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76. 전도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 17:1-9)

우인택 목사
2026-01-04
조회수 96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빌립보에 전하진 복음의 능력을 상고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점술의 어두움이 무너졌고, 바울과 실라가 죄없이 고난당함으로써, 적대자를 상징하는 간수와 그 온 가족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마게도냐 지방의 두 번째 전도지인 ‘데살로니가’에 복음이 전해진 것에 대한 기록입니다. 데살로니가는 ‘로마제국 영토의 심장부’로 인정받을 만큼 정치,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를 유럽 전도의 전초기지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를 통해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가르칩니다. 전도는 결코 쉽게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열매가 맺혔을 때도 그와 동시에 반대와 시기, 소동이 뒤따랐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전도를 너무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또 결과가 더디다고 낙심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함께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이 전도의 열매가 더딘 우리를 책망하는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용기를 주는 하나님의 위로가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합니다.


  1. 먼저 1~3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바울은 세 안식일 동안 유대인의 회당에서 성경을 가지고 강론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 안식일은 바울에게 있어 짧은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때 바울은 6일 동안 있는 힘을 다해 생업에 종사하고, 노동의 피로를 풀고 쉬어야 하는 7일째인 안식일에는 ‘복음을 적대시하는 유대인’들이 있는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때 자신이 한 고생이 얼마나 컸는지 데살로니가전서 2:9에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사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국에 선교사로 나가서 6일간 생업에 종사하고, 또 휴식하면서 피로를 회복해야 하는 안식일에 쉬지 않고 회당에 나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열심을 다 한다고 해서 당장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첫 안식일에 복음을 열심히 전했지만 그 결과가 신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일주일을 일하고 두 번째 안식일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렇게 결과는 신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또 한 주일을 열심히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제야 약간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때에야 몇몇 사람이 복음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건들이 짤막하게 보고되어 있기에 바울이 아주 쉽고 간단하게 복음을 전하여 결실을 얻은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바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입니다. 오늘 본문의 세 안식일은 그래도 나은 편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고린도에서는 무려 1년 6개월을 수고했다고 말씀합니다(행 18:11). 에베소에서는 무려 2년 이상 수고했다고 말씀합니다(행 19:10). 우리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3년 반의 공생애 기간에 수고하여 얻은 것이 열두 제자와 120여 성도였습니다(행 1:15, 고전 1:6). 이 모든 것이 보여 주는 것은 한 영혼을 얻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영혼 구원이 어렵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전도란 쉽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초대교회가 하루에 오천 명, 삼천 명을 회심시켰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이전에 우리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 동안에 뿌려 놓은 수고가 있었기에 초대교회에 그러한 부흥의 열매가 맺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뿌려 놓은 것도 없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거두려고만 하니, 어디 그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전도는 호흡을 길게 가져야 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전도만큼은 호흡이 길어야 합니다. 5년, 10년, 20년, 아니 그 이상을 내다보는 마음으로 전해야 합니다. 당장에 거두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지금 심어 미래에 거두겠다는 마음으로 전해야 합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오늘, 2026년을 길게 호흡하며 한사람 전도에 힘쓰기를 결단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4절 함께 읽습니다.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바울 일행이 전도한 사람의 대부분은 경건한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경건한 헬라인’들이란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헬라인들은 철학을 많이 배운 사람입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이 그들의 조상입니다. 또 당대에도 수많은 철학자가 그들 중에 있었습니다. 또, 헬라인들은 많은 신화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우스, 포세이돈, 헤르메스, 아테나 등도 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입니다. 헬라인들은 이러한 신들을 섬기며 수많은 신전을 세웠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유대교로 개종한 이유는 그들이 지닌 철학과 신화로는 영혼의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끝없는 논쟁으로 이끌고 가다가 ‘네가 알아서 하라’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또,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인간을 비웃고 노리갯감으로 삼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세계는 공허하고 혼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에게 유대교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율법의 가르침은 그들의 영혼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 역시, 그들의 영혼의 문제를 근본적으로는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켜 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은 방황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들은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러했기에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가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것입니다. 

  또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개종했다고 했는데, 이들은 데살로니가의 귀족이나 고관들의 부인들입니다. 이들은 남편의 방탕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유대교의 도덕적인 가르침으로 위로를 받고 있었던 여인들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도 율법과 자신의 삶과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바리새인들처럼 타성에 젖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기뻐하며 개종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는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싶어 하는 갈급한 심령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식을 자랑하던 헬라인들도, 남부럽지 않은 부귀영화를 누리던 고관대작의 부인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했고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했습니다. 또, 영원한 생명의 소망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복음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합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복음을 듣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환상 중에 바울에게 어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고 외친 마게도냐 사람처럼 자신들을 돕기를 외치고 있습니다(행 16:9).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영의 귀가 열리지 않아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속히, 바울처럼 영의 귀를 열어 그들의 외침과 호소를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복음 전할 시기는 지났다. 그 대신 믿는 자들이 성숙해져야 할 시기다”라고 말하는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기 원하는 갈급한 심령을 지닌 이웃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영혼의 갈급한 절규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올해에는 복음을 듣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3. 이어지는 5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그런데 이러한 폭발적인 부흥 속에서조차도 지금껏 계속해서 그래왔듯이 여지없이 방해자가 나타났습니다. 복음을 시기한 유대인들이 저자의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불량한 사람들이란 오늘날로 말하면 시장 상인들을 갈취하는 조직 폭력배 같은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폭행하기 위해 조직 폭력배를 동원한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교의 부패상을 여실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고소하는 내용도 말이 되지 않는 내용입니다. 어찌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그들의 입에서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기지 않는다고 고발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신앙이 부패하게 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부패하면 그 마음이 시기 질투가 일어나게 됩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의 신앙이 더 좋으면 질투가 납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이 복을 더 많이 받으면 시기심이 생겨납니다. 

  더욱이 폭행을 당한 야손은 교회 지도자가 아니라 평범한 성도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설교자도, 기적을 행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유대인들의 공격대상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를 보면서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편안한 삶을 보장받는다는 뜻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시대는 오늘 본문의 내용처럼 복음을 노골적으로 박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복음을 불편해하고, 미워하기까지 합니다. 교회가 자기들처럼 부패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각종 매스컴에서는 교회를 아주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냅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을 이중적인 인격자들로 그려냅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 본문의 박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복음을 지키고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구원해 낼 수 있겠습니까? 이를 깊이 고민하며 올해 표어와 실천목표를 정했습니다. 여러분 주보를 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표어와 실천목표를 읽겠습니다. 

  <표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성도가 됩시다” 

  <실천목표> 
  1. 시간을 하나님께 맡기는 성도가 됩시다. 
  2.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성도가 됩시다. 
  3.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맡기는 성도가 됩시다. 

  올 한해 이러한 목표를 붙들고 믿음의 진보를 이루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바울이 복음을 전함에 있어 쉽게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항상 긴장해야 했고, 참아야 했고, 기다려야 했고, 억울한 모함에도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은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득불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삶은 더이상 가치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도 바울의 이 정신을 본받아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시간과 마음과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향하므로 많은 열매를 맺는 2026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우인택 목사 / 경기도 화성시 10용사로 336-8

(031) 378-5491   joycs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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