 중에는 신비한 체험을 통해 믿는 이도 있고, 교회의 선행에 감동을 받고 믿는 이도 있습니다. 또 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믿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신앙을 갖게 된 동기는 다양할지라도, 결국은 계시된 하나님 말씀 위에 그 신앙이 세워져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이단들의 미혹에 흔들리는 것은 그 신앙이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지지 않고 자기의 생각이나 신비체험 등을 기초하여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 위에 세워진 신앙만이 반석 위에 세운 신앙입니다. 그러한 신앙만이 사람들에 의해 시험받지 않고, 고난의 날에 실족하지 않습니다. 이단의 미혹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경으로 자신의 신앙을 검증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2절 함께 읽습니다.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을 날마다 상고하고,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을 성경과 비교해 본 결과 복음이 하나님의 뜻임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이 믿게 되었고 경건한 헬라인들도 믿어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가까이하면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성도 중에는 ‘후탁성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소에 성경을 전혀 읽지 않으니까 성경에 먼지가 쌓입니다. 그래서 주일날 교회에 갈 때 성경에 묻은 먼지를 ‘후’하고 불고 ‘탁’하고 때려서 먼지를 떨어내기에 ‘후탁성도’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멀리하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기쁨도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세상과 마귀가 가까이 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늘 가까이하고 읽은 말씀을 오늘의 양식으로 삼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말씀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설교도 많고, 영상도 많고, 정보도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진리의 말씀인지 성경으로 확인하지 않는 신앙은 위험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맹신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으로 전해 들은 말씀을 검증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는 성경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입니다. 성경 말씀을 붙들고 사는 성도입니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사람들은 같은 복음을 들었지만, 반응이 달랐습니다. 그들의 차이는 말씀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베뢰아 사람들처럼 성경 말씀 위에 믿음을 세워 가는 건강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베뢰아 사람들을 통해 귀한 신앙의 본을 보게 하시니 감사하옵나이다. 저희도 말씀을 간절히 받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믿음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생각이나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의 신앙으로 자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저희를 말씀으로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오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주보에 기록된 1월 행사계획을 보시면, 오늘은 ‘주님의 수세 주일’이고, 다음 주는 ‘주현절 두 번째 주일’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주현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사람들 앞에 공식적으로 나타내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성탄절인 12월 25일로부터 12일이 지난 1월 6일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수세 주일’은 주현절 후 첫째 주일로서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대속,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사순절’, ‘부활절’, 그리고 ‘오순절’이 계속됩니다. 새해 두 번째 주일이자 예수님의 수세 주일인 오늘,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가슴 깊이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전해지는 복음은 동일한데, 사람들의 반응은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마음을 열고 돌아오지만,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분노하고 시기하며 복음을 박해합니다. 문제는 복음이 아니라,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이 전해졌을 때 시기와 소동과 거센 반대가 일어났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똑같은 복음이 똑같은 사람을 통해 전해졌는데 반응은 전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떤 사람이 복음을 귀하게 여기는가”,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가”를 분명하게 마음에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먼저 10절 함께 읽습니다.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데살로니가에서 큰 소동이 일어나자 성도들은 바울과 실라를 급히 베뢰아로 보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무모하게 버티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계속 전하기 위해 때로는 물러설 줄도 아는 지혜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베뢰아에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유대인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환경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항상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했던 바울이 매우 소극적이고도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10절과 14절과 15절에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인도함을 받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유럽 지리에 어두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 길리기아 다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소아시아의 지리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유럽의 지리는 어두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가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기까지 유럽 전도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성도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도적으로 바울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도움으로 바울 일행은 별 어려움 없이 사역지를 옮기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한 사람의 좋은 복음의 일꾼이 탄생하는 것은 그의 능력으로만 되는 일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옆에서 돕는 손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의 경우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이런 경우가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예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전쟁할 때,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지팡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팔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기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모세가 지팡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팔이 내려오자 아론과 훌이 적극적으로 모세의 두 팔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아론과 훌의 도움이 없었다면 모세는 버틸 수 없었고,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출 17장).
또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열두 명의 정탐꾼 중에서 열 명의 부정적인 정탐꾼의 보고로 모세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돌에 맞아 죽을 각오로 옷을 찢으며 나서며 모세의 편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를 통해 모세는 죽음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민 14장).
마찬가지로 교회도 목회자 혼자의 힘으로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목회자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일 뿐입니다.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는 각각 지체로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지체들이 각각의 역할을 다 잘 감당할 때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그 부분을 도와 합력하여 건강한 교회를 이루는 여러분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를 위해 시간과 마음과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맡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1절 함께 읽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이 말씀을 통해 신학자들은 ‘베뢰아 교회’를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이 이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들은 너그러웠습니다. 너그럽다는 말은 헬라어 ‘유게니스 εὐγενής’를 번역한 것인데, 이 단어는 ‘가문이 좋은, 편견이 없는, 신사적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열린 마음으로 편견을 버리고 신사적인 자세로 예의를 갖춰서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대했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켜서, 이제 누구든지 이 아들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는 놀라운 자기희생적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순수하게만 받아들인다면 복음을 듣고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놀라운 사랑을 전해 듣고도 그 말씀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 심령이 결코 선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가 선한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에 일단은 귀를 기울이고 이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살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한 복음이 과연 성경과 일치하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특히, ‘상고하다 ἀνακρίνω’라는 말은 ‘자세하게 골라내다, 시험하다, 재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보석 상인이 보석의 진위를 가려내는 것처럼, 바울이 전한 복음을 뒷받침하는 예언의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내 검증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바울이 전한 복음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똑같이 복음을 전하고 똑같이 설교했으나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은 배타적인 마음으로 복음을 거부했고, 베뢰아 유대인들은 신중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논쟁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자들의 약점을 잡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맹신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성경을 근거하여 논리적으로 복음을 증거했고, 그들도 성경을 근거하여 바울의 복음에 대한 증언이 진실한지, 꾸밈이 없는지, 성경이 증언하는 바를 그대로 해석하고 있는지 검증해 봄으로써 복음이 진리인 줄로 확신하고 믿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근거를 철저히 성경에 두어야 함을 분명하게 교훈 받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는 성경의 가르침을 우리의 신앙의 근거와 삶의 기준으로 삼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은 철저하게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성도의 신앙은 성경에 의해 검증되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성경적인 신앙을 정립해 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을 갖게 된 동기는 다양합니다. 성도 중에는 신비한 체험을 통해 믿는 이도 있고, 교회의 선행에 감동을 받고 믿는 이도 있습니다. 또 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믿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신앙을 갖게 된 동기는 다양할지라도, 결국은 계시된 하나님 말씀 위에 그 신앙이 세워져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이단들의 미혹에 흔들리는 것은 그 신앙이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지지 않고 자기의 생각이나 신비체험 등을 기초하여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 위에 세워진 신앙만이 반석 위에 세운 신앙입니다. 그러한 신앙만이 사람들에 의해 시험받지 않고, 고난의 날에 실족하지 않습니다. 이단의 미혹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경으로 자신의 신앙을 검증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2절 함께 읽습니다.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을 날마다 상고하고,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을 성경과 비교해 본 결과 복음이 하나님의 뜻임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이 믿게 되었고 경건한 헬라인들도 믿어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가까이하면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성도 중에는 ‘후탁성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소에 성경을 전혀 읽지 않으니까 성경에 먼지가 쌓입니다. 그래서 주일날 교회에 갈 때 성경에 묻은 먼지를 ‘후’하고 불고 ‘탁’하고 때려서 먼지를 떨어내기에 ‘후탁성도’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멀리하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기쁨도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세상과 마귀가 가까이 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늘 가까이하고 읽은 말씀을 오늘의 양식으로 삼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말씀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설교도 많고, 영상도 많고, 정보도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진리의 말씀인지 성경으로 확인하지 않는 신앙은 위험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맹신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으로 전해 들은 말씀을 검증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는 성경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입니다. 성경 말씀을 붙들고 사는 성도입니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사람들은 같은 복음을 들었지만, 반응이 달랐습니다. 그들의 차이는 말씀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베뢰아 사람들처럼 성경 말씀 위에 믿음을 세워 가는 건강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베뢰아 사람들을 통해 귀한 신앙의 본을 보게 하시니 감사하옵나이다. 저희도 말씀을 간절히 받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믿음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생각이나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의 신앙으로 자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저희를 말씀으로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오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