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96.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행 22:22-30)

우인택 목사
202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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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대
25.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29.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30. ○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 앞에 세우니라


  오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께서, 사흘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이 땅에서 40일간 복음을 전하시다가 하나님 나라로 승천하신 지 10일 후인 오순절에, 예수님의 약속대로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불같이 임하셨던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 충만’이라고 하면 뜨겁게 방언으로 기도하고,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등의 신비한 은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성령 충만은 그러한 것 이전에 사도행전 1:8 말씀처럼, 세상 권력과 환경 앞에서 두려워 떨던 자들이 ‘예수님의 당당한 증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환경을 지배하는 영적인 용기가 생겨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은 이러한 성령 충만의 실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눈물로 복음을 전했지만, 돌아온 것은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버리자”라는 광기 어린 폭동이었습니다. 게다가 상황을 잘 모르는 로마 제국의 천부장은 군중을 진정시킨다는 명목으로 바울을 채찍질하며 심문하라고 명령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합리하고 억울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채찍이 등을 내려치기 직전에 성령이 주시는 담대함으로 곁에 서 있던 백부장에게 엄중한 한마디를 던집니다. 그것이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이 외침은 단순히 매 맞는 것이 두려워서 한 소리가 아니라, 로마 제국의 불의한 법과 폭력 앞에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가짜 정의를 꾸짖는 ‘성령 받은 천국 시민’의 당당한 선포였습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우리 또한 세상의 불합리한 채찍 앞에 섰을 때 성령 안에서 붙잡아야 할 영적 자부심과 진리는 무엇인지 돌아보고 마음에 새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22~23절 함께 읽습니다.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우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감동받고 죄에서 떠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 마음이 실망되고 인간적인 허무가 우리 마음을 억누를 때가 적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던 유대인들에게 가장 겸손하고 온유한 언어로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감동적으로 전했습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바울의 말에 경청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자신의 사명’에 대하여 말하자, 또다시 큰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느닷없이 고함을 지르고,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뿌렸습니다. 

  유대인들이 갑자기 이렇게 격한 감정의 반응을 보인 것은 바울의 입에서 나온 ‘이방인’에 관한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이 구원을 받는다든지, 이방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든지 하는 말은 그들이 결코 인정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잘못된 선민의식에 깊이 빠져 있던 그들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바울의 말을 자신들을 모욕하는 소리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상고한 15장에서, 이방인의 구원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을 믿고 이미 성도가 된 유대인들조차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을 볼 때, 당시의 유대교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왜곡했고 잘못된 사상으로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똑같은 죄인이고, 똑같이 율법이나 할례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구원받는다”라는 말만 들으면 불같이 분노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사람이 쉬 분노하고 격동하는 것은 그만큼 그에게 여유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여유가 없다는 것은, 그에게는 믿고 의지할 만한 든든한 기둥이 없다는 말이며, 그것은 구원의 확신이 그 사람 안에 없다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사소한 일로 인하여 쉽게 흥분하지 않습니다. 작은 일에 흔들린다는 것은 아직도 복음의 진리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일로 인해 쉽게 분노하는 타락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의 마음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서도 우리를 여유롭고 참을성 있게 만드는 든든한 복음을 더욱 깊이 확신하고 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런데 문제는 폭동을 일으킨 유대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종교가 이렇게 타락했으니 사회 전반에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24절 함께 읽습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대”

  이는 당시 권력이 얼마나 부패했었는지 그 실태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로마군대의 천부장은 바울의 죄가 무엇인지 살펴보지도 않고 무조건 채찍질부터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도 있었습니다(행 16:22-23). 이것은 당시 권력자들이 얼마나 타락했었는지 그 실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바울을 군영으로 격리하도록 조치한 것은 매우 잘한 일입니다. 권력은 바로 이러한 일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질서와 공의를 세워야 하는 것이 권력자의 책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권력자를 높이 존중합니다. 성경에서도 권력자들을 존중하고 그 명령에 순종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롬 13:1). 

  여러분, 이 세상의 권력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권력은 없습니다. 최고의 권력에서부터 작은 권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력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듯 권력자들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권력자 자신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권력자들이 있습니다. 마치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러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그와 반대로 자신의 권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내세워 포악하고 잔인무도한 일들을 저지른 권력자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의 대표는 중세시대의 권력자들입니다. 그들의 악행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권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님을 대리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모든 권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은 모든 권력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되어야 함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성경 신명기 17장에 “왕은 병마를 많이 두지 말고,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은금을 많이 쌓지 말라.”라는 ‘왕의 율법’으로 명령하고 있습니다(신 17:14-17). 절대군주에 속하는 왕일지라도 겸손하고 검소해야 하고,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 순종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일지라도 그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또한, 율법을 범한 웃시야 왕은 나병에 걸려 왕좌에서 물러남은 물론 평생을 별궁에 격리된 채 살아야 했습니다(대하 26:16-21).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얼마나 많은 세상의 권력자들이 뒤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권좌에서 물러나고 있습니까? 오죽하면 아무리 권세가 높다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인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고사성어로 굳어졌겠습니까? 그러므로 권력자의 자리에 있을 때는 더욱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이 행하는 통치행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늘 살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 권력을 통해 사람을 살리고, 이롭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저는 우리 청년들이 공의로운 지도자들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국가 지도자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3. 이어지는 25절에 바울은 빌립보에서와는 달리 로마 군인들이 채찍으로 자신을 치려는 순간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혔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그러자 26~29절에, 채찍질 하려던 백부장은 즉각 중지하고 그 사실을 천부장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천부장이 즉시 달려 나왔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확인한 후에 자신도 많은 돈을 들여 로마 시민권을 샀음을 고백했습니다. 

  사실, 당시 실제로 로마 시민권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투표를 할 수 있는 투표권과 선거에 출마해 당선될 수 있는 참정권이 주어졌습니다. 세계 곳곳에 로마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로마군대가 있어 해외여행을 안전하게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억울한 판결에 대해서는 로마 황제에게 직접 재판을 받을 권리까지 주어졌습니다. 당시의 로마 시민권은 이 시대 최고의 국가로 군림하는 미국 시민권보다 훨씬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러한 로마 시민권도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천국 시민권과는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로마시민권이 천국 시민권보다 좋다면 바울이 로마 시민임을 자랑하며 평안하게 살 일이지 왜 천국 시민임을 자랑하며 그 때문에 고난당하며, 박해당하며, 그것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며 살았겠습니까? 

  성경은 천국 시민이 된 성도들을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합니다(벧전 2:9). 장차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왕 노릇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 시민 된 성도들과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 28:19~20). 한 사람의 성도도 잃지 않도록 지키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요 17:12). 바로 이 약속 때문에 지금도 많은 선교사가 분쟁 지역과 오지를 가리지 않고 나아가 봉사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천국 시민권은 로마 시민권과 달리 돈 주고 살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돈 주고 천국 시민권을 샀다고 하는 말 들어봤습니까? 물론, 한때 타락한 중세시대에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면죄부를 사면, 당신이 과거에 지은 죄는 물론 앞으로 지을 죄의 벌까지 미리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라며 돈을 내면 천국을 갈 수 있다고 미혹한 면죄부가 그 대표입니다. 그들은 “동전이 헌금함에 떨어지며 ‘딸랑’ 소리를 내는 순간, 그 영혼은 즉시 연옥을 벗어나 천국으로 올라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입니다. 천국 시민권을 돈 주고 산 사람도 없고,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천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 시민권을 그 자리에서 발급한다고 말씀합니다(요 1:12). 사람의 외모나 빈부나 재력과 전혀 상관없이 오직 은혜로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렇게 해서 천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값없이 구원받았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천국 시민권을 소유한 감격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또 무엇보다도 천국의 시민답게 당당한 자세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로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께서는 우리가 천국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날마다 도우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적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의 일을 마주했을 때 이길 힘도 부어주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미리 복음 대상자에게 가셔서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십니다. 이러하신 성령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천국 시민으로서의 복된 날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천국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그리고 의롭게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세상의 불의한 채찍 앞에서도 천국 소망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불의에 맞서던 바울의 모습에서 믿음의 결의를 다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썩어질 것들을 자랑하지만 저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자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높아짐을 자랑하지만, 저희는 예수님의 낮아짐을 자랑합니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때 이 믿음으로 천국 시민으로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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