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104.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행 25:6-12)

우인택 목사
2026-07-19
조회수 131

6.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우리는 지난 주일에 탐욕스러운 벨릭스를 대신하여 법을 존중하는 베스도를 총독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베스도가 부임 이틀 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달라”라는 청탁을 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송되면, 그 길목에 매복해 있다가 암살하려는 간계를 꾸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베스도에게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판단을 하게 하심으로 “바울이 가이사랴에 있으니 재판을 청하려거든 너희가 가이사랴로 내려오라”라고 대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유대인들의 암살 음모로부터 또다시 바울을 보호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스도가 말한 대로, 가이사랴 법정에서 열린 바울에 대한 재판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먼저, 6절 함께 읽습니다.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베스도는 예루살렘에서 약 열흘가량 머물며 예루살렘의 분위기를 살펴본 뒤,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관저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약속한 대로 이튿날 재판을 열었습니다. 

  이어지는 7절 함께 읽습니다.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바울을 여러 중대한 죄목으로 고소했습니다. 그들이 주장한 ‘중재한’ 사건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2년 전 더둘로가 주장했던 것과 같은 소요죄, 반역죄, 성전 모독죄 같은 사형에 해당되는 죄목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아우성에 대하여 단 한마디로 그 실체를 못 박습니다.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소리만 요란했지, 바울의 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와 증인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사탄은 언제나 실체 없는 큰 소리와 거짓 선동으로 우리 성도들을 위협합니다.

  이어지는 8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바울의 변론은 아주 단순하고 당당합니다.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여러분도 이러한 고백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바울은 종교적으로 유대인의 율법을 범하지 않았고, 신앙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하지 않았으며, 국가적으로 로마의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어떠한 죄도 범하지 않았기에, 그는 유대인 무리의 정죄와 아우성 속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신앙과 삶에 있어서 이처럼 당당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오해하고 손가락질하며 전염병 같은 자라고 욕할지라도, 우리가 날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며 하나님 보시기에 거리낌이 없다면, 세상의 그 어떤 거짓 고소도 우리를 쓰러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종교적으로는 물론 사회, 도적적으로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를 향한 도덕적 표상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완벽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털어서 먼지가 나는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바울처럼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는 삶을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은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성도들은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죄를 지으면 더 심하게 정죄하고 아우성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흠이 없는 삶을 살기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고린도전서 6:2에서 우리 성도들은 장차 세상을 심판하게 될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을 심판할 우리가 도리어 세상 사람들로부터 심판받을 일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오늘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고, 먼저는 가족으로부터, 그리고 성도와 이웃에 이르기까지 그들로부터 부끄러움이 없도록, 그리고 그들의 정죄와 비난으로부터 당당할 수 있도록 정직하고 선한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9절 함께 읽습니다.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베스도 총독은 매우 영리하고 똑똑한 정치가였습니다. 바울의 무죄함도 알았고 유대인들이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는 사실도 정확히 인지했습니다. 10절에 바울이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라고 언급한 것같이 베스도는 바울에게 아무런 죄가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공의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방금 읽은 9절에 그의 진짜 속마음이 드러납니다.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베스도는 전임 총독 벨릭스에 비해 유능하고 로마법을 충실하게 지키고자 애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임 총독으로서 앞으로 식민지 유대인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려면, 그들의 우두머리인 종교지도자들의 마음을 사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죄한 바울을 석방해 주는 공의를 포기하고,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유대인들이 그토록 원했던 타협안을 바울에게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베스도의 타협안은 바울이 가이사랴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간, 길목에 매복해 있는 자객들의 칼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의 길로 유도하는 파렴치한 제안이었습니다.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무죄한 피고인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세상 권세의 불의한 타협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바울은 그가 내민 타협안을 11절에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이것은 로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외치는 동시에, 세상의 불의한 거래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명자의 강력한 요청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던집니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여러분, 세상은 지금도 우리의 연약함을 노리고, 기득권을 흔들며 끊임없이 ‘적당한 타협’을 요구해 옵니다. “조금만 눈 감아라”,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야 네가 편하다”라며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평화는 복음을 훼손하고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거짓 평화입니다. 사명자는 세상의 이익과 환심을 사기 위해 신앙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바울과 같이 타협의 자리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으로 위기의 순간을 지혜롭게 정면 돌파하는 멋진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12절 함께 읽습니다.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바울이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하고 외칠 때, 법정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을 것입니다. 로마 시민권자가 황제의 재판을 청구하면, 총독은 그 어떤 이유로도 재판을 임의로 진행할 수 없고 반드시 로마 황제에게 죄수를 이송해야 하는 것이 로마의 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스도 총독은 자칫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려다 로마 시민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정치적 타격을 입을까 봐, 배석자들과 서둘러 상의한 끝에 바울의 상소를 수락합니다. 그리고 선포합니다.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이 구절은 겉보기에는 로마 총독 베스도가 내린 최종 행정 명령이지만 영적인 눈을 들어 성경을 바라보면, 이 명령은 베스도의 입을 빌려,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바울과 대적자들을 향해 내리신 명령입니다. 사도행전 23장에서 바울이 예루살렘 영내에서 고립되어 낙심해 있을 때, 주님께서 밤에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바울의 로마행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무슨 수로 로마까지 가겠습니까? 가난한 바울에게는 로마까지 갈 여비도 없었고, 배를 빌릴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목마다 바울의 목숨을 노리던 유대 암살단들이 진치고 있었습니다. 만일 혼자 갔다면 얼마 가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가이사 상소라는 초강수를 던지고 베스도가 “네가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하고 선언한 순간,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은 순리대로 성취되기 시작합니다. 이제 바울은 로마 황제의 죄수 신분이 되어, 로마의 정예 군대의 경호를 받으며, 로마에서 제공하는 배를 타고, 로마의 국비로 로마까지 안전하게 이송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세상 총독의 판결문은 사실상 로마선교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탄은 유대인들과 베스도를 통해 바울을 정죄하고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세상의 권력과 압박을 지렛대로 삼으셔서 바울을 로마로 보내시는 영적인 반전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성도로서의 선한 삶을 살아갈 때, 사방에서 들려오는 거짓 고소와 현실적인 억울함에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을 것 같은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믿음을 버리고 적당히 세상과 짝하며 살라고 타협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바울이 그러했듯이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정직하게 행하고, 주어진 사명을 생명처럼 여긴다면 세상은 결코 우리를 함부로 흔들 수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음모를 꾸며도, 하나님은 세상 권세자들의 입술을 움직여서 결국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라고 선언하게 하실 것을 믿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결코 세상을 향해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이 내미는 타협안에 영혼을 구걸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직 내 삶의 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며,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사명을 향해 묵묵히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이를 기억하며, 이번 한 주간도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과 타협의 유혹 속에서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를 지키시며 마침내 사명의 자리에까지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하나님의 신실한 손길을 온전히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이번 한 주간도 당당하게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세상의 모함과 아우성과 불의한 타협의 유혹 앞에 설 때, 비겁하게 신앙을 등지거나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내 삶의 통치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성도로서의 당당한 삶을 지키게 하여 주옵소서. 총독 베스도가 마지못해 선언한 판결문까지도 바울을 로마로 보내시려는 주님의 신실하신 약속의 성취로 사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또한 모든 가로막힌 환경과 위기 너머에서까지 신실하게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신 사명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주소 : 경기도 화성시 10용사로 336-8  / 전화 : 378-5491   

담임목사 : 우인택 (010-4342-8775)  / e-mail : joycs1@nate.com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저작권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