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95. 대적자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 (행 22:1-21)

우인택 목사
2026-05-17
조회수 128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2.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오늘은 우리 교회의 미래이자 기둥인 청년들을 축복하는 ‘청년주일’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하나님의 선한 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성도 여러분께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가끔 밥도 사주시고, 진로 상담도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청년들도 하나님을 알기에 더욱 힘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예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20대에 이미 최연소 국무부 장관 보좌관을 지낸 천재적인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척 콜슨(Charles Colson)’입니다. 그는 똑똑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권력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해칫 맨(Hatchet Man)’ 이었습니다. 해칫 맨은 상대 진영을 공격하거나, 대통령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지저분하고 냉혹한 비밀 공작을 대신 처리해 주는 ‘행동대장’ 또는 ‘저격수’를 뜻하는 은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닉슨 대통령의 도끼(Nixon's Hatchet Man)’라고 불렀습니다.  복음이나 사랑 같은 단어는 그에게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청년 시절이 무너지고 인생의 가장 밑바닥인 차가운 감옥에 던져졌을 때, 그는 비로소 그곳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저 대적자가 감옥에서 살아남으려고 연기를 하는구나.” 하지만 그는 진짜로 변했습니다. 출소 후 그는 화려한 정계로 복귀하는 대신, 자신처럼 버림받은 죄수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는 ‘교도소 선교회(Prison Fellowship)’를 창립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후에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 상’을 받으며, 미국 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평신도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청년 척 콜슨을 바꾼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주인공, 대적자 사울을 사도 바울로 만드셨던 바로 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난주 우리는 바울이 체포되는 위기 속에서 층계 위에 서서 손을 들어 군중을 진정시키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직후, 분노한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전하는 ‘첫 번째 변증’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현란한 논리나 지식도 중요하지만, 가장 힘이 있는 것은 바로 나의 이야기 ‘간증’입니다. 오늘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 구구절절한 교리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 이렇게 변했습니다”라는 자기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오늘 이 바울의 고백을 통해, 지금 이 시대의 방황하는 청년들, 때로는 하나님을 비방하고 대적하는 청년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말씀을 통해 그 답을 함께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1. 먼저, 바울은 자신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이 결코 자신의 마음이 변하여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르고 박해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역사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자신의 모습과 오늘 본문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비슷함을 강조하며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왜 이렇게,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유대인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곧 유대인들 역시 주님 앞에 회개해야 하며,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자신과 같이 주님의 강권적인 역사에 의해 굴복하게 되든지, 아니면 영원한 멸망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대화법을 우리는 ‘간증’이라고 합니다. 나의 실수를 상대방에게 알려주어 같은 실수를 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특히, 지난 본문에서 상고했듯이 당시 바울 앞에 선 사람들은 감정이 격앙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살의를 품고 바울을 폭행했습니다. 이렇게 억울하게 아무 죄없이 폭행을 당한 바울 입장에서는 이제 자신이 분통을 터뜨려야 할 차례였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권이 있는 사람이었고, 지금 로마 군인의 안전한 보호를 받고 있는 상태였기에 얼마든지 욕을 퍼부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말은 온유했습니다. 1절에 그는 자기를 죽이려 했던 그들에게 ‘부형들아’하고 불렀습니다. ‘부모형제 되시는 여러분’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자기를 죽이려 했던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온유하게 말을 하니 그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입니까? 2절에 ‘더욱 조용한지라’ 말씀합니다.

  우리말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의 언어는 어떠하십니까? 온유하십니까?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다툼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대방 마음에 불을 지르고,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안깁니다. 그러나 지혜롭고 참된 성도의 말은 어떻습니까?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말을 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깊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유순하게 합니다. 불같이 일어난 감정이라도 능히 잠재울 온유함이 그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도의 언어입니다.

  여러분, 세 치 혀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거기에서 어마어마한 폭력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반해 거기에서 위대한 섬김도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혀의 이중성에 대해 성경은 야고보서 3:9에서 “한 입으로 주 아버지를 찬송하기도 하고 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기도 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의 입술에 어떤 말을 두어야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언어를 주신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듣는 자들에게 덕을 끼치는 말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격한 말을 들을 때 할 수 있는 대로 부드럽게 받아넘기고, 또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도 비웃는 말이나 정죄하는 말이 아니라 격려하는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를 통해 살리는 믿음, 존경받는 믿음, 화목하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3절 함께 읽습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바울은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소개합니다. 그것도 그냥 유대인이 아니라, 순수한 혈통의 유대인이며, 초대 이스라엘 왕을 배출한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습니다. 거기에 그의 학문적 배경은 더욱 화려합니다. 그는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다소는 당시 헬라문명권에서도 대학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습니다. 가말리엘은 당대 최고의 율법 교사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역시 이미 당대 최고의 율법 교사였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또, 유대인 가운데서도 바리새파에 속했습니다. 게다가 로마의 시민권을 나면서부터 가졌습니다(행 22:25). 

  여러분, 참으로 대단하고 놀랍지 않습니까? 무언가 위대한 일을 할 것만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때 그가 한 일은 고작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전혀 죄가 없는 기독교인들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문을 자랑합니까? 학문적 배경을 자랑합니까? 또한,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좋은 가문을 만들려고 얼마나 노력합니까? 그러나 좋은 가문, 좋은 대학이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공부만 잘하고,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모범생이고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문제는 그 후의 삶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배경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과 같은 악행을 저지르며 삽니다.

  여러분, 바울뿐만 아니라 유대인 전체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었습니다. 얼마나 명예로운 일입니까? 그러나 그들이 거듭나지 못했을 때 그들이 한 일이란 고작 마귀의 하수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44에서 “그들의 행동은 마귀에게서 났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거룩하신 희생으로 성도된 자로서 어떠한 삶을 준비하고,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예수님을 마음 깊이 영접하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마귀의 하수인이 됩니다. 최고의 배경과 최고의 학문을 소유했던 바울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살리는 자가 아니라, 죽이는 자가 될 수밖에 없었음을 기억하는 청년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본문의 말씀은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게 된 동기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가운데 7~8절은 예수님과 성도 사이의 신비한 연합의 관계를 매우 잘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예수께서는 ‘성도들을 박해’하는 바울을 향해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자신을 가리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성도에 대한 예수님의 인식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예수님은 항상 우리 성도 한사람, 한사람을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우리 성도의 아픔을 예수님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 들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박해받고 고통당할 때 예수님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십니다. 아니 우리보다도 더 아파하십니다. 박해만이 아닙니다. 어떤 고민과 아픔과 슬픔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느끼십니다. 본문은 바로 이것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일과 우리 성도들의 일을 구분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오히려 때로 우리가 무뎌서 느끼지 못하는 우리의 영적인 문제들까지도 예수님께서는 더 아파하시고 고통스러워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그저 나의 삶이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거듭남으로 이미 예수의 형상을 가진 자들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 땅에서 호흡하며 살고 있는 예수님의 형상들이요,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예수님의 가슴이요, 손이요, 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삶이 소명을 따르는 삶입니다. 

  우리가 성도인 이상, 우리는 더이상 이 땅을 살아갈 때 무엇을 하든 내 얼굴과 이름으로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인격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하기에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예수님을 느끼고, 예수님을 보고, 영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과 여러분 자신의 연합 관계를 새롭게 재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단순히 교리적인 것이 아니라 삶 자체라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을 통해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도, 고난을 당하시기도, 배척을 당하시기도, 무시를 당하시기도 함을 인식하며 모든 일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위대한 것은 그가 이러한 인식을 늘 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러한 바울을 본받아 예수님의 형상으로서의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적자까지 품는 온유한 언어로 세상을 감동시키고, 세상 배경보다 거듭남을 더 소중히 여기며, 성령님과 하나 되어 당당히 승리하는 삶을 사는 우리 청년들과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악한 행동을 하는 자들에게 악으로 대항하지 않게 하시고 바울처럼 온유로 대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이 땅의 모든 돈과 지위와 명예를 가진다고 할지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살리는 자가 아니라 죽이는 자가 됨을 깨닫습니다. 저희로 거듭난 성도들이 되게 하시어 예수님께서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하심을 믿고, 삶을 통해 예수님의 향기를 이 땅에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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