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74.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행 16:19-34)

우인택 목사
2025-12-21
조회수 387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지난주일 우리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점치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영혼이 자유를 얻었고, 하나님의 능력이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기뻐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여종을 이용해 돈을 벌던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들의 이익이 끊어졌다는 이유로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곧바로 바울과 실라를 향한 박해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따라올 수 있는 고난, 그리고 그 고난 앞에서 성도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먼저, 19절 함께 읽습니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1) 바울이 여종의 몸에서 귀신을 내쫓자, 점치는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점치는 여종으로 말미암아 큰 이익을 누렸는데, 갑자기 그 여종이 점을 치지 못하니 화가 난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에게는 쫓겨나간 귀신을 그녀에게 다시 들여보낼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마치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죽어버린 것을 본 주인과 같이, 돈만 보고 살던 그들도 갑자기 소망이 끊어지자 이성을 잃고 만 것입니다.

  이에 그들은 분풀이로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리들에게 끌고 가서 고소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고소 내용은 사실과는 다른 모함으로 일관된 것들이었습니다. 

  이어지는 20절 함께 읽습니다.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사건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에서 폭동을 선동하는 요주의 대상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바울이 빌립보로 오기 1년 전에 로마의 네 번째 황제 ‘글라우디오’는 이로 인해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라는 칙령을 내리기까지 했습니다(행 18:1-2). 그래서 여종의 주인들은 먼저, 바울과 실라가 요주의 인물인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관리들에게 부각해 나쁜 선입관을 갖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과 실라가 폭동을 조장한 것처럼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였다”라고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이 고소도 꾸며낸 거짓말이었습니다. 오히려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한 자는 자기의 여종이었던 귀신들린 점쟁이였습니다(17절). 그럼에도 그들은 바울 일행이 백성을 선동하고 로마의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인 것처럼 누명을 씌웠습니다. 

  이어지는 21절 함께 읽습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귀신들렸던 점쟁이 여종의 주인들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사람이 받지도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했다”라며 악의를 갖고 복수하고자, 없는 죄명을 만들어 바울과 실라를 고소했습니다.

  2)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이어지는 22~24절에 이렇게 고소를 하니 관리들은 바울에게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고 매질을 하고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37절에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가두었다”는 바울의 증언에서, 당시 관리들은 바울과 실라를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본보기를 겸하여 무자비하게 매질을 했던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바울과 실라는 옷을 찢어 벗기운 채로 많은 매를 맞았습니다. 여기에서의 ‘많은 매’란 수를 세지도 않고 때리는 무자비한 매를 뜻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그야말로 죽음 직전까지 매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그들은 ‘깊은 옥’, 곧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발에는 ‘차꼬’, 곧 구멍이 두 개 난 넓은 나무 형틀에 매여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리가 크게 벌어져서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3) 그런데 여러분, 바울과 실라는 무엇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했습니까? 바로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복음을 전하다가 죄 없이 매 맞고 큰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고난이 억울한 고난입니까? 예, 당연히 억울하고 분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지극히 영광스러운 고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그것은 예수님을 대신한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은 영광스러운 고난입니다. 오죽하면 순교를 성도의 최고의 영광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고난을 일부러 만들 필요는 없지만, 혹시 복음을 전하다가 오해받고 고난받으신다면 도리어 기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을 내가 대신 받는 일이기에 영광스럽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자세입니다.


  2. 이어지는 25절 함께 읽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1)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무고히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으면서도 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바울과 실라는 매 맞은 곳에서는 피가 흘렀고, 두 발은 차꼬에 채워졌기에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들은 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자신들이 예수님 대신하여 고난을 받게 된 일에 감사하고, 또 예수님께서 이 고난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극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찬송했습니다.

  2) 그런데 여러분, 그들이 이렇게 고난 중에도 기도하고 찬송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26절 함께 읽습니다.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렸습니다. 억울한 고난 중에도 불평 원망하지 않고 기도와 찬송을 하니 하나님께서 기적을 주신 것입니다

  3) 여러분, 모든 일이 잘될 때 찬송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고난과 불행이 겹쳤을 때,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찬송하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행하는 우리 성도들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이처럼 고난과 불행이 겹쳤을 때,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찬송하는 것은, 아무리 칠흑 같은 절망의 때라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간구하고 찬송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같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배짱을 가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하시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그를 통해, 여러분들도 바울과 같은 간증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27절 함께 읽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1) 당시의 로마법에 의하면, 죄수가 탈옥하면 간수가 대신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행 12:19). 그러므로 감옥 문이 열린 것을 본 간수가 죄수들이 달아난 줄로 생각하고 자결하려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죄인들이 탈출한 이상 그에게는 살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간수가 자결하는 순간 바울이 크게 외쳤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간수의 입장에서 바울의 외침은 말할 수 없는 기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복음이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삶의 새로운 소망을 주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오늘 본문의 바울과 같이 삶의 소망이 없는 자들을 도와 그들을 살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우리가 여기 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도와주겠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물론, 말로만 그쳐서는 안 되고, 직접 행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고통당하는 자에게는 물질을 나누어 줘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데도 돕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이 죽도록 방조하는 죄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의로운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삶의 소망이 없는 자들을 살려내는 역할을 온전히 감당해 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이어지는 30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간수가 한 이 말의 의미는, 어떻게 하면 상부의 처벌을 면할 수 있느냐는 의미로 물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말대로 죄수들이 도망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지진으로 옥터가 흔들리고 감옥이 파괴된 것은 천재지변으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간수는 처벌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간수의 질문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정죄하고 매질하고 옥에 가둔 그 죄에서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물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간수는 바울 일행의 기도와 찬송 소리를 들었고, 또 그 응답으로 하나님이 옥터를 깨뜨리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지를 물은 것입니다.

  3) 여러분,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믿지 않는 이웃들이 구원을 사모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방법의 하나는 전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보다 더 강력하게 그들의 영혼을 흔드는 일은 성도의 거룩하고 선한 삶입니다. 성도가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바울과 실라처럼 기쁘게 찬송하며 사는 것을 이웃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는 삶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되고 선하게 행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오늘 본문의 간수처럼 이웃들이 “나도 어떻게 하면 당신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지 않겠습니까? 

  성도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올바로 할 때, 이웃들은 성도의 생활을 보고 감동을 받을 것이요, 또 성도들이 전하는 복음에도 귀를 기울이고 간수처럼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질문을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이웃이 질문한다면, 이 물음에 대하여 간단하고도 명쾌하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오늘도 기쁨과 감사로 복음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억울한 고난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기도하며 찬송했던 바울과 실라의 믿음을 본받게 하여 주옵소서. 신앙 때문에 손해를 보고 오해를 받을 때,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불평 대신 찬송하게 하시고, 어떤 자리에서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의 믿음과 삶을 통해 한 영혼과 한 가정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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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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